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06화 (106/152)

“대본 보면서 이야기할까?”

재석은 대본을 보면서 장면을 설명하며 각 등장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김조현은 감독 때문에 잠시 혼란스러웠을 뿐, 이미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기에 재석의 설명을 빠르게 이해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저도 좀…….”

반보영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촬영을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촬영장 분위기 때문인지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그런데 재석이 김조현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재석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다.

재석은 반보영에게도 대본을 보며 설명을 해 줬고, 그녀는 김조현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이해해 나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다시 촬영이 시작됐는데 감독은 재석의 말을 생각을 바꿨는지 지시가 좀 더 세세해졌다.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가 한결 자연스러워졌고, 촬영 속도도 빨라질 수 있었다.

‘이제 좀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네.’

이제 재석이 다시 앞으로 나설 일은 없어 보였다.

촬영은 그대로 무사히 끝났고, 재석은 김조현과 반보영을 기다렸다가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사장님, 들어가세요.”

“어, 잘 들어가.”

두 사람은 회사의 대표인 재석이 직접 집까지 바래다주자 그날 하루가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재석은 이날을 특별한 하루로 만들 생각이 없었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계속 그들과 함께할 생각이었다.

“사장님, 오늘은 저녁밥 뭐예요?”

“그냥 밥차. 별거 없어.”

“에이, 사장님이 맛있는 거 사 주시는 줄 알았는데.”

“알았다. 그럼 잠깐 이야기해서 저녁 사 줄게.”

“얏호!”

반보영은 생각보다 애교가 많은 사람이었다.

재석은 김조현과 반보영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 저녁을 같이 먹고 난 뒤에 촬영장으로 돌아왔다.

“어, 사장님. 여기가 어디죠?”

“뭐?”

촬영장을 앞에 두고 여기가 어디냐고 말하는 김조현의 모습에 반보영이 폭소를 자아냈다.

“꺄하하하! 어떻게, 어떻게 여길 모를 수가 있어.”

“하, 너 진짜 심각하구나.”

김조현의 이 길치는 그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너무 어이없기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선사해 준다.

어떤 사람처럼 만능이면 다가서기가 오히려 어려운데 말이다.

“나중에 저 안에서 길 안 잃게 보영이가 신경 좀 써라.”

“네, 사장님. 이 바보 오빠 제가 책임질게요.”

“나 바보 아니야.”

정색하는 김조현을 보고 반보영은 웃으며 말했다.

“오빠 길치잖아요. 길 바보 오빠.”

“어어.”

반보영이 놀리자 김조현은 정색을 했는데, 재석은 그 모습마저 너무 웃겼다. 정색하는 것도 바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백치미기 아주 폭발하는구나.’

그런데 연기할 때는 아주 확실하게 돌변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

“자, 둘 다 내려라.”

“네.”

며칠간 함께 지내며 촬영하자 두 사람은 꽤 친해진 듯 보였다.

그리고 늦은 시각 촬영이 끝나고, 김조현은 또 사고를 쳤다.

“오빠, 어디로 가. 여기야.”

김조현은 반보영이 챙겨 주지 않으면 어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오빠는 정말 매니저 없으면 큰일 날 사람이야. 어떻게 자기가 타고 온 차도 기억 못해.”

“아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김조현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리 보영이가 아주 길치 한 명을 아주 잘 찾아요.”

“신경 안 써 주면 금세 길을 잃어버리잖아요.”

“저 길치 아니에요.”

김조현은 부정했지만, 재석과 보영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집에 가자. 이상한 소리 말고.”

“진짜 길치 아니에요.”

“알았다.”

재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계속 이야기했다가는 김조현이 심각한 마음의 상처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석과 민경은 비행기를 타고 타히티 섬에 도착하여 그곳에 있는 리조트에 머물게 되었다.

“아, 좋다.”

민경은 옅은 푸른색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평생 살라고 하면 살겠어?”

“여긴 잠시 쉬는 데지, 사는 곳이 아니잖아요.”

민경은 사는 곳과 쉬는 곳을 구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예쁜 바다의 모습을 기억 속에 담아 두려 했다.

“그럼 수영 좀 할까?”

“가요.”

바로 앞이 바다였기에 민경과 재석은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일주일간의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귀국한 재석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머블에서 받아 온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홍보를 위해 찾아올 배우의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거였다.

‘물론 직접 만나기도 해야지.’

찾아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라 버 다웃 주니어. 강철맨 주인공이다.

‘첫 한국 방문이지.’

그는 이다음에도 매번 영화 홍보가 있을 때는 한국을 꼭 찾았다.

거기에 향후 10년간 머블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배우가 된다. 강철맨의 그 특유의 능글거리는 연기가 사람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그럼 만나러 가 볼까나.”

재석은 차를 타고 그를 직접 만나러 갔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매니저가 동행을 하고 있다. 거기에 보디가드도 말이다.

공항에 시간 맞춰 도착하자 때마침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재석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라버 다웃 주니어인가요?”

“오, 당신이 제가 출연한 영화를 한국에서 배급하는 배급사 사장님이군요.”

“반갑습니다, 전재석입니다. 이렇게 미래에 유명해질 배우를 만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오호, 미래에 유명해질 배우라뇨. 지금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더 유명해질 영화를 찍은 상태죠.”

“아주, 대단한 립서비스 할 줄 아네요.”

“그런 립서비스를 잘해야 사업도 잘나가는 겁니다. 차로 이동하시죠.”

재석은 이동하며 일정과 이틀간의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 줬다.

“아마 이번 영화에서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거야 알고 있죠. 전 미래에 잘나갈 배우니까요.”

라 버는 농담식으로 재석의 말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는 걸 알렸다.

“하하하, 속에 담아 두고 계시군요. 하지만 이건 분명합니다. 당신이 출연한 이 영화가 개봉한 후 다시 한국에 왔을 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될 겁니다.”

“그거 기대되네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나중에 사진 꼭 찍어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재석은 첫날 일정이 끝난 뒤 호텔에서 라버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다음 날 그 사진을 크게 인화하여 그 위에 사인까지 받아 냈다.

“이걸 회사에 걸어 놓을 겁니다.”

“제 사인을 걸어 놓겠다니 제가 그렇게 좋은 모양이죠?”

“전 당신의 영화를 보고 당신의 팬이 된 사람입니다.”

재석은 진짜 라버의 팬이다. 그가 강철맨에 출연하고 나 난 뒤에 그의 팬이 된 사람이 여럿 있었다.

“한국에서 첫 번째 팬인가요?”

“그럴 겁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한국 음식을 먹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미국인이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좋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제가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재석은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고깃집이었다. 그것도 삼겹살집이었다.

“이 식당에는 뭘 파나요?”

“혹시 한국의 삼겹살 구이를 아시나요?”

“아뇨, 전혀.”

“조금 생소할 수도 있지만, 한 번 맛보면 꽤 신선한 느낌이 들 겁니다.”

라 버는 신선한 채소와 여러 음식들, 그리고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불판을 보자 놀랐다.

“실내에서 이게 가능합니까?”

“미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식당에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요.”

실내에서 뭔가를 구워 먹는다는 게 그에겐 신선했다. 그리고 심지어 눈앞에서 직원이 고기를 구워 준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다.

“참 한국 문화가 독특하네요.”

“그러실 겁니다. 하지만 저희들에게는 일상이죠.”

고기가 다 구워진 후, 잘 익은 고기를 먹는 방법을 그에게 알려 줬다.

“이렇게 상추라는 채소 위에 고기와 마늘 소스를 묻혀 싸서 이렇게 한입에 먹는 겁니다.”

재석이 먼저 시범을 보여 주자, 라 버는 그대로 따라 하며 한입에 쌈을 먹었다.

“흐음!”

그는 그 뒤로 말이 없어졌다. 다 익은 고기를 말없이 배가 불러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었다.

그렇게 배가 부르고 나서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나온 건 말이 아니었다.

“꺼억!”

순간 입을 막으며 실례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재석도 곧바로 트림을 했다.

꺼억!

“크크크.”

둘이 연달아 트림을 하는 꼴이 꽤 웃겼는지 서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렇게 한동안 웃다가 라버가 입을 열었다.

“너무 맛있었습니다. 이렇게 뒷일 생각 안 하고 먹어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미국에 돌아가면 한국 식당을 꼭 한번 찾아야겠어요.

“바비큐집을 찾아야 할 겁니다. 한국식 바비큐.”

“꼭 찾도록 하죠. 이런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아서 정말 기분 좋네요. 마지막 한국을 떠나는 날 저녁에 이런 걸 먹어서 좀 아쉽기도 하고요.”

“다음에 또 오세요. 시간이 나실 때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오셔도 되고요.”

“뭐,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죠.”

라버는 재석과의 식사가 기분 좋았다. 새로운 음식을 먹는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라버 다웃 주니어는 모든 일정을 끝마친 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한국을 떠났다. 아직 홍보를 위해 가야 할 나라들이 많았다.

재석은 그의 사인을 회사 한쪽에 떡 하니 걸었는데, 주명진이 그걸 보며 말했다.

“재석아, 여기 이 사진 걸어 봤자 얼마나 도움 된다고······.”

“도움 많이 될 겁니다. 이거 한 번 찍으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을 해도 절대 쉽게 못 찍을 사진입니다.”

그렇다. 이후에는 그와 사진 찍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될 거다.

“아이고, 애물단지 하나 생겼구나.”

주명진은 애물단지 취급했지만, 향후 10년간 이 사진으로 빛을 볼 거다.

‘으흐흐흐.’

재석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액자에 사진이 잘 있는지 확인 한 번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홍보가 끝나고 얼마 뒤에 강철맨이 개봉이 되었고, 사람들은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특정한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들은 많지만, 강철맨은 초능력이 아닌 철저하게 머리와 돈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히어로라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영화 수익도 나름 괜찮아서 본전 뽑고 대략 30퍼센트 정도의 이익을 봤다.

“푼돈이네.”

하지만 재석은 상관없었다. 이 돈보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엄청나서 머블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이 상승하기 시작한 거다.

“크으, 주식이 쭉쭉 오르는구나.”

회사 CEO와 약속을 한 게 있으니 연말 배당에 적지 않은 수익을 받을 거다.

‘그리고 내년에 더즈니가 인수 작업을 시작하면 머블의 주가는 폭등하지.’

영화가 개봉하고 난 뒤에 무섭게 치고 올라가지만, 더즈니가 인수하겠다는 뉴스 이후에는 더 무섭게 치고 올라간다.

‘그때가 기다려지는구나.’

생각만 해도 행복감에 입꼬리가 씰룩걸린다.

“이제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 걸 봐야겠구나.”

재석은 흥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제작사에서 영화 진행 상황을 듣고자 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감독님은?”

“저쪽에 계십니다.”

감독이 홀로 현재 준비된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강형진 감독님 혼자 뭘 하십니까.”

“아, 오셨습니까. 그냥 준비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곧 크랭크 인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배우들 섭외도 끝났고, 촬영만 하면 될 건데요.”

“장소 섭외가 아직 부실한 게 있어서 마지막 확인을 했습니다.”

“역시 감독님은 꼼꼼하시군요.”

“하하하, 뭘요.”

“이번 영화 찍고 나서 다음에도 같이 하나 더 하시죠.”

“뭐, 기회만 주신다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