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그럴 일이 많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정말 그럴까요?”
“물론이지. 그러니까 열심히 해. 보영이도 처음엔 그랬어. 근데 지금은 어때? 일본과 한국 둘 다 잡았잖아. 너라고 못할 건 없어, 그저 지금 때가 아니라 그렇지.”
“사장님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난 갈게.”
“예.”
재석은 김조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선 민경이 혼자서 연기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음날 한참 영화 촬영을 하고 있을 때 미국에 있는 주명진에게 연락이 왔다.
(재석아, 워킹데스 제작진에게 연락 왔다.)
“그쪽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시즌2 제작한다고 한다. 시즌1이 시청률 대박 터졌다고 좋아한다. 시청자 집계가 한 화에 평균 400만 명 봤다고 한다.)미국에 수많은 미디어 채널에서 그 정도 숫자가 봤다고 한다면 꽤나 괜찮은 수준이다. 그것도 케이블 드라마에서 말이다.
“오, 그 정도면 꽤나 준수한 수준이네요.”
(시즌2 확정이라 시간 될 때 계약서를 쓰자고 한다.)
“그럼 주 이사님이 계약서 내용을 보고 손댈 거 있는 거 없는지 조율하시고 저한테 보내 주세요.”
(알았다.)
재석은 전화를 끊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미국 역대 케이블 드라마 최고의 드라마를 잡았다.
“시즌 몇 까지 민경이가 갈지 모르지만, 5시즌까지만 가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그 소리에, 재석의 옆으로 민경이 다가와 물었다.
“오빠, 시즌5? 갑자기 무슨 소리야.”
“민경아, 워킹데스 아무래도 크게 성공할 것 같다.”
“성공? 거기 시청률 몇 퍼센트야?”
“아니, 거긴 시청률이 아니라 사람 숫자로 나와.”
“와아…… 꽤나 정확하네. 사람 숫자.”
“평균 400만이란다.”
“그거 많은 거야?”
“당연하지.”
민경은 아직 미국 드라마 사정에 잘 몰라서 감이 없었지만, 재석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좋아했다.
“그냥 좋아하면 돼!”
“와아!”
아무것도 몰랐지만 민경은 그냥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 줬다.
하지만, 나중에는 진짜 좋아하게 된다.
왜냐면 단순 시청률이 아닌 미국 케이블 드라마 신기록 3개를 갈아치웠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재석은 주명진이 워킹데스 시즌2 계약서를 검토한 후 전달하자, 그것을 다시 한번 세밀히 검토했다.
이미 주명진이 검토하여 조율한 것이긴 했으나, 민경의 일인 터라 직접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됐기 때문이다.
“흐음, 운동 열심히 해서 체력 관리하라는 거 말고는 없네.”
“체력 관리는 하고 있지.”
민경은 수년째 운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었다. 체력 관리에 있어서는 걱정할 부분이 없었다.
“혹시 추가하고 싶은 내용 있어?”
“음…… 추가보다는 몇 개 빼고 싶어 너무 복잡해.”
민경은 미국의 너무 세세한 계약서가 불편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으니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라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익숙지 않은 민경의 입장에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라며 느낄 정도로 까탈스럽기도 했다.
“뭐, 이게 미국의 문화니까.”
“어휴……. 오빠, 딱히 간섭할 거 없으면 전 아무래도 좋아요.”
민경은 그냥 순수하게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나머지를 재석에게 맡겼다.
결국 재석이 도맡아 계약서를 확인했고, 문제가 될 만한 게 없는지 꼼꼼히 재차 확인한 뒤에야 계약서에 사인을 진행했다.
* * *
민경이 홍콩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던 그때, 중국 지사에서 재석에게 한 가지 연락을 보내왔다. 박신연이 현재 대만에서 드라마 촬영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박신연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든 재석은 한 번쯤 그녀를 만나러 갈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한번 다녀와야겠어.”
“오빠, 어딜 가?”
“대만에서 신연이가 촬영 중이야. 응원차 한번 다녀오려고.”
“진짜?”
민경은 회사 여배우들과 두루두루 친분을 쌓고 있어서 박신연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우리 시간 돼?”
“하루 정도면 괜찮을 거야.”
“그럼 가서 같이 밥이라도 먹고 오자. 낮에는 대만 구경하고, 저녁에는 같이 밥 먹고.”
민경의 제안대로 잠시 대만도 구경하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재석은 곧바로 감독에게 이야기를 전달했고, 촬영이 없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기에 감독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맞춰지자, 박신연에게도 곧바로 연락하여 그날 저녁을 같이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대만에 도착하기 무섭게 재석과 민경은 발 빠르게 움직여 공항을 벗어났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박신연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꺄악! 사장님, 언니!”
둘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호들갑스럽게 손을 마주 잡고 방방 뛰었다.
이후 세 사람은 대만 시내를 돌다가 그 유명한 대만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대만 국립 박물관에는 옛 중국의 보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어, 이것을 보기 위해 이곳에 방문하는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다.
한국의 박물관은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유물을 전시하여 역사의 기록을 보여 주는 느낌이 큰 반면, 대만 국립 박물관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많이 전시하여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부분도 있었다.
“와, 재밌었다.”
세 사람은 그렇게 박물관 구경까지 하고는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고, 맛있는 식사를 끝낸 후엔 대만의 밤거리를 즐겼다.
그렇게 실컷 즐긴 후 비행기 시간이 다 되자 재석과 민경은 공항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언니, 다음에 또 놀아요!”
“그래. 쉬는 날에 또 보자.”
박신연은 이렇게 찾아와 준 재석과 민경이 너무나 고마웠다.
다음 날, 민경은 홍콩으로 돌아와 다시 촬영에 돌입했다. 쉬었다가 다시 연기를 하려니 집중이 안 될 법도 한데,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며칠이 지나고, 이번에는 박신연이 대만에서의 드라마 촬영이 끝났다며 홍콩으로 날아왔다.
때마침 민경이 홍콩에서 촬영해야 될 분량도 다 끝난 터라 두 사람은 홀가분한 모습으로 재회하게 되었다.
“신연아, 우리 귀여운 신연이.”
“언니!”
“홍콩 여행 하고 싶어서 왔어?”
“네, 언니!”
“그럼 가자.”
“사장님은요?”
“이번에는 남편 떼어 놓고 우리끼리 즐기자.”
“정말 그래도 돼요? 언니랑 사장님은 항상 같이 있어서 한 세트 같은 느낌이었는데, 언니 혼자만 있으니까 어색해요.”
“어머머. 날 챙겨 주는 거니, 아니면 우리 오빠가 보고 싶은 거니?”
민경의 말에 박신연은 민경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연히 언니죠.”
“근데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항상 옆에 있다가 없으면 좀 허전해.”
민경은 이제 잠시라도 재석과 떨어져 있으면 큰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아, 촬영장 일이 아직 안 끝났거든. 곧 나올 거야.”
“그럼 기다렸다가 같이 가요.”
“근데 대만 촬영장은 어때?”
“대만 촬영장이요?”
“응. 나라마다 촬영장 분위기가 다 다르던데, 거긴 또 어떻나 궁금해서.”
민경은 박신연이 이야기해 주는 대만 촬영 현장에 대해 들으며, 홍콩 촬영 현장과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저 멀리서 재석이 다가왔다.
두 여자는 재석이 다가오기 무섭게 밖으로 나가자며 그를 잡아끌었다.
“어, 어……?”
“오빠, 신연이도 촬영 끝났다고 놀러왔어. 이번에는 다 같이 홍콩에서 놀자.”
세 사람은 곧장 밖으로 나가서 홍콩의 명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을 알아봤는지 다가와 말을 걸었다.
“@#$^@!”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행동이나 표정을 통해서 그가 팬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민경은 누구의 팬인지 확인하려고 손가락으로 박신연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그러자 그 팬은 둘 다 끄덕이며 백팩에서 급하게 팬과 종이를 꺼냈다.
신연과 민경은 뜻을 이해하고는 그에게 사인을 해 줬다.
사인을 받은 팬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대신 고개를 연신 숙이며 고맙다는 뜻을 표현했다.
이후 다시 홍콩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예상 외로 비슷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배우가 모여 있는 홍콩이다 보니 연예인에 대해 별다른 큰 감흥을 느끼진 못하는 듯했다.
세 사람은 그렇게 홍콩 여행을 즐긴 뒤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홍콩 배우들과 함께 회식에 참여했다.
모두 자리에 모이자 런따이화가 영어로 건배사를 읊었다.
“두 나라의 합작 영화를 위하여!”
“위하여!”
재석의 권유로 회식에 박신연도 참석했는데, ‘미남이시네요’를 봤는지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확실히 제이이브가 한류 스타를 잘 만든단 말이야.”
다른 회사에도 한류 스타는 있지만, 제이이브만큼 많은 한류 스타가 소속된 회사는 없었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원활히 활동할 수 있게 해외 지사까지 만들었으니,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도 옮길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이적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차인혁은 제이이브로 이적한다더니 결국 그냥 그대로 눌러앉았고.”
제이이브로 이적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존 소속사에서 계약을 확실히 상향 조정해 줄 테니 남아 달라는 제안에 잔류를 결심한 거였다.
이러한 경우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제이이브가 배우를 뽑는 데 정말 신중하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퍼졌다.
실제로 재석이 신중하게 배우를 선별하긴 했으나, 더욱 과장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 탓에 이 자리에 있는 배우들은 기회를 엿보면서도 정작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 * *
홍콩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났기에 ‘도적들’의 촬영은 한국에서 이어졌다.
등장인물들이 경찰에 잡히거나 감옥에 가는 장면으로 영화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자, 재석은 홍콩과 대만에서 만났던 박신연이 생각났다.
‘어릴 적에 들어와서 여기서 고생하고 있었지.’
박신연은 학업도 병행하며 정말 쉴 틈 없이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학업에 열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도 문제없이 입학했다.
게다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외국어까지 공부했으니, 어린 나이부터 많은 고생을 했다 할 수 있었다.
“민철아, 박신연 다음 작품 정해졌냐?”
“네, 정해졌습니다. ‘반했어’라는 드라마인데 이제 대본 리딩하고 촬영에 곧 들어갑니다.”
“빠르네.”
“대만 촬영 끝나자마자 바로 제의가 들어와서 수락했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해도 괜찮겠어? 힘들 텐데.”
“아직 생생한 20대라 피곤함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뭐, 좋은 일이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뭔데?”
“매니저가 일을 그만둔답니다.”
“뭐? 퇴사 이유는?”
“디스크가 와서 몇 달간 치료를 받아야 한답니다.”
“디, 디스크?”
사람에게 중요한 게 허리인데 그 허리 때문에 퇴사를 한다는 거다.
“후…… 대타는?”
“아직 못 구한 상황입니다.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져서 어렵네요.”
“돌아가면서 하면 어떻게 안 되겠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철의 말에 재석은 한숨이 나왔다.
“그럼 사람 구할 때까지 내가 할게.”
재석의 말에 민철의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선배님 일도 엄청 많은 걸로 아는데요.”
“민경이 일 없으면 회사 일뿐이야. 물론 일이 적진 않은데 어떻게 해. 허리 다쳐서 퇴사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잖아.”
결국 사장이 나서야 하는 순간이었다.
“당장은 민경이 스케줄 없어서 괜찮아. 몸값이 비싸서 그런지 일이 많이 안 들어와.”
“전에 좀 깎았잖습니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야. 얼굴 잠깐 비추는데 수백, 촬영 한 번에 수천, 작품 하나에 수억.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싸.”
“확실히 일이 없을 만하네요.”
“그러니까 민경이가 일을 찾으려면 다른 나라로 가야지.”
“그래서 미국?”
“거기 좋잖아. 능력만 되면 여러 드라마에 출연도 되고, 인기 배우가 되면 몸값도 상당히 오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