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우, 다행이네.”
재석은 그렇게 숙소에 편안한 마음으로 향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재석은 통역사와 같이 밖에 나가 물건을 좀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 재석의 시선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재석이 숙소로 돌아오자 여기까지 쫓아온 남자가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런데 건물 위에 커튼이 쳐진 창문 틈 사이로 포켓 스코프가 밖을 보고 있었다.
다음 날, 민경의 촬영 장소는 다른 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촬영장이라는 게 어차피 몇 곳 정해져 있어 팬들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날 촬영을 끝낸 민경은 다시 숙소로 돌아갔고, 그 모습을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숙소에 불이 꺼지고, 그 남자는 혼자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숙소 한쪽 벽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지 성인 남자가 잡고 올라가는 데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스르륵!
부엌으로 연결된 창문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후우.”
얕은 숨소리만 내고 있을 때 갑자기 시커먼 뭔가가 남자를 후려쳤다.
컥!
두들겨 맞은 남자는 반격을 해 보려 했지만, 때리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다.
몽둥이질에 신나게 두들겨 맞다가 그대로 뻗어 버렸다.
“으으으…….”
침입자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을 때, 재석이 그 남자의 손발을 줄로 꽁꽁 묶어 버렸다.
곧바로 통역관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도착한 경찰은 이 상황을 보고 크게 놀랐다. 범인으로 보이는 인간이 꼼짝도 못 하고 묶여 있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민경을 보고 놀란 거다.
“와…….”
세상에서 미인을 처음 본 표정이었다.
통역사는 남자가 민경을 해하려 했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공안이 어떻게 알았냐며 묻자, 재석은 통역사를 통해 그 남자를 며칠간 지켜봤고, 그가 숙소의 위치를 알아내자 곧바로 침입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그 늦은 시각에 경찰서로 가서 바로 경위를 밝혔고, 감독도 밤중에 호출을 받아 달려왔다.
한류 스타 임민경이 이렇게 경찰서에 와서 진술을 해야 하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다.
재석은 진술이 끝나고 나서 곧바로 중국 지사장에게 연락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그는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사를 퍼트리세요. 사생팬의 위험성을 알려야 합니다. 중국에서 한류 스타가 위협을 받았다는 식으로 갈 수 있게요.”
(흐음, 하지만, 그게 쉬울지…….)
“일단, 시도는 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아침에 제가 알고 있는 기자들을 불러서 한번 말해 보죠.)재석은 의도적으로 내용을 중국에 퍼트렸다. 흔히 말하는 여론 몰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동시에 이런 행동을 한 범인이 여론의 영향에서 묻히는 결과를 막기 위해서다.
재석은 중국과 한국 언론사에 민경의 사생팬이 저지른 만행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불법으로 숙소에 침입하고 민경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나라의 팬들은 범인에게 분노를 쏟아 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경에 대한 뉴스는 일본에도 알려졌다.
일본 팬들도 민경을 걱정하고 범인의 처벌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네티즌 중에는 범인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한중일 삼국의 뉴스가 스타 한 사람의 뉴스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중국 당국에서 한류 스타의 파워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되었다.
제작사는 곧바로 민경의 숙소를 옮기기 위해 안전한 곳을 물색했고, 당장은 경호 인력을 배치하는 등 평범한 팬들이라도 접근 불가능할 정도로 경호를 철저히 했다.
다행히도 민경의 팬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촬영장에 직접 찾아오던 팬들도 민경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걱정하며 촬영장 찾아오기를 조심스러워하게 된 것이다.
“오빠, 조금 불편하네요.”
“경호원들?”
“예.”
“걱정 마. 중국에 있을 때만 이럴 거니까.”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될까요?”
“왜?”
“이거 눈앞에 두고 독수공방하는 거잖아요.”
안전한 것은 좋았지만 재석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민경이었다.
민경도 한류 스타이기 이전에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기고 싶은 여인인데 경호원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 마. 새로 옮긴 숙소까지는 안 와.”
“진짜요?”
“응,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아, 다행이다. 진짜 독수공방할 뻔했네.”
“크크크, 통역사 근처에 있어.”
민경은 그 말에 잠시 시선을 통역사가 있는 쪽으로 두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민경은 숙소를 옮겼다.
다행히도 새로 옮긴 숙소는 안전이 확실히 보장된 곳이었다.
걱정거리가 사라지자, 촬영장은 원활하게 흘러갔고 어느새 촬영 종료 시점이 찾아왔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다들 가볍게 술 한잔을 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민경은 며칠 휴식 시간을 가졌다.
반면 재석은 회사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하는 데 바빴다.
“흐음, 저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었네요.”
“걱정 마라. 매니지먼트 부서는 내가 다 알아서 한다. 민경 씨나 잘 챙겨라. 우리 회사 최고 수입원 아니냐.”
매달 민경이 벌어들이는 돈이 수억 원에 달한다.
물론 정산하고 남은 금액이 이 정도다.
최근에는 다른 배우들도 슬슬 이름을 알리면서 회사 수익에 기여를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회사 내의 수익은 민경이 1위였다.
“반보영은 어떤가요?”
“가수 활동은 내년까지만 할까 한다. 일본 지사에서도 그 정도가 딱 좋겠다고 하더라. 일본 활동은 한국에서 작품 하나 찍고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한국에서 찍은 작품이 일본에도 풀리면 상당한 수익이 예상되는 상황이지.”
“그다음은요?”
차례차례 소속 배우들의 예상 수익과 작품 활동, 광고 등을 확인했고 일본에서 들어오는 수익 등 회사 매출 상황을 파악했다.
“아직 중국 쪽 매출이 지지부진하지만, 이쪽에 진출하려는 배우들이 하나둘이 아니야.”
“그럼 중국에서도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여 보죠. 그렇게 한다면 회사 수익도 더 많아질 겁니다.”
“그건 그렇겠지만, 일본과는 상황이 또 좀 달라. 중국 진출을 원하는 배우들은 우리 말고 다른 회사와 계약하고 싶어 해. 쉽지 않아.”
일본과 상황이 달랐다.
한류가 불기 전에 재석의 회사가 일본에 자리를 잡았다면, 중국은 불고 난 뒤에 진입한 것이기에 이미 다른 회사들이 자리를 잡은 상황이다.
재석이 일본에 자리 잡은 것은 한류 열풍이 불기 전이었다. 즉, 한발 빠르게 선두 주자로서 활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 재석은 후발 주자였다.
지금 중국에는 재석의 회사보다 빠르게 진출한 회사들도 있었고, 벌써부터 자리를 잡은 회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 중국 쪽은 소속 배우들로만 해야겠네요.”
“그래야겠지. 그래도 한 번에 벌어들이는 이익은 적지 않을 거야. 그쪽 경제 성장이 어마어마해서 출연료 상승 폭이 아주 그래프를 쭉쭉 뚫고 있어.”
재석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한 회 출연에 억 단위 출연료가 오가는 건 드문 일도 아니었다. 콘서트 같은 것도 좌석 숫자가 10만 단위가 될 때도 있다.
인구수가 다르니 벌어들이는 수익의 규모가 달랐다.
‘하지만, 중국 드라마 시장은 그놈의 공산당 검열 때문에 지지부진하지.’
물론 그중에서도 해외에 팔릴 만한 시대극 혹은 무협 드라마가 있지만 손에 꼽는 정도다.
“재석아, 근데 중국 드라마는 언제 방영되는 거냐?”
“3월쯤 아니면 4월쯤 될 겁니다. 정확한 날짜는 저도 잘 몰라요. 그쪽 검열을 통과해야 방영할 수 있으니까요.”
“그놈의 공산당 검열이 문제구나.”
“그래도 딱히 문제될 건 없어 보이니까 잘될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검열에 통과해 방영 일자를 잡았다며 연락이 온 것이다.
그 다음 날 회사 계좌로 돈이 입금되었다.
회사는 곧바로 정산에 들어갔다.
돈 들어오자마자 민경은 재석에게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힘들게 촬영을 했고 중간에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때문에 민경은 휴식을 원했다.
재석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준비는 민경이 했다. 바쁜 일에 쫓기는 재석은 그 일정을 짤 여력이 없었다.
재석은 민경이 정해 준 곳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태국이었다. 전에 사무이 섬에서는 휴양을 했다면, 이곳에서는 철저하게 관광을 하러 돌아다녔다.
태국 관광은 정말 쉽지 않았다.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관광 천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민경을 알아보는 팬들은 없었다.
둘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 꼭 붙잡고 돌아다녔다. 좀 한적한 곳에서는 여유가 있었지만, 꼭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민경은 재석과 돌아다니면서 그간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민경아,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 겁 안 나?”
“소문나라고 해요. 어차피 상관없어요.”
민경은 이제 상관없어졌다.
처음 데뷔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인기 절정이다.
거기서 내려온다 한들 연기자 생활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벌어 놓을 만큼 벌어 놨고 수익 잘 나오는 건물 몇 개 있었다.
그 유명한 건물주님이 되신 몸이라 일평생 돈 없어 고생할 일 없어진 것이다.
“그래, 이만큼 배우로 살았으면 상관없지.”
재석도 똑같은 마음이 되었다. 들키면 그냥 그대로 가는 거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재석은 이범진 감독의 영화 준비 상태를 파악했다.
대부분의 준비가 끝나 가는 상황이었다.
배우들 캐스팅 역시 거의 끝나 가는데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다.
“흐음.”
“이범진 감독님, 혼자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배우 두 명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게 좀 걸리네요.”
“어떤 배우 말이죠?”
“한 명은 원진 씨와 짝을 이룰 아역 배우고, 다른 한 명은 범죄 조직의 킬러입니다.”
“킬러는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의 사람을 원하시나요?”
“뭐랄까, 이국적인 이미지의 킬러랄까요? 물론 동양인이면 좋은데, 동양인이면서도 이국적인…… 뭐, 그런 느낌의 배우를 원합니다.”
재석은 감독이 어떤 배우를 원하는지 이해를 했다.
그러지 않아도 정말 외국 배우를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중이다.
“감독님, 한국에서 이국적인 외모의 외국 킬러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외국 배우를 써 보는 건 어떻습니까?”
“외국 배우요?”
“예,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면 원하는 이미지의 배우가 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남아나 인도만 봐도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한국인과는 많은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흐음.”
이범진 감독은 재석의 말에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한국 배우에 목맬 필요가 없지.’
이범진 감독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독님, 어딜 가시려고요?”
“동남아 출신 배우들 자료부터 좀 찾아볼까 합니다.”
“그러시죠.”
이범진 감독은 아시아 배우들의 자료를 살펴봤다.
외국 배우들을 살피면서도 아역 배우 찾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역 배우는 영화 아재에서 원진 못지않은 핵심이니, 연기력을 갖춘 아역을 필히 찾아야 했다.
며칠 뒤 감독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재석을 찾아왔다.
“이 사람, 이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독님이 찾던 얼굴이면 바로 연락 한번 해 보시죠. 그리고 해외 출장 역시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거기 가서 놀진 마시고요.”
“하하하, 농담도 과하십니다. 영화가 끝나면 모를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감독은 다른 일을 모두 제쳐 두고 그 배우에 대해 조사했다.
어떤 나라 사람인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찾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원하는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내일 바로 태국으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전 아역 배우를 찾고 있겠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죄송스럽네요.”
“아닙니다. 영화가 성공하려면 제작자도 발로 뛰어야죠.”
“하하하, 그럼 최종 몇 명 추려 놓는 것 정도만 해 주십시오. 뭐, 그게 50명이든 10명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제가 알아서 추려 놓죠.”
이범진 감독은 다음 날 태국으로 갈 준비를 하러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재석은 감독이 간 사이에 단 한 곳에 영화 시나리오를 보냈다.
회귀 전의 아재와 다르지 않은 아역을 선택했다.
아역 중에서 그만한 인상과 연기력을 가진 배우는 손에 꼽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벌써부터 소속사가 있네. 이 아이도 크면 괜찮은 배우가 되는데 말이야.”
재석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역 배우는 계약 기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계약 기간을 다 털어 내기 전에는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 좋은 배우 찾는 것도 힘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