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25화 (125/152)

이제는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위해 견적을 뽑았다.

집 짓는 데만 해도 상당한 돈이 들어갔다.

재석은 주택 단지에 나온 땅을 매입해 집을 짓기로 했다.

공사가 시작되자 민경은 하루가 멀다 하며 현장을 찾아가 어떻게 공사가 진행되는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재석은 민경이 구상한 집을 보면서 든 이미지는 하나였다.

‘남대문?’

거의 성을 짓는 느낌으로 집을 만들고 있었다.

공사 단계에서만 봐도 왠지 모르게 웅장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굉장한데.”

재석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외부 시선이 집 안쪽으로 들어오는 걸 철저히 차단하려는 민경의 의도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집 대문은 현관 쪽이 아니라, 현관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어서 대문이 열려도 집 안쪽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다.

물론 이런 부분만 고려하지는 않았다.

햇빛이 집 안쪽으로 잘 들어올 수 있게 구조를 짰고, 통풍은 물론 난방까지 전체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신경 썼다.

그래서 그런지 집 내부에 들어선 재석은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 건축 사무소 사람들 고생 좀 했겠네.”

“오빠, 내 고생은?”

“너도 고생했지.”

민경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민경은 자신의 구상에 딱 맞는 집을 얻을 수 있었고, 건축 사무소는 한류 스타 임민경의 집을 지었다는 타이틀을 얻었다.

앞으로 건축 사무소는 밀려드는 일감으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이제 일에 열중해야지.”

“응, 오빠. 오빠는 일 열심히 해. 나는 애기들 열심히 키울게.”

푸훗!

애기‘들’이라는 민경의 말에 재석은 먹던 물을 뿜었다.

사실 민경에게는 정확한 가족계획 따윈 없었다.

생기면 낳는 거고 돈 없으면 일해서 돈 벌 생각이다.

‘무, 무섭다.’

어떤 의미로 상당히 무서운 발언이었다.

재석은 송근석의 일본 음반 성적에 미소를 지었다.

오리콘 차트에서 꽤나 좋은 성적을 보였다. 반보영 때와 비교해 차트 순위는 낮았지만, 치고 올라가는 속도는 그에 못지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민철의 보고가 들어왔다. 송근석이 일본 콘서트 일정을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일본 팬들이 엄청나게 불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팬들은 ‘근짱’이라며 송근석을 친근하게 부르고 있었다.

송근석은 일본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팬들에게 서툰 일본어로 감사함을 전했지만, 부족하다 느꼈는지 일본어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반보영을 가르쳤던 일본어 선생님을 다시 송근석에게 붙여 줬다.

회화 중심의 일본어를 가르쳤고, 일본에서 연기를 할 수 있게 일본 연기 선생님도 붙여 줬다.

송근석은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먹혀들었고, 수만의 팬들을 양성했다.

남자 연예인의 여성 팬덤은 여자 연예인의 남성 팬덤과 비교하기 힘든 수준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 팬은 한국 본사로, 일본 팬은 일본 지사로 선물을 보내왔다.

송근석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돈 많은 부자 딸이 송근석을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며 연락을 하는 바람에 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송근석은 의외로 여유롭게 대처했다.

“만나고 싶다는 팬분들과 약속 좀 잡아 주세요. 얼굴 한번 보고, 식사 한 끼 하는 건 어렵지 않죠.”

송근석은 만나고 싶다는 팬들이 있으면 일대일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역시 팬 서비스가 좋은 송근석이었다.

물론 이성적인 만남은 아니었다. 팬과 스타로서 식사 한 끼 같이하는 정도였다.

물론 이것도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송근석이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감내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민철은 송근석의 의사를 존중했다. 하지만 송근석이 누굴 만났는지 누구도 알 수 없게 철저하게 보안에 신경 썼다.

그렇게 만난 팬들은 다시 보고 싶다며 두 번째 만남을 요청했지만, 송근석은 그녀들을 다시 만나진 않았다.

“근석아, 그중에서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 봐.”

“힘들어요. 잘못하면 소문날 수도 있고.”

“걱정 마라. 내가 다 커버해 줄게.”

최민철은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에 있어서 굉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간 재석에게 수많은 노하우를 배워 둔 덕분이었다.

송근석은 민철의 말에 솔깃했다. 그러지 않아도 만났던 팬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진짜죠?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에요.”

“물론이지. 대신 정식으로 만나게 되면 나한테 꼭 말해 줘야 한다. 꼭 팬이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만나는 사람 생기면 꼭. 몰래 사귀거나 하면 안 돼.”

“하하, 당연하죠. 그런데 사실 팬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팬과 스타라는 입장상 서로 좋아도 만나는 게 쉽겠어요?”

“모르지. 서로 마음이 끌리면 결국 만나게 되나 보더라. 선배도 그랬으니까.”

“선배라뇨?”

“사장님 말이야. 사모님이랑 결혼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게 일에 철저한 사람이 담당하던 스타와 결혼하다니. 매니저와 스타의 관계로만 봐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지.”

“사장님이 민경 선배를 정말 많이 좋아했나 봐요.”

“반대일걸? 사모님 이야기 들어 보면 아닌 것 같던데.”

“정말요?”

송근석은 민철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민경 선배가 사장님을 그렇게나 좋아했다고요?”

“내가 듣기론 그랬어. 사모님이 사장님을 엄청 좋아해서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을 그렇게나 했다고. 뭐, 사모님이 사장님 챙겨 주려고 한 말일 수도 있고.”

“와, 서프라이즈하네요.”

“어찌 됐든 이 말은 여기까지 하고. 사장님이 내가 너 음반 내자고 할 때 뭐라 한 줄 아냐?”

“설마 반대했어요?”

“아니, 신나게 해 보란다. 지금이야 오리콘 차트에도 올라가고 반응도 좋지만,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살 떨렸는지 아냐.”

“그래도 사장님이 형 믿고 일 추진하라 했네요.”

“고마운 일이지. 너도 잘됐고. 뭐, 너무 잘돼서 내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게 됐지만.”

“형, 그렇게 빡빡하게 일하다가 연애할 수 있겠어요?”

“몰라, 좋은 여자 어디 없나.”

“제가 아는 사람 소개해 드려요?”

송근석의 말에 민철은 귀가 솔깃했다.

“예쁘냐?”

“형, 저 송근석이에요, 송근석. 이상한 여자 안 만나고, 안 예쁜 여자 붙지도 않아요.”

“오, 자신 있는 모양이구나.”

“대신 이번 한 번뿐이에요. 다른 애들 이미 다 애인 있어서 딱 한 명 있는 거예요.”

“알았다. 내가 다른 말 안 하마. 잘 부탁한다.”

“걱정 말아요, 형. 제가 결혼시켜 드릴게요.”

송근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큼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줄 마음이었다.

그 뒤 송근석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본 콘서트를 준비했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정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송근석은 한 사람을 몇 차례 만나며 알아 가는 시간을 가졌다.

“흐음. 민철아, 관리 잘해라. 소문 안 나게.”

“걱정 마십시오, 선배님. 철저히 하겠습니다.”

재석은 회사 소속 연기자들의 연애에 관해서는 관대했다. 누굴 만나든 상관없었다. 철저히 보안을 지킬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 누구인지 신원 확실하지?”

“예, 병원장 딸이랍니다.”

“이상한 사람 안 꼬여서 다행이네. 앞으로도 신원 불확실하거나 돈 빼먹으려고 덤벼드는 인간들 없는지 항상 조심해. 연예인의 연애는 진짜 어려워. 그래서 매니저가 항상 주시해야 하고.”

재석은 민철에게 어떤 불안 요소가 있는지 알려 줬다.

보안을 확실히 하는 것도 매니저가 할 일이기도 했다.

송근석의 일을 일단락 짓고, 재석은 회의실의 다른 임직원들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쪽 배우가 출연했던 드라마, 중국 쪽에 방영됐다는데 반응은 어때요?”

“일단, 미남이네가 방영됐는데 시청률은 1퍼센트 넘었어. 이대로 가면 1.5퍼센트 정도는 무난하지 않을까 싶은데.”

주명진이 서류를 뒤적거리고는 대답했다.

“그럼 대충 중국 지사에서 반응이 오겠는데요.”

“반응만 오면 바로 진출이지.”

“배우들 외국어 훈련 상태는요?”

“항상 열심히 시키고 있지.”

해외에 진출하는 배우들은 점점 늘어 갔다.

배우는 물론이고 직원들도 영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밖에 나가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소속 배우 중에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게 영어고 그다음으로 일본어와 중국어다.

“문자영도 이번에 중국에 보내 볼까 하는데.”

“일단, 진출하면 확실히 뽕을 뽑으세요. 인지도 올리는 것도 확실히 하고요.”

“그거야, 문제없지.”

주명진의 말에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진출이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끌어올 수 있는지,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미국 쪽에 작게 지사를 좀 낼까 합니다.”

“미국?”

재석이 갑자기 미국 이야기를 꺼내 들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할리우드 진출시키게?”

“기회가 된다면요.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압니다. 그래도 미리 그쪽에 연결 고리들을 만들려고요.”

“그렇게 되면 누군가 미국으로 가야 하는데.”

그 말에 재석은 주명진을 바라보았다.

주명진은 재석의 눈빛을 보자마자 고개를 흔들었다.

“난 안 돼. 가정 있는 사람이 어떻게 홀로 미국에 가.”

“큰딸이 영어 잘한다지 않았어요? 이번에 SAT 한번 보라고 해요. 합격하면 가족 전체 미국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집도 얻어 드리죠. LA에 한인 타운에 살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허허, 이런…….”

마침 주명진의 큰딸이 고3이었다.

재석은 회귀 전 기억으로 주명진의 딸이 공부를 잘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딸뿐만 아니라 그 밑에 아들도 훗날 유학을 간다.

“일 때문에 가는 거, 회사에서 전부 지원해 드릴 테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모로서 자식 미국 유학을 보내는 것은 나름 꿈같은 이야기였다.

“하아, 깊이 고민해 보마.”

회사에서 모든 지원을 해 준다고 하니 따로 집 못 얻을 걱정은 없었다.

재석이 이렇게까지 해서 주명진을 미국으로 보내려는 이유는 한 여배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어중간한 인기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 진출해서 오히려 더 크게 성공하는 배우였다.

‘이맘때쯤 소속사를 찾으러 다니고 있을 텐데.’

회귀 전에 그녀가 어떤 소속사와 계약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계약할 수만 있다면, 미리 준비를 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녀를 밀어줄 생각이었다.

‘지금쯤 어디 있을까?’

재석은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아, 맞아. 드라마 캐스팅 관련 내용을 확인하면 되잖아.’

그녀가 이맘때 출연하는 드라마는 기억에 있었다.

소속사를 구하는 것이 그 오디션에 합격을 하고도 꽤 후의 일이었다.

오디션에 합격했다면 바로 접근하면 되었고, 아직 오디션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때 채 가면 되겠네.’

재석은 회의가 끝나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방송국에 갑니다.”

재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방송국으로 가서 드라마 편성 스케줄을 봤다. 그리고 담당 피디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이구, 이거 유명하신 분이 여기까진 어인 행차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조연들 배역이 어디까지 준비됐는지 해서요.”

“허허, 어디 신인 한번 넣고 싶어서 찾아왔구먼. 하지만, 이번에는 어림없습니다. 철저하게 오디션 봐서 뽑을 겁니다.”

담당 피디는 어딘지 고까운 듯 말했다.

그 말에 재석은 웃음이 나왔다.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오디션 보는 배우들 중 괜찮은 배우가 없나 해서 온 겁니다.”

“하이구야, 그럼 신인 밀어 넣는 게 아니라 신인 찾으러 왔어?”

피디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면서도 재석에게 캐스팅이 얼마나 됐는지 보여 줬다.

“날짜까지 알려 드리리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허이고,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늦지 말고 와요.”

피디는 비꼬는 투로 말했지만, 재석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좋은 정보를 주셨는데, 저랑 식사나 하시죠.”

“아니, 뭐. 내가 좋게 말한 것도 아닌데…….”

피디는 재석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재석의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정보였다. 찾고 있던 배우가 아직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자자, 서로서로 잘 지내야죠.”

재석은 억지로 피디를 끌고 식사를 함께했다.

피디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재석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말투가 좀 그랬는데, 미안합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신인을 방송사에 찾으러 갔으니 제가 잘못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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