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11화 (111/152)

“네, 대표님.”

“갑자기 웬 대표님입니까?”

“주 이사라고 부르니까 닭살 돋아서.”

“그것보다 신지경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이제 학업도 어느 정도 선에 올라왔고, 작품을 하나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러지 않아도 이번에 M본부에서 창사 특집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던데 거기 한번 해 볼까?”

“창사 특집이면 꽤 큰 거네요. 메인은 못 들어가겠고, 간다면 조연 아니면 아역이네요.”

“그렇지. 아직 인지도가 부족해서 그 정도가 한계지. 아마 재석이 네가 직접 방송사에 찾아가야 할 거야.”

“왜요?”

“왜기는, 방송사 담당 연출자를 찾아가든가 아니면 드라마 국장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해야지.”

“불러 주지도 않았는데 무슨…….”

“거길 불러야 가나. 알아서 찾아가야지.”

알아서 찾아가라는 말에 재석은 슬슬 몸을 움직일 때가 됐다는 걸 알았다.

“그렇군요. 이제 드라마 국장님하고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네요.”

그만큼 회사에 딸린 식구들의 파워가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일단 드라마국에 한번 찾아가야겠죠?”

“같이 가줄까?”

“아니요. 같이 갈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담당 연출자한테 먼저 연락해야겠네요. 얼굴 좀 보자고 말이죠.”

“그래, 순서대로 가라. 결국에는 국장 얼굴도 볼 거다.”

창사 특집 드라마라면 만만한 드라마가 아니다. 방송사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물건이니 아주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진 작품이다.

재석은 우선 담당 연출자에게 전화를 걸고 약속부터 잡았다.

재석의 전화가 대단하긴 대단했다. 드라마 감독으로 선택된 박홍, 김균 감독이 직접 찾아온 거다.

“전 한 분만 나오실 줄 알았는데 두 분이나 나오셨네요.”

“아이고, 귀한 손님의 부름인데 나와야죠.”

감독 두 사람이 재석을 앞에 두고 저자세로 나오는 모습은, 재석의 위치를 가늠케 했다.

‘드라마 감독이 날 어려워할 줄이야.’

하지만 재석이 꽉 잡고 있는 유명 배우들이 많은 회사의 대표이니 이들이 굽실거리는 건 당연했다.

“귀한 손님이라니요. 참 부담스럽습니다.”

“아니죠. 지금 손에 쥐고 계시는 배우들만 봐도 어마 무시한데 그 배우들 저희에게 한 명이라도 보내 주시면 정말 좋을 텐데요.”

이들 목적은 이거였다. 인기 있는 배우 한 명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거다.

“누굴 원하시는 겁니까?”

“임민경이면 정말 좋겠습니다. 거기에 김명진 씨도 좋고, 송근석 씨도 좋고요.”

“그렇게 하시다가 아주 큰일 납니다. 다른 회사들이 저희 회사가 독식하는 거 아니냐고 들고 일어나면 저희 끝장입니다.”

“그럼, 임민경 씨 어떻습니까?”

“출연료가 감당되시는 모양입니다?”

“칸의 여제인데 할 만하죠.”

감독들은 노골적으로 민경이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경이 이걸 하겠다고 할지는 모른다. 그녀는 현재 푹 쉬면서 재충전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미 주인공 선택해 놓은 거 아닙니까? 전 다른 역을 보고 들어왔는데요.”

“다른 역이라뇨.”

“천명공주의 아역을 놓고 이야기 좀 하려는데요.”

“그 역이라면 오디션을 볼 생각입니다만.”

“그러지 마시고 이거 한번 보시죠.”

재석은 프로필을 하나 내밀었다. 그러자 감독들 눈이 반짝였다.

“이런 비주얼을 가진 배우가 있다니 놀랍네요.”

“촉망받는 비주얼이죠.”

“하지만 창사 특집이라 방송사에서 배역에도 상당히 깐깐하게 간섭할 텐데요.”

“뭐, 저도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임민경을 원하시면 이 정도는 해 주셔야 저도 할 만한 거 아니겠습니까?”

“흐음.”

다들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임민경이 온다면 주인공은 따 놓은 당상. 문제는 아역에 신지경을 넣어야 한다는 거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도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럼 어디에 누구를 만나면 되겠습니까? 제가 직접 설득하겠습니다.”

재석의 말뜻은 그 윗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는 거다.

“저희들이 연락을 넣겠습니다. 책임 프로듀서님을 한번 만나시죠.”

“좋습니다. 연결만 해 주신다면 만나죠. 그래도 이 자리에 나오셨으니 저랑 같이 식사라도 함께하시죠.”

재석은 두 감독들과 식사를 하고 가볍게 반주 정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두 감독들은 CP인 유인종에게 연락을 바로 넣었는지 재석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역시 임민경은 만능 치트키인가.’

그 이름 석 자면 안 되는 게 없는 모양이다. 재석은 그날 저녁 바로 유인종 프로듀서를 만났다.

“어이고, 반갑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둘에게 먼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임민경 씨를 드라마에 출연시키려면 대표님을 설득하라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거기에 꼽사리 한 명 더 있다는 것도요.”

“지금은 꼽사리로 불리겠지만, 과연 이다음에도 그럴지 궁금하네요.”

“오호, 회사에서 밀고 있는 배우인가 보죠?”

“그건 아닙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는 배우입니다.”

“일단, 프로필부터 보고 싶습니다.”

재석은 신지경을 프로필을 보여 주자 유인종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

지금 신지경은 만 19세다. 한참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보일 시기다.

“어떻습니까?”

“이야, 대단한 비주얼이네요.”

“아역으로 데뷔해서 지금껏 꾸준히 연기를 해 왔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역할은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습니다.”

“흐음, 하지만 대본 리딩 때 연기가 어설프면 바로 교체될 수 있습니다.”

“물론이죠. 준비가 안 된 배우의 프로필을 들고 다닐 정도로 전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솔직히 전 이 자리에 임민경 씨만 생각하고 나왔는데 이걸 보니 생각이 조금 달리하게 되네요.”

“어떻게 말입니까?”

“두 배우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말이죠.”

그 말은 캐스팅을하겠다는 거다. CP의 결정은 그만큼 무서운 결정력을 가지고 있다.

‘차기 국장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지.’

어찌 될지 모르지만 국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둘 다 계약할 수 있으면 출연하고, 한 명 더 출연할 수 있게 도와 드리겠습니다.”

“한 명 더?”

재석은 그 말에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누굴 끌어들여야 할지 말이다.

사극 연기는 정말 쉽지 않다. 안 해 본 사람은 쉽게 못 하는 게 사극 연기다.

“검증된 임민경 씨에 이런 비주얼의 신인 배우, 거기에 추가로 저희가 한 명 더 해 드리겠습니다. 중요한 역만 아니라면 말이죠.”

그 말에 재석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한 사람을 추천드립니다. 무명인데 연기 실력이 너무 아까운 사람이 한 명 있죠.”

재석은 류태룡을 적극 추천했고, CP는 임민경을 조건으로 둘에 대한 캐스팅을 약속했다.

“하아, 힘들다.”

재석은 민경을 만나 이번에 방송사 창사 특집으로 준비한 드라마가 있다는 걸 알려 주자 귀가 번쩍 트였다.

“창사 특집?”

“어. 아마 방송 나가면 상당한 인기를 끌 거야. 고르고 고른 극본에 창사 특집 타이틀이 달리니까.”

그만큼 방송사에서 주목하고 있는 드라마였다.

“좋아요. 할게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많이 힘들 거야.”

“왜요?”

“연기 잘하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라서 주인공이 아닌 사람도 주인공만큼 비중이 높아질 수 있어.”

“드라마 안에서 경쟁인가요?”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아.”

“자신 있어요.”

민경은 당찬 포부를 밝히면서 나서자 재석은 놀랐다.

“괜찮겠어? 웬만한 대선배들 다 나오는 곳이야.”

“걱정 마세요. 저 열심히 할 자신 있어요.”

의외로 쿨하게 나오는 모습에 재석은 민경이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쓸데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연락은 해 둘게.”

민경이 쿨하게 출연하겠다고 하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최고의 스타가 나온다고 하니 곧바로 책임 프로듀서인 유인종과 만나게 되었다.

“아이고, 한국 최고의 한류 스타 임민경 씨를 만나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호호호, 영광까지는 아니죠.”

민경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겸손하게 아니라 했다.

“연예인 중의 연예인이신데. 정말 눈부십니다.”

“감사합니다.”

민경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민경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출연 의사를 밝혔다.

“일단, 출연은 할 겁니다. 이미 결정했고요. 내용도 여기 있는 제 매니저인 재석 오빠를 통해 다 들었고요. 대본도 확실히 봤어요. 그런데 아직은 제가 출연할 시기는 아니더라고요.”

“예, 아역들이 전반부를 하고, 민경 씨는 중반부터 활약하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대본은 빠르게 준비하고 있으니 금방 받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예,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이번 특집 드라마 ‘여왕 선덕’의 선덕 역을 임민경 씨가 맡아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결국 민경의 결정으로 회사 배우 둘이 여왕 선덕에 출연하게 되었다.

촬영은 5월부터지만, 성인 배우들의 촬영은 7월이 돼야 가능했다.

구두로 결정한 계약 내용은 드라마 제작사와 협의를 거쳐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것도 세 명이 말이다.

제작사에는 신신당부했다.

“나중에 말 나오면 곤란합니다.”

“아이고,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감독은 절대 비밀로 하겠다면서 웃고 있는 입을 손으로 찍 하며 지퍼를 채우듯 시늉했다.

“믿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천하의 임민경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시청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의 홍보뿐만이 아니었다. 한류 스타 임민경이 출연했으니 일본과 중국에 드라마를 수출할 수도 있었다.

제작사나 방송사도 이 점을 염두하고 있다.

“그럼 촬영 때 뵙죠.”

재석은 그 말을 하고 봉도준 감독이 하는 영화 맘의 촬영 현장에 갔다.

“형님, 영화 잘 찍고 있습니까?”

“어, 왔어.”

두 사람은 서로 가벼운 인사를 하고 주연 배우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이 오셨네.”

이 영화를 이끌어 가시는 김선자 선생님이었다.

오랜 배우 생활에서 나오는 내공으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 주고 계시는 분이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배우는 같은 주인공이자, 김선자 선생님의 아들 역으로 나오는 원진이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봉도준 감독 눈에 들어 복귀작으로 이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이 배우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올림픽이었다.

작품을 올림픽처럼 몇 년 주기로 찍어서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회사도 옮겨 다니지 않고 평소 들리는 소문을 봐서는 굉장히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얼굴은 신이 직접 손댄 얼굴이야. 누군 대충 손댔고.’

원진과 자신의 얼굴을 비교하며 세상의 불공평함을 새삼 느끼자, 순간 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참 불공평하게 일하고 있지.’

남 말할 일이 아님을 알았다.

“반갑습니다, 원진 씨. 이렇게 얼굴을 보게 돼서 영광이네요.”

“아, 사장님, 영광까지야.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영화 제작하면 다 대박 난다고 말입니다.”

“아, 음…… 그건 아닌데……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재석도 부정은 안 했다.

하지만 찍는 모든 영화가 다 대박이 날 수는 없었다.

또한 미래의 모든 대박 영화를 재석이 찍을 수도 없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 맞물려 놓치는 영화도 분명히 있을 거다.

“형님, 오늘 촬영 마지막이죠?”

“그래, 그래서 오늘 끝나고 회식이지.”

“그럼 저도 같이하죠.”

“아이고, 고마워라. 사장님이 있으면 회식비 펑펑 써도 되지.”

“아니, 제 주머니 털러 오신 겁니까?”

재석이 농담조로 말하자 그걸 또 봉도준이 받아쳤다.

“탈탈 털어서 먼지로 만들어 주지.”

“아이고, 이거 형님 무서워서 회식 자리 같이 참여하겠습니까?”

“하하하!”

촬영장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 촬영은 막힘없이 끝을 맺었다.

배우들이 먼저 회식 장소로 떠나고, 재석은 스태프들이 촬영장을 정리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함께 회식 자리로 향했다.

김선자 선생님은 나이를 핑계로 회식 자리에서 일찍 일어났다.

봉 감독과 함께 자리한 원진이 질문을 던졌다.

“봉 감독님은 사장님과 친하십니까?”

“허허, 친하지. 내가 들고 온 작품이면 그냥 제작하자고 하니까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