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12화 (112/152)

“그런데, 이쪽 매니지먼트 회사는 어떻습니까?”

“잘 모르는데, 대충 이야기하자면 하나둘 빼고는 다 잘나가는 배우들만 모였다고 하더라고. 과속삼대의 차인혁도 지금 회사 계약 끝나면 이쪽으로 옮긴다는 말이 있어.”

“흐음.”

원진도 현재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거의 다 끝나 가는 상황이었다.

“저도 회사를 옮길까 생각 중이거든요.”

“뭐, 원진 씨 정도라면 어느 회사에 가도 잘될 겁니다.”

봉도준 감독은 재석에게 원진의 의중을 전달했다.

하지만 재석은 그 말에 흔쾌히 대답할 수 없었다.

“받아도 될지는 둘째 치고, 영화를 너무 안 찍는 게 걸리는데. 못해도 일 년에 한 작품씩은 찍어 줬으면 하는데, 과연 원진이 그렇게 해 줄까.”

물론, 원진과 계약하면 돈은 적지 않게 벌 수 있겠지만, 활동이 뜸한 건 회사 입장에서 곤란했다.

“만약 계약한다면 조건으로 매년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고 적어 놔야겠어.”

재석은 그러면서도 ‘설마 진짜 오겠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기왕 그 정도 배우가 올 거라면 다른 배우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진’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재석은 원진 말고 현진을 원했다.

하지만 현진은 아직 현재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어찌 된 게 매니지먼트는 익숙해졌다 싶으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그나마 치트키 같은 민경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치트키로서 활약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감에 따라 민경도 나이를 먹으니까.

“아직까지는 유효하기는 한데.”

재석은 민경을 아시아를 휘어잡는 여인으로 만들었다.

민경은 한류라는 바람을 타고 중국과 일본에 이름을 떨쳤고, 그 결과물은 어마어마했다.

인기면 인기, 부라면 부.

유명세는 물론이고, 벌어들인 돈만 놓고 봐도 그녀보다 많이 번 연예인은 없을 것이다.

“혹시 민경이가 현진과 알고 지내지는 않을까? 만약 그러면 좋기는 할 텐데.”

꼭 같은 작품을 찍은 게 아니더라도, 연예인이란 직업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만큼 얼굴을 알게 되는 계기는 많았다.

‘한번 물어볼까?’

재석은 저녁에 민경과 식사를 하면서 물었다.

“현진이요?”

“알아?”

“뭐, 전에 몇 번 만났죠. 그렇게 친한지는 않았지만…….”

역시, 알고는 있는 모양이다.

“왜? 회사로 끌고 오게?”

“흐음, 데려오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친분이 별로 없다면 됐어.”

재석은 깔끔하게 신경을 거뒀다.

‘당장 급할 건 없으니까.’

그렇게 원진과 현진의 일은 뒤로 잠시 미뤄 뒀는데, 재미난 소식이 재석의 귀에 들려왔다.

“MC 유진석이 홀로서기를 한다고요?”

“이전 소속사와 갈라선다는데, 출연료 문제도 남아 있어서 법적 소송으로 간다고 해.”

“국민MC라…….”

한참 주가를 올리는 유진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 MC다.

“그거 우리가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왜? 유진석은 배우가 아니잖아. 우리가 예능 쪽으로 라인이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그가 필요한 겁니다. 앞으로는 예능 쪽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유진석만 데려온다면 그의 이름을 보고 사람들이 알아서 저희 쪽으로 모여들 겁니다.”

“아, 유진석의 이름값으로 예능 쪽 라인을 만들자는 거지?”

“맞습니다. 그렇게 예능 쪽으로도 라인을 갖추게 된다면, 배우들도 원활하게 예능 활동이 가능할 테죠.”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 그러면 계약 조건은 어떻게 할 건데?”

“업계 최고 대우에, 계약금도 상당히 걸어야죠. 거기에 분명 딸린 식구들이 있을 겁니다.”

“매니저나 코디들이 있겠지.”

“그들도 직원으로 채용해 준다고 하면 올 겁니다.”

“그럼 바로 계약서 작성하고 연락 넣을게. 만나는 건…….”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이럴 때 회사 대표가 얼굴 비추면서 사람 데려와야죠.”

“좋아, 기대되는군.”

배우 말고 최초로 예능인을 섭외하는 거다.

‘나중에는 배우들도 예능에서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쌓는 때가 온다. 잊힌 배우들이 예능을 통해서 되살아나기도 하고 말이지. 미래까지 생각하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사람이야.’

거기에 국민MC 유진석을 잡고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 회사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

재석은 다음날 직접 유진석을 만나러 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MC 유진석에게 쉬는 날 따윈 없다.

그를 찾는 방송이 너무 많은 탓에 일정이 비는 날을 찾기란 어려울 정도였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이이브는 배우 소속사 아닙니까? 절 찾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음, 제이이브가 배우 주력의 회사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에 한정된 곳은 아닙니다. 현재만 하더라도 계속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죠.”

유진석은 제이이브와 관련된 이야기는 들어보았기에 그곳의 행보가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 아직 이전 소속와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절 원하시는 겁니까?”

“그쪽 문제는 저희가 나서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쪽 회사와 척을 지시게 될 텐데요?”

“유진석 씨를 데려오려면 그 정도 각오는 필요하죠. 그리고 딸린 식구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도 같이 고용하겠습니다. 함께 지낸 지 수년이나 되신 분들이니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재석은 유진석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뉴스로도 다뤄질 만큼 심각했던 사안이었다.

지금은 뉴스가 터지기 전이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이 문제가 곧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 그 부분은 그렇다 치면……. 제 식구들도 함께 받아 주신다 하셨는데, 제 식구들은 제 담당으로…….”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거 아실지 모르겠는데, 유진석 씨는 광고계에서도 굉장히 신뢰받는 모델입니다. 저희 회사와 계약하신다면 CF 광고 좀 찍어 보시죠.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과, 광고요?”

“예, 화장품은 배우 쪽이 워낙 세서 힘들지만, 유진석 씨의 신뢰성 있는 이미지라면 금융 쪽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일 겁니다.”

광고라는 말에 유진석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홍보용 사진 촬영은 해 봤지만, CF 광고는 넘을 수 없는 새로운 영역 같은 것이었다.

“그거 하나는 꼭 약속드리겠습니다.”

재석은 그가 할 수 있는 제안은 다 내놓았다.

조건 같은 부분은 유진석이 MC 쪽 최고이기에 최고 대우를 해 주면 되는 일, 조율할 필요도 없었다.

“우선…… 제가 나중에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유진석은 바로 결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하려는 거였다.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재석은 할 수 있는 말을 다 했다.

좀 더 좋은 미사여구들을 붙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 봤자 원론적 내용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진석의 고민은 꽤나 길었다. 일주일이 넘어서 답이 들려온 것이다.

“저희 회사와 계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신중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 지인들 모두 고용되는 거 맞죠?”

“물론입니다. 새 직원들의 대우는 이전 회사와 동일하게 해 드리죠. 참고로 저희 회사는 연봉제입니다. 매년 연봉 협상을 합니다. 실적이 좋으면 반년도 안 되서 협상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연봉제요?”

“그럼 시급이라도 지급하실 줄 알았습니까? 저희 회사는 항상 최고를 원합니다. 많은 이익을 준 이에게 최고의 대우를 합니다. 그게 직원이든 연예인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유진석은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잘됐네요. 연봉제라니 오히려 안심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국민MC 유진석 씨.”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재석은 그렇게 악수를 하고 나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계약 끝났으니 사인 한 장 해 주시죠.”

“네? 사인을…….”

배우들도 유진석의 사인을 원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진석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있을 정도이니, 유진석은 그야말로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 소속 배우들이 예능 프로에 나가면 항상 유진석 씨와 가장 가까운 자리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이게 본심이시군요.”

“아니라고는 말 못합니다.”

물론 이쪽이 주된 이유였지만 꼭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진석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매달 수억에 달했다. 한류 스타가 아니면 그의 수익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럼 직원들은 회사로 오라고 연락하세요. 그리고 이전에 받던 월급 솔직히 말하라고 하세요. 속이시면 곤란합니다.”

“그럴 사람들 아닙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월급 올려 주신다면 아주 좋아는 할 겁니다.”

“일하는 거 봐서요.”

재석은 그렇게 진석과 헤어졌고, 다음으로 신지경이 출연하기로 한 여왕 선덕의 준비 상황이 어떤지 확인해야 했다.

요즘 재석은 방송사 출입이 잦아지고 있었다. 방송사에 찾아가 프로듀서를 만나는 게 일이다.

“아이고, 요즘 바쁘실 텐데 자주 찾아오시네요.”

재석이 근래 방송국을 찾는 이유는 하나였다.

시트콤 시리즈 중에서 역대급 시청률을 자랑하는 ‘킥!’ 시리즈의 두 번째 계획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전작이 시청률은 물론이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아 두 번째 시즌까지 확정이 된 것이다.

거기에 신지경이 꼭 들어가야 한다.

여러 프로듀서들 중에 재석이 노리는 인간은 한 명, 박병진 프로듀서다.

일명 박 피디.

전작 ‘거침없이 로우킥!’의 책임자였다.

“한 회사 사장님이 일이 없나 봅니다. 저를 너무 찾아오시는 거 아닙니까?”

시트콤 ‘킥!’ 시리즈의 책임 프로듀서 박 피디는 쌀쌀하게 재석을 맞이했다.

“여왕 선덕 때문에 들렀습니다. 마침 점심때인데, 어떻게 식사라도 같이하시겠습니까?”

“거, 여왕 선덕 핑계로 몇 번을 오시는 건지…….”

“배우들이 열심히 연기하고 있는데, 격려도 하고 겸사겸사 다음 일거리도 잡고 하는 거죠.”

“아, 그렇군요. 그럼 계속 일 보십시오.”

박 피디는 찬바람이 쌩하고 불 정도로 냉랭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재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하하, 그러지 마시고 저랑 같이 점심이나 같이하시죠.”

“점심 약속은 따로 없지만, 그렇다고…….”

“잘됐네요. 저랑 같이 가시죠.”

재석은 박 피디의 등을 떠밀며 회사 밖으로 움직였다.

“점심시간 아까우니까 빨리 갔다가 빨리 오죠.”

그렇게 차를 타고 쌩하고 달려가 어느 한정식 식당에서 박 피디 입을 비싼 음식으로 막아 버렸다.

“크흠, 이런다고 제 마음 바뀔 거라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아이쿠, 이런 박 피디님이 이런 음식에 무너질 정도로 가벼운 분이 아니시죠.”

“그래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밥 한 끼 먹인 걸로 그치지 않았다.

매일 찾아와 박병진 피디를 데리고 비싼 음식을 먹였다.

처음에는 약간 냉랭했지만, 그의 반응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둘째 날은 ‘오셨네요.’

셋째 날은 ‘안녕하세요.’

넷째 날은 ‘하하! 반갑습니다.’

다섯째 날은 ‘오늘은 왜 안 오시나 했습니다.’

그렇게 닷새를 넘기자 피디의 마음이 바뀌었다.

역시 입에 뭘 넣어 줘야 사람 마음이 바뀌는 모양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굴 꽂으시려고 이렇게 찾아오시는 겁니까?”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박 피디는 재석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도 재석이 이유 없이 점심을 사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 바로 이야기 꺼내죠. 여기 프로필입니다.”

재석은 신지경의 프로필을 내세웠다.

그걸 본 박병진은 한마디를 했다.

“직접 한번 보죠.”

“감사합니다, 박 피디님.”

“뭘요, 배우 한 명 출연시키겠다고 이렇게 노력하시는데 그 성의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박 피디가 음식에 쓰러졌다. 재석은 다음날 신지경을 데려와 박병진 앞에 대령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오, 네가 신지경이구나. 이거 사진이 잘못 나왔네. 실물이 더 좋은데?”

박병진은 신지경을 보고 계획하고 있는 시트콤에 어떤 역을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뭐가 좋을까?’

그 고민은 잠깐이었다.

때마침 좋은 역이 떠올랐다.

“이번에 시골에서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그런 곳에서 서울로 상경한 순박한 자매 캐릭터가 있습니다. 자매 중 언니 역할이 딱 어울리겠는데요.”

“사장님, 전 시골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데요.”

“괜찮아, 시골에서 살 필요는 없어 어차피 가볍게 시골 느낌 나는 모습으로 출연하면 돼.”

신지경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지만, 재석은 이 문제를 가볍게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어차피 시트콤이니까 땟물 가득하게 연출하는 건 어떻습니까, 박 피디님?”

재석의 아이디어에 박 피디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상당히 웃기겠네요.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 한번 안 씻어 본 것처럼 거지 같은 느낌의 시골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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