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27화 (127/152)

민경의 개인사부터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방송 진출이 가능한지까지 아주 많은 것을 물어보고 있다.

“대답하기 어려운 걸 물어보고 있네.”

“그래서 나도 거기서 이야기했어. 오디션은 당당하게 소속사 찾아가는 게 정답이라고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들어가 봐야. 의미 없다고.”

솔직히 의미가 없다.

연기하겠다고 수도 없는 이들이 문을 두드리지만 오디션도 제대로 통과 못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근데, 솔직히 좀 안쓰럽긴 해.”

민경은 아쉬운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방송은 자본주의다. 돈 안 되는 연기자는 언제나 아웃된다.

“어쩌겠어. 방송은 냉정한 세상이야. 돈 안 되는 연기자는 출연하기도 힘들어.”

“대한민국이 중국처럼 큰 땅과 사람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걱정은 덜할 텐데.”

“아니, 똑같아. 다르지 않아. 그리고 그쪽은 쪽수가 많은 만큼 뜨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 이쪽이나 저쪽이나 한번 떴다고 끝이 아닌 것도 비슷하고.”

“그건…… 몰랐네요.”

*  * *

재석은 영화 촬영장에 찾아갔다.

강형진은 재석이 찾아오자 반갑게 맞이해 줬다.

“사장님!”

“감독님은 아주 촬영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좋다마다요.”

그럴 거다. 저쪽에 모여 있는 젊은 여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힘이 날거다. 아주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들이니까.

저 중에는 미래에까지 활약하는 배우도 있지만, 끝까지 못가는 배우들도 있다.

재석의 시선이 다른 곳에 있는 걸 발견한 감독이 한마디 했다.

“사장님은 저보다 저쪽에 있는 배우들이 더 관심이 가는 모양입니다. 섭섭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쪽에 쓸 만한 인재가 보여서요.”

“아쉽게도 다들 소속사 있습니다. 사장님 마음 모르는 거 아니지만, 이번 기회는 아니네요.”

“그렇다면 아쉽네요.”

재석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번 다가가서 안면이라도 익히고자 했다.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 안면은 트고 지내야죠.”

“아이고, 사장님. 대단하십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배우들인데.”

“그러니 더더욱 가서 얼굴을 봐야죠. 나중을 위해서라도.”

재석이 고집대로 젊은 배우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배우들은 순간 멍해졌다. 그러자 한 명이 외쳤다.

“임민경 남편!”

“어!”

“어어어!”

다들 놀라면서 자리에 일어섰는데, ‘임민경 남편’이라고 소리쳤던 여배우는 순간 입을 가렸다.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실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이 자리에 있는 배우들은 대다수가 신인이었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반가워요. 그리고 이 영화 제작자로서 출연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네요..”

“아, 아닙니다. 저희들이 영광이죠. 이렇게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에요.”

“하하하, 감사는 제가 해야죠. 영화는 잘될 거고, 잘되면 여러분들은 이후에 배우로서 활동을 하게 되겠죠. 그러니 미래의 잘나가실 배우들에게 제가 잘 보여야 하죠.”

재석이 치켜세워 주니까 표정들이 다들 환상 속을 거닐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겨우 한 작품으로 그렇게 되겠어요.”

냉정하게 찬물을 뿌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강소정, 이 영화에서 극을 이끄는 주연이었다.

다들 주연이지만, 그 안에서 비중의 차이가 조금은 있었다.

“에휴, 꿈도 못 꾸네.”

그중에 한 사람은 꿈도 못 꾸냐며 핀잔을 줬다.

“이거, 제가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은데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요.”

재석은 곧바로 감독에게 다가가더니 뭔가를 물어보고 다시 여배우들에게 돌아왔다.

“여러분들, 오늘 촬영은 오전까지만 하고 종료하기로 이야기 마쳤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안 좋은 환상도 심어 준 것 같은데 사죄도 할 겸. 저랑 같이 식사나 하시죠. 소고기 어떻습니까?”

여배우들의 표정이 순간 밝아지면서 다들 좋아했다. 물론 매니저들도 다 같이 사주기로 했다.

그렇게 거하게 대접을 하자 재석은 계산서를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런…… 젊은 애들 위장은 돌도 소화시킨다더니 부드러운 소고기는 아주 쑥쑥 들어가네.’

먹은 고기값이 200만 원이 넘어갔다.

매니저들은 정말 작정하고 먹어 치웠고 몸 관리해야 하는 배우들도 미친 듯이 먹은 거다.

그래도 영화가 잘 나오기만 하면 재석은 그걸로 충분했다.

재석이 집으로 돌아와서 민경에게 이 말을 했더니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그것들 미친 거 아냐. 몸매 관리해야 하는 배우가 소고기를 200만 원어치나 퍼먹어? 내 이것들을 당장 쫓아가서…….”

재석은 화를 내는 민경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 내일 나 연극 연습 안 가는 한이 있어도 그것들 버르장머리를 고쳐서…….”

“흥분하지 마, 그 영화 우리한테 수백억짜리야.”

“무슨 소리야?”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건데, 지금까지 한 촬영분 확인했거든. 이거 떼돈 벌 영화야. 배우에게 소고기 좀 사 주면 어때, 순이익이 100억은 나올 거야.”

“그 정도야?”

“민경아, 나 못 믿어?”

“믿지.”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

“뭐, 소고기 좀 사 주고 그 정도 돈 버는 거라면 전혀 아까울 게 없네.”

민경은 다시 조용해지면서 재석의 품에 쏙 안겼다.

“오빠, 우리 조금 뜨거운 시간을 가질까?”

“크흠.”

“꼭 영감님처럼 헛기침하기는.”

민경은 거침없이 옷을 벗어던졌다. 그녀는 결혼하더니 요부가 됐다.

재석은 회사에서 유진석의 면회 요청을 받게 되었다.

“무슨 일이지?”

“그게 다른 게 아니라 방송 섭외 때문에요.”

“섭외?”

재석은 방송사 피디나 작가가 아닌 유진석을 통해 섭외 요청이 왔다는 게 신기했다.

“뭐, 국민MC가 요청을 할 정도라니 대단히 중요한 내용인 것 같은데 말씀하세요.”

회사에서 유일한 예능인이다. 이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조건도 최고 수준으로 해 줬다. 일거리야, 원채 유명해서 따로 발로 뛰지 않아도 연락이 폭주하는 사람이라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피디님이 꼭 제가 소속되어 있는 배우들 섭외하고 싶다고 해서요. 그것도 게스트 전원을 급 있는 사람으로 채우길 원하네요.”

“그렇게 하면 출연료가 답이 안 나오는데 가능하시겠어요?”

“돈 문제는 예능국장님과 직접 만나 보셔야 할 겁니다.”

“국장님까지?”

재석은 예능국장까지 거론되는 수준이라는 말에 방송사에서 작정하고 특집을 준비하려는 목적임을 알았다.

“한 번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도 유진석씨가 직접 찾아와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줘서 감사합니다.”

“뭘요. 덕분에 전 소속사 문제도 쉽게 풀렸어요. 저랑 같이 나온 사람들도 전부 채용해 주셨으니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거야, 회사에 편한 마음으로 오실 수 있도록,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걸 해 줬을 뿐입니다. 국장님이 절 거론한 걸 보면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은데, 내일 찾아가서 결론을 짓고 오겠습니다.”

재석은 유진석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 바로 다음날 방송국을 찾아가 국장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이렇게 저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감사까지야. 자리에 앉으시죠.”

재석과 국장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안 그래도 요즘 피디가 특집을 꼭 한 번 내보내서 시청률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거기에 제이이브에 소속된 배우들을 섭외했으면 합니다.”

“저희들은 불러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데 그쪽 배우들 몸값이 워낙 비싸서 쉽지가 않습니다. 제이이브 대표님을 직접 만나 협상하고 싶습니다.”

“흐음, 그러셨군요.”

출연료 싼 인간이 이제는 몇 안 남았다. 스타가 아닌 사람 찾기가 어려운 회사가 제이이브다.

“일단 누구를 원하십니까? 그걸 먼저 알아야 저희도 조정이 가능합니다.”

“대표님을 포함한 3명이 더 필요합니다. 임민경, 반보영, 송근석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들이다.

“저도요?”

“그 유명한 임민경 씨의 남편분 아니십니까. 부부가 함께 나오면 모양새가 좋죠.”

“하지만, 전 이제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차라리 박신연은 어떻습니까?”

“그럼, 출연료가 너무 비쌉니다. 한 사람이라도 싸게 하려고 대표님 넣은 거죠. 몸값 제일 싸잖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재석이 유명한 건 연예계 안에서고, 일반인에게 재석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제가 들어가서 시청률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걸로 관심이 높아지진 않을 겁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특집 제목이 사장님과 함께입니다. 임민경 씨와 결혼 스토리, 배우들 영입할 때 에피소드를 한 번에 풀면 2회 분은 무조건 나올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2회 분량을 뽑겠다는 건 아주 작정을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박신연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그도 같이 출연시키죠. 5명이면 그 안에서 많은 스토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국장이 단단히 각오를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재석이 어느 정도 맞춰 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내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국장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아주 강력하게 준비하는 것 같으니 제가 거부하기 힘들겠네요.”

“하하하, 제 뜻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출연료를 20퍼센트 줄여서 받겠습니다. 전 무보수로 하고요.”

돈을 깎자는 재석의 말에 국장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하하, 그러죠. 아주 통이 크시군요. 스케줄만 맞는다면 바로 진행합시다.”

“스케줄 맞춰서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셨으니 식사라도 함께 하면서 이야기라도 나누죠.”

“네.”

재석은 국장의 말대로 전화상으로 지시를 내리고 일을 성사시켰다. 정확히는 유진석의 면을 세워준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스케줄을 맞춰 같은 소속사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어머! 사장님!”

“사장님.”

“이야, 이렇게 같이 모이는 건 오랜만인데.”

같은 배우라도 서로 얼굴 보기가 어려울 만큼 각자 스케줄이 바빴다.

“다들 해외 스케줄 정리는 다했지?”

“어휴, 그것 때문에 며칠간 잠도 몇 시간 못 잤어요.”

일정 맞추는 것도 정말 큰일이었다.

“잠은 미안해.”

“괜찮아요.”

그러다가 여자들은 어느새 한곳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옆에 송근석과 재석만 남았다.

“사장님, 근데 전 거기서 뭐라 이야기해야 할지…….”

송근석은 의외로 예능에 약했다. 스스로도 입이 방정인건 인식하고 있었다. 실수가 두려워 방송 중엔 말을 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걱정 마라. 그냥 민철이 이야기해. 이번 부제가 사장님과 함께다. 민철이는 내가 데려왔어. 어차피 나랑 연결되는 사람이야.”

틀린 말이 아니다. 한 다리 건널 뿐이지만.

“민철아, 이리 와서 앉아 봐.”

“예.”

정말 큰 대기실에 매니저 숫자만 넷이다. 이렇게 회사를 키운 재석은 눈앞에 있는 이들을 보며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열심히 달렸는데 더 달려야 하네.”

정말 튼튼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연예계를 넘어 아시아를 주름잡는 회사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연예인 관리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움직이는 연예인들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해외 유명 연예인들의 내한을 늘리기 위해서다.

일단, 한류를 이용하려는 배우는 널려 있다. 별개로 중국은 자국 내에서도 충분히 돈벌이를 할 수 있으니 관심이 없지만, 그 외 국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 많다.

‘친한파 배우들은 아시아에 널리고 널렸지.’

한류에 영향을 받아 친한파로 전향한 이들도 많다.

재석이 홀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배우들과 매니저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피디가 대기실로 직접 찾아와 이야기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곧바로 스튜디오로 우르르 몰려가는 와중에 재석이 가장 앞에 섰다.

마치 휘하의 장수들을 이끄는 삼국지의 조조처럼 말이다.

게스트가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유진석이 가장 먼저 일어나 재석을 맞이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유진석 씨,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걱정 마십시오. 제가 깔끔하게 일처리 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다들 안심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유진석을 시작 멘트를 내뱉었다.

“목요일 밤. 행복한 웃음 투게더!”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패널과 잠깐의 투닥거림이 있었고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하는 순서가 찾아왔다.

“아, 이분 정말 모시기 힘들었습니다. 바쁘신 분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도 정말 일이었죠.”

유진석이 푸념을 늘어놓자, 그 옆에 있는 박명진이 멘트를 툭 내뱉었다.

“어차피 섭외 작가들이 하잖아.”

“하하하!”

다들 리액션을 취하며 순간 유진석을 머쓱하게 만들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웃음 포인트였다.

유진석은 MC계의 보물이다. 이런 사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게 재석에게는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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