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38화 (138/152)

“진짜입니까?”

재석은 웃으며 다시 말해줬다.

“그럼, 제가 바쁜 시간 쪼개 가며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전 영화 제작자입니다.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에 한해서 계약을 하자는 겁니다. 그게 없는 작품은 안 합니다. 감독님의 작품은 그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의 말에 힘을 얻은 조진기 감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남은 작업은 집으로 돌아가서 하세요. 여기 사람들 퇴근해야 하니까요.”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조진기 감독은 그렇게 돌아갔고 재석도 퇴근했다.

다음날 조진기 감독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지금의 각본이 완성되면 바로 캐스팅과 여타 다른 작업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이제 캐스팅은 반보영과 도중기 확정이다.’

회사에서 확실히 키워야 할 배우들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로 재석은 또다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조진기 감독이 변경된 스토리를 재석에게 보여 줬다.

재석은 내용이 만족스러웠고 곧바로 진행을 원했다. 그때 감독이 제안했다.

“남녀 주인공으로, 성인이지만 소년 소녀 이미지가 남아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어떤가요?”

재석은 미리 준비해 둔 반보영과 도중기의 프로필을 보여 줬다.

감독은 그 둘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두 배우 모두 여기 소속이었습니까?”

“네, 제가 데리고 있는 배우죠. 둘 다 제가 직접 찾았고요.”

재석의 말에 감독은 미소를 가득 띠며 말했다.

“모두 제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습니다.”

“일단 말해 보죠.”

재석은 두 배우에게 이 내용을 알려 주었다.

두 사람은 때마침 출연할 드라마나 영화를 고르던 차였기에 거부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

남녀 주연 캐스팅이 끝나자, 나머지는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오히려 감독이 자세한 디렉팅 구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할 정도로 진행이 빨랐다.

대본 리딩에서 반보영과 도중기가 처음으로 만났다. 같은 소속사지만, 도중기가 왔을 때 반보영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예.”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기 싫어도 부딪쳐야 하는 사람들이라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대본 리딩이 끝난 뒤에는 바로 회식이 이어졌다. 술과 함께 친분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재석과 민경이 늦게 참석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재석의 등장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자리에 앉아요. 저 때문에 분위기가 다운되는 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괜히 왔나 싶었지만, 그래도 영화 촬영이 잘되게 하려면 약간의 응원이 필요했다.

“여기 먹는 게 삼겹살이네요. 소고기로 바꾸죠.”

그의 말에 사람들 반응이 뜨거워졌다.

“사장님, 만세!”

“사장님, 감사합니다!”

분위기는 단숨에 달아올랐고, 재석은 그제야 편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반보영은 민경을 보자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언니!”

민경이 언제 반보영과 연락을 취하고 만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재석이 모르는 사이에 여배우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우, 보영아.”

마치 친분을 두텁게 만들어 이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인데…….’

물론 연기를 그만두는 일 따위는 없지만, 활동이 뜸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민경이가 이렇게 관리를 해 주니 편하긴 하네.’

어떤 의미로 그녀가 제2의 매니저 역을 해 주고 있는 거다.

반보영은 민경의 등장으로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왔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재석과도 중요한 관계가 되었기에 이야기 상대가 늘게 되었다.

‘여기서는 내가 가교 역할인가.’

어색함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양쪽이 어색하지 않게 뭔가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도중기를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보영이는 모르지?”

“음. 사장님, 무슨 스토리가 있어요?”

“물론 있지.”

“아!”

도중기도 자신이 캐스팅되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어느 한 소문을 듣고 찾아갔지.”

“어떤 소문이요?”

“대학교에 소문이 자자한 꽃미남이 있다고 말이야.”

꽃미남이라는 말에 도중기의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얼굴이 잘난 건 조금 인정하지만, 꽃미남이라고 하니 창피했다.

“호호호.”

민경은 꽃미남이라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고, 반보영도 웃었다. 물론 잘생긴 건 인정했다.

그 뒤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하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저도 내용은 다르지만, 사장님이 직접 캐스팅해 주셨어요.”

반보영의 말에 도중기는 관심을 보였다. 비슷한 이야기는 서로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줍지만, 재석과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분명 다른 스토리지만, 재석이 캐스팅했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둘이 같은 공통점을 공유하면서 민경이 조심스레 재석에게 속삭였다.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그럼 적당히 하고 빠져야지.”

재석은 응원차 이곳에 왔었으니 적당히 하고 빠지면 된다.

“그럼, 이 몸은 할 일 다 했으니 이만 물러납니다.”

“벌써 가시게요?”

“오래 있어 봐야 눈치만 보이죠.”

적당히 빠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빠졌다.

대본 리딩이 끝나고 난 뒤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다. 비록 비즈니스적인 관계지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친분을 형성했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재석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 기록 보고와 매니저들의 주간 보고서를 봤을 때였다.

‘둘이 평소 이상으로 친해졌어?’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둘 다 잘난 얼굴이지만, 귀여운 인상의 배우들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심어 주고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 이상이 되면 곤란한데.’

아직 둘이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는 서로의 감정이 애정으로 발전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문제는 헤어지고 난 뒤다.

‘아직 젊어서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일인데 말이야.’

둘 다 결혼 생각은 없는 시기다. 20대에 결혼을 하는 연예인은 정말 수백 명 중에 겨우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확률이다.

‘참 곤란하네.’

둘을 찢어 놓는 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짓이다.

‘후우, 힘드네.’

촬영하는 동안 계속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될 텐데 거기서 싹트는 감정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였다.

“에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재석이 할 수 있는 건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도중기와 반보영의 사적인 만남이 매니저들을 통해 재석의 귀에 들어왔다.

“허허, 이런.”

재석은 온종일 고심하면서 민경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큰일이네. 잘 만나면 다행이지만, 헤어지면 둘 중 한 사람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데.”

민경은 한 가지 되물었다.

“오빠, 그냥 내가 말해 볼까?”

“거리를 두라고?”

“응.”

“사람 인연이 그렇게 말처럼 쉽나…….”

재석은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오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야? 나 관리할 때는 안 그랬던 사람이.”

“너랑 만나서 그래. 내가 갈라서게 하면 너랑 결혼한 난 내로남불이잖아.”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아…….”

그래서 더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 놓고 있다가 도중기가 재석에게 찾아오더니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면서 면담을 요청했다.

“후우, 올 것이 온 건가.”

재석은 그 면담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반보영까지 같이 왔다.

“하아, 둘이 왔구나.”

재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할 말이 뭐냐.”

“저희 둘이 사귑니다.”

“네, 사장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아니길 빌었다.

“후우, 그 말을 한 각오는 알고 있지.”

“예.”

“뭐, 서로 마음이 통한 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꼭 나중에 헤어진다는 소리로 들리네.”

“아, 그건 아닙니다.”

“절대 그런 말씀으로 드린 말이 아니에요.”

서로 아니라면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재석이 한마디 더 했다.

“그래, 진짜 죄송한 일은 둘 다 회사를 떠나는 거겠지만.”

“안 떠납니다.”

“어디 안 갈 거예요.”

“그래, 그래. 지금은 그렇지.”

재석은 연예계 속사정을 잘 안다. 실제로 결혼까지 하는 연예인 커플이 많은 것 같지만, 의외로 그 숫자가 적다.

물론 홀로 사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도 일부다. 연예인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결혼한다. 연예계는 각양각색의 삶을 사는 사람들 천지였다.

“그냥 잘 만나라. 후우.”

재석은 한숨을 쉬며 그 둘을 보냈다. 이제는 매니저들에게 철저히 외부에 이 소식이 퍼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당장 매니저들부터 힘들겠어.”

제이이브 소속 배우들은 항상 파파라치를 조심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항상 문제가 많았다.

제일 무서운 건, 한 번 걸리면 두 사람 다 연예계에서 아웃이라는 거다.

“보안 강화도 따로 해야겠네.”

재석은 보디가드 고용까지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사진이 찍혔을 경우를 대비하는 상황도 가늠해야 했다.

“후우.”

결국 매니저 회의를 통해 연예인 연애의 보안 매뉴얼까지 계획했다. 여러 상황을 상정한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

재석의 경험을 토대로 기초를 작성했고, 여기에 여러 의견을 덧붙여서 매뉴얼을 완성했다.

그리고 공개 연애에 대한 결정 여부는 최후의 선택지로 남겨 놓았다.

“후우, 힘들다.”

연예인의 연애는 정말 골치다. 나이가 있는 소속 연예인은 상관없지만, 젊은이들 같은 경우는 정말 신경 쓰인다.

*  * *

며칠 뒤 재석은 워킹데스 시즌2 촬영 때문에 미국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주명진의 장성한 딸을 보게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평소에 아버지가 연예인 매니저로 일한다는 걸 알았지만, 단 한 번도 회사로 간 적이 없던 딸이다.

회사를 찾아가도 외근 때문에 자리에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미국 지사가 생기면서 주명진이 딸과 함께 살았다. 그래서 임민경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와아, 정말 예쁘세요.”

“주 이사님, 딸?”

“네, 주명희입니다.”

“어머, 주 이사님이랑 닮은 듯하면서도 안 닮았네요. 예뻐요.”

“아, 아니에요. 제가 무슨.”

주명희는 살짝 부끄러워했다. 이제 막 20살이 되는 소녀만의 부끄러움이 보였다.

“그럼 연예인을 꿈꿔 본 적 있어?”

“전 재능 없어요. 아빠가 일하시는 거 보면 연예인도 상당히 힘든 직업처럼 보여서요.”

“뭐, 그렇긴 하지.”

민경도 이해하는 부분이었다. 연예인은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공사 구분이 모호할 만큼 간섭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는 겉으로 웃었지만, 속으로는 정말 싫었다.

“그래서 전 패션 디자인을 배우려고요.”

“나중에 내가 디자이너 선생님, 이렇게 불러야 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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