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28화 (128/152)

‘이전 소속사에서 욕심을 부려 불화를 일으키기 전까지 유진석이 소속사를 바꿀 마음 따위가 있었을까. 당연히 없었을 거야.’

이번 예능 회차에 유진석의 이야기도 해야 할 거다. 같은 회사 식구니까 말이다.

“근데 어디서 고소한 냄새 안 납니까?”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멘트지만, 신혼부부에게는 통하는 말이었다.

“전재석 씨, 임민경 씨! 그리고 반보영, 송근석, 박신연!”

재석이 숨도 안 쉬고 단숨에 게스트를 소개하며 진행했다.

“이야, 오늘 등장한 사람들 너무 멋지지 않아요?”

“눈이 너무 부셔요.”

“여러분, 오늘은 바로 사장님과 함께 특집입니다!”

특집이라고 했지만, 재석을 중심으로 이끌고 있는 사단을 보여 주는 거다.

사장님이라는 말에 다들 재석에게 시선이 모아지면서 재석이 조금 낯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하하하, 얼굴이 빨개졌어.”

“이런 예능에는 좀 적응이 안 되네요…….”

이전에도 예능에 나갔다가 얼굴 빨개진 일이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에 있는 민경이 때문에 말이다.

“전에 나오셨을 때 앵글 밖에 있었는데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했습니다. 저기 있네요. 그때 제 발목 붙잡은 작가분.”

갑자기 당시 막내 작가였던 사람에게 모든 시선이 갔다. 하지만 이제는 관록이 묻어 나오는 메인 작가가 되었다.

“그때 발목 잡으라고 지시 내렸던 피디님도 계시고.”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피디의 얼굴을 찍자,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렸다.

“여기 원한 있는 사람이 많이 있네요.”

재석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긴장은커녕 웃기 바빴다.

남들의 민망함이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웃음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엿한 회사 사장님으로 돌아오셔서 감회가 남다르시겠네요.”

“뭐, 남다를 게 있나요. 그냥 제 밑에 이런 연예인들이 생긴 거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어요.”

“아이고, 많이 달라졌어요. 회사 소속 배우들이 해외에 진출하죠. 해외에 팬이 얼마나 많으면 여기 있는 사람이 일본에 가면 거기 교통이 마비됩니다.”

“뭐, 그건, 제가 아니라 소속 연기자들이죠.”

“아이고, 겸손이 지나치십시다, 사장님. 저도 영입하셨잖아요.”

“크흠!”

순간 헛기침을 하면서 영감님 티를 내자 갑자기 민경이 웃었다.

“여기 봐요. 또 헛기침 하죠. 맨날 해요.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영감님이에요, 영감님.”

갑자기 영감님이 튀어나오자 다들 웃음바다가 되었다.

회사에서 그 누구도 재석을 향해 영감님 소리 못하는데 민경은 영감님이라고 맨날 놀려 댔다.

“끄응.”

“이봐요. 어떻게 말투가 영감님이랑 똑같죠? 집에서 잔소리도 영감님이고.”

“푸하하하. 아니 회사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 아내분 옆에서는 아주 제대로 잡혀 사시네요.”

“저랑 처음에 일할 때도 제가 영감님이라고 놀려 댔거든요.”

“그때도요?”

사람들이 재석의 몰랐던 부분을 이야기하자 다들 놀라면서도 웃어 댔다.

“저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귀엽다고 하더니.”

자연스럽게 박신연으로 넘어갔다. 박신연이 아역 시절부터 연기를 해온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귀엽다고요?”

“제가 아역 때 사장님을 처음 볼 때, 너무 귀여워하셔서 꼭 손녀처럼 대해 주셨거든요.”

“손녀? 하하하!”

연예계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재석을 두고 연예계의 전설을 써 내려가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손녀 이야기, 영감님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 송근석이 한마디 했다.

“저도 드라마 할 때 조언을 자주 해 주셨는데 그때는 그냥 연예계에서 오래 일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옆에 이야기 들어 보면 완전히 세상일 다 겪어 본 할아버지가 친손자처럼 해 주신 거였네요.”

순식간에 재석이 동네북이 되어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이야, 이거 완전 에피소드가 끝이 없네.”

“저 영화 찍기 전에도 그랬어요. 어찌나 귀여워 해 주시던지.”

반보영도 박신연과 비슷한 대답을 했지만, 결론 재석은 영감님이었다.

“저도 사장님 만날 때 꼭 교장 선생님 앞에 선 것처럼 약간 주눅이 들어요. 그게 저만 느낀 게 아니었네요.”

국민MC 유진석의 교장 선생님 발언에 다들 뒤집어졌다.

“하하하.”

재석도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했다. 하지만, 겉으로 웃어도 속으로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만신창이가 되는구나.’

프로그램 내내 수많은 에피소드가 나왔다.

웃으면서도 어느 순간은 진중해지며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다시 영감님 소리가 나오면 동네북처럼 두들기며 웃음을 선사해 줬다.

“아이고, 아이고 배야.”

유진석은 너무 많이 웃었는지 배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다.

재석이 순간 어지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자 민경이 그걸 놓치지 않고 건드렸다.

“영감님, 이제 어지럽기까지 하세요?”

민경의 한마디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 멈출 수 없는 상황에 재석은 자포자기였다.

‘그래. 이 한 몸 바쳐서 2회 분량 뽑아내면 이득이다.’

방송 출연 2회 분량은 중요한 거였다.

“오빠, 혹시 삐진 건 아니죠?”

민경이 마이크에 소리가 들어가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에 재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방송을 알기 때문에 화가 나지 않은 것이다.

‘방송은 방송으로 봐야지.’

민경은 유진석이 진행하는 예능에서 재석이 가루가 되도록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며 깔깔댔다.

“그렇게 재미있어?”

“응. 너무.”

민경의 말대로 내용은 재미있었다. 거기에 방송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 출연해서 그런지 예능에 대한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재석 덕분에 그때 촬영은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한참 이어지다가 내용이 뚝 끊기면서 다음 주 예고에 들어갔다.

애초에 2회 편성을 목적으로 했었기에 아주 본전을 뽑을 모양이었다.

“뭐야, 벌써 끝이야?”

“다음 주에 또 나와.”

“아, 재미있었는데.”

“그때 다 들었던 이야기잖아.”

“그래도 재미있어.”

민경은 재석의 옆에 딱 붙어서 실실거리며 웃었다.

다시 방송사 피디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다른 배우를 출연시키고 싶다는 부탁을 해 왔다. 아마도 제이이브 소속사 식구들을 다 출연시켜야겠다는 목적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건 스케줄 정리가 아직 안 되서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괜찮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한 명씩 출연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재석은 그 말에 알았다는 내용만 알렸고 다음날 회의를 거쳐 출연할 사람들의 순서를 정했다.

소속사 배우들의 예능 출연이 유진석 덕분에 성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다른 방송국에서는 유진석을 통해 연결을 추진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예능에 자주 나가면 이야깃거리가 떨어져 멘트가 없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당장은 할 말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출연 일정을 만들었다.

예능은 신인들이 인기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번씩 출연하며 근황을 알리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예능은 적당히 출연하면 생존 신고도 되지.’

물론 유명해지면 굳이 출연할 필요는 없지만, 민경처럼 현재 스케줄이 없다면 나쁘지 않다.

*  * *

“엄마, 엄마.”

민경이 연극 무대에서 엄마를 서글프게 부르며 우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슬픔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첫 연극은 생각보다 인기가 좋았다. 하루에 한 번씩 공연하지만, 그때마다 좌석이 꽉 찼다.

연기 실력 상승을 위해 무보수로 연극을 한다고 재석이 은밀히 홍보를 한 거다.

연극으로 얻은 수익은 같이 고생한 단원들에게 돌아갔다.

그간 쏟아부은 비용을 생각해도 민경의 참여 덕분에 약간의 수익이 생겼다.

하지만 대다수 연극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재석은 첫 공연을 끝내고 나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민경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오빠, 공연 어땠어?”

“정말 좋았어. 근데 떨리지 않았어?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상황이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떨려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그냥 연기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타고났구나.”

민경은 연기하며 살 팔자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나중에 늙어서 일 그만두면 민경이가 먹여 살려 줘.”

“저도 그때까진 일 안 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인 모양이지만, 회귀 전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연기를 했다.

‘그때는 혼자여서 그랬지만, 지금은 모르지.’

일단, 상황이 완벽히 달라졌다. 회귀 전의 위상을 벌써 뛰어넘었고 재산도 차이가 났다.

‘그때에 비하면 난 궁전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지.’

그것도 어여쁜 아내와 함께 말이다.

재석은 이 궁전이 마음에 들었다. 이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슬 다른 준비도 해야 했다.

‘이 연극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네.’

민경이 해야 할 일은 연극이 끝나고 시작될 것이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 일본 지사에서 반보영의 콘서트 일정이 더 이상 없다는 걸 알려 왔다.

그에 맞춰 반보영의 한국 스케줄도 만들어야 할 차례가 됐다.

“어디 어떤 드라마가 있나.”

재석은 내년에 시작될 드라마 중 하나를 선택했다.

‘아, 이 드라마, 시청률 별로였는데 제의는 왔네.’

재석이 보고 있는 건 ‘목장’이라는 드라마였다. 그가 기억하기로 ‘목장’은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주연을 맡은 연기자의 실력이 부족하여 망했던 작품이었다.

“이거 여기에 보영이랑 도중기를 밀어 넣어 볼까?”

바쁘게 활동하는 도중기도 다음 작품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라 딱 적당했다.

“그럼, 여기 방송국에 한 번 가 볼까.”

재석은 직접 방송국으로 찾아가 담당 피디를 만났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음? 한동안 뜸하시더니 다시 발길 붙이시는 거 보니 새로운 사람이 생기셨나 봅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기성 연기자의 일거리를 찾으러 왔습니다.”

“기성 연기자?”

그 말에 피디의 표정이 바뀌었다.

제이이브에는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배우인가요?”

“이 둘입니다. 둘 다 주연을 맡기고 싶은데요.”

재석이 내민 두 사람을 보고 피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아이고. 대표님, 감사합니다. 저쪽에서 잠시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재석은 피디와 함께 자리를 비웠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계약에 관한 건 차후 직접 찾아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우들은 재석이 준비한 배역을 보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언제나 재석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

“이건 정말 대표님 믿고 하는 겁니다. 꼭 대박 쳐야 합니다.”

“하하하, 모르겠어. 이건 스토리보다 배우의 연기가 더 중요한 드라마야. 정말 대박을 치고 싶지? 그럼 연기로 이야기해야 해.”

재석의 말에 도중기와 반보영은 놀랐다.

“연기요?”

“그래, 너희 둘의 연기력만이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르는 척도가 될 거야. 스토리는 부차적인 문제야.”

재석이 솔직히 이야기하자 배우들도 목적을 뚜렷이 할 수 있었다.

드라마 ‘목장’은 재석에게도 도박이었다. 시청률은 두 자릿수를 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도전해 보고 싶어. 배우를 바꿔서 시청률을 두 자리로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도중기와 반보영이 드라마 목장에 캐스탱됐다는 찌라시가 돌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히트를 친 반보영과 드라마에서 떠오르는 스타인 도중기는 큰 이슈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화제가 되니 실제로도 캐스팅은 거의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얼마 뒤 이상한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뭐? 그쪽에서 로비를 해?”

“예, 가수 쪽 엔터에서 아이돌을 데리고 연기를 시킬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쪽에 접대도 받았다는데요.”

“이런.”

잘나가다가 로비 하나 때문에 캐스팅이 엎어지게 생겼다.

“당장 피디를 만나야겠어.”

재석은 바로 방송국으로 달려가 그 피디를 만났다.

“아이고, 그렇지 않아도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요.”

“예, 피디님. 그럼 장소를 옮겨서 이야기해 보죠.”

자리를 옮기자 재석의 표정은 무섭게 변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로비를 받으셨다고요.”

로비라는 말에 피디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어허, 로비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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