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42화 (142/152)

“액수가 좀 모자라단 말이야.”

모델료 조항 이외에 임민경이 쓸 화장품을 10년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계약 조항도 붙어 있었다.

특히 현물 조항은 재석 입장에서는 참 곤란하다. 회사에 떨어지는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뭐, 민경이는 상관없나.”

어차피 여성 화장품은 항상 필요하니까 말이다.

이 광고는 무조건 간다. 돈도 돈이지만, 아시아 권역이다. 알아서 아시아 전역에 홍보해 주는 거다.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래, 이번 기회에 광고 좀 팍팍 찍어 보자.”

한동안 다른 걸 생각하지 말고 광고로 돈 벌면서 여유 있게 민경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게 나아 보였다.

재석은 평소에 영화 제작사로 종종 찾아오던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투자를 좀 해 달라고요?”

“예, 우리 제작사가 아직 영세해서 돈이 없습니다. 자체적으로 제작할 여력은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좋은 시나리오가 하나 있어서, 제작과 투자, 배급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요즘 들어 부쩍 투자와 배급사로 활동 의뢰가 자주 들어오고 있다. 투자는 가능하지만 배급은 다른 문제다. 영화 제작에 어느 정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저희는 자체 배급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작사를 돕기 위해 배급을 한 적이 한 번 있긴 하지만…….”

한국에는 메이저 배급사들이 존재한다. 일부는 거대 기업의 자본을 받아 배급사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어려우신 거 알지만, 그래도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상황이 어려운지 상대방이 감정으로 호소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상대방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성과 수익성만을 볼 뿐이다.

“일단 시나리오부터 보죠.”

재석의 말에 제작사 사장은 시나리오를 냉큼 넘겼다.

“흐음.”

재석은 시나리오를 절반쯤 읽다가 덮었다.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배급사로 활동해 드리죠. 투자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건 비즈니스 차원에서 결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전 시나리오를 두고 감정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재석은 방금 받은 영화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수익을 내는 영화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결정한 거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자체 배급을 벗어나 진짜 배급을 할까?’

그간 자체 배급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묶이는 돈의 액수가 크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의 내부 자금이 불어나며 300억 정도까지는 돈이 묶여도 회사 운영이 가능했다.

이후에 벌어들일 금액을 대충 산출해도 충분한 수치였다.

‘그래. 한번 제대로 해 보자.’

재석은 결심한 후, 배급사 관련 직원들을 더 뽑았다. 채용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다. 한국에는 메이저 배급사만 있는 게 아니라서 관련 업계 일을 하는 사람들을 흡수하는 건 쉬웠다.

이전까지 회사에 제작과 배급이 한곳에 어우러져 있었다면 이제는 배급이 따로 떨어져 나와 몸집을 키우게 된 거다.

그 뒤로 더 많은 이들이 영화 제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철저하게 시나리오만 놓고 상업성에 초점을 맞춰 배급과 투자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배급사를 차리자 영화 제작사들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와서 영화 제작을 해 보지 않겠냐며 달려들었지만, 선택 조건은 까다로웠다.

상업성에 따라 영화 배급이 결정되었다.

거기에 수많은 상영관을 가진 영화사들이 제이이브의 선택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돈 되는 영화를 들고 나올지 말이다.

그때 재석은 봉도준 감독이 각색을 끝마쳤다는 말을 들었다.

“저 그거 진행하고 있었는데 형님이 일을 끝내셨네요.”

“하루빨리 미국으로 가야 하니까.”

“형님, 그렇게 급하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재석 동생이 미국의 더즈니와 연결해 줬는데 더 노력해야지.”

확실히 더즈니의 이름이 크긴 컸다. 봉도준 감독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그렇게 수정된 설원열차는 다시 더즈니로 갔고 그쪽에서 고심 끝에 OK 사인이 떨어졌다.

그런데 더즈니는 봉도준 감독을 쓰지 않으려 했다. 국제 영화제에서 예술상을 수상했던 기록만 보고 상업성이 없는 감독이라 판단한 것이다.

재석은 봉도준 감독의 작품 ‘괴수’를 보여 주면서 충분히 상업성 있는 감독이라는 점을 알렸다.

“이처럼 봉도준 감독은 상업적 영화를 충분히 잘 찍는 감독입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 감독은 믿기 어렵습니다.”

“그럼 각본을 수정한 사람이 안 하면 누가 이걸 합니까.”

재석이 열변을 토하며 봉도준 감독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아야 한다면서 밀어붙였다.

“봉도준 감독에게 못 맡길 거면 다 그만둡시다. 제가 가지고 있는 더즈니 주식도 다 빼고 미국 활동을 완전히 접겠습니다.”

재석은 손해 볼 거 없었다. 이미 주식은 샀을 때보다 10배나 올랐다. 지금 바로 팔아도 굉장한 이득이다.

“아니,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을 믿질 못하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저도 주주로서 할 일이 없습니다.”

재석이 떠난다고 해도 더즈니가 흔들릴 일은 없다. 하지만 재석은 또 다른 강수를 뒀다.

“제가 가지고 있는 주식을 현 경영진의 경쟁자에게 넘기겠습니다.”

말이 좋아 경쟁자지, 더즈니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에게 주식을 넘긴다는 말과 같았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영화 하나 때문에 주주총회가 열릴 수도 있었다. 대단한 양은 아니지만, 주주들의 경쟁에 불을 붙이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아, 좋습니다. 그럼 감독은 봉도준 감독으로 하죠.”

“감사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현 경영진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더즈니 관계자는 재석의 가증스러운 미소를 보고 화가 치밀었지만, 그가 가진 주식 때문에 건드릴 수 없었다.

딴 놈에게 넘기면 골치 아픈 주식을 가진 재석이다.

재석은 이 사실을 알리고 봉도준 감독은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재석아, 고맙다.”

“후우,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제 형님만 믿겠습니다. 미국 제작사와 이야기하십시오. 그리고 캐스팅도 신경 쓰여야 할 겁니다.”

“걱정 마. 내가 깔끔하게 할 테니까.”

어떤 사람을 캐스팅해야 하는지 대충 구상을 한 상태다. 봉도준 감독은 캐스팅을 위해 이리저리 직접 발로 뛰어다닐 거다.

“아, 그리고 한 명 정도는 한국 배우를 뽑을 거야.”

“형님의 마음에는 한 사람밖에 없잖아요.”

“흐흐, 그렇지.”

봉도준 감독과 인연이 무척 깊은 한 명의 배우. 지금은 재석의 소속사에 속해 있는 장강호다.

“근데 강호 형님, 영어 연기는 가능해요?”

영어와 담쌓고 사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나가서, 다른 곳은 생각도 안 할 터.

“하아, 그게 문제네.”

아무리 친분이 깊어도 이건 중요한 문제다.

“뭐, 정 안 되면 대사를 좀 줄여야지.”

봉도준 마음속에 장강호가 정말 깊이 들어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쉽게 안 떨어지는 두 사람이지.’

이 뒤로도 몇 작품을 같이했다. 나중에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때도 둘이 딱 붙어 있었고.

“나 장강호만 생각하는 거 아냐. 제수씨 출연도 고려해 보고 있어.”

“민경이요?”

“그래. 영어 대사도 완벽하고, 주어진 역할도 잘 소화하지. 그만한 배우는 미국에서도 찾기 쉽지 않을걸.”

봉도준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임민경이라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맡을 만한 배역이 있습니까?”

“흐음, 솔직히 줄 만한 역이 거의 없어서 문제지.”

미국 제작사를 끼고 만드는 작품인 이상, 미국인을 대거 캐스팅해야 한다. 아마 한국인은 최대 한두 명.

그만큼 할리우드 시장은 아시아 배우들이 쉽게 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한국 배우를 집어넣으려면 한국 제작사가 껴야 해. 재석아, 너도 들어와라.”

“아니요. 이번 영화는 제작사도 끼도 배급사도 끼겠습니다.”

“오, 둘 다? 역시 돈 많은 동생은 다르네.”

“형님 영화니까요. 제대로 뽕 뽑아야죠. 제가 형님에게 많이 투자할게요. 대신 형님의 영혼은 저한테 바쳐야 할 겁니다.”

“젠장, 내가 악마랑 계약했군.”

“형님, 이미 늦었어요.”

봉도준 감독은 약간의 오버액션을 취하며 몸서리를 쳤다. 재석의 말이 장난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재석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봉도준은 미국에서 본격적인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재석은 영화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따로 감독과 이야기하며 부족한 점을 확인했다.

캐스팅이 완료된 상태라서 진행은 순조로웠다. 이번 영화에 출연할 류태룡은 ‘궁극의 활’ 출연 이후 상당한 인지도를 올렸다.

악역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영화에서는 허균 역을 맡았다.

왕을 도우며 계략을 짜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영화가 크랭크인에 들어갈 때 재석은 촬영장으로 찾아갔다. 거기서 이병진과 류태룡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저기 보이는 저자이옵니다.”

“그래, 그렇군. 아주 많이 닮았어. 아니, 아주 똑같이 보여. 일이 끝나는 대로 조용히 데려오라.”

“예.”

둘의 대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병진은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다른 장소에서 연기를 펼쳤다. 이 영화에서 이병진은 1인 2역이다. 완전히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구현하고 표현해야 했다.

그나마 둘의 비율이 차이가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둘의 교체 신은 감독과 재석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찍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촬영은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다. 오늘 찍어야 하는 분량은 무조건 찍어야 한다. 그 안에 중요한 장면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이병진의 연기는 그 누구도 나무랄 데 없었다. 연기 하나만큼은 정상급이다. 물론 그 외의 것들은 구설수가 많아서 닥치고 일만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이다.

‘참 힘들겠어.’

외부적으로 시끄럽지만, 그걸 참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믿을 만하지.”

많은 이가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붓는 이유가 있다.

재석은 촬영 현장에 끝까지 남진 않고 조용히 빠졌다. 이 이상은 의미가 없는 시간이다.

오히려 집에 가서 민경이와 같이 있는 게 오히려 득이다.

재석은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오빠, 촬영장 어땠어?”

“아주 좋았어. 연기 잘하는 사람만 한곳에 모아 놓아서 그런지, 진도가 아주 쭉쭉 나가던데.”

“아, 부럽다. 나도 그 영화에 출연했었으면…….”

“난, 싫다. 거기 저고리 풀어야 하는 노출 신 있어. 난 내 아내가 그런 거 보이는 게 싫다.”

“아잉, 일인데 질투하기야?”

민경은 재석이 질투가 반가웠다.

“허허, 당연하지.”

민경은 활짝 웃었다.

“아, 그리고 미국에서 연락 왔어. 그쪽에 방영 시작했다고,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서도 워킹데스 수입한다고 하더라.”

“진짜? 그럼 시즌2가 끝나면 수입하는 거네.”

“맞아, 한국에서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런 걸 좋아하는 팬층이 많다는 거야. 나쁘지 않은 시청률이 나올걸.”

한국에서는 소수이긴 하지만, 찾는 이들이 있으니 문제는 없다. 아마 민경이 출연한 드라마라서 관심을 더 받을 거다.

“그럼, 한국에 방영되는 날짜는 미국 방영이 끝난 후야?”

“아마도, 한국 방송사는 시즌1이 겨우 6화라서 방영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 거야. 아무리 인기 있어도.”

“하긴, 나 같아도 그럴 거야.”

미국 방영 날짜가 되자 많은 사람이 방송을 봤고 인기는 시즌1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드라마로 거둬들이는 수익은 말도 못 할 정도였고 방송사에서는 축하 파티를 할 정도가 되었다.

미국 시청률은 공영방송 시청률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 공로에는 몇 사람이 있지만, 그 안에 민경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주 후, 주명진에게 워킹데스의 미국의 반응을 알려 줬다.

메일로 날아온 보고서는 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주명진이 미국에서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역시 방송 쪽에서 십수 년을 굴러먹은 세월이 있어 미국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미국만의 문화가 있지만, 주명진은 잘하고 있었다. 확실한 정보를 재석에게 보내 주고 있었다.

“그래, 반응이 뜨겁다 이거지.”

배우 임민경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시즌1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민경이 기혼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얼굴이 동안인 것에 비해 서른을 넘겼다는 점도 말이다.

-OMG! 민경은 너무 어려 보여. 절대 믿기 어려운 얼굴이야.

잘나가는 슈퍼스타도 서른이 되면 변화가 있는데, 민경은 오히려 더 어려 보였다.

그들에게 동방의 신비였다.

뉴스와 신문에서 임민경은 이미 아시아의 슈퍼스타이며, 피부 관리도 기본적으로 받는 사람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민경은 때마침 한국에서 피부 관리샵에 들렀다.

“오늘도 잘 부탁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워킹데스의 성공 이후, 민경에게 계약 연락이 왔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두 시즌까지 계약이라는 점이었다.

그녀가 보여 준 매력이 미국에서도 통한 것이다. 직접 만나서 계약서를 쓰고 싶다는 말에 재석과 민경은 다시 한 번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미국 제작자는 이야기를 바로 꺼냈다.

“저희랑 전속 계약을 맺지 않겠습니까?”

“전속 계약이요?”

드라마 제작사와 전속 계약이면 확실한 출연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 제작사에서 드라마를 여러 개 제작하는 것도 아니며, 그 드라마 전부에 한국인이 출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건 손해야.’

여기에 몇 년간 발이 묶이는 짓 따위는 할 수 없었다.

“전속 계약은 안 합니다. 다만, 이번 드라마에 민경이 필요하면 추가로 계약하겠습니다.”

재석은 전속 계약을 거절했다. 미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 진출할 만한 곳이 여기만 있는 건 아니다.

‘기회는 또 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그중에는 뮤지컬도 존재한다. 다만, 민경의 음악적 재능이 부족해서 그 바닥에 뛰어들지 못할 뿐이었다.

“그건 무척 아쉽네요.”

“저는 제가 관리하는 배우를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시키고자 합니다. 한 제작사에 묶여 거기만 바라볼 순 없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렇다면 워킹데스 계약서만 쓰기로 하죠.”

“그러죠.”

둘은 그렇게 계약서에 싸인했다. 계약서에는 민경의 출연료 인상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회에 2억이라.’

미국의 자금력은 정말 상상 초월이었다. 한 배우에게 회당 2억이라는 거금을 쓸 회사는 중국과 미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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