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00화 (100/152)

“해 봐.”

그날로 민경은 요리 학원에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민경이 학원에 다니자 당연하게도 많은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지만, 그녀가 요리에 집중하는 모습에 그 누구도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상당히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일정 탓에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빠지는 날이 많았는데, 어떻게 해서든 보충할 정도였다.

그사이 재석은 최근 신경을 쓰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났다.

“아, 사장님 오셨어요.”

“좀 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그동안 신경을 못 써 드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덕분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요.”

류태룡은 재석 덕분에 이렇게 소속사에 들어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만약 재석이 아니었더라면 아직까지도 꿈을 이루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같은 소속사에 있는 잘나가는 젊은 배우들을 볼 때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재석은 그를 더 잘 챙겨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겨울에 영화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출연해 볼 생각 없습니까?”

“영화요?”

“예, 원작도 있는 영화라 무리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주연은 어렵고, 조연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데 한번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류태룡의 자금 사정은 정말 주머니에 구멍이 안 났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러니 조연이라 할지라도 재석의 제안이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류태룡이 허리까지 숙여 감사하자 재석은 미안함을 느꼈다.

“아닙니다. 더 빨리 챙겨 드렸어야 하는데 오히려 죄송합니다. 오늘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죠.”

류태룡은 아직 단역 생활을 하면서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재석은 그가 미래에는 크게 성공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미리미리 잘 챙겨 주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아내분에게도 연락해서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시죠.”

류태룡은 재석과 계약한 후, 많진 않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생긴 덕분에 여자 친구와 무사히 결혼을 하게 되었다.

“정말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함께 먹는 게 더 맛있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류태룡은 얼른 집에 전화를 걸어서 아내에게 외식 먹을 준비하라고 일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류태룡의 아내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왔다.

그녀는 재석을 보자 고개를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혹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재석의 물음에 류태룡의 아내는 우물쭈물했다. 먹고 싶은 거야 많지만, 남편의 회사 사장님께 이야기를 꺼내지 어려웠던 것이다.

재석은 그 마음을 헤아리고는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메뉴는 정하기 어려우시다면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갔던 곳으로 가죠. 추억도 떠올릴 겸 말이죠.”

재석은 류태룡과 그의 아내를 이끌고 한우로 유명한 식당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소고기 구경을 못 해 봐서 그런지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재석은 우선 그곳에서 가장 비싼 메뉴들을 먼저 주문한 후에, 류태룡 부부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도 마음껏 주문해 줬다.

주문을 하도 많이 한 터라 식사는 꽤 길게 이어졌다.

“아이고야.”

두 사람은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절로 소리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다 드셨으면 조금 쉬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시죠.”

“사장님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뭘요. 저희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을 챙기는 게 제 일인데요.”

재석은 이 부부의 배를 빵빵하게 만드는 게 의외로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근데 류태룡 씨는 요즘 운동하십니까?”

“뭐, 딱히 하고 있는 건 없습니다.”

“그럼 안 됩니다. 배우는 최소한 건강한 몸을 가져야 합니다. 몸뚱이 하나로 돈 버는데 운동을 안 하면 안 되죠.”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단순한 걱정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몸 관리를 위해 내일부터 헬스장을 끊어 드리죠. 일 년 치 꾸준히 다니셔야 할 겁니다.”

“어머, 잘됐네요. 그러지 않아도 운동을 안 해서 배가 슬슬 나오고 있었는데.”

류태룡의 아내는 기분이 좋은지 남편의 흉을 보며 걱정하고 있다는 걸 티를 냈다.

“아이고, 사장님.”

류태룡은 운동만큼은 피하고 싶은지 그 약속 취소해 달라고 하려 했지만, 아내 때문에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재석은 류태룡의 집에서 가까운 헬스장 일 년 치를 끊으면서 매일같이 열심히 다니라는 말을 남겼다.

“사, 사장님…….”

“근육질은 바라지 않습니다. 몸이 재산인 배우입니다. 연기도 잘해야 하지만, 몸이 건강해야 일도 열심히 하죠.”

그렇게 류태룡은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재석은 그 운동이 류태룡을 활동적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  * *

드라마 하나가 방영이 예정됐는데, 태풍의 핵이 될 것이라 예상됐다. 동시간대에 방영하는 수목 미니시리즈들을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이야, 이놈의 사신기 때문에 수목은 아주 작살이 나겠네.”

주명진은 재석에게 자신들도 그 드라마에 끼어서 뭔가 할 수 없을지 물었다.

“그 작품은 저도 손댈 방법이 없습니다. 출연자들 대다수가 한 소속사에 속해 있어요. 그 외 나머지는 조연뿐인데, 우리 회사엔 조연을 할 사람이 없어요.”

“그럼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이미 사신기에 관한 정보는 어느 정도 떠돌고 있었다. 출연 배우들도 거의 대부분 정해진 상태였다.

“어차피 거기에 손대기 어려워요. 주인공이 눈꽃연가의 그 인간인데.”

“어렵긴 어렵지.”

투자 쪽으로도 방법이 없었다. 이미 대박이 예상된 드라마라서 끼어들 틈이 안 보였다.

“뭐, 돈 벌 구석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영화 화려한 휴일의 수익금이 입금됐고, 류태룡의 영화 출연까지 맺으며 안정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커피왕자님 덕분에 커피 회사에서 주유에게 전속 계약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흐음, 가격이 3억?”

“연간 계약이야.”

가만히 앉아서 받는 돈이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전속 계약이면 매년 돈이 들어오는 거고 말이다.

“이걸로 향후 수년간 해 먹겠네.”

주유는 커피왕자를 통해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드라마 또한 관심을 끌게 되면서, 그가 몇 년 동안 꾸준히 연기해 온 실력파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제이이브에 소속된 배우들이 하나둘 두각을 드러내면서, 제작사와 방송사 관계자들 사이에 제이이브를 두고 별명이 하나 붙었다.

아귀.

몸은 작지만, 입이 거대해서 못 먹는 게 없는 생선.

지금 제이이브가 바로 그러했다. 회사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손을 대는 것마다 대박을 치고, 몸집에 비해 거물급 연예인들 너무 많았다.

사람들은 그런 거물급 배우들은 계약이 끝나면 규모가 큰 회사로 떠날 거라 여기고 있었다.

물론 재석은 그렇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고, 배우들 또한 자금력이 빵빵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완벽한 투자와 지원을 해 주는 제이이브를 떠날 생각을 하진 않았다.

류태룡 부부에게 멋지게 대접을 하고 며칠 뒤, 재석은 류태룡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아이고, 두 분이서 잘 사시는 것 같습니다.”

재석은 류태룡의 아내가 차려 준 식사를 먹으며 말했다. 부유하지 않더라도 화기애애하며 금실 좋게 사는 류태룡 부부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허허허, 뭘요. 사장님이 사시는 집에 비교하면 누추하죠.”

“아닙니다. 제가 태룡 씨도 꼭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 얼굴에 뭘 기대하겠습니까. 조연이나 열심히 하면 되죠.”

류태룡은 스스로의 얼굴이 잘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꾸준히 조연이라도 맡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재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꼭 주인공으로 만들어 드릴 겁니다.”

“허허, 말이라도 기분 좋네요.”

“하하하, 걱정 마세요. 류태룡 씨도 충분히 매력 있습니다. 그 매력으로 주인공이 될 수 있고요.”

“이 얼굴로요?”

류태룡은 크게 웃었다. 재석이 그냥 농담을 한다고 여긴 거다.

하지만 재석의 말이 미래에 사실이 된다는 게 진실이다.

“뭐, 어떻습니까. 못생긴 것도 아니고.”

“다른 배우들처럼 잘난 얼굴도 아니죠. 오히려 피부는 험악하고, 생긴 건 웃기죠.”

류태룡은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재석이 보기엔 그는 자신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무어라 말한들 그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었기에 재석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냉장고가 많이 낡아 보이네요.”

“어디서 주워 왔는데, 잘 돌아가서 그냥 쓰고 있습니다.”

중고로 산 것도 아니고 주워 왔다는 말에 재석은 마음이 아팠다.

“내일 시간 있으십니까?”

“네, 내일 별다른 일정은 없습니다.”

“그럼 내일 잠시 저랑 어디 좀 가시죠. 아내분이랑 같이.”

“어딜 말입니까?”

“오시면 압니다.”

재석은 그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사장님, 들어가세요.”

“식사 잘하고 갑니다.”

다음 날, 재석은 류태영 부부를 데리고 가전제품 판매점을 찾아갔다.

“아니, 여긴 왜……?”

“하나 고르세요. 제가 바빠서 결혼식장도 못 갔는데, 늦게나마 축의금 낸다 생각하세요.”

“네?”

재석은 류태룡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들 부부의 집을 보고는 회귀 전 자신의 삶이 떠올랐다.

참 힘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게 없던 끔찍한 시절이었다.

‘그때 참 힘들었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미래에는 잘나가게 되지만, 아직 그때까지 수년이나 남았어.’

류태룡은 앞으로 약 10년이란 시간이 흘러야 정상에 오른다. 그때까지 그가 견뎌야 할 고통은 결코 작지 않을 거다.

그리고 재석은 그러한 모습들이 자신의 회귀 전 모습과 겹쳐 보여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장님, 이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류태룡 부부는 재석의 온정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뭘요. 있으니까 돕는 겁니다.”

재석은 그 둘을 데리고 가전제품을 하나 선택하게 했다. 류태룡 부부는 꼼꼼히 물건을 골랐는데, 역시 냉장고였다.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은 냉장고였다.

“더 큰 거 고르셔도 되는데.”

“더 크면 못 들어가요.”

아직은 집이 작아 너무 큰 건 들어갈 수 없어서 적당한 사이즈를 선택한 거다. 그리고 약간의 부담도 있었다.

재석은 류태룡 부부에게 선물을 하나 해 주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배우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 직원들 대다수는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직원 수가 몇이지?’

매니저의 숫자가 10명을 넘지 않았고, 스타일리스트를 비롯한 사무직원들을 모두 합쳐도 50명은 안 됐다.

‘흐음…….’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많은 숫자는 결코 아니다. 충분히 신경 쓰려면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재석은 류태룡 부부를 집에 돌려보내고 돌아와서 민경과 이야기를 나눴다.

“민경아.”

“응?”

“직원들에게 선물 한번 할까?”

“응? 갑자기 선물이라니?”

재석은 류태룡 부부의 이야기를 하면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을 직원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선물을 한다는 거예요?”

“응.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소소하게나마 하고 싶어.”

“그럼 어떤 걸 선물할지부터 정해야겠네.”

일단 가격부터 정해야 했다. 일인당 백만 원으로 책정한다 하더라도 수천만 원의 지출이 나간다.

하지만 재석은 그 돈이 별로 아깝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벤트로 한 번 하는 건 나쁘지 않겠지만, 돈 많이 들겠는데.”

“괜찮아. 다들 날 위해 돈 벌어 주고 있잖아.”

“월급 받잖아.”

“그건 그거고.”

“그럼, 어떤 이유로 그러고 싶은 거야?”

“다들 힘들게 살고 있으니까, 직원들에게 ‘오늘도 수고했다.’ 이런 느낌이 드는 선물을 해 주고 싶어.”

“오늘도 수고했다…….”

민경은 재석의 말을 곱씹으며 가만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수고했다는 거 일 끝나면 하는 인사말인데…….”

민경은 재석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한마디 했다.

“영감님이 자식 걱정하는 표정이네.”

“뭐?”

“그렇잖아. 사장이 나이 든 아빠고, 직원이 자식인 거지. 고생하는 자식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거잖아.”

“자식은 아니잖아. 그냥 수고 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럼 선물에 손 편지 한번 써 보는 건 어때?”

“손 편지?”

이 시기에도 이미 손 편지는 정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주고받는 게 되어 있었다.

“손 편지라…… 괜찮네.”

재석은 그렇게 직원들에게 줄 선물을 민경과 같이 고르고, 직접 하나하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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