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99화 (99/152)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인파를 헤치면 계속해서 쫓았다.

“저기요!”

재석은 소리까지 치며 뒤를 쫓았지만, 결국 남자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계속 어디서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잊히지 않았다.

‘누구였지?’

반보영처럼 중요한 인물이었다. 미래의 스타가 될 인물이 가물거리며 떠오르지 않았다.

재석은 다시 그를 찾기 위해 대학로를 이리저리 전전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재석이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자 민경이 왜 이리 늦었냐며 타박했다.

“뭔가 느낌 오는 사람을 찾아다녔어.”

“느낌 오는 사람?”

“어, 촉이 왔어. 근데 계속 찾아다니고도 못 찾아서 되게 찜찜하네.”

재석은 결국 개운치 않은 상태에서 하루를 끝마쳤다.

그날부터 재석은 대학가를 지날 때면 그를 발견했던 장소로 시선이 갔다.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야.’

이후 연예인이 되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얼핏 그의 얼굴을 보고도 누군지 바로 떠오르지 않은 걸 보면, 아직 데뷔를 하지 않은 건 확실할 듯했다.

재석은 아직 이 시기에 데뷔하지 않았고, 이후 스타가 될 남자 연예인들의 이름을 쭉 적어 가며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도중기!’

김조현과 더불어 젊은 세대의 아시아 프린스가 되는 도중기였다.

‘민경이 한류 1세대면 이들은 이후 세대 스타들!’

도중기는 한 대학에서 명물로 통했다. 얼굴 잘난 걸로 말이다.

‘다른 곳이랑 계약하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해.’

워낙 미남으로 소문이 나 있어서 그가 다니고 있는 대학으로 찾아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터다.

“일단 찾아가자.”

다음 날, 재석은 예정된 일정도 미룬 채 도중기가 재학 중인 대학교를 찾아갔다.

그는 여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을 붙잡아 물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사람을 하나 찾는데, 혹시 이 대학교로 명물로 불린다는 남자분이 어느 학과인지 아시나요?”

“아, 누구 찾는지 알겠네요. 사회학과 건물로 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재석이 그 뒤로 지나치자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우와, 저렇게 슈트가 멋진 사람 처음 봐.”

“그러게, 멋진데.”

재석은 도중기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슈트까지 차려입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이러지 않았겠지만, 그는 김조현만큼 중요한 사람이다.

재석이 그 사회학과 건물로 찾아가자 더 찾기가 쉬워졌다.

“아, 중기 찾으러 오셨구나.”

재석은 사회학과 학생들의 안내를 받으며 도중기를 만날 수 있었다.

“왜 저를 찾으셨죠?”

“전 이런 사람입니다.”

재석은 명함부터 내밀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 존재를 알렸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소문 듣고 찾아왔습니다. 이 학교에 대단한 미남이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봤는데 대단하긴 하네요.”

“감사합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하지만 지금 수업이 있어서 점심시간이 돼서야 시간이 납니다.”

“그럼 저쪽에서 기다리죠.”

재석은 한쪽에 그늘진 곳을 가리키며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심시간까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괜찮습니다.”

재석에게 두 시간은 상당한 시간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그는 가만히 햇볕을 받으면서 두 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점심시간이 되자 많은 학생들이 밖으로 나왔고, 도중기는 재석에게 왔다.

“진짜 기다리셨네요.”

“물론이죠.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재석은 미소 지으면서 도중기를 봤다.

‘정말 얼굴 하나는 잘났네.’

“식사는 뭐가 드시고 싶으십니까?”

“네? 아, 저…….”

“고르기 어려우시다면 절 따라오세요.”

“네.”

재석은 그렇게 도중기를 데리고 대학로를 벗어나 한 식당을 찾아갔다.

“이야…….”

도중기 입에서 감탄이 나올 만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예약하셨습니까?”

“예약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자리했고, 재석은 도중기에게 티본스테이크를 대접해 줬다.

도중기는 재석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연예계에 관심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면 되는지 전혀 모르거든요.”

확실히 관심만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일단 한번 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님 반대가 심해서 어려울 겁니다. 전 관심이 많지만, 부모님이 연기를 극구 반대를 하시거든요.”

“설득의 문제군요.”

“뭐, 그렇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하실 겁니까?”

“네?”

“정말 하고 싶은 걸 포기하시며 살 생각이십니까?”

재석의 물음에 도중기의 표정은 멍해졌다. 지금까지 재석처럼 물어본 이는 없었다.

“제 회사에 들어오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꼭 하고 싶으시다면 한번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의 마음속에 파문을 던지는 한 마디였다.

“정말 하고 싶다면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 후회도 없죠. 이미 했으니까. 경험해 봤으니까 포기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너무 정색을 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닌지 싶었지만, 재석은 본인이 실제로 포기했던 것들을 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조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마세요. 부모님 말씀도 중요하지만, 그게 나쁜 짓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재석은 도중기를 다시 대학에 데려다주었다.

가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한 사람이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재석은 그렇게 돌아왔고, 이날 저녁에 반보영과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결정은 하셨습니까?”

“정말 말씀하셨던 대로 2년 안에 스타로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계약을 해지해 주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2년 안에 관객 수 500만 이상의 영화에 출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죠. 그 이후에는 순식간에 스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예, 만족합니다.”

“단, 저도 조건을 걸죠. 2년 안에 제가 내건 조건을 달성하면 추가로 계약 기간을 5년 연장하는 걸로.”

“그런 거라면 좋아요. 2년 만에 딸을 스타로 만들어 준 회사인데 몇 년이고 믿고 맡길 수 있죠.”

두 사람 모두 각자 내건 조건에 납득했고, 그렇게 계약서에는 서로 추가한 내용이 적히게 되었다.

‘어차피 나한테는 남는 장사지.’

재석은 절대 손해 보는 짓 안 한다. 반보영은 2년 안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최소한 7년은 자신과 함께할 될 거다.

“그럼 이제 계약서도 썼으니 일 이야기로 넘어가죠. 반보영 씨.”

“네, 사장님.”

“어떤 매니저를 원해요? 남자, 여자.”

“아무나 괜찮아요. 매니저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지금까지 부러웠거든요. 매니저 있는 다른 배우들이…….”

“그 부러운 일 이제 없을 거니까 걱정 말고 기다려요.”

“네.”

반보영의 어머니는 조금 철벽같은 느낌이 있지만, 반보영은 아직 여린 소녀였다.

‘그런데 연기할 때는 또 전혀 다르단 말이지.’

아니면 연기에 대한 재능이 남다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단 연기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부터 해야지.’

미래에야 잘나가지만, 지금은 분명 부족한 부분을 보일 거다.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의 일은 없다.

‘여긴 이렇게 끝났고, 남은 건 도중기네.’

도중기는 지금 부모님과 정면으로 대치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고, 엄마는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꼭 그걸 해야겠어?”

“저 연기 꼭 하고 싶어요.”

“…….”

“왜 또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는 거야. 그런 딴따라가 뭐가 좋은 거야?”

“엄마, 이제는 딴따라 아니에요. 옛날 같은 시대가 아니라고요. 대학을 갈 때는 제가 굽혔지만, 이번에는 아니에요.”

도중기는 그동안 부모님의 반대 탓에 연기를 하지 못했던 게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고야. 여보, 좀 말려 봐요. 입 다물고 있지 말고.”

어머니가 도움을 요청하자,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냐뇨?”

“네가 이런 생각이 들게끔 만든 사람 말이다.”

“아니에요. 저 혼자 생각한 거예요.”

“아무런 계기도 없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진 않았을 거다. 솔직히 얘기해 봐라.”

“후우.”

도중기는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어떤 사업가였어요. 그 사람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며 멋지게 살더라고요. 우연히 그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저한테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역시 그랬구나.”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중기야.”

“네.”

“얼마나 하면 후회 없을 것 같냐?”

아버지의 말에 중기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

“평생이요.”

“하아.”

아버지는 중기의 대답에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사업가란 인간의 멱살을 잡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걸 찾았기에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좋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봐라. 이제 너도 성인이고, 네가 선택한 인생을 살 때도 됐지.”

“여보!”

“여보, 이제 우리 아들도 다 컸어. 어엿한 성인이야. 사회에 나가서 스스로 깨지고 다치고 하면서 크는 거야.”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도중기는 굳은 결의를 보였다.

“아버지, 여한 없이 해 보겠습니다.”

“그래, 해 봐라.”

*  * *

재석은 어제와 다른 도중기의 모습에 신선함을 느꼈다.

‘눈빛이 하루 만에 바뀌었어.’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연기가 하고 싶으신 거겠죠?”

“물론입니다. 이미 부모님 허락은 받고 왔습니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모습에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약 이야기를 나누죠.”

재석은 계약에 관해서 상세히 설명해 줬다. 그 뒤에 어떠한 활동이 이어지는지 설명이 장황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귀결되었다.

“일단 얼굴은 되는데 연기가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연기 수업부터 시작하죠.”

계약 시작과 동시에 도중기는 연기 학원으로 보내졌다. 그는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달려가 연기 훈련만 죽어라 했다.

도중기 역시 자신이 연기를 못한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지 정말 열심히 연기에 임했다.

반면 반보영은 계약을 하자마자 활발히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이미 따로 연기를 배웠던지라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후우, 이걸로 대충 됐어.”

다음 세대를 위한 스타들까지 포섭이 완료되었다.

출연 중인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저 약간의 차이만 날 뿐이었다.

그리고 민경은 재석이 결혼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깨닫고 그녀의 마인드가 단순한 연인 관계에서 벗어나 버렸다.

“왔어요.”

“오늘 뭐 했어?”

“딱히 특별한 건 없고 하던 거 했어요.”

민경은 일정이 없을 땐 평상시 책이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추가된 게 있었는데, 바로 요리였다. 그녀는 요즘 시간이 남을 때면 요리를 하며 열정을 점점 더 키워 나가고 있었다.

“오빠, 나 요리 자격증 한번 따 볼까요?”

자격증이라는 말에 재석은 귀를 의심했다.

“요리 자격증?”

“뭐, 필요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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