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46화 (146/152)

“얼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쪽 인력과 소속 연예인 한꺼번에 거래하고 싶은데요.”

“최소한 500억은 주셔야…….”

“……없던 일로 하죠. 한 사람이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만한 돈을 뽑을 수는 없습니다. 임민경도 아니고.”

재석은 단칼에 거절했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알아서 가격을 낮춰 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커흠, 사모님 정도야 몇 년 안에 그 수익을 뽑기는 하겠죠. 하지만 10년은 바라보고…….”

“드라마는 몇 개 찍었죠? 가뭄에 콩 나듯이 한 작품 찍고, 500억은 너무하군요.”

“크흠, 그래도 해외에서…….”

“해외는 제가 사장님보다 잘 굴려 먹을 자신 있습니다.”

재석은 아시아권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배우들이 일본 중국 가릴 것 없이 활동하며 버는 수익이 어마어마했다.

“부분 매각입니다. 전체를 사는 게 아니죠. 그러니 우리 솔직해집시다. 회사의 가치를 아무리 높게 따져 봐도 300억 겨우 넘을 것 같은데요.”

재석이 부른 액수는 정말 높게 부른 거다. 회사가 굴러가는 게 멈추면 가격은 순식간에 더 추락한다.

“회사를 부분적으로 매각하시고 돈을 손에 쥐시죠. 이것저것 하면서 어음도 좀 돌리셨을 건데.”

어음 이야기가 나오자 상대방 표정이 안 좋아졌다. 사업하는 사람 중에 어음 안 돌리는 사람 없다.

그만큼 돈이 들어가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 지금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음이 돌아오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제가 그 어음 전부 다 처리가 가능하게 할 순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매니지먼트와 이고은이니까요.”

재석은 목적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딱 200억 깔끔하게 해 드리죠. 이 정도면 당장 급한 건 처리가 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매니지먼트 부분만 사는 겁니다. 음원 쪽은 원래 하던 대로 하세요.”

상대는 곧바로 돌아갔지만, 재석은 큰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이고은은 필요했다. 일본이나 동남아에서 노래 부르면 충분히 돈은 나올 거다.

‘영화나 드라마 출연도 고려해 볼 만하지.’

물론 그녀가 출연 욕심이 있을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근데, 올까?”

재석이 제안한 금액은 그의 입장에서 보면 많지 않다. 하지만 회사가 존립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튕기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한다. 물론 다른 회사에서도 접촉할지 걱정이었다.

사실 재석이 제시한 금액은 상당한 메리트가 있어 보였다.

그쪽 회사에서 키우는 연예인은 이고은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많았지만, 다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매니지먼트 부분 매각 계획은 정말 빠르게 움직였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재석이 거래한 거라 손쉽게 일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가수와 매니저 인원을 한꺼번에 가져왔다. 물론 그 가격 안에는 장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의 회사 하나를 통째로 뜯어 왔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회사 내에 가수 쪽 매니지먼트가 생기자 가장 우려했던 건 민철이었다.

“선배, 가수 쪽에 손대시는 겁니까?”

“음, 맞아.”

“하지만 이전 회사도 가수에 손대다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망했지. 하지만 거긴 신인 가수를 키운다고 도박한 거고, 난 이고은을 데려왔어.”

“이고은이요?”

“그래, 그 정도면 내가 이전 회사처럼 도박하는 걸로 보이진 않지?”

“확실히 그렇네요. 하지만 이고은도 가수 활동이 조금 적긴 한데.”

“아, 물론 그렇지. 그래도 이미 활동하고 있는 가수이고, 일본에서도 유명해서 몇몇 방송도 나간 걸로 아는데.”

“예, 저도 알죠.”

“지금 당장 활동이 가능한 사람이니까. 거기에 최근에 히트곡도 하나 나왔지. 그에 대한 모든 걸 다 가져왔으니까. 나쁘지 않지.”

“그럼 당장 일본 지사에 연락 넣어서 스케줄 좀 빵빵하게 늘려 달라고 해야겠네요.”

“그렇게 해. 회사가 바뀌었으니 그에 따른 걸 해줘야지.”

재석은 우선 일하기 전에 이고은을 집으로 초대했다.

“아, 안녕하세요.”

이고은은 재석의 집으로 초대받았다는 것에 상당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재석과 민경을 보고 다시 한번 바보처럼 인사했다.

“벌써 가려고요?”

“네? 아, 아니요.”

“그런데 인사를 왜 두 번 해요?”

민경의 물음에 이고은은 멍해졌다.

“그, 그게 아니라 회사를 이전했는데 사장님이 이렇게 집으로 초대를 해 주셔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요.”

“괜찮아요.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부른 거니까.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재석은 사람 좋은 미소를 했다. 민경은 이미 준비된 음식을 선보이면서 같이 자리에 앉게 했다.

“우와, 이걸 다 준비하신 거예요?”

이고은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꽤 놀랐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았다.

“오늘은 마음 놓고 먹어요. 몸매 관리한다고 항상 적게 먹었죠?”

꿀꺽.

이미 이고은의 귀에는 재석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음식만이 눈에 보일 뿐이었다.

“오빠, 손님에게 오래 서 있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잖아.”

“아, 그러네. 앉아서 먹죠.”

“잘 먹겠습니다.”

이고은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식탁의 음식들을 거덜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항상 예쁘게 보여야 하니 참았는데 사장이 마음껏 먹으라는 말에 너무나 행복하게 먹어댔다.

그러나 나중에는 인상만 찡그렸다.

“아우.”

“왜, 맛이 없어요?”

“아뇨. 맛은 있는데 더 먹지 못해서 너무 슬퍼요. 정말 오랜만에 먹는데 이런 기회 별로 없는데.”

오히려 눈앞에 음식이 그녀의 기분을 서글프게 만들어 버렸다.

“다음에 또 오면 돼요.”

민경의 말에 이고은 표정이 밝아졌다.

“진짜요?”

“물론이죠. 그때는 사모님이 아니라 친한 언니로 불리고 싶은데.”

“그, 그래도 사모님인데…….”

“회사에 소속된 여배우들 다들 저보고 언니라고 불러요.”

이고은은 고민했다. 그러지 않아도 회사에서 동료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잠깐 있었지만, 다들 나가 버리고 좀 쓸쓸해져 있었다.

“그럼 언니?”

“아우. 고마워, 고은아.”

민경은 이고은을 격하게 안아 주면서 새로운 동생이 생겼다는 것에 좋아했다.

이고은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재석이 직접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연예 뉴스에 ‘가수 이고은, 제이이브로 전격 이전하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줄줄이 쏟아졌다.

-이야, 이제는 제이이브가 가수도 손대는 거야?

-에이, 가수까지 할까? 지금 데리고 있는 배우들만 해도 다들 스타들인데.

-저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배우들이 줄을 섰데. 쉽게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아쉬워한다지.

네티즌끼리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고은은 얼마 후 일본으로 갔다.

그곳에서 일주일 정도 스케줄이 잡혔는데, 아주 빡빡했다.

거금을 들여 데려온 만큼, 열심히 굴리겠다는 재석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아시아의 스타로 크게 키우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다.

반대로 제이이브 본사에서는 가수를 다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데려온 매니지먼트 부서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를 해야 했다.

“사장님, 이번에는 한국 스케줄을 하려고 하는데요.”

“어디 한번 봅시다.”

이고은의 스케줄은 방송 출연보다 행사가 주를 이뤘다. 배우들도 행사가 있지만, 가수와 달리 얼굴만 잠깐 비추는 거라 행사 비용의 차이가 생각보다 심했다.

“흐음, 확실히 다르긴 하네.”

“네.”

“그런데 콘서트 일정 같은 건 없습니까?”

“예? 하지만 아직 콘서트를 할 만큼의…….”

“예전에도 한 번 하지 않았습니까. 시도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콘서트 계획서 둘 다 작성해서 보여 주세요.”

재석은 가수를 데려왔으니 이것저것 해 보면서 직원들을 움직여 볼 생각이었다.

“그럼 보고서를 기다려 보죠.”

“알겠습니다.”

직원은 급히 물러나더니 기획서 작성에 돌입했다.

뜻하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가수를 영입했으면 한번 해 보는 거였다. 그리고 이고은은 연기 재능도 있으니 드라마도 한번 알아봐야겠다.

이고은이 우리 회사에 들어온 후,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졌다.

“흐음, 눈 밑에 다크서클이 안 생기면 이상할 수준이네.”

출시된 음반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져왔기에, 그에 따른 이익은 이미 모두 지불했다. 하지만 이고은의 가치는 미래에 있다.

재석이 준 돈으로 그 회사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단, 체력 관리부터 시켜야겠고 스케줄도 적당히 줄여야겠어.”

재석은 이고은의 스케줄을 줄였다. 하루 행사의 개수를 고정적으로 잡아 버렸다.

그러자 이고은은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야간 활동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했다.

수익은 줄어들었지만, 이고은이 불렀던 ‘Good Day.’의 3단 고음이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점차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건강 검진을 통해 건강 상태를 확인까지 했다.

“이게 이고은의 진단 내용인가?”

“예. 생각보다 저체중이고, 근육량도 부족한 걸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예상했던 범위 내지.”

재석은 이고은의 상태를 파악하고 결정을 내렸다.

“일단 전문 트레이너 붙여서 보기 좋게 만들어 달라고 해.”

“전문 트레이너요? 하지만 이전에도 트레이너는 붙었습니다. 몸 관리를 위해서요.”

“내가 원하는 건 건강이야. 방송에 나오기 위해 몸을 말라깽이로 만드는 게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고은이가 살쪄 보일 텐데요…….”

“전문 트레이너라면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지. 그게 전문가야.”

재석은 소속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트레이너에게도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점에 도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에 직원들은 그 높은 요구를 들어줄 트레이너를 찾아서 이고은에게 붙여 줬다. 그녀는 충실히 식단을 지키며 스케줄대로 운동했다.

“흐음, 그 트레이너가 받은 돈만큼, 착실히 일해 주고 있군.”

“예, 완벽한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자신 있다고 했으니까요.”

“좋아, 그럼 석 달 뒤에 결과를 확인하지.”

“알겠습니다.”

직원이 밖으로 나가자 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잎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떨어지는 잎은 곧 겨울이 된다는 걸 알려 왔다.

한숨을 한 번 내쉰 재석은 회사에 들어온 대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찾는 작품은 보이질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닌 거냐, 아니면 선택 대상이 아닌 거냐.’

재석이 보는 건 바로 이고은의 드라마 작품이다. 그것도 주말 드라마에 출연할 작품.

“이거 없으면 또 확인해야 하는데 말이야.”

재석은 퇴근 전 민철에게 방송사에서 이고은이 출연할 만한 드라마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럼 내일 찾아서 사무실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고.”

재석의 퇴근으로 회사 사람들이 한둘씩 일을 끝마치기 시작했다.

재석이 집에 도착하니 민경이 맞이해 주었다.

“왔어.”

“어.”

“오늘 일 어땠어?”

“특별한 게 있다면 이고은 스케줄 관리부터 체력 관리까지 처음부터 다시 짜 줬다는 것.”

“와, 요즘은 그렇게 하나 봐. 나 처음 할 때는 안 그랬는데.”

“그때 여보는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였지.”

재석의 말에 민경은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도 그때 못지않아.”

“그때보다 체력은 더 좋지 않아? 운동 꾸준히 하고 있잖아.”

“그렇지.”

당당하게 말하는 민경은 정말 대단했다. 세월에 흐름에 나이를 먹었을 뿐, 몸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자기 몸 건강하라고 한약 지어 왔다.”

“또?”

“또는 무슨. 매일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잘 먹어야지.”

재석은 요즘 한약을 꾸준히 먹고 있었다. 정말 약을 장복해서 그런지 힘이 넘쳤다. 운동도 꾸준히 해서 몸도 좋아졌다.

너무 잘 먹어서 힘이 넘쳤다. 넘치는 힘을 쏟아 낼 대상은 한 명밖에 없어서 자주 애정 행각을 벌였다.

“그럼, 밥 먹고 자자!”

“벌써?”

“무슨 벌써야. 지금 한밤중이야.”

민경은 아닌 척하면서도 재석이 이러는 게 너무 좋았다.

“어우, 힘 좋은 영감님.”

“그 힘, 누가 키우고 있는데.”

재석은 거침없이 민경에게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  * *

일주일 뒤.

재석은 대본을 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고은에게 연기를 시키실 생각입니까?”

“물론.”

“거기에 이건 주말극입니다. 꽤 어려운 일이 될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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