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18화 (118/152)

‘하긴, 그 유명한 원진이 직접 감독에게 연락을 해서 출연하게 됐다고 했지. 그 전까지는 주연 배우를 못 구해서 답답한 상황이었고.’

감독이 진짜 중년 아저씨 배우를 찾는 것은 재석으로서 꽤나 황당한 일이었다.

‘진짜 아재 배우를 쓰면 망하는 영화야.’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될 영화였다.

재석은 곧바로 계약부터 하고 주연 배우가 될 사람에게 시나리오 뿌리기 시작했다.

물론 감독에게는 이런저런 배우에게 뿌렸다고 말만 하고, 원진에게만 시나리오를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원진에게 반응이 왔다.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범진 감독은 원진의 출연 의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 ‘아재’의 주연 배우는 진짜 아저씨여야만 했다.

원진은 그가 그리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배우였다.

하지만, 재석은 감독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감독님, 이거 아세요? 10살짜리 아이가 30살 된 남자를 뭐라고 부를까요?”

“…….”

감독은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차피 아저씨입니다. 어린이한테는 말이죠. 꼭 마흔이어야 아저씨가 아니죠.”

“아무래도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네요. 시나리오도 좀 수정하고요.”

“그럼, 작업은 언제 시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거, 준비하는 거 얼마 안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바쁜 원진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요.”

“그럼, 그 작업 저도 함께하죠. 저도 시나리오 좀 볼 줄 압니다. 감독님만큼은 아니지만.”

“아니, 각색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절 도와주시겠다니…….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제가 도울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습니다. 중국에 가야 해서요. 그래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며칠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단 하루라도 도와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부터 시작하죠.”

“대표님이 원하신다면 바로 하겠습니다.”

재석이 도와주면 시나리오 수정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재석은 이범진 감독과 함께 매일 저녁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범진 감독은 재석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십니까?”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것 말고는 별로 없습니다. 아이디어를 쓰시는 건 작가님의 몫이죠.”

“무슨 말씀을! 시나리오는 영화의 설계도와 같습니다. 충무로에서 제이이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 아십니까?”

“딱히 관심 없어서 잘 모릅니다.”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아귀라고 하지만,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영화를 성공시키기 어렵다고, 성공할 영화면 제이이브에서 찾아온다고 할 정도입니다. 제이이브와 했는데 흥행이 안 됐다? 그러면 칸 영화제에 나가 상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재석은 감독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미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는 작품 시작 전에 제이이브 소속 배우에게 섭외 전화 한 통 돌리고 시작하는 것이 관습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제 얼굴 부끄러워지는 이야기는 그만입니다. 시나리오에 집중해야 해요. 전 며칠 뒤에 다시 중국에 가야 합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재석이 다시 중국 촬영지로 돌아오자 반갑게 맞이해 준 건 민경이었다.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단 말이야.”

“때 되면 알아서 오는데 그걸 뭘 또 기다려.”

“치, 그래서 나 안 보고 싶었다고?”

“여기 중국이라고 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다.”

“뭐, 어때.”

민경은 중국에서 한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이용해 마음껏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나도 네 마음 잘 알지. 그래도 조심해.”

“치.”

“로드는?”

“어제 보냈어. 통역사 있는데, 매니저 있어 봐야 불편해.”

“나중에 너 때문에 그 사람 잘리는 거 아냐?”

“에이, 그렇게 못되게 안 했어. 오늘 오빠 오니까 하루 일찍 가서 쉬라면서 보냈어. 내가 오빠 없으면 맨날 짜증만 내는 사람 아니거든요.”

민경은 자신이 투덜이라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그리고 촬영 진행은 얼마나 됐어.”

“오빠 없는 사이에 벌써 두 회 촬영 끝냈어.”

“빠르네.”

이런 속도라면 넉 달 정도면 다 끝날 거다.

“있는 동안 너한테 이상한 짓한 사람은 없어?”

여인심계는 궁중에서 벌어지는 여인들의 암투를 그린 작품이다. 때문에 여자 배우들이 대다수고, 남자 배우는 대부분 핵심 배역과 매우 먼 환관 정도의 배역에 머물렀다.

민경은 주인공이기에 접점은 적을 테지만, 그래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사인 받아 가고 통역사를 통해 가볍게 인사를 하는 정도에서 끝났어. 대부분 그냥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데.”

하긴 서로 별말 없지만, 민경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거다.

‘어차피 이번 드라마 찍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라고 여기는 거겠지.’

반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민경은 중국에서도 지속적으로 활동할 거다. 중국, 일본, 한국 유명 드라마에 출연시켜 보란 듯이 아시아의 여왕으로 만들 거다.

‘지금은 이게 첫 발걸음이지.’

“그럼 감독이랑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네.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이야.”

재석은 곧바로 감독을 찾아가 그동안의 촬영 내용과 이후 촬영에 대해 물었다.

량신취엔 감독은 재석의 물음에 친절히 답해 줬다. 그리고 재석은 혹시 몰라 촬영장의 여배우들에 관한 알력이 있는지도 물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번 촬영에서는 없었습니다. 다들 임민경 씨와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된 걸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배운다고요?”

“임민경 씨처럼 되고 싶다는 거겠죠.”

“해외 진출 말이군요.”

“뭐, 그렇죠. 그래서 각자 열심히 주어진 대본을 보고 있습니다. 서로 대본을 맞춰 보는 것도 열심히 하고요.”

“제 담당 배우도 함께하나요?”

“물론입니다. 주인공을 빼놓고 대본을 맞춘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죠.”

감독은 아무 문제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민경의 이야기처럼 다들 일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일 촬영 현장 보면 알겠지.’

혹시라도 중국 배우들이 텃세를 부릴까 걱정했지만, 걱정할 일은 아직 없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 촬영 현장은 정말로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였다.

‘민경이 덕분에 정말 일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네.’

한류 스타라는 본받을 존재가 있어서 그런지 다들 적극적인 모습이었고, 사적인 대화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재석의 가슴에 어쩐지 찜찜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이 찜찜함은.’

꼭 이런 찜찜함이 느껴지면 안 좋은 일이 하나씩 터진다.

재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냐, 어디서 이 찜찜함이 느껴지는 거냐.’

그는 조심스럽게 촬영장을 벗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재석은 포켓 스코프를 꺼내 들고 멀리 있는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지금껏 이러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기에 틀림없이 무언가 벌어지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포켓 스코프로는 한계가 있네.’

좀 더 멀리 있는 것들을 보려면 좋은 망원경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중국 뉴스에 한류 스타 임민경이 나오는 촬영 현장 사진이 나왔다.

그 사실을 통역사가 재석에게 알려 주었다.

“파파라치였네.”

재석은 찜찜함의 정체가 뭔지 알게 되자 다행이라 여겼다. 파파라치는 조심하기만 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분간 움직일 때 조심해야겠어.”

재석은 곧바로 이 사실을 민경에게 알려 줬고, 그녀도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뭐, 사진 찍히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혹시 모르니까 단속 좀 해.”

“단속?”

“창문 단속 말이야. 보니까 아주 멀리서 찍은 것 같은데, 화질이 이렇게 선명해. 분명 어디선가 몰래 널 노려보고 있을 거야.”

“아이, 귀찮네.”

민경은 재석의 말을 듣고 곧바로 머물고 있는 숙소의 창문에 커튼을 쳤다.

그러자 저 멀리서 민경을 바라보고 있던 파파라치가 카메라에서 눈을 뗐다.

“에이, 오늘은 땡 쳤네.”

민경의 사생활 중에서 좀 쓸 만한 사진 몇 장 건지면 비싸게 팔아먹을 계획이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그가 얻을 수 있는 민경의 사진은 촬영 현장 사진뿐이었다.

아무리 파파라치라도 이렇게 되면 상대가 알고 있다는 걸 모를 수 없다.

“망했군.”

그 뒤로 민경의 사진이 돌아다니지 않는 걸 확인한 재석은 파파라치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렸지만, 민경은 여전히 커튼을 쉽게 열지 않았다.

그 뒤로도 재석은 민경이 중국 활동을 하면서 사생활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했다.

그리고 며칠 뒤, 파파라치가 사라졌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팬들이 들이닥쳤다. 그것도 민경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었다.

“뭐냐, 이거. 실화냐?”

촬영장 밖에서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팬들을 보고 배우들은 다들 자신의 팬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민경의 등장에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외쳤다.

“민경! 민경!”

민경은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곤 촬영장에 들어갔다. 확실히 글로벌 스타에 대한 인기는 달랐다.

“민경아, 아무래도 파파라치 때문에 이곳에서 촬영하는 게 알려진 모양이다.”

“설마, 겨우 사진 한 장인데.”

“아니지. 이곳은 잘 만들어진 세트장이야. 이런 곳은 다른 사극을 찍을 때도 써먹는 곳이야. 나름 유명한 곳이라는 거지. 연예계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이 장소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어느 사극이건 사극 촬영장은 한정되어 있다. 물론 어떤 역사적 유적지를 촬영지로 삼기도 하지만, 지금 촬영하는 만들어진 세트장은 진짜 몇 곳 없다.

“이제부터 촬영 끝나고 어디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 거다.”

“어휴, 여기도 한국과 다르지 않네요.”

“팬들만 아니라면.”

결국 민경은 그나마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중국에서조차 밖을 돌아다닐 수 없어졌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촬영을 하는 동안에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찾아온 팬들은 거의 대부분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서 기다리는 팬들도 일부 있었다.

끝까지 남아서 기다리는 팬들에게는 민경이 먼저 다가가 악수를 하거나 사인을 해 줬다. 그 뒤에는 쿨한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다들 남자만 남았구나.’

다음 날 촬영지도 이곳이었기에 일부 팬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중엔 어제도 끝까지 남았던 이들도 몇 명 보였다.

‘대충 다섯이군.’

거르고 거른 상태에서 남은 팬이라면 슬슬 사생팬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하는 상태다.

‘한국에서야, 접근이 어려운 집에 살고 있어서 아무리 사생팬이라도 못 다가오지만, 이곳에 숙소는 그렇지가 않은데.’

재석은 그 사람들 얼굴을 기억하고 혹시 몰라 촬영 끝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데 따라오는지 확인까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촬영과 관련된 차량 말고 몇 대의 차량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교통은 이리저리 끼어들고, 추월하고, 사람들이 막 지나가고 장난이 아니다.

결국에는 뒤따라오던 차량이 더 이상 쫓아오질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중국의 사생팬이냐.’

재석은 민경을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스토커에 가까운 사생팬이 있다는 걸 참으로 곤란하게 여겼다.

“오빠, 뭘 그렇게 고민해요?”

“아무래도 여기에 사생팬이 있는 거 같다.”

“네?”

오랜 세월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그런 팬이 한두 명 있긴 했지만, 재석이 미리미리 대처한 덕분에 만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중국에서 빌미가 잡히고 말았다.

“그놈의 파파라치 때문에 이리된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이런 거 처음이라.”

“일단, 대응을 거의 안 하는 게 1차적 방어법이지만, 나중에 경찰에 신고해야 하거나 그럴 수 있어.”

“그럼, 거의 스토커 같은 건가요?”

“좀 다르지만, 스토커만큼 악질적인 면도 있어.”

재석의 말에 민경은 깜짝 놀라면서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겁먹지 마. 중국에 있는 동안 대안을 마련해 볼게. 당장 촬영장에서는 특별히 손을 못 대. 남은 건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의 보안 상태 강화야.”

“숙소는 도어 락 같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지금 당장은 노출되지 않아서 신경 쓸 정돈 아니야. 그래도 일단, 안전을 위해 옮길 수 있도록 해 볼게.”

촬영이 한참 남은 상황에서 숙소의 위치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안전지대는 사라진다.

“오빠, 근데 진짜 사생팬일까요?”

“아직은 몰라, 그럴 수 있다는 거지.”

재석은 느낌이 안 좋았다. 이런 느낌이 들면 신뢰도 100퍼센트 사생팬이다.

‘참 곤란한데. 하필 이럴 때 사생팬이 뭐냐.’

어찌 되었든 오늘 촬영을 시작하자 바쁘게 사람들이 움직였다.

일을 할 때는 다른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재석은 혹시나 해서 촬영장 밖에 그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있네.’

이제 딱 한 명 남았다. 눈빛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걸 보니 뭔가 일을 저질러도 충분히 저지를 만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갔어? 사생팬이 아니었나…….’

그 사람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재석은 일단, 안심이 되었다.

“없네.”

“사생팬 아니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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