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30화 (130/152)

꿈의 계단 마현석 피디는 재석을 따로 불러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전 사장님은 아시겠지만, 이 사람들을 이끌고 시청률이 나오겠습니까?”

“아, 시청률 문제라면 걱정 없습니다. 저쪽 팬덤을 생각하세요. 연기력을 떠나서 어마어마할 걸요.”

“하지만, 실제 촬영 때 나올 수많은 NG들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전문 연기자들이 아니라서 NG도 잘 날 것이고 원하는 그림도 잘 안 나올 터.

“그건, 예상한 부분 아닙니까.”

“그래서 말인데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전 사장님 배우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조연들이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조연들 분량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주인공들 위주입니다. 저 가수 군단들 말이죠.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작업이 예상됩니다. 그러니 김조현씨라도 철저하게 연습시켜서 제발 NG없이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우리 배우는 알아서 열심히 할 겁니다.”

피디는 걱정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부탁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대본 리딩도 끝났는데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 어렵습니다.”

“네, 다음에 같이하시죠.”

피디와의 식사는 물 건너갔지만, 재석은 김조현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사장님, 근데 이번 작품을 하면 이슈는 확실히 될 것 같네요.”

“아마 엄청날 거다. 가수의 팬들은 아마 다 볼 거다. 그러니 이슈는 당연한 수순이지. 여기서 네가 연기를 인상 깊게 해야 한다.”

“인상 깊게요?”

“연기를 그 상황에 맞게 표현하면 사람들 눈에는 인상 깊어지는 거지.”

“사장님 말씀은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요.”

“어렵지 않게 보일 뿐이야. 연기는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한 개도 없고, 그걸 연결해서 표현해야 하니까 그게 쉽지 않아. 종합적인 결과물이 사람들 눈에 들어오는 거지.”

“하아, 앞길은 멀고 머네요.”

“하하하, 원래 그런 거야. 원로 배우들도 연기를 하면 절대로 쉽게 넘어가는 건 없어. 그리고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 봐. 연기 선생님도 있고 같은 소속 선배도 있잖아.”

“예,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김조현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고, 재석은 집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럼 들어가고, 내일 보자.”

“네.”

재석이 집으로 돌아오자 민경이 후다닥 달려와 재석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쿠야.”

“왜 이렇게 늦었어.”

“일 때문에 그러지.”

“너무 오래 기다렸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집들이 언제 해?”

“집들이?”

재석은 아직 집들이도 하지 않았다.

“아, 해야지. 근데 난 초대할 손님이 직원들밖에 없는데.”

서울에는 정말 그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럼 내 지인들 먼저 초대한다?”

“어, 그래.”

민경은 집들이에 초대할 사람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민경은 집에서 종일 요리에 매달리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재석은 충실하게 보조로 일했다.

“그냥 시켜 먹으면 안 돼?”

“안 돼.”

그녀는 요리에 대한 사명감이 생겼는지 재석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덕분에 고생하는 건 재석이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딩동!

누군가 대문 벨을 누르는 소리에 재석이 달려가 카메라를 통해 얼굴을 확인했다.

“손님들 왔다.”

“벌써?”

민경이 초대한 손님들은 다들 연예인이었다. 회사 소속 연예인부터 같은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된 연예인까지 모두 다 불렀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 다들 탄성을 내질렀다.

“이야, 집 좋네.”

“와아, 돈 많이 벌긴 벌었네.”

손님들은 양손에 집들이 선물들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휴지였다.

“저쪽에 놓으세요.”

민경은 집들이 선물을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손님들은 그게 예의가 아니라는 말에 선물을 한 가지로 통일했다.

방에 수북하게 쌓인 휴지를 보면서 적어도 몇 년간 휴지 걱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고야.”

“와아.”

“세상에.”

“이거 수라상이네.”

각종 음식이 놓여 있었고 어떤 건 특정 지역에만 있는 요리도 있었다.

“이야, 이거 상어네.”

상어라는 말에 다들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그걸 먹는다는 생각을 못하는 이도 있었다.

“상어를 어떻게 먹어요?”

“그냥, 먹으면 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었다. 거기에 알 수 없는 음식들도 있었지만, 그걸 먹어 보고 감탄사를 내뱉는 이들도 꽤 많았다.

“이거 맛있다.”

손님들은 이것저것 하나씩 맛만 봐도 배가 불렀다.

어느새 상이 깨끗하게 비워지면서 많은 설거지거리가 나왔다. 여자들이 나서서 민경을 도우며 단숨에 설거지를 끝내 버렸다.

그 뒤 술판이 벌어졌다. 거기에 민경은 준비된 안주로 회를 내왔다.

회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사 온 것이다.

“이야, 이거 안동 소주잖아.”

한국에서 유명한 소주를 꼽으라면 안동 소주가 빠지지 않는다.

“이게 그 유명한 안동소주.”

이들은 소주 맛을 보더니 다들 인상을 찡그렸다. 그만큼 독한 소주였다. 그나마 남자들은 그 맛을 조금은 즐겼지만, 여자들은 고개를 흔들며 마시지 않았다.

“자, 그럼 이거 마셔.”

민경은 이상한 페트병에 담긴 걸 내밀었다.

“언니 이게 뭐예요?”

“복분자.”

복분자라는 말에 시선이 쏠렸다. 남자들의 정력에 좋다고 소문이 났지만, 그건 일부분이고 실제 복분자는 여자들 피부에 더 좋다.

“시댁에서 가져온 거야. 직접 키우신 거라 아주 맛있어.”

민경도 맛을 봤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담가서 신뢰도도 높았고 남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안동 소주와 복분자주가 함께 하는 자리였지만, 소주는 금세 사라지고 복분자주만 남았다. 많은 양을 집에 보관하고 있어 다들 엄청나게 마셔 댔다.

결혼한 사람은 집에 갔고 남은 이들은 손님방에 남녀 따로 집어넣었다.

아침이 되고 매니저들이 재석의 집으로 찾아와 이들을 데려갔다.

“다음에는 직원들?”

“뭐, 처음부터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불러야지.”

“그럼 몇 명 안 되네.”

재석은 미국 상황을 한번 보고 있었다. 특별한 정보력이 있진 않지만, 머블이 영화계와 드라마 쪽에 일부 아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에게 대충 미국 드라마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거 오디션을 한번 보라고 해 봐야 하나.”

민경의 영어 발음이 걱정이었다. 일본어라면 괜찮지만 말이다.

그날 저녁에 민경에게 미국 드라마에 대해 묻자 눈치 빠른 그녀는 생각보다 답을 빨리 내놓았다.

“영어는 꾸준히 배우고 있고, 발음도 항상 신경 쓰고 있었어요!”

“흐음, 그럼 회화도 괜찮아?”

“문제없음!”

민경의 자신감에 오히려 재석의 고민이 깊어졌다.

“왜, 오빠?”

“다른 게 아니라 너 아시아권에서는 점점 일이 없어져서 미국을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할리우드라…….”

그녀는 지금까지 준비했지만, 미국 진출은 두려움이 많았다. 수많은 미국의 배우와 겨뤄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시아 배우가 진출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오빠, 오디션 한번 해 보자.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

“그래, 한번 해 보자.”

“그럼, 어떤 작품 오디션을 봐야 해?”

“음, 몇 개 있는데 내가 주목하고 있는 건 드라마, 좀비 드라마야.”

“좀비?”

그의 말에 민경은 생소한 연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걱정 마 엑스트라들이 좀비 역을 하겠지만. 실제로는 좀비들을 피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니까.”

“그럼, 생존자 이야기네.”

“그렇지.”

어떤 생존자가 되냐에 따라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지 결정이 된다.

“한번 해 볼게.”

“그럼, 가 보자. 오디션 보러 말이지.”

“응.”

재석은 다음 날 바로 미국 일정을 잡아야 했고 동시에 주명진에게 미국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우리 딸, 아직 미국에서 출발도 못 했는데 먼저 가려고?”

“아니요. 일단 오디션만 보고 올 겁니다. 만약 붙는다면…….”

“생각보다 일찍 미국에 가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예정대로 좀 늦게 시작하는 겁니다.”

“근데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는 쉽게 안 뽑을 건데.”

“그렇긴 하죠. 그래도 도전은 즐거워요.”

경쟁이 치열한 동네다. 거기에 아시아 배우가 쉽사리 뛰어들기도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언제 갈 건데?”

“다음 주입니다.”

“빠르기도 하다.”

미국 오디션 일정에 관해서 이미 알아본 뒤라 진행이 빨랐다.

거기에 민경은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물론 대단히 잘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일정대로 미국으로 향하면서 재석은 민경과 함께 움직였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오디션을 위해 미국의 연기 선생님을 초빙해 연기 지도도 받았다. 발음 문제도 있어서 항상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중국어보다는 쉬웠다.

“오디션 볼 게 이거야?”

“응.”

재석이 내민 대본을 본 민경은 고민에 빠졌다. 먼저 내용을 봤다. 좀비 때문에 생존자들 그룹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그 안에 왕국도 있고, 마피아 집단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대사가 많았다.

“진짜 설정 세세하네.”

“이 워킹 데스는 좀비가 되는 독특한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황폐화 된 곳이라서 정말 심각하지. 정부도 없고 경찰도 없어. 전기도 끊어진 곳에서 삶을 살아야 하니까 상상을 끝도 없이 해야 해. 한국 드라마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지.”

민경에게는 생소한 연기였다. 중국 드라마를 찍을 때 사극이라는 비슷한 문화가 있었던 것에 비해 워킹 데스는 좀비가 있는 세상에서 생존자로 살아남는 것이었다.

“흐음, 어려워.”

“일단 내가 좀비를 할게. 네가 도망치는 연기를 해 봐.”

“알았어.”

재석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몸을 이리저리 꼬면서 좀비 연기를 시작했다.

크르르.

“으윽!”

아무리 연기지만, 재석이 온몸을 뒤틀다시피 하는 모습에 혐오감이 생겼다. 그래도 금세 몰입하여 소리를 지르고 뛰면서 집을 돌아다녔다.

또한 집 안에 있는 물건으로 간이 방벽을 만들어 상황을 연출했다.

그렇게 여러 캐릭터를 살펴보며 어떤 역할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분석했다. 결국 한 캐릭터를 찍었다.

“안드레아 캐릭터가 괜찮네요.”

“알고 있지? 벽이 높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도전에 의미를 두는 게 좋죠.”

민경은 아주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마치 신인으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재석과 함께 오디션 장소에 도착했다.

“후우.”

민경은 깊은 심호흡을 하며 대기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서 놀랐지만, 오히려 사람들도 민경에게 시선을 줬다.

그녀의 알 수 없는 아우라 때문에 시선이 끌린 것이다.

‘확실히 연예인 오브 연예인 느낌이 있지.’

민경이 배우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기세는 어찌할 수 없는 거였다.

“다음 들어오세요.”

오디션은 카메라 테스트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시작하세요.”

곧바로 시작하라는 말에 민경은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했다.

“맙소사, 저 아래가 타임스 광장 같아요.”

단 한마디였지만, 심사위원들의 귀에 쏙 박히는 단어였다.

“음!”

한마디로 그 순간 몰입도를 높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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