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04화 (104/152)

민경은 처음으로 싸가지 없는 연기를 펼쳤고, 피디는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컷! 아주 좋아요.”

민경은 컷 소리와 함께 뺨을 맞은 배우에게 사과를 했다.

“많이 아프시죠. 죄송해요.”

“괜찮아요. 근데 손이 좀 맵네요.”

매니저가 얼음팩을 가져다주자 배우는 바로 뺨에 얼음을 가져다 대며 열을 식혔다.

“후우, 한 번으로 끝나서 다행이네.”

그렇게 촬영은 부드럽게 흘러갔지만, 장면들은 하나같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야, 이거 무섭네, 무서워.’

재석은 대본 리딩과 다른, 현장의 박력을 느꼈다.

‘적당한 과장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진짜 현실로 나타날까 무서운 장면이다.’

시상식장에서 상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건 난 더 이상 연예인으로서 활동 안 한다는 거다.

다행히 재석이 아는 이들은 그런 일 따윈 벌이지 않을 이들이라 다행이었다.

드라마 ON의 촬영이 진행될수록 재석은 기획사 대표의 역을 충실히 수행했다.

일반 대중들은 아마 재석을 단순한 연기자로만 생각할 거다.

“오빠, 내 연기 어때? 좀 과격하지 않아?”

“아니, 원래 대본대로 하는 건데 뭐가 과격해. 생동감 넘치지.”

재석은 불안한 듯 보이는 민경의 모습에 걱정스럽게 물었다.

“한동안 계속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야 될 텐데 괜찮겠어?”

민경은 실제 자신과 간극이 있는 싸가지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자신이 제대로 연기하고 있는 게 맞는지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일이니까요.”

강인한 그녀지만, 이럴 때는 상당히 여린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다.

며칠 뒤 1화가 완성되고 편집까지 들어가게 되자, 슬슬 방영 날짜가 다가왔다.

조금 막장 전개이지만, 재석은 이 드라마의 파급력을 잘 알고 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장에서 나온 논란이다.

“그러고 보니 김은미 작가가…….”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 조금 급조한 대본 내용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결말이야 잘 마무리했지만, 처음 시작보다는 나약한 결과를 내보인다.

“곧 날 찾겠군.”

재석의 각색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니,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를 찾지 않을 리 없었다.

“후우.”

드라마 4화가 제작이 되고, 방영 날짜가 다가오자 재석과 민경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 촬영을 최대한 많이 찍으려고 하네.”

“방영이 시작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만들려는 거겠지.”

드라마를 시작하면 겪는 일이다. 언제 쪽대본이 날아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때다.

“오빠, 전 쪽대본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

민경도 그 무서움을 잘 알고 있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위험 따윈 안 만들 거야. 쪽대본만큼 위험한 것도 없으니까.”

쫓기듯 촬영을 진행하는 것만큼 드라마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도 없었다.

‘내가 먼저 찾아가서 한번 확인을 해 봐야겠어.’

다음 날, 재석은 응원 차 선물과 함께 김은미 작가를 찾아가 작품에 대해 물었다.

“작가님, 지금 일 진행 상태가 얼마나 됐습니까?”

“오늘까지 해서 다음 화 작업은 끝났어요.”

“평소 작품 쓰실 때 참 힘드시죠.”

“뭐, 힘들죠. 시청률에 따라 항상 변하니까요.”

한 화를 써서 잘되면 다행이지만, 뭔가 이상하면 다음 화도 전부 손을 봐야 하니 골칫거리가 된다.

‘이쪽도 걱정 한가득인 모양이네.’

재석은 결국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님,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대표님이요?”

“이래 봬도 저 각색에 좀 재주가 있습니다.”

“아, 눈꽃연가 소문은 들었어요. 그때 윤 감독님 도와서 일을 하셨다고…….”

“예, 했죠. 윤 감독님이 지금은 좀 잠잠해지셨는데 언제 또 같이 일하자고 할지 모르죠.”

작가들 사이에서 각색 좀 잘하는 사람은 관심 대상이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사람이니 상당히 환영 받는 존재다.

“그럼 대표님이 저 도와주시게요?”

“돕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죠. 작가님은 작가님대로, 전 저대로 이익이죠. 나중에 민경에게 들어올 광고를 생각하면 작가님을 열심히 도와야죠.”

“그럼요. 이거 쓴 거 한번 봐주실래요?”

김은미는 곧바로 재석에게 다 쓴 걸 보여 줬다.

그리고 재석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언을 했고, 그 뒤에는 김은미에게 다음 스토리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하면 너무 러브라인만 강조됩니다. 적절한 비율이 좋습니다. 그래야 전문성도 빛나고 작가님이 원하시는 러브라인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겁니다.”

“흐음, 조언 감사해요. 그렇지 않아도 답답했거든요.”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너무 바쁜 시간만 아니라면 충분히 답해 드리겠습니다.”

재석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는 절대로 연기 안 한다. 안 해!”

다짐에 또 다짐을 하는 재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재석을 놔줄 생각을 안 할 거다.

드라마 ON이 방영되면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실제 한류 스타가 나와 한류 스타 역을 한다는 사실이 이슈화됐다.

어찌 되었든 드라마 ON은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첫 방송 시청률이 17퍼센트를 넘길 정도였다.

그 뒤로도 드라마 ON은 사람들의 입에 계속해서 오르내렸다. 특히 한류 스타 역에 캐스팅된 주인공을 막장 싸가지로 표현한 것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갔다.

더해 회사 대표 이사 역에 캐스팅된 재석도 이슈였다. 인터넷 기사에 재석을 주제로 댓글이 달릴 정도였다.

-저 이상한 회사 대표 뭐냐?

-정말 얼굴 평범하다. 어디서 저런 인간 캐스팅 했냐?

-나 저 사람 알아. 임민경이랑 같이 영화 고향에 같이 출연했어. 연기 잘하던데.

?뭐야, 신인 아니었어?

?신인, 맞아. 작년 데뷔야.

물론 실제 첫 출연은, 영화 도박꾼에서 손 대역이었다. 다만 얼굴이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이 작년이 처음이었을 뿐.

그리고 첫 방송이 끝난 이튿날, 기사에는 신인 전재석이란 타이틀을 달고 연예 뉴스에 나갔다.

그리고 그곳엔 재석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적혀 있었다.

-이런 미친 방송국 진짜 기획사 대표를 연기자로 뽑냐!

그 소식은 민경의 이슈 몰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이슈가 되기 충분했다.

그렇게 화제의 중심이 된 재석에게 많은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

하나 재석은 오직 한 곳과의 제의만 수락했다.

그리고…… 인터뷰 당일.

“안녕하세요. 한밤의 연예 리포터 하지민입니다. 인터뷰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멋진 슈트를 입은 재석의 주위로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장소 또한 사무실이 아닌, 방송국의 정식 세트장.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 감독의 말에 인터뷰가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한밤의 연예 하지민입니다. 한지민 아니고요.”

재석은 상대의 농담에 희미한 미소로 답해 주었다.

“이런 방송 출연은 처음이시죠?”

“예, 처음입니다. 과거에는 앵글 밖에서 바라보는 입장이었고, 이번에 우연찮은 기회에 한 번 앵글 속으로 들어간 적 있지만, 녹화를 위해서였죠.”

“아! 그러고 보니 지금은 회사 대표지만, 이전에는 매니저셨다고 들었어요.”

“예, 처음부터 회사 차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회사를 차린 것도 매니저로 일하던 회사가 망해서 차린 겁니다. 당시, 다른 소속사로도 옮길 수 있었지만, 임민경 씨와 작게 한 번 도전해 보자고 해서 같이한 거죠.”

“그럼, 임민경 씨가 소속된 회사의 대표님이시네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생각도 했습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피디님과 작가님이 정말 진심 어린 부탁을 하셔서 수락하게 된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연기 활동을 꾸준히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해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재석의 인터뷰는 뭐랄까 굉장히 사업가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그 뒤로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이 더 왔지만, 일이 바빠 만나기 어렵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그 사이 드라마 촬영은 빠짐없이 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슈가 커졌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이슈였다.

“대표님 덕분에 시청률이 고공행진입니다.”

피디 입장에서는 정말 최고의 상황이었다.

김은미 작가는 직접 촬영 현장에 나와서 재석에게 감사를 표하기까지 했다.

“대표님,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크게 득을 봤어요.”

“뭘요. 작가님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스토리를 담당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고맙죠.”

김은미 작가와는 다음에도 볼 수 있도록 아주 좋은 사이가 되어야 한다.

지금 미니시리즈 쪽에서는 그 누구도 자리를 위협할 수 없는 대단한 작가다. 그건 미래에도 동일하다.

“나중에 저에게 필요한 배우를 달라 하시면 기꺼이 최우선적으로 내놓겠습니다.”

“어머, 그런 약속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뭘요. 심지어 드라마 제작사를 차릴 마음도 있습니다.”

차리면 무조건 성공하는 드라마 제작사가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타 작가 아닌가.

‘어차피 매년 작품을 쓰니까. 방송사에서도 알아서 드라마를 제작해 줄 거야.’

일단 믿고 쓰는 김은미 작가다. 그러니 온다면 정말 드라마 제작사를 차릴 의향이 있다.

“제가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재석의 말에 김은미 작가는 조금 당황했다.

“농담 아니고요?”

“전 투자는 확실히 하는 편이죠.”

재석의 미소에 김은미는 정말 진심을 느꼈다.

“깊이 생각해 보죠.”

“뭐, 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부담감을 덜어 드리자고 한 말씀 더 하자면, 다른 작가분도 섭외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매년 두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걸로 갈 겁니다.”

“두 편이나요?”

“뭐, 좋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으니까요.”

영화도 날짜만 맞으면 두 개라고 못할 것도 없다. 하물며 드라마면 간단했다.

“뭐, 지금 당장 회사를 차리겠다는 건 아닙니다. 영화 제작 쪽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영화 제작요? 투자가 아니라.”

“아, 투자도 하고 제작도 합니다. 급하면 배급사로도 활동하죠. 뭐, 배급사 쪽은 좀 직접 발로 뛰어야 해서 좀 불편하긴 합니다만, 가끔 합니다.”

“그렇게 바쁘신 분이 드라마는 어떻게…….”

“뭐, 밑에 일 맡아 줄 사람이 있으니까 하는 거죠.”

“정말 대단하시네요.”

김은미는 재석이 달리 보였다. 중소 기획사가 아니라, 상당한 재력을 갖춘 회사라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제가 드라마 제작 이야기를 괜히 하는 거 아닙니다.”

“네, 알겠어요.”

김은미 작가는 재석의 제안에 정말 신중히 고민하기로 했다.

*  * *

재석은 드라마 ON의 마지막 방영이 끝나고 나서는 이제 회사 일에만 매달리기로 했다. 더 이상 연기도 뭣도 다 거절했다.

“오빠, 근데 정말 안 해?”

“안 해. 여기까지야. 순수하게 네 매니저 일과 회사 일만 할 거야.”

“흐음, 같이 연기할 때 재미있었는데.”

“내 본업을 잊으면 안 되지.”

“그럼 나 다음 작품은 뭐야?”

“글쎄, 한동안은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놀아?”

“설마, 절대 노는 일은 없어. 그것보다 기회가 되면 해외 작품에도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하는데.”

“해외?”

민경은 아직 해외 작품은 해 본 적이 없다. 기본적인 언어 문제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뭐, 지금 당장 하자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그래도 영어 정도는 해야 할리우드 진출도 해 볼 수 있지.”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활동 무대를 만들어 갈 수 있기도 했다.

“아이고, 영어도 배워야 하네.”

민경은 재석의 말에 영혼 없이 대답을 했다.

‘마음이 없는 모양이네.’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여성이 주인공 역할을 맡는 건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잘해 봐야 조연이 전부인 상황이다.

“그래도 영어는 배워야 해.”

재석은 그리 말하면서 다른 배우들의 상황도 파악했다.

“어디 보자, 이번에 단편극을 하네.”

매년 한 방송사에서 단편 드라마를 만드는데,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 같은 느낌이 있었다.

“흐음.”

마침 연기력을 조금이라도 더 길러야 하는 두 사람이 떠올랐다.

‘김조현과 반보영.’

그들을 이곳에 캐스팅될 수 있게 하는 게 재석의 목표가 되었다.

‘감독을 한번 만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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