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일부 개미들은 충분한 수익을 올렸다며 발을 빼기 시작했지만, 재석은 아직 발을 뺄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도 마블에서 제작하는 영화가 대히트를 칠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번 배당금이 기대되는데.”
주식 가치가 4배가 됐으니 그에 따라 배당금도 올랐을 것이다.
“아, 근데 12배가 넘으려면 아직도 멀었네.”
12배는 몇 년 더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재석은 벌써부터 몸이 달아올랐다.
“흐흐흐.”
* * *
재석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방 자매의 연락이 왔다.
“아이고, 작가님. 어쩐 일로 저에게 직접 연락을 주셨습니까.”
(대표님, 이번에 제가 신작을 썼는데 여기 주인공 중 한 명을 송근석 씨로 좀 했으면 싶거든요.)
“아, 그러십니까.”
재석은 방 자매가 쓴 작품이 뭔지 안다.
‘미남이네’. 송근석, 박신연을 한류 스타로 만들 작품이었다.
거기에 같이 출연했던 아이돌들은 이 작품을 계기로 해외로 진출하는데, 여러 나라에 콘서트를 하러 다닐 정도로 성공한다.
“걱정 마십시오. 작가님, 제가 꼭 내용을 전달해 드리죠.”
재석은 곧바로 민철을 불러서 방 자매의 의견을 전달하고는, 송근석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라고 했다.
“선배, 아직 대본도 안 봤는데요.”
“방 자매 작품은 대본 안 보고 가도 돼. 항상 최고거든.”
“그거야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선배 방식과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다르지. 하지만 돈 많이 벌 기회를 잡는다는 것 자체는 다르지 않아.”
재석은 방 자매를 만나기 위해 작업실로 찾아갔다.
재석의 곁에는 송근석도 함께였다.
“아이고, 작가님들 노고가 많으십니다.”
“어머, 대표님. 송근석 씨도 같이 왔네요.”
가장 먼저 재석을 맞이해 준 건 방은미였다.
방선미도 뒤따라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작가님, 절 찾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호호호, 뭘요. 이 전작에 나오면서 저 다 봤어요. 어려운 역할 척척 해내면서 김명진 씨와 호흡할 때는 정말 대단했어요.”
“그거야, 같은 소속사고 명진이 형이 잘 리드해 줘서 그런 거예요. 전 아직 멀었어요.”
송근석은 작가들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다.
‘기이한 허세를 즐기는 놈이 겸손이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민철이한테 철저히 교육받았구나. 어디에 이상한 거 올리거나 사람들 앞에서 티 내거나 하지 말고 혼자만 즐기라고.’
민철에게 정말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민철이가 사람 하나 제대로 만들었다.
“그럼, 이 대본 한번 보세요.”
방 자매는 곧장 대본을 건네줬다.
재석과 송근석은 대본을 펼쳤다.
제목은 ‘미남이네’.
주인공들을 전부 한류 스타로 만든 대단한 드라마였다.
재석은 대본을 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아직 핵심 여주인공이 없네요?”
“저희들이 그래서 대표님을 찾은 겁니다. 여배우 한 명 추천해 주세요.”
“네?”
방 자매는 재석에게 여배우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참 곤란한 부탁이었다.
아직 작가들은 박신연이라는 배우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석으로서는 뜬금없이 박신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곤란했다.
“제가 추천해도 되는 겁니까?”
“예, 상관없어요. 대표님은 믿고 쓰는 보증 수표 같은 분이니까요.”
회귀하고 지금까지 재석은 자신의 배우들을 모두 최고로 만들어 왔다. 방 자매가 재석에게 추천해 달라 한 것은 그런 재석의 눈을 믿기 때문이었다.
“엔터 대표에게 배우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당연히 소속사 배우를 추천할 텐데. 확인 안 하셔도 되는 겁니까?”
“대표님은 확인 가능할 배우를 이야기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시면 딱 한 명 있습니다.”
재석은 마침 박신연의 프로필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가져온 것인데 잘한 선택이었다.
“한번 보시죠.”
프로필에는 박신연이 그간 출연했던 작품들의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방 자매가 기억하는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흐음, 출연작은 괜찮네요. 이런 필모를 가진 배우는 흔치 않은데, 역시 대표님 능력은 대단하시네요.”
“저 혼자 대단하다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저 혼자 그 많은 사람들 어떻게 다 관리하겠습니까.”
“호호호, 겸손도 하셔라. 베토벤의 고통 때만 봐도 송근석 씨 직접 붙어서 케어하셨으면서?”
“거기에 김명진 씨도 같이 있었습니다.”
“호호, 배우가 두 명이라 특별히 직접 케어하신 거라고 말하고 싶으신 거예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송근석 씨만 케어를 하시던데.”
“집중에 방해될까 다가가지 않은 겁니다.”
재석은 꼭 취조실에서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재석의 기분을 알아차린 방 자매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호호호, 저희가 대표님을 너무 몰아세웠나요? 그래도 대표님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잠깐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거죠. 어쨌든 대표님이 추천한 이 연기자 믿고 한번 써 볼게요.”
방 자매의 말에 재석은 안심했다.
‘생각보다 손쉽게 통과됐어.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캐스팅 과정에서 버려지는 시간은 만만치 않았다.
그 시간은 배우에게도 재석에게도 아까운 시간이었기에, 이처럼 손쉽게 캐스팅이 끝난 것은 재석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오늘부터 강도 높은 연기 훈련을 시켜야겠어.’
박신연은 이번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으로서 송근석과 함께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 했다. 중요한 역할이었고 그렇기에 더없이 깔끔한 연기가 필요했다.
“그럼, 여주인공은 마무리됐네요. 송근석 씨가 원하는 역은 어떤 건가요?”
“베토벤에서 명진이 형님 배역이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 형님처럼 조금 까칠한 역을 하고 싶어요.”
“그럼, 황태경 역이네요. 근데 원래 맡기고 싶은 역은 강신우 역이었는데…….”
“그 역은 제 전작과 너무 비슷합니다. 전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작가님들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테니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방 자매는 송근석의 당찬 포부에 고민에 빠졌다.
황태경 역을 송근석에게 맡기면 강신우 역에는 누굴 써야 할지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큰일이네, 강신우 역을 하려면 송근석 씨처럼 꽤 곱상해야 하는데 그런 배우는 찾기 쉬운 게 아니거든요.”
송근석처럼 아름다운 청년이어야 한다는 거다.
연기력이 되면서 그런 이미지를 가진 연기자는 정말 손에 꼽는다.
‘방 자매 머릿속에는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었군.’
방 자매는 송근석의 전작 이미지를 보고 강신우 역을 송근석에게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송근석은 전작과는 다른 이미지의 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
“강우석 역은 정말 안 될까요?”
“그 역은 관심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송근석의 단호한 대답에 방 자매는 참으로 곤란했다.
어차피 황태경 역은 송근석이 해도 된다. 하지만, 강우석 역이 문제였다.
방 자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재석을 향했다. 자매 작가는 어째 재석을 만능 키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도 강우석 역을 할 만한 배우가 떠오르지는 않네요.”
재석은 도중기를 떠올렸지만, 아직 그의 연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금 시점에서는 강우석 역을 할 정도의 역량은 아니었다.
‘밀어주고 싶어도 역량 부족이야.’
매니저에게 보고받은 바로는 연기가 발전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현 상태에서 주연은 어림도 없었다.
“남자 배우는 좀 있지 않아요?”
“한 명 있기는 한데 솔직히 역량이 부족합니다. 아직 선보일 정도는 못 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배우를 꽂고는 싶은데 배우 역량이 되지 못하니 아쉽네요.”
이 상황에서 도중기를 추천하는 것은 드라마 판은 물론이고, 도중기의 미래를 생각해도 좋지가 않았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돕겠지만, 저에게 없는 사람을 갑자기 만들어 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뭐,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러면 송근석씨의 요청은 저희도 깊이 고민해 볼게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추천하신 배우는 얼굴 한번 보고 싶네요. 감독님이랑 같이.”
“예, 날짜와 장소를 전달해 주시면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후회하진 않으실 겁니다.”
재석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온 박신연이니까.
* * *
“후우.”
깊은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박신연은 홀로 대본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남장을 하고 남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니,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재석이 박신연을 찾아왔다.
“여기서 귀여운 소녀가 고민을 하고 있네.”
“아, 사장님.”
박신연은 밝은 웃음을 띠며 재석에게 다가왔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
“다른 게 아니라, 남자 역할을 해야 해서요.”
“아, 그거 때문에 고민이구나. 대본에는 분명 남장을 하는 여자지?”
“네, 그래서 남자인 척을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걸 전혀 할 줄 모르거든요.”
“음, 생각보다 쉬워 그리고 진짜 남자가 되라는 게 아니잖아. 남자인 척하는 거지 지금처럼.”
“남자인 척?”
“단순하게 생각해 봐 남자인 척을 하고 싶어 그러면 가장 먼저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할까?”
“아. 목소리, 그리고 신체 능력?”
“비슷해. 그리고 그것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우선 목소리는 적당히 깔고, 말투는 군대식 말투가 가장 적합할 거야.”
“군대식 말투?”
“‘다’나 ‘까’로만 대답하는 거지. ‘요’는 최대한 줄이고, 예를 들자면 ‘했어요.’, ‘갈게요’가 아니라, ‘했습니다.’, ‘가겠습니다.’ 이렇게. 이것만 해 줘도 충분할 거야.”
재석의 말에 박신연은 환하게 웃었다.
“역시 사장님이 최고예요. 덕분에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진 느낌이에요.”
“그럼, 이대로 준비해서 한번 나가 보는 거야. 그렇게 하면 돼.”
재석은 박신연에게 조언을 해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미숙해. 하지만, 틀은 잡아 줬으니 이제 잘할 수 있을 거야.’
스스로 연기가 부족함을 깨달았을 거다.
더욱 노력해서 연기자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게 박신연이 해야 할 일이었다.
며칠 뒤 박신연의 매니저를 통해 소식이 들어왔다.
박신연이 감독과 방 자매와 만나는 자리에서 훌륭하게 캐릭터 연기를 선보였다는 소식이었다.
‘이걸로 캐스팅은 확정이군.’
다음으로 송근석의 소식이 들려왔다.
송근석은 황태경 역에 확정되었다. 그는 곧바로 캐릭터 연구에 들어갔다. 까칠하지만 여주인공을 감싸 주는 왠지 모르게 자상한, 즉 나쁜 남자의 냄새가 잔뜩 묻어 나오는 캐릭터였다.
“아이고, 이제 끝났네.”
재석이 할 일은 여기까지였다.
남은 건 쉬는 일뿐이었다.
반면 민경의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여왕 선덕에서 덕만과 미진의 대립이 시작된다.
미진 역을 맡은 고민정에게 연기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 민경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거기에 민경은 중국어와 중국 사극 연기 공부까지 하고 있었다.
“…….”
민경은 내심 ‘괜히 중국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투덜거림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 냈다.
민경이 한번 하기로 한 일에 번복이란 있을 수 없었다.
민경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히 임했다.
재석이 다른 일로 바빠도 회사의 대표로서의 책임을 이해하는지 촬영장에 따라오지 않아도 별말이 없었다.
재석과 민경은 집에서 만나면 고생했다면서 서로를 위안해 줬다.
“오빠, 고생했어요.”
“너도 고생했어.”
“근데, 내일 촬영이 새벽까지 진행이라 몇 시간만 자고 또 나가야 돼요.”
“정말 고생이다, 너도.”
“오빠도요.”
서로 토닥거리면서 정신적 에너지 충전했다.
“여왕 선덕 촬영 끝날 때까지는 이대로 바쁜 생활이 계속될 텐데, 너무 힘드네요.”
“걱정 마, 여왕 선덕 끝나고 중국 드라마 촬영 시작하면 그나마 좀 편할 거야.”
“거기서도 엄청 힘들 것 같은데. 저 중국어 발음도 이상하고, 상대 배우들도 제 이상한 발음 듣고 연기해야 하잖아요.”
“걱정 마, 후시 녹음 한다잖아. 그러니까 발음은 괜찮을 거야. 대신에 입 모양이나 표정 연기가 좋아야겠지.”
“하아, 정말. 중국 드라마라니.”
두 사람은 몇 달 뒤의 일정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11월은 비행기만 몇 번을 타야 하는 거야.’
한국과 중국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 적지 않은 수일 것이다.
어쨌든 원활한 일정 조정을 위해 여왕 선덕 제작진에게도 상황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