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36화 (136/152)

“쉽지 않잖아요.”

“걱정 마. 이미 출연 확정됐다. 워킹데스 시즌2!”

재석의 말에 민철이 대단하다는 듯 바라봤다.

“역시 선배는 대단하네요. 사모님 미국 진출 안전하게 보내다니.”

“오로지 내 힘만은 아니야. 봉도준 감독이 도와준 덕분이지.”

봉도준 감독이 감독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조언을 해 준 게 민경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의 조력이 있었기에 무사히 워킹데스 시즌2 출연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미국은 언제 갑니까?”

“당장은 아니야. 아직 여유 있어.”

워킹데스 시즌2에 출연하는 건 확정됐지만, 촬영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직 대본도 안 나왔으니 일정은 여유로운 편이었다.

“그래도 언제 가게 될지 모르니 그 전까진 민철이 네가 책임지고 매니저 구해라.”

“예! 알겠습니다.”

재석은 박신연의 매니저가 갑작스럽게 퇴사하게 된 탓에 당분간 그녀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이렇게 사장님이랑 함께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뭐,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렇게 회사를 관둘 줄이야.”

“매니저 오빠가 그렇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 주는 건데.”

“다른 매니저 금방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나랑 다니면 돼.”

재석은 그렇게 말은 했으나, 매니저를 금방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드라마가 시작 전이라는 거다.

“근데 사장님이 이렇게 오면 언니는요?”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어.”

“일이 없는 날인가 보네요.”

“최근엔 여러 가지 일을 하기보단 쉬면서 편하게 일하고 있지. 그래도 곧 있으면 다시 미국으로 가.”

“이번에도 미국에서 뭔가 찍는 건가요?”

“저번에 찍었던 드라마의 시즌2 출연이 확정됐거든.”

“와, 부럽다. 저도 미국에 진출하고 싶네요.”

“그럼 드라마 오디션부터 봐야지. 미국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해야 해.”

“아우, 힘든 일이네요.”

“힘들지. 근데 영어 좀 잘해?”

“자신 있죠.”

시간을 절대 허투루 쓴 적 없는 박신연이었다.

“그럼 미국 드라마 하나 더 알아볼게. 물론, 지금은 아니야.”

“왜요?”

“넌 아직 연기 숙련도가 부족해. 미국에는 수많은 사람이, 한국보다 더 많은 사람이 스타가 되고자 해.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걸 생각하면 신연이 넌 아직이다.”

“알겠어요. 사장님 눈에 들 정도로 연기 실력을 더 키우겠어요. 그럼 도전할 수 있죠?”

“물론, 영어 발음도 완벽해야 해.”

“그럼 올해 안에 사장님 마음에 들면요?”

“무조건 미국 오디션이다.”

재석이 그 자리에서 약속을 해 주자, 박신연은 열의를 보였다.

제이이브 소속 여배우들의 롤모델은 다들 민경이다. 어디까지 도전해야 하는지 아주 잘 보여 주는 표본이었다.

민경은 한국의 배우들 중 누구보다 빨리 일본, 중국으로 진출하여 아시아를 평정하고, 이후 미국까지 진출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통틀어도 몇 안 되는 성공이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그러한 민경을 동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몇 장면 찍는지 알아?”

“다섯 신이요.”

“많네.”

다섯 신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테니 늦은 시간까지 촬영이 진행될 터였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 날씨가 좋네.”

날씨 탓에 몇 번이고 다시 찍어야 하는 경우는 없을 듯했다.

재석은 촬영장에 도착하자 늘 하던 대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휴식 시간에는 박신연에게 본인의 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박신연은 나름 충실히 대답했고, 재석은 만족스러워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생각만큼 연기를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사장님, 왜 이런 질문을 하신 거예요? 다음 장면에 대해서 지시해 주실 건 없으신가요?”

“연기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하는 거야. 사람은 지금껏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생각도, 느끼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어. 그러니 내 생각을 너에게 강요한다고 좋은 연기가 나올 수는 없는 거야.”

재석의 말에 박신연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어.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해 연기하면 돼.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박신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장면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은 밤늦게까지 진행되었고, 배우들을 비롯해 스태프들 모두 피곤에 시달렸다.

이윽고 촬영이 끝나자 박신연은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그녀는 차에 올라타자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다.

“안전벨트 해야지.”

“힘이 없어요.”

“어이구.”

재석이 벨트를 잡아 채워 주자 박신연은 의자에 머리를 기대기 무섭게 잠들어 버렸다.

“자냐?”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늦게까지 촬영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네.”

재석은 쓴웃음을 짓고는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한참을 박신연의 집을 향해 운전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 그 순간, 한 차량이 맞은편에서 무서운 속도로 역주행을 하며 달려왔다.

끼이익!

재석은 역주행하는 차량을 발견하곤 황급히 핸들을 돌려 차량을 피했지만,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말았다.

쾅!

결국 역주행 차량은 다른 차량과 충돌하며 큰 사고를 일으켰다.

다행히 큰 사고는 피했지만, 재석은 충격으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시, 신영아…….”

재석이 뒤를 돌아보자 박신연은 안전벨트 덕분인지 어디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고통을 하고 있었다.

“아, 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했고, 재석과 박신연은 구급차에 실려 갔다.

두 사람은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은 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둘 다 큰 문제는 없었다.

그때 민경이 다급한 모습으로 응급실에 들어왔다.

“오빠!”

너무 놀라 옷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었는지, 민경은 집에서 있던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재석을 발견하자마자 이곳저곳 살피고는 꽉 끌어안았다.

그러다 뒤늦게 박신연도 그 자리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신연아, 괜찮아?”

“괜찮아요. 조금 목이 뻐근한 정도?”

의사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별문제 없으니 바로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다만 혹시 모르니 내일 다시 한번 병원을 방문하라는 말을 남겼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뒤늦게 나타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재석은 민경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웠다.

“아파요?”

“아니, 괜찮아. 혹시 몰라 조심하는 것뿐이야. 어디 근육이 놀랐는지 알 길이 없잖아.”

“내일 병원 또 가 봐요.”

“알았어.”

재석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민경은 깜짝 놀라 구급차를 불렀고, 재석은 또다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검사를 해 보니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긴장이 풀리면서 근육이 경직됐다는 거였다.

결국 재석은 그날 그대로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근육은 금방 풀리겠지만, 혹시 모르니 입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재석뿐만 아니라, 박신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병실에 누운 꼴이 우스워 웃음을 흘렸다.

박신연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촬영은 뒤로 미뤄지게 되었고, 방송사에서는 급하게 이전에 기획해 두었던 다른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두 사람 모두 별다른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기에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  * *

“흐음, 차량 상태가 심각한데.”

정비소에서는 수리를 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뿐만 아니라, 보험 처리를 하더라도 수리비가 만만치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폐차해야 하나.”

주행 거리가 40만을 넘긴 차량이었으니 이참에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결국 재석은 사고 차량을 폐차하기로 하고 신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와, 새 차다!”

“이 차가 이제 전용 차량이니까 이거 타고 한국 스케줄 진행하면 돼.”

새로운 매니저를 뽑긴 했으나, 가르쳐야 할 일이 많았기에 재석은 일주일간 더 박신연과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모두 가르쳤다고 판단했을 때, 드디어 신입 매니저에게 박신연을 맡기기로 했다.

“나 없어도 연기 연습 빼먹지 말고 해. 미국에 진출하려면.”

재석의 말에 박신연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번에는 좀 길게 가자.”

재석은 새로 들어온 매니저가 일찍 그만두지 않기를 기도했다.

“선배, 주간 보고서요.”

“어, 알았어.”

재석은 주간 보고서를 받아 보고는 가장 눈에 띄는 송근석에 대한 내용을 봤다.

“오우, 이거 수입이 엄청난데?”

송근석은 거의 민경을 따라잡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몇 년 안 가서 건물 몇 채는 사겠는데.”

“뭐, 그거야 인기 좋은 녀석이니까요.”

“송근석은 전적으로 네 덕분이다.”

“뭘요.”

“근데 어쩌냐. 이제 네가 직접 데리고 못 다니는데.”

최민철은 직급이 올라서 이제 일을 반쯤 손을 뗀 상태였다. 그 외에도 할 일 많아서 회사에서 간부가 되었다.

“직접 데리고 다닌다고 뭐 떨어지나요.”

“최소한 선물은 받겠지. 고생했다고.”

“그 선물, 선배가 더 많이 줬어요.”

“보너스로 줬지.”

재석은 민철의 보너스 꼬박꼬박 챙겨 줬다.

“근데 너 만나는 여자 없냐. 슬슬 사람 한 명 정도 만날 시간은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있어요.”

“누군데?”

재석은 수년간 봤던 민철이 여자를 만난다는 말에 관심이 갔다.

“나중에 소개시켜 드릴게요.”

“썸 타는 모양이네.”

“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그냥 그런 게 있어.”

미래에 사용되는 은어인 탓에 민철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송근석이랑 자리 한번 만들어야겠네.”

재석은 생각난 김에 송근석과 한번 만나기로 했다.

송근석의 스케주일 비는 날, 재석은 송근석을 사무실로 불렀다.

“왜 불렀는지 이야기는 대충 들었지?”

“네, 사장님.”

“지금 네 수익이 민경이랑 거의 비등해. 이대로만 가면 곧 우리 회사에서 제일 큰 수익을 벌어들이는 배우가 될 거야.”

“설마, 그렇게까지 될까요.”

“충분히 될 수 있지. 민경이는 지금 일거리가 많이 없거든.”

“그래도 사모님 몸값이 저보다 훨씬 높은데, 마음만 먹으면 저 같은 건…….”

“아니야. 너무 비싸서 부르지도 못하는데, 무슨.”

“그래도 이번에 또 미국 드라마에 출연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뭐, 민경이는 이야기는 됐고, 아무튼 이번에 재계약하고 회사에 계속 남아 줘서 고맙다.”

“뭘요. 그동안 민철이 형이 잘 돌봐 주셨는데 제가 어딜 가겠어요. 요즘은 서로 바빠서 얼굴도 잘 못 보지만.”

“한 번씩 회사 와서 얼굴 비춰. 민철이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해. 아, 맞다. 민철이 요즘 여자 만나는 거 같던데.”

“제가 소개시켜 줬습니다.”

“뭐? 그건 몰랐네.”

“만난 지 벌써 반년 됐어요.”

송근석이 이렇게 사람 챙겨 주는 사람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반년? 나한테는 그런 말 일절 안 하던데.”

“아마도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말을 안 한 거겠죠.”

“감히 나한테 말을 안 하다니, 괘씸하네.”

살짝 민감해질 수 있었지만, 송근석이 말렸다.

“결혼할지, 안 할지 몰라서 말을 안 했을 거예요.”

“뭐가 겁난다고 그걸 말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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