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10화 (110/152)

영화관에서 본 관객보다 불법 다운로드로 과속삼대를 본 관객이 더 많은 것이다.

당장의 영화 수익을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를 통해 일본 진출이 가능해졌으니 장기적으로 보자면 잘된 일이었다.

일본 팬덤을 손에 쥐었으니 말이다.

“사장님, 아무래도 일본에서 은밀하게 돌아다닌 영화 파일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팬클럽이 만들어진 시기가 파일 유포 시기와 비슷합니다.”

“영화 성적은 별로지만, 일본에서 장기적으로 활동할 틀은 만들어졌네요.”

“그렇습니다. 사장님, 반보영 씨는 일본에서 활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 노래를 좀 부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노래 실력이 진짜라면 일본에서 콘서트를 열 수도 있습니다.”

“콘서트?”

이 정도 인기로 앨범을 낸다는 건 성패가 불확실한 일이었지만,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노래 실력이 나쁘지 않긴 한데…….”

“그렇다면 여기서 가수로 데뷔하는 겁니다. 분명 성공할 겁니다.”

나오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사를 피력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좋습니다. 일본에서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재석도 일본 연예계의 특이성을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팬이 되면 그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건 못 부르건 상관없이 콘서트를 찾아가 돈을 지불한다.

‘거기에 일본 음반 시장은 전 세계 2위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한국의 잘나가는 가수들 수입의 몇 배를 벌 수 있다.

‘어차피 반보영은 다음 스케줄이 모호해.’

이런저런 광고나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 말고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그럼, 계획서 한번 가져와 보세요.”

“예, 사장님.”

며칠 뒤, 나오미는 계획서를 아주 철저히 준비해 왔다.

작곡가는 여러 명 리스트를 뽑아 우선순위 순서로 정리해 놓았는데, 작곡가들의 히트작과 성향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일단, 최대한 귀여운 이미지의 노래를 만들어 줄 작곡가가 필요해.”

물론, 그 전에 반보영에게 일본어도 가르쳐야 했다.

“바쁘겠는데.”

당장 시급한 것은 일본어였다. 일본에서 음반을 내려면 일본어는 꼭 잡고 가야 하는 문제였다.

재석은 반보영의 일본어 교육을 시작했다. 일상 회화도 일상 회화지만, 음반을 내야 하니 발음을 특히 더 신경 썼다.

“사장님, 진짜로 음반을 내요?”

“그거 아니어도 일본 활동을 꾸준히 할 거니까 일본어는 필수야.”

“예! 열심히 할게요. 참, 사장님. 저희 어머니가 나중에 한번 뵙자고 하시는데. 시간 되세요?”

“시간은 없어도 만들어야지 보영이 어머님인데.”

며칠 뒤 재석은 반보영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반보영의 어머니는 재석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너무 공손한 인사에 재석도 공손히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요. 다 보영이가 열심히 한 덕분입니다.”

“딸아이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기를 얻었다고요.”

“예, 스케줄이 몇 개 잡혀 들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더군요. 마침 보영이가 노래 실력이 괜찮고 하니 일본에서 음반을 내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세상에! 이, 일본에서요?”

보영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음반을 낸다는 걸 상상도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꿈도 꾸기 힘든 일이지만 지금 보영이에게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팬 문화의 특수성과 시장의 크기를 생각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전처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보영이를 일본에서도 스타로 만들겠습니다.”

“어머,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에 사장님을 의심했었는데 이렇게 보영이를 챙겨 주실 줄이야. 그때 일을 지금이라도 사과드리겠습니다.”

보영의 어머니는 허리 숙여 사죄를 했지만, 재석은 그걸 말렸다.

“어머니, 이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영이의 재능이 눈에 보였기에 한 겁니다.”

재석은 미래에 반보영이 보여 주는 모습들을 알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러니 이것은 결국 서로 윈윈하는 일이었다.

“일단 일본어가 우선입니다. 노래는 하나의 시를 읊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어가 어색하면 힘듭니다. 제가 직접 관리하는 민경이도 지금은 일본어가 유창합니다. 수년간 일본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공부를 했습니다.”

재석의 말에 보영의 어머니는 보영을 보며 말했다.

“보영아, 일본어 매일 공부해라. 엄마가 열심히 도와줄게.”

“어머니, 직접 안 하셔도 됩니다. 회사에서 최고의 선생님을 붙여 드릴 겁니다. 개인 과외가 될 겁니다.”

“세상에, 그 비싼 과외를…….”

“걱정 마세요. 회사에서 과감히 투자하겠습니다.”

재석은 정말 최고의 일본어 선생님을 모실 생각이다.

늦어도 1년 안에 일본어 회화를 하는 데 있어서 전혀 막힘이 없게 만들 거다.

*  * *

재석이 과속삼대로 즐거워하고 있을 때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김조현이 실의에 빠져 있다고?”

사건의 경위는 간단했다.

드라마 ‘플라워 가이’의 조연으로 발탁된 김조현이 대본 리딩을 갔는데 연기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차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해 잘 마무리하나 싶었더니.”

소속 연예인 숫자가 많아지면서 안 좋은 사건이 하나씩은 생겨나고 있었다.

배우들의 심리 상태는 잘 관리해 줘야 하는 부분이었다.

재석은 이럴 때 직접 위로를 해 줘야 그들이 심리적 안정을 얻고 재도약을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직접 만나야겠어.”

재석은 시간이 날 때 바로 김조현과 직접 얼굴을 마주했다.

“사장님.”

김조현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캐스팅까지 끝난 마당에 연기에 대해서 한 소리 들은 것도 모자라 하차까지 했으니 그 심정은 이해가 갔다.

“오랜만이네.”

“예, 몇 개월 됐네요.”

“별로 안 좋은 소식을 들어서 왔어.”

“사장님, 죄송합니다.”

“괜찮아. 드라마 캐스팅에서 교체되는 건 수도 없이 많이 벌어지는 일이야. 많은 연기자들이 각오하는 일이지.”

“그래도…….”

“너도 다른 자리를 찾으면 그만이야. 그리고 연기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잖아, 길게 봐. 젊어서 이런 사고 한두 번 당하는 거야. 일도 아니지.”

재석은 철저하게 김조현을 위로해 주기 위해 말했다.

“김명진 씨 알지?”

“예, 지금 아주 잘나가시는 연기파 배우시죠.”

“김명진 씨는 무명 생활이 10년이었어. 한 번은 캐스팅 끝나고 영화 촬영까지 들어갔는데 엎어졌다더라. 그렇게 2년이 날아갔대. 또 한 번은 촬영 도중에 다쳐서 1년을 쉬셨대.”

김명진의 무명 기간이 길었던 건 다들 잘 안다.

그리고 다들 김명진이 재석을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했다.

“조현아, 너무 의기소침해져서 좋을 거 없어. 다시 일어서서 꿋꿋하게 걸어가면 돼. 지금 이렇게 퇴짜 한 번 맞은 건 아무것도 아냐. 어떤 누구처럼 유명해진 후에 발연기한다고 소문 퍼져서 광고나 찍는 것보다 무명일 때 이렇게 데여 보는 게 훨씬 좋아.”

재석의 위로에 김조현은 조금씩 용기가 났다.

“사장님, 정말 그러네요. 유명해져서 발연기한다고 이미지 나빠지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상처받고 열심히 해서 잘나가면 되네요.”

“물론이지. 지금 실수해도 한 단계씩 밟아 가면 되는 거야. 운이 따라 줘서 스타가 됐다고 연기 실력도 느는 거 아니야. 아직도 부족한 사람 많아.”

“그럼 전 어디서부터 연기를 다시 해야 할까요?”

“기본부터지 연기는 캐릭터를 보든 뭘 하든 기본이 제일 중요한 거야. 발성과 톤, 감정과 현 상황에 대한 이해. 연기를 하는 모든 캐릭터를 기초부터 잡아 봐.”

재석의 말에 김조현은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연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였나요?”

“원로 배우들도 연기가 어렵다 말하지. 같은 할아버지 연기를 해도 상황이 다 다르거든. 그 상황에 맞게 처음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서 배역을 완성시키는 거지.”

“어렵네요.”

“연기자라면 응당 치러야 할 대가지 작가가 항상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고 하잖아. 연기자도 형태만 다를 뿐 똑같은 고통을 겪는 거지.”

재석은 그렇게 김조현을 격려해 주고 식사도 함께했다.

그리고 드라마도 다시 잡아 줬다.

물론 조연이었지만, 김조현은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배역을 연구했다.

재석은 위로 한 번으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김조현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길치인 것과 백치미를 보이는 건 여전했지만, 대본을 들고 있을 때 모습은 그 어느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야말로 괄목상대야.’

아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에 김조현이 다음 날 재석을 찾아와 한 말은 하나였다.

“사장님, 단역이라도 좋으니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역을 찾아주세요.”

그 한마디였다. 그리고 재석이 구한 건 큰 드라마 단역이 아니라 지방 방송사에서 준비한 작은 기획 드라마, 그것도 지방 특집으로 준비하는 그 누구도 쳐다도 안 보는 그런 단막극의 드라마였다.

“이거면 만족해?”

“충분히 만족합니다.”

재석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은 배역을 따올 수도 있었지만, 그의 각오를 확인해 보고자 했다.

김조현은 지방 방송사의 단막극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연기를 했다.

‘절박감이 절절히 넘치네.’

김명진이 불멸의 명장을 할 때처럼 준비도 철저했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아주 세세하게 감정선의 변화도 주었다.

‘확실히 전과 달라.’

김조현의 연기 변화는 이제 시작이었다.

하지만 김조현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깨달았는지 재석에게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장님, 저에게 조금 시간을 주십시오. 반년 정도 연기 연습에만 매달리고 싶습니다.”

그에 재석이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만큼 해라. 네가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면 다시 작품을 잡아 주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 뒤로 김조현은 기초부터 확실히 다지기 위해 하루 종일 연기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 연기 학원이 끝나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며 몸 관리도 꾸준히 했다.

“마음 바뀌니까 행동하는 것도 달라지는구나.”

재석은 이렇게 사람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고 놀랍기도 했지만, 과거로 다시 돌아온 그 역시도 시작할 때 마음이 바뀌어서 여기까지 왔다.

“작지만, 매우 큰 변화지.”

재석은 김조현이 어떻게 변화할지 큰 기대를 했다.

*  * *

“직접 오진 않았네.”

재석은 도박꾼의 감독, 최명훈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제작비가 살인적인데.”

영화 특수 효과 및 CG를 처발라야 하는 영화다.

“흐음, 나한테 이걸 보내온 걸 보면 한번 만들어 보자는 건데…….”

재석이 보고 있는 시나리오는 ‘도사 우치’였다.

백억이 넘는 돈을 들여서 나온 결과는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어 감독 이름에 먹칠은 안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보긴 봤지.”

500만 영화이긴 하나, 제작비가 너무 커서 손익분기점이 높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니야, 가자. 이걸로 천만 두 개를 먹을 수 있다면 이득이지.”

재석이 그렇게 최명훈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감독이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대표님, 이번에 메이저 배급사에서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이 들어와서 아무래도 그쪽에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다음 기회에 같이하죠.”

재석은 최명훈 감독이 말한 배급사가 어느 회사인지 알고 있었다.

“배급사가 영화 제작이라…… 다행이네. 계륵 같았는데.”

재석은 저쪽에서 알아서 만든다고 하니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하지만 그쪽 배급사는 겨우 본전치기하고 다시는 직접 영화 제작을 안 하기로 할 거다.

“뭐, 좋네.”

재석은 곤란할 뻔한 일이 좋게 풀려서 좋았다. 올해는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면 딱 좋은 시기라고 생각됐다.

*  * *

반보영이 일본 진출 때문에 일본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던 와중, 곡이 하나 나왔다. 제목은 ‘귀여워해 줘.’였다.

“으으으으, 오글거려.”

전신에 닭살 돋을 만큼 심각한 제목이었지만, 지금의 반보영에게는 딱 맞는 이미지의 제목이었다.

그래도 노래를 막상 들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충분히 먹힐 것 같았다.

재석은 곡을 보영이에게 보내 줬는데, 그녀는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사장님, 이거 너무 오글거려서 못하겠어요.”

“아니야, 보영아. 이거 괜찮은 노래야. 일본에서는 이런 게 먹혀.”

재석은 어떻게 해서든 보영을 설득했다. 그리고 녹음도 한 번 해 봤다.

“괜찮은데요.”

녹음을 해 주시는 분이 보영의 노래를 듣고 놀랐다.

그녀의 실력이 예상 이상으로 괜찮았기 때문이다.

“근데 일본에서만 음반을 내시나요?”

“네.”

재석은 이 곡을 한국에서 낼 생각은 없었다. 일본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한국에선 아니었다.

녹음된 파일은 일본으로 보내졌고, 일본 지사에서 준비를 착착 진행해 나갔다.

그사이 보영은 다시 일본어 공부를 죽어라 했다.

*  * *

“주 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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