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님, 그건 시골 소녀가 아니라, 그냥 야생에서 살아가는 정글북의 주인공 모글리 수준인데요.”
“모글리라면 더 좋죠!”
박 피디는 정말 모글리를 표현할 생각이다.
다만, 시트콤이라 적절히 웃기게 만들어야 했다.
“이거, 참. 기대됩니다. 거지 소녀가 환골탈태하는 장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박병진 피디는 뭐가 그리도 만족스러운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번 작품에서 신지경은 순박한 시골 처자의 모습을 해야 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면 이해하게 해 줘야지.’
재석은 정말 그녀를 어디 산골에서 한 며칠 지내게 할 수도 있다.
“그럼, 첫 대본 리딩 때 보도록 하죠. 아주 만족스러운 만남이었습니다.”
박 피디와는 그렇게 좋은 관계가 만들어졌고 곧바로 계약에 들어갔다.
여왕 선덕의 첫 대본 리딩에는 신지경이 참여하지 않았다. 신지경은 사춘기 시절부터 출연을 하니 대략 10화 정도가 지나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신지경은 연기 훈련에 집중했다.
방송에 들어간 후에는, 신지경의 연기가 조금이라도 어설프면 네티즌에 의해 몰매를 맞게 될 거다.
“지경아, 다시 한번 가자.”
“네, 선생님.”
신지경은 연기 학원에서 몇 시간씩 연기를 펼쳤다.
감정 소모가 심할 정도로 훈련하면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딱 그 감정을 추스를 정도로만 말이다.
신지경의 이 강도 높은 훈련은 시트콤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어질 것이다.
시트콤 촬영이 시작되면 대본 외우기도 바빠 연기 훈련은 할 틈도 없을 것이다.
재석은 신지경에 대해서 얼추 마무리를 짓고, 여유를 좀 갖으며 영화 시나리오를 훑어봤다.
“역시 영화 제작사가 잘나가니까 시나리오 하나는 잘 들어온단 말이야.”
재석은 그렇게 들어온 시나리오들을 보다가 ‘의리와 의심’이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발견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다음은 이걸로.”
재석은 감독과 계약을 맺기 위해 곧바로 움직였다.
감독은 바로 고훈이었다. 미래에 천만 관객 영화 ‘택시기사님’을 찍을 감독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뭘, 영광까지야.”
“사장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제 시나리오를 선택해 주셨다는 건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음,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선택한 겁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사실 재석으로서는 이 영화를 선택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작사가 놀게 된다.
직원들 월급이 나가는데 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 제작을 통해서 재석이 벌어들이는 수익도 예사롭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감사합니다.”
“뭘요.”
재석은 그렇게 고훈 감독과 계약을 맺고 준비 기간에 들어갔다.
그사이 김명진은 영화를 하나 찍었다.
그는 루게릭 병 환자 역을 하기 위해 무려 20킬로그램이나 감량을 해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촬영이 끝나고 휴식을 가지면서 몸을 회복하는 단계였다. 재석은 김명진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
“김명진 씨, 이런 영화 두 번 다시 찍지 마세요. 너무 극단적인 연기 변신입니다.”
“아니야, 그래도 도전해야지.”
“도전은 다른 걸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이런 영화 거절할 겁니다.”
삐쩍 말라 있는 김명진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영화 바로 또 찍으실 겁니까?”
“좋은 거 있으면 찍어야지.”
“흐음, 몸 관리부터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족 여행 계획은 잡았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아내한테 이야기했어.”
“꼭 가세요. 아니면 제가 끌고 갈 겁니다.”
재석이 말하기가 무섭게 집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김명진의 아내가 한마디 했다.
“꼭 데려가 주세요. 이이가 말만 여행, 여행 하지 항상 일하느라 바빠요. 사장님,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꼭 날짜 좀 잡아 주세요.”
“허허, 저와 한 약속을 잘 안 지키고 계시네요. 안 되겠습니다. 회사에서 직접 김명진 씨 돈으로 일정을 짜고 계약해야겠네요. 그것도 최고급으로요.”
약속 안 지키고 입으로만 말하는 남편에게는 벌이 필요했다.
“아이고, 힘없는데.”
“발리 일정 잡겠습니다. 그곳은 휴양지니까 따로 할 거 없습니다. 푹 쉬고 차 타고 투어하고 편하게 구경하십시오.”
“어머머, 그런 곳이 있었어요? 그럼 당장 그쪽으로 해 주시면 되겠네요!”
김명진의 아내는 이제껏 여행과 담을 쌓은 사람처럼 말하면서 재석을 재촉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
재석은 며칠 뒤 비행기표와 함께 일정까지 전부 깔끔하게 준비를 해서 김명진의 아내의 손에 쥐여 줬다.
“남편분 기운 차리시라고 준비한 것도 있으니, 꼭 먹이십시오.”
“예. 걱정 마세요, 사장님.”
김명진의 아내는 일주일 뒤 김명진과 아이를 데리고 발리로 떠나 버렸다.
“아주 잘 갔네.”
여행을 다녀오자, 김명진의 아내는 표정이 확 밝아져 있었다.
재석은 이제 반보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보영에 관한 상황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일본에 발매할 앨범에 관해서 적절한 홍보 활동도 시작했다.
이미 반보영의 인기가 퍼진 상황이었다.
반보영이 일본에 앨범을 냈다는 것에 대해 일본 팬들은 지대한 관심이 보였다.
또한 반보영의 일본어 실력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서 있었다. 강도 높은 일본어 교육의 성과였다.
원래 미래에서 그녀의 일본 활동은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과속삼대 이후 소속사와 영화사의 소송 문제로 2년이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반보영은 그런 문제 따윈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슬슬, 일본에서 얼굴 좀 알리면서 시작해 볼까.”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졌기에 밀어붙일 수 있는 계획이었다.
반보영은 일본 일정을 조금씩 소화했다.
반응을 꾸준히 유지했고 앨범은 정식으로 발매, 1집을 내게 되었다.
제목은 ‘너무 귀여워’.
“보영아, 노래 잘 부를 수 있지?”
“예.”
반보영은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솔직히 무서웠다.
일본 음반 시장에 앨범이, 자신의 노래가 얼마나 통할지 걱정이었는데, 이건 재석도 가늠을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럼, 일본으로 가서 활동을 시작하자.”
일본 활동은 나오미의 주도 아래 진행됐다.
그녀가 준비를 얼마나 철저하게 했는지 반보영은 쉴 틈 없이 이런저런 방송에 출연을 했다.
이미 일본에서 한국 가수들이 활동을 좀 해서 그런지 반보영의 활동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고 그녀의 팬들은 그녀를 쫓아다니면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반보영, 반보영!
절도 있게 외쳐 대는 모습은 마치 국군 장병들 위문 공연 현장을 방불케 했다.
“아리가또!”
반보영이 눈웃음을 보이면서 손을 흔들자 남성 팬들은 줄줄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반보영의 귀여운 얼굴은 확실히 먹혀 들어갔다.
팬들은 노래가 아닌 반보영의 얼굴만 봤고, 그 인기는 무섭게 확산되었다. 덕분에 앨범은 빠르게 판매가 되었다.
일본의 오리콘 차트 100위에 입성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서 순위가 쭉쭉 올라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30위권을 돌파했다.
반보영의 인기는 무시무시했다.
“세상에.”
재석은 오리콘 차트 1위도 가능하지 않을까 했지만, 나오미는 잘해 봐야 20위권이 최대일 거라고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그리고 그녀의 분석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딱 22위에 올라가자 그 행진이 멈춘 거였다.
1위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음반 판매 수익은 엄청났다.
아직 정산 받지 않았지만 예상되는 수익은 2억 엔.
“음반으로만 2억 엔…….”
일본 음반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가라오케나 콘서트 등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에 가라오케와 콘서트 활동까지 더해진다면 액수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어쩌면 10억 엔도 노릴 수 있었다.
“이건 거의 민경이급인데.”
재석은 나오미에게 콘서트를 한번 열어 보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나오미의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좀 더 주변 활동을 하고 난 뒤에 해야 합니다.
재석은 일본 지사장인 나오미의 의견을 믿었다.
그렇게 콘서트는 잠시 미루고, 재석은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는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한 달도 안 되서 나오미가 1만석 규모의 콘서트를 계획한 것이다.
재석은 예상보다 빠르다고 생각했다.
콘서트는 한참 뒤에 할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거기에 또 다른 보고서가 하나 왔는데 한국 가수들의 일본 진출 현황이었다.
“흐음, 가수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콘서트들이 한참 열리고 있었군.”
이 보이 그룹은 이미 일본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콘서트홀도 항상 2~3만석 규모였는데 항상 그걸 꽉 채웠다.
그들은 그에 걸맞는 퍼포먼스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반보영이 그들처럼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조금 어려울 것 같았다. 그냥 귀여운 척하면서 사람들 시선을 빼앗는 쪽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재석은 일본 콘서트가 열리면 현장을 직접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콘서트 계획이 잡히고 일정대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었다. 콘서트가 열리기 며칠 안 남은 상황, 반보영은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콘서트가 열리는 당일까지도 그 긴장은 계속되었다.
“으으, 사장님, 저 걱정돼요. 사람들이 안 오면 어떻게 하죠?”
“아니, 사람들 많이 올 거야. 걱정 마.”
대기실에서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음반이 좀 팔렸고 오리콘 차트에 제대로 안착했지만, 콘서트 결과는 한번 까 봐야 안다.
‘팬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어.’
이번 콘서트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 향후 계획도 거기에 맞춰 수정될 것이다.
그만큼 이번 콘서트는 중요했다.
“그것보다 체력은 자신 있겠어?”
“사장님, 그러지 않아도 매니저가 저보고 운동을 좀 하래요. 건강해야 한다면서.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하고 있어요.”
재석에게 그 말을 하는 걸 보니 정말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양이다.
“준비되셨으면 올라오세요.”
콘서트 스태프의 말에 반보영은 안절부절못했다.
“보영아, 넌 할 수 있어. 내가 이 밑에서 응원할 테니까.”
그렇게 반보영이 조용히 무대로 올라가자 전주가 흘렀다.
전주가 깔린 가운데, 반보영이 입을 열었다.
“귀여워, 귀여워. 너무나 귀여워.”
정말 오그라들기 일보 직전의 가사만 잔뜩 들어 있는 노래이지만, 팬들의 반응은 어마어마했다.
“우오오오오!”
남성 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은 기가 질릴 정도였다.
거기에 좌석도 어디 하나 빠진 좌석 없이 아주 깔끔하게 들어차 있었다.
“서, 성공이다!”
재석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콘서트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이 정도면 대도시 투어도 다닐 만했다.
“됐어! 성공이야!”
재석이 반보영을 성공적으로 일본에 데뷔시킨 것이다.
반보영의 첫 콘서트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콘서트홀을 꽉 채웠고 일부는 입석으로 참여해 계단에 앉아 반보영의 콘서트를 보려고 했다.
준비된 1집 활동은 그야말로 아주 좋았다.
기세를 타고 일본 대도시 순회 콘서트까지 계획했다.
대도시 중 반보영이 좌석을 가득 채울 만한 콘서트홀이 위치한 곳으로 10군데 선택했다.
그중 2개 도시는 만석이 안 될 수도 있다 여겼다.
하지만 반보영의 콘서트 행진은 무서웠다.
일본 10개 도시의 콘서트에서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 갔다. 그것도 예약 구매 단계에서 말이다.
“꺄아아!”
매진 행렬을 이어 가자 수익이 만만치 않았다.
동시에 멈춰 있던 오리콘 차트 순위가 다시 움직였다. 22위에서 느리지만, 매일 차트 순위가 한 계단씩 올랐다.
재석은 첫 번째 콘서트만 직접 참여했고 이후 콘서트는 나오미의 책임하에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음반을 냈던 음반사가 반보영에게 여러 사업을 같이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오미는 철저한 검토 후 음반사의 제안을 수락했고 2차, 3차 관련 사업에 관한 수익 분배도 조율했다.
오리콘 차트는 최종적으로 12위를 기록하며 마무리되었다.
20위권에 있을 때와 10위권에 있을 때는 영향력부터 달랐다. 물론, 10위 안쪽에 들어가면 더 좋았겠지만 재석으로서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1위는 의미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