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45화 (145/152)

“아닌데요.”

민경은 그를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같이 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뭐라고.”

재석은 민경을 간지럼 태우면서 괴롭혔다.

“꺄아!”

민경은 재석의 기세에 밀리면서 항복을 외쳤다.

“항복! 항복! 살려줘!”

서로의 얼굴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오빠, 왜 이렇게 잘생겼을까.”

남이 들으면 어떻게 이 얼굴이 잘생긴 거냐고 묻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거짓말하면 안 돼.”

“오빠, 내 눈에는 오빠가 제일 잘생겼어.”

기분이 좋아진 재석은 웃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자자.”

“벌써?”

“부부가 밤에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아잉.”

민경은 몸을 배배 꼬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재석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회사에서 영화 개봉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번에 우리가 찍은 영화 ‘도적들’의 개봉일이 며칠 안 남았어.”

작품 세 개는 순서만 다를 뿐, 올해 안에 다 개봉하는 영화다.

‘도적들’의 홍보를 위해 배우들이 활동했지만, 열정적이진 않았다. 출연하는 배우를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다.

그렇게 영화 개봉 후, 무섭게 많은 이가 찾아들었고 주말에는 영화관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매주 영화관에서 좌석 구매율을 회사로 전달했다. 숫자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고, 영화가 상영관에서 내려질 때쯤 1000만이라는 숫자를 넘어섰다.

제이이브는 자체 배급과 제작사로서 막대한 이익을 가지게 되었다.

“좋아, 돈 잘 벌리네.”

다음 영화도 천만 관객 영화였다. ‘도적들’이 빠져나가고 그 뒤를 이어 개봉했다.

관객들은 또다시 새로운 영화 ‘광해 두 명의 왕’에 몰렸다. 평론가들은 올해에 개봉한 영화들의 퀄리티가 높고 관객도 만족한다는 평을 내놓았다.

영화가 개봉되고 재석의 주머니에 막대한 양의 돈이 들어오는 와중에 그는 김명진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드라마 어떻습니까?”

“흐음, 상당히 어렵네요.”

“김명진 씨는 차기작 계약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올 연말에 들어가는 작품이죠.”

김명진이 어렵다고 한 이유는 연기도 그렇지만, 차기작의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 제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탓이었다.

김명진은 이걸 기다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 중이었다.

다른 드라마 같으면 편성된 대로 가겠지만, 이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말인데, 차라리 이걸 하시죠. 그 뒤에 계약할 작품은 여건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김명진은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이대로 다음 드라마에 출연해도 되지만, 지금 촬영하는 드라마도 출연할 수 있다.

양손에 떡을 놓고 선택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다.

“도의적 문제는 없습니다. 뒤에 나올 드라마도 제의만 들어온 상태니까요.”

재석은 그가 편하게 결정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김명진은 고민 끝에 ‘체이서’라는 드라마의 대본을 들었다.

“이걸로 하죠.”

“그럼, 바로 그쪽에 연락하죠.”

급하게 편성된 드라마라, 그날 오후에 제작사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재석도 돈만 맞는다면 상관없었다. 거기에 이 드라마는 시청률도 괜찮았던 드라마였다.

“이걸로 또 연기대상 받을까?”

김명진은 예전에 연기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네티즌들은 김명진을 명본좌로 칭하고 있었다. 스토리에 상관없이, 캐릭터를 살려서 연기하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캐스팅이 빠르게 진행되며 곧 촬영에 돌입했다. 대부분 4회까지 찍고 방영에 들어가는 편이지만, 3회만 찍은 뒤에 방영에 들어갔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진들은 밤과 낮이 따로 없을 정도로 피곤한 일정을 이어갔다.

여기에 다른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배우들의 컨디션 조절에 모든 걸 집중했다. 촬영 후 숙소에서 마사지사를 불러 피로를 풀게 해 주거나 원기를 회복하는 한약까지 먹여가며 일을 진행했다.

재석은 김명진의 매니저와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보고를 전화로 받았다.

그리고 주간 보고 역시, 대면 보고가 아닌 서면만 있을 뿐이었다.

“이거 매니저도 죽어 나가겠는데. 김명진 매니저 시간 내서 한방병원에서 약 좀 지어 먹여. 매니저가 쓰러지면 삐거덕거리는 건 순식간이야.”

“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건 정말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재석은 밑에 일하는 사람들을 챙겨야 했다.

“사장님, 문자영이 비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뭐? 비밀 연애? 대상은 누구지.”

“일반인입니다.”

“일반인?”

문자영이 일반인을 만난다는 걸 알자, 재석은 다행이라 여겼다.

“다행이군. 자영이한테 말해서 대처법 알려 줘. 매니저랑 항상 같이 다니는 걸로 말이야.”

“하지만 파파라치들이 있는데…….”

“걱정 마. 파파라치는 관심 없을 거야. 그거 아니어도 쫓아다녀야 할 인간들 많거든.”

문자영의 생활은 일반인에 가까웠다. 한때 예능 출연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출연도 거의 없다.

일반인은 매니저로 위장하면 된다. 그렇게 일하면 별로 걱정할 게 없었다.

“그리고 자영이 집으로 한번 오라고 해.”

“예.”

재석은 문자영을 집으로 불렀고 스케줄이 빨리 끝나는 날 문자영이 집으로 왔다.

“사장님! 언니!”

문자영은 냉큼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재석에게도 안겼는데 마치 삼촌과 조카 사이 같았다.

“근데 절 왜 부르셨어요?”

“같이 저녁 먹으면서 너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큭!”

문자영은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예전에도 있었지만, 금방 헤어지고 말았다.

“혹시 만나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야, 너도 성인이니까. 그리고 그동안 고생 많았어.”

“고생은요. 사장님 덕분이죠.”

문자영은 회사의 보물이다. 연기자로서 실력도 확실했고, 이미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애한다고 싸돌아다녀?”

“뭐, 서울 말고 지방으로 돌아다니죠. 맛있는 거 먹으러.”

“애인이랑 같이?”

“아이, 아시면서.”

민경도 재석과 연인 관계일 때 따로 몰래 돌아다녔다. 그에 비하면 문자영은 아주 잘 돌아다니고 있는 거다.

“그러다 살찐다.”

“에엑! 저 살쪘어요?”

문자영은 살쪘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니, 지금은 아닌데.”

“재석 오빠, 얘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이렇게 귀여운데.”

“미안, 솔직히 지금은 안 쪘어. 근데 체중 관리는 꼭 해야 해.”

“히잉, 운동 싫은데.”

“자영아, 그럼 이 언니랑 같이 운동할까?”

“언니가 하는 거라면, 필라테스?”

“응, 그거 엄청 좋아. 벌써 몇 년째 하고 있어.”

“힘들지 않아요?”

“운동이 다 힘들지.”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꾸준히 몸 관리를 한다면 더없이 좋다.

“거기에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이 딴 여자한테 눈 안 돌아가게 하려면,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에이, 사장님이 언니 놔두고 딴 여자한테 시선을 돌리겠어요?”

“어머, 모르는 소리. 알게 모르게 예쁜 여자들 있으면 몰래 훔쳐본다니까.”

“어허, 내가 언제. 직업적으로 봤을 때 연예인 할 만한 사람인가 보는 거야.”

“핑계도 좋아요.”

민경은 그리 말하면서도 문자영에게 운동의 긍정적인 점에 대해서 꾸준히 설파했다.

“사랑은 노력이야. 내가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재석의 결혼 후, 회사의 애정전선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이렇게 될 일이지만…….’

그래도 너무 이르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후우, 이제는 스캔들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재석은 지금까지 스캔들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유명인이 많아진 만큼 스캔들이 가장 문제였다.

‘후우, 이제부터 감추는 걸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네.’

사생활 관리 단계에서 재석이 할 말은 하나다.

“자영아, 들키지 마라. 내가 해 줄 말은 이것밖에 없다.”

“사장님, 걱정시킬 만한 일 안 할게요.”

“아이고, 젊은 배우들이 하나둘씩 연애 시작하면, 정말 골치 아파지는데 말이야.”

“어머, 나랑 결혼한 사람이 골치 아프다뇨.”

“그건, 항상 옆에 있었으니까 관리가 가능해서 편했지. 근데 이제는 내가 관리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사장이 되고 열심히 일하러 뛰어다녔기에 돈은 많이 벌었지만, 배우들의 사생활까지 관리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민감한 부분이라 조금만 잘못 새어 나가면 한 사람의 연기 생활이 무너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래도 일 터지면 사장이 나서서 해결해 줘야죠.”

“무슨, 일은 딴 놈이 저지르고 내가 뒷수습해야 해? 난 못 해. 자기가 알아서 잘해야지.”

누가 싼 똥을 치우는 짓은 안 할 생각으로 한 말이다. 물론 사전에 지침을 내려 문제가 생기지 않게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사장한테 연애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상태에서 걸리면 얄짤 없다.

재석은 민경과 오늘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전에 내가 만났던 효선이 알아?”

“배우 공효선?”

“응, 걔가 이번 유명한 소속사가 무리한 투자를 반복해서 회사가 망할 위기래.”

“이 바닥 회사가 그렇지. 누군 망하고 누군 성공하지.”

“근데 그 회사가 가수들도 있고, 음반도 같이 내는 회사였대.”

“가수?”

재석은 가수 쪽은 잘 모른다. 어떤 가수가 어떤 노래로 히트를 쳤는지 알지만, 작곡가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다.

“어느 회사인데.”

“여자 가수가 많이 출연했던 드라마 있었잖아. 김조현도 나왔던.”

“그런 드라마라면 하나 있지. 근데 거기서 누구?”

“뚱뚱하게 분장했던 가수. 아,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 나.”

“아, 이고은?”

“맞아, 이고은.”

“아니, 그 회사가 왜 망해? 이상한데.”

“뭐, 투자 실패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던데.”

투자 실패는 정말 뼈아프다. 회사가 망하면 그대로 돈이 공중분해가 되니 말이다.

“실패라…….”

이고은은 연기와 가창력을 갖춘 연예인이며, 아시아 전역에서 예능 출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흐음, 이고은이 벌어다 준 돈을 이상한 곳에 썼다가 망하게 생겼다는 건데.”

조용히 일만 땄으면 회사가 어려운 일 따윈 없었을 거다.

“흐음.”

이고은 정도면 충분히 아시아에서 알아주는 스타다. 연기도 괜찮고, 방송 재능도 상당해서 손해 볼 가능성은 작다.

“오빠, 설마…….”

“무슨 설마.”

“그 회사 먹을 생각은 아니지?”

“어허, 그걸 어떻게 먹어. 인수하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텐데.”

재석은 다음 날 민경이 말한 정보의 확인 절차를 거쳤다.

“사실이었어.”

때마침 자금이 부족해서 위기가 온 것으로 보였다.

“흐음, 이거 잘하면…….”

그쪽 회사는 두 개다. 하나는 음반 제작, 하나는 매니지먼트.

재석이 관심을 보이는 건 매니지먼트에 속해 있는 연예인과 그 매니저들이다.

“이것만 따로 협상해 봐야겠어.”

재석은 곧 그쪽 사람과 직접 만나게 되었다.

“제이이브 대표님이 절 만나려고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관심이 생겨서요.”

“그 소문이 거기까지 들어간 모양이네요.”

“사정이 어려우신 게 맞습니까?”

“딱히 그 정도는 아닙니다.”

딱 잡아떼는 걸 보니 협상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확실히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제 전문이 매니지먼트입니다. 영화 쪽도 하고 있지만, 그건 제 주력은 아닙니다.”

“충무로에서는 대표님의 이름 석 자로 안 되는 게 없을 건데요.”

“몇 개를 성공해서 돈 좀 만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운영만 하는 거지, 영화 찍는 건 감독이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 제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정확히 말하면 매니지먼트 쪽에 관심 있습니다. 소속된 가수에게도 관심 있고요.”

“그렇게 알짜만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몸값이 얼마나 비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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