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02화 (102/152)

‘아, 이 영화 대박작인데 시작부터 사람 괴롭히네.’

재석은 다른 건 몰라도 이 영화의 수익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알고 있다.

“직접 찾아가야겠네.”

재석은 차인혁이 거절을 못하도록 민경도 같이 대동해서 차인혁과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입니다, 차인혁 씨.”

“이야,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민경이까지 데리고 와서 섭외를 하시려고 하네.”

친분 이용해 섭외하려 하니까 차인혁이 투덜거렸다.

“인혁 오빠, 오랜만이야. 가끔 연락하긴 했는데 얼굴 보는 거 참 오랜만이지?”

“민경아, 너 나 섭외하러 온 거 맞지?”

“어머,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시나리오 보고 거절하니까 바로 달려왔는데.”

차인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징크스 때문에 괴로운데, 인기 없는 연예인 캐릭터 연기를 기운 빠지게 어떻게 해요.”

그는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망작 징크스가 따라붙고 있었다. 하는 드라마, 영화마다 연이어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반드시 흥행할 것 같지 않은 작품은 출연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재석이 가져온 시나리오에서는 특별히 성공할 것 같은 가능성이 느껴지지 않은 거다.

“인혁 씨, 저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인혁씨 말고 이 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없습니다.”

재석이 한 번만 도와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자, 차인혁은 차마 냉정하게 거절하기 어려웠다.

“하아…….”

“오빠, 내 얼굴 봐서라도 꼭 출연해 줘.”

“아이고, 내가 어쩌다가 널 알아 가지고.”

“처음에 오빠랑 나랑 많이 친했잖아.”

“너, 솔직히 말해. 너처럼 바쁜 사람이 대표하고 같이 나온 거 보니까 둘 사이 뭐 있지.”

세상 눈치 빠른 인간이 차인혁이다. 연예계에서 눈치 빠르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인간이 이 사람인데, 민경이 이 자리에 나온 것만 보고 알아차린 거다.

“오빠, 같은 연예인끼리 이러기예요?”

“어허, 민경아. 무섭게 왜 이래.”

“나 오빠 과거 한번 떠벌려 볼까요?”

“어허, 민경아. 침착해.”

“오빠, 떠벌리면 그땐 오빠도 죽고 나도 죽는 거예요.”

순간 살벌한 눈빛을 하는 민경의 모습을 보고 차인혁은 아차 싶었다.

“어허, 나 입 무거운 거 알면서 왜 이래.”

“무겁기는, 깃털처럼 가벼워서 세상 사람들 다 안다던데?”

어느새 이야기는 두 사람의 비밀을 폭로하기 직전까지 갔다.

“너도 입 다물면 나도 입 다물지.”

“하나 더. 영화 출연해 줘.”

“어허, 그거 참 망할 거 같은 영화인데 출연이라니…….”

“그럼 출연료를 인상해 드리죠. 10퍼센트 어떻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몸값 좀 떨어져 있었는데 재석의 말에 차인혁의 귀가 솔깃해졌다.

“어이고, 대표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차인혁은 협박이라는 채찍과 돈이라는 당근으로 회유로 끝을 봤다.

문제는 차인혁의 스케줄이었다. 아무리 망작 징크스를 가진 배우라지만, 그는 열심히 활동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었기에 영화 크랭크 인 날짜가 뒤로 밀린다.

“대표님, 이러면 5월에 촬영을 해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그 시간 금방입니다.”

재석이 그렇게 감독을 응원하며 과속삼대의 제작이 원활히 진행되어 가고 있던 그때, 또 따른 영화 제작사가 그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이놈 그놈 저놈.”

참 독특한 제목의 영화로, 상당한 흥행은 거두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이미 투자를 받은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제작비가 조금 부족할 것 같아서요. 거의 대부분 해외 촬영이다 보니 돈이 여간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서…….”

“아쉽지만, 이미 다른 작품에 투자를 진행 중인 터라 현재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없습니다.”

“네? 소문에는 100억은 우습게 투자하신다고 하던데…….”

“워낙 여러 곳에 투자를 했더니, 자금을 회수하려면 1년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재석은 현재 운용할 자금이 없다며 거절을 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이 영화에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상당한 흥행을 거두는 영화이기도 하니 손해는 안 날 테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은 상태였기에 투자를 한다 하더라도 그에게 떨어지는 돈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출연하는 이들이 다들 한 몸값 하는 배우들이었다. 그들의 출연료만 하더라도 수십 억에 달했다.

그만큼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먹을 콩고물이 없는 영화야.’

아무리 잘나가도 먹을 게 없다면 과감히 거절하는 게 상책이다.

“제가 때를 잘못 찾아왔네요.”

“아쉽게 됐습니다. 그럼 식사라도 함께하실까요?”

“아닙니다. 급하게 투자처를 알아봐야 해서요.”

영화 제작사 사람이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를 떠나자 재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영화는 복불복이야.”

인기와 수익이 비례하지 않기에 더욱 어려운 것이 영화판이다.

미래를 알고 있는 재석이기에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다른 것도 그렇지만, 외국 영화 하나 터지지 않나?”

십여 년간 시리즈로 제작될 영화의 시작격인 영화가 곧 개봉할 예정이다.

“그 영화가 나오면 참 재미있는데 말이야.”

전 세계에 판권이 팔리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시리즈 영화였다.

하지만 재석은 해외 판권을 사 본 적이 없어서 생각은 있으나, 시도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번 알아만 보자.”

재석은 주명진과 함께 미국으로 움직였다.

“재석아, 왜 갑자기 미국 영화에 관심을 보인 거냐? 국내 영화만 해도 빠듯할 텐데.”

“관심 있는 영화가 하나 있어요. 사정 봐서 괜찮으면 그 회사에 투자도 좀 하려고요.”

미국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터라 재석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눈을 붙였다.

주명진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재석이 눈을 감자 같이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이 미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영화 제작사를 찾아가는 거였다.

“반갑습니다. 조든 워럭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전재석입니다.”

“주명진입니다.”

주명진은 그간 열심히 영어를 배웠는지 발음부터가 달랐다.

“이쪽으로 오시죠.”

재석과 명진이 자리에 앉자, 조든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한국에서 이곳까지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곳에서 재미난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죠. 이미 여러 나라와 계약까지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재석이 방문한 영화 제작사는 머블 엔터테인먼트였다.

이곳에서 제작한 머블 시네마틱은 향후 10년간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연간 수익이 수십억 달러가 넘는 괴물 같은 영화 제작사가 된다.

“그리고 한국의 배급권은 저희에게 팔아 주셨으면 합니다.”

재석이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이야기하자, 조든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죠. 이미 한국의 다른 배급사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 보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한마디로 둘 중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과 계약하겠다는 거였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주명진이 이야기를 잠시 멈추게 하자, 조든은 그렇게 하라는 손짓을 했다.

“재석아, 대형 배급사와 제 살 깎아 먹기 경쟁하기에는 우리 손해가 크다.”

“흐음, 확실히 그렇겠죠.”

대형 배급사들의 자본력은 재석의 회사와 비교를 거부할 정도다.

“하지만 저쪽에서 혹할 만한 매력적인 제안을 건넨다면 저희를 선택할 겁니다.”

“그래 봤자 가격 올리는 거 말고 더 있겠어?”

“투자를 한다면 어떨까요?”

“아까 비행기 안에서 말했던 게 이거야?”

“예. 여기서 제작한 영화 내용은 주 이사님도 봤지 않습니까.”

“봤지. 재밌더라. 그런데 투자를 할 만큼 엄청나 보이진 않던데.”

주명진은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재석은 반드시 이 회사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이 회사가 미래에 어떻게 성장하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노리는 것은 이 회사의 주가였다.

내년이면 머블 스튜디오는 더즈니에 인수된다. 그 영향으로 주가가 엄청나게 폭등한다.

재석이 노리는 건 바로 이 주가 폭등이다.

‘내년에 2배, 5년 뒤에는 12배로 오른다면 어떨까?’

그로 인한 수익은 배급권을 따서 얻는 수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엄청날 터다.

‘그래도 겉으로는 배급권을 노리는 척해야지.’

무언가 다른 것을 노리고 있다는 낌새를 차리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조명진과 이야기를 끝낸 재석은 조든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저희가 이곳에 투자를 하겠습니다. 그 대신 배급권을 저희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투자요?”

투자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조든이었다. 투자도 해 주고, 배급사로 활동도 해 준다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얼마나 말입니까?”

“3천만 달러.”

“와우!”

“헉!”

주명진과 조든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3천만 달러면, 한화로는 대략 350억 정도였다.

“아주 큰 고객이셨군요!”

조든의 반응은 확 달라졌다. 이렇게 되면 다른 배급사의 조건은 고려해 볼 필요도 없었다.

조든은 곧바로 재석의 회사를 배급사로 선택했다.

직후 재석은 머블 엔터테인먼트의 CEO 아이작 펄퍼터를 만났다.

“허허허, 회사에 투자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재석은 아이작을 만나면서 조금 놀랐다.

‘만화책 장사로 돈 벌던 시절부터 일했던 사람.’

회사 창립자는 아니지만, 현재 경영자는 이 사람이다.

“젊은 사람이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버셨나 보군요.”

“뭐, 좀 벌었습니다.”

“투자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이 정도면 대주주 중 한 명이 됩니다. 물론 최대 주주는 아니지만…….”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겨우 3천만 달러 가지고는 겨우 임원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걸요.”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대주주 이야기를 꺼낸 걸 보면 제 의결권에 관심이 많나 보군요.”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경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주주들의 의결권이 가장 무서운 무기다. 하지만 재석은 이 무기를 여기서 휘두를 이유가 없었다.

“전 의결권에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날아오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전 그 시간이 무척 아깝습니다.”

“그럼 배당만 잘해 드린다면 의결권을 저에게 넘기시겠군요.”

“그렇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의결권 문제를 걱정할 일이 없겠군요.”

재석과 아이작은 서로 원하는 게 잘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 영화가 성공해서 그에 따른 이익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이 영화는 성공한다. 그야말로 대박 행진의 시작이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상상을 초월하고, 주식은 어마무시한 수준으로 수직 상승한다.

‘몇 개월 안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재석은 직접 발로 뛰며 서둘러 스크린 확보에 힘썼다.

‘드디어 강철맨을 만든 머블 엔터테인먼트에 빨대를 꽂았어.’

이제 시작이다. 머블의 작품은 단순히 영화로 끝나지 않고, 각종 콘텐츠로 확장되어 엄청난 수익을 벌어다 준다.

‘아, 돈 투자하고 내 주머니 쪼그라들었네.’

재석이 주머니 쪼그라들었다고 투덜댔지만, 연말이 되면 다시 그 돈 중 절반을 넘게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투자할 회사가 하나 더 있지.”

거기에 올해는 국내 엔터테인먼트들이 차례차례 상장을 하면서 연예계 시장에 새로운 판이 짜인다.

‘한동안 주식 노름을 해 볼까? 우선 대한민국 3대 가요 기획사부터 시작해야지.’

재석은 본격적인 주식 놀이를 해 볼 생각이다. 물론 주식들은 황제주들이다. 넣어 놓고 있으면 알아서 돈이 벌리고 때 되면 빼면 된다.

*  * *

며칠 뒤, 재석이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때 제안서 하나가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제안서 내용은 다름 아닌 드라마 출연 제의였다.

“아니, 이건…….”

드라마 ON이었다. 드라마 속 드라마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피디와 작가, 톱스타, 소속사 사장 4명이 한데 어우러져 벌어지는 드라마였다.

“아니, 소속사 사장한테 소속사 사장 역을 주냐.”

민경과 같이 영화 고향에 출연한 게 화근이었다. 그 이후부터 재석에겐 섭외 제안이 종종 들어오곤 했다.

이번 제안은 더욱 곤란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작품 내용에 소속사 사장과 톱스타의 러브라인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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