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라도 해서 수익을 내야 했으니 말이다.
‘일단, 한국에서 여기저기에 광고해야겠네.’
내용 수정을 위해 봉도준 감독은 바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사이 재석은 민경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드라마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쯤, 재석과 민경은 휴가 계획을 세웠다.
바로 미국 여행이다. 그동안 여행을 목적으로 미국을 찾진 않았으니 말이다.
“어디 갈 거야?”
“하와이.”
“네가 가라, 하와이?”
“같이 가자, 하와이.”
재석과 민경은 하와이에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휴가를 만끽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후 해변으로 갔는데, 엄청난 인파로 인해 해수욕을 편하게 즐기기 어려웠다.
“그냥 바다 구경이나 하자.”
“네.”
하와이는 해변 말고도 볼거리가 많았다.
그때, 한 미국인이 다가와 민경에게 말을 걸었다.
“팬입니다. 사인해 주시겠습니까?”
정중한 요청에 민경은 기분 좋게 받아 주었다.
“그런데 옆에 분은…….”
“남편이요.”
“허억!”
미국인은 아시아인의 나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마 실제 나이보다 더 어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민경이 결혼을 했다는 말은 충격이었을 터.
“그, 그렇군요.”
“그럼 안녕.”
민경이 손을 흔들며 가볍게 인사했다.
“오빠, 나 미국 팬이 생겼어.”
“이야, 민경이가 이제 월드스타네.”
이미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했지만, 실감할 길이 없었다.
“아, 또 사인 받으러 오는 사람 없나?”
민경은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사인을 원하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가 사람 갑자기 몰린다.”
“그건 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건 피하고 싶었다. 한두 명 정도면 적당했다.
“그럼 다른 곳으로 가자.”
민경은 재석 옆에 착 달라붙어서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그 모습을 찍었다.
그는 그렇게 사진을 몇 장 더 찍고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재석과 민경은 그가 사진을 찍고선 음흉한 모습으로 접근하자,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파파라치네.”
“그러네요.”
둘은 파파라치가 접근하든 신경쓰지 않았지만, 파파라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연인 관계지?”
그가 질문을 던지자 민경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돈 내놔. 당신, 드라마에서 봤어. 앞으로도 계속 활동하고 싶지? 이 사진이 퍼지는 게 싫다면 순순히 내놓는 게 좋을 거야.”
“오빠, 저 사람 협박하는 거 맞지?”
“응, 협박한다.”
대응은 차분하다 못해 심심할 정도였다.
“뭐야, 그 반응은!”
“여기 사람은 정말 모르나 봐. 나 결혼했는지.”
“겨, 결혼! 이렇게 어린 여자가 결혼을?”
관리를 잘 받은 민경의 얼굴을 보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거기에 덩치도 작아 나이가 어린 줄 착각한다.
“호호호, 오빠, 나보고 어리대. 나 서른인데.”
“서, 서른!”
협박범은 민경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민경아, 그냥 가자. 이런 사람은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다.”
둘은 그냥 지나갔지만, 파파라치는 금방 정신 차리고 다시 찾아왔다.
“당신, 결혼한 거 알려지면 신인 배우로서 입지가 좁아질 거야.”
“당신 마음대로 해.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할 거고, 미국 연기 활동은 안 하면 그만이야. 나 한국에서도 할 수 있고, 일본에서도 하고, 중국에서도 해.”
“…….”
“당신, 지금 경찰에 신고할 거니까 그 자리에 꼼짝하지 말고 서 있어.”
민경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자 파파라치는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오우, 민경이 결혼하더니 당당해졌어.”
“오빠, 내가 연예계 일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잖아. 겨우 저런 인간 때문에 오늘 일정을 망치면 평생 이 사건이 기억날 거야. 그건 절대 안 돼.”
순수한 팬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것과 달리, 저런 협박범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오늘은 어디로 갈 거야?”
“배 타고 다른 섬으로 가야지.”
재석은 리조트 예약을 끝마친 상태였다. 사람이 많은 곳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휴식을 즐기고 싶었다.
오후에 배를 타고 작은 섬에 있는 리조트에 들어갔다. 그곳은 확실히 한적했다. 리조트에 머물며 조용히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만 있었다.
“아, 좋다.”
둘은 편안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고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 * *
재석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반보영이었다.
“보영아, 오랜만이다.”
“네, 사장님.”
“그래, 나 없는 동안 잘 지냈냐.”
“잘 지냈죠. 그런데 갑자기 절 보자고 한 이유가 뭐예요?”
“이유는 간단해. 너희들 연애에 좀 간섭하려고.”
“예?”
반보영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부모가 잔소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보영아, 걱정 마. 만나고 헤어지는 것까지 간섭하려고 하는 건 아니야.”
“그, 그럼요?”
“후우, 너희들 만나는 장소, 놀러 가는 장소 다 말해 봐.”
“그, 그게…….”
“나중에 모텔 같은 데 들어가다가 파파라치한테 걸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반보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무 민망한 말이었다.
“너희들 연애에 내가 간섭하는 이유는 단 하나. 걸리면 골치 아파서 그래. 솔직한 심정으로 둘 다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냐.”
“예.”
반보영은 솔직하게 어디서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는지 술술 불었다.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만났다. 각자의 집이 있어서 독립적으로 만나진 못했다.
“중기가 따로 집 얻는다는 소리는 안 하냐?”
“그, 그게…….”
보영의 반응을 보니 도중기가 독립할 의사를 내비친 모양이다.
“후우, 표정만 봐도 알겠다.”
도중기라면 철저하게 무표정으로 일관했겠지만, 반보영은 아직 부족하다. 거기에 상대가 재석이다. 더 떨리는 마음에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사장님이랑 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반보영은 이 이상 이야기하면 비밀이 다 알려질 것 같아서 대답을 회피하려 했지만, 재석은 이럴 줄 알고 다른 말을 했다.
“보영이 너도 독립해. 파파라치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알아봐 줄게. 중기 집은 알아서 하라고 할게.”
“사, 사장님.”
“솔직히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야. 나도 민경이랑 결혼했어. 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해. 결혼하지 말아야 할 관계는 매니저와 연예인인데……. 에휴.”
재석도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남녀 관계 어떻게 할 수 없더라. 끌리는 마음을 막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맞아요, 사장님.”
“나와 비슷한 상황 같아서 이러는 거야. 참고로 파파라치가 못 오는 집은 비싸. 비용은 네가 그동안 벌어 뒀던 돈을 쓰면 해결될 거야. 일본에서 너 많이 벌었으니까.”
“헤헤헤.”
재석이 둘의 연애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이야기하자, 반보영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까는 잔뜩 겁먹은 얼굴이더니……. 이제 웃는구나.”
“그, 그거야…….”
“됐다. 이야기해 봐야 뻔하지. 그리고 중기한테는 집을 구한 뒤에 이야기해라.”
“예, 사장님.”
반보영의 밝은 반응에 재석도 어쩔 수 없이 웃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민경은 재석에게 물었다.
“보영이 어떻게 해 주기로 했어.”
“일단, 파파라치한테 안 붙는 집을 구해 주기로 했어.”
“그럼, 두 사람을 밀어주기로 한 거야?”
“일단은. 하지만 솔직히 걱정이야. 피 끓는 20대인데 불붙는 것도 다르고, 헤어질 수도 있고.”
“안 헤어지게 만들어야지.”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내가 그렇게 만들게.”
민경은 자신만만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야.”
“오빠는 걱정 마.”
재석은 정말 걱정이었다.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겠지?’
민경은 생각보다 소극적인 인간이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 이것 때문에 스타라는 위치에 올라서 있는 거다.
재석은 메일부터 확인했다. 현재 회사 일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김조현의 차기작을 고르는데 고민 중이라고?”
재석은 작품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어이가 없었다.
“이걸 고민해?”
재석은 다음 날 당장 김조현을 불렀다.
“조현아.”
“네, 사장님.”
“작품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이더냐.”
“제안 받은 작품을 잘할 수 있을지……. 출연하시는 배우도 다들 뛰어난 분들이라서 걱정됩니다.”
김조현이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바뀌긴 했지만, 동시에 단점이 하나 생겨 버렸다.
‘너무 겁을 내는군.’
지금 김조현은 겁을 낼 상황이 아니다.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며 일하고, 욕먹고, 칭찬받아도 모자랄 판이다.
“조현아, 겁먹지 마. 지금 네가 작품 하나 해서 스타가 된 걸로 착각하는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주연 한 번으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근데 왜 두려워하지? 연기란 도전이야. 멈추지 않고 도전하는 거지. 원로배우들도 여전히 도전 중이란다. 아직 20대인 네가 겁을 내고 도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
재석은 김조현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꼰대처럼 보일지 몰라도 연기는 항상 도전인 법이야. 그건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다.”
재석의 말에 김조현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제 생각이 너무 짧았네요.”
“그래서 제안 온 드라마는 할 거야?”
“하겠습니다.”
“드라마 ‘해를 가진 달.’이지?”
“예.”
“연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힘내라. 연기학원 다시 가고.”
김조현은 연기학원으로 갔다. 동시에 재석은 큰 걱정을 하나 덜었다.
“어휴, 다행이네. 이 드라마 안 한다고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당시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가 ‘해를 가진 달’이다.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였고 김조현을 확고한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차기작을 계기로 새로운 한류스타 대열에 오르게 된다.
“그래, 내년까지 하면 김조현은 진짜 한류스타가 된다.”
이 드라마로 한국에서는 스타가 된다. 김조현은 만족하지 않고 영화를 찍을 때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많은 이가 김조현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칭찬을 많이 한다.
“근데 신기하게도 김조현의 알 수 없는 백치미는 그대로란 말이야.”
그게 신기하다. 김조현의 매력이.
“그럼, 이제 남은 건 순서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봐야겠지.”
재석은 차분히 일을 진행하며 유명 배우들의 광고 스케줄을 중요하게 관리했다.
민경에게 글로벌 화장품 회사의 광고가 3개 들어왔다.
“아시아 권역 모델.”
한 번 선정되면 1년간 무조건 전속 계약이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재석은 그들을 직접 불러들여 광고 콘티를 내놓으라고 할 거다.
그것을 보고 선택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들어온 아시아 권역 모델이니까 한번 제대로 저질러 봐야겠지.”
이번에 들어온 회사는 에고르라는 화장품 회사다. 명품으로 취급받는 화장품을 제작하는 회사다.
화장품 업계에서 TOP5에 들어가는 회사이기도 했다.
에고르는 광고 모델료를 같이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