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47화 (147/152)

“그렇다고 해서 못할 건 없지. 거기다 연기해 봤잖아.”

“그거야, 가수들의 모습을 그렸으니 그렇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게 뭐였는지 잊었습니까?”

재석의 한마디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은 한 명의 배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다. 즉, 연기자 하나를 만드는 데 최고의 프로들이다.

“우리는 업계에서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고작 가수 한 명에게 연기를 못하게 막을 셈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이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게 만드셔야죠.”

그 뒤, 이고은에 대한 계획이 다시 재조정되면서 드라마 ‘달려라 순신이’에 대한 준비가 완료됐다.

마지막으로 이고은에 대한 출연 여부도 확인해야 했다.

“고은아.”

“네, 사장님.”

집에 초대받으며 민경과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됐지만, 그래도 사장인 재석과 편안한 관계가 된 건 아니었다.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거야.”

“예, 들었습니다. 드라마 출연이 결정됐다면서요?”

“그래. 이번 드라마의 결과에 따라 가수와 연기의 겸업 여부가 판가름 날 거야.”

이전에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 줬기에 기대를 해 볼 만한 부분이 있었다. 거기에 재석이 먼저 대본을 입수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고은이가 결정만 한다면 계속 진행될 거야. 물론 너의 연기가 불안하다면 회사에서 연기 선생님을 붙여 줄 거고.”

“죄송한 말씀이긴 하지만, 연기 선생님 있잖아요.”

“그래, 왜?”

“민경 언니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응?”

“저보다 연기를 훨씬 오래 하셨고 배우로서도 존경해서요.”

“흐음.”

민경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고민되었다.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지만. 실제 사람을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분명 연기를 잘한다고 가르치는 걸 잘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모르지.’

“정말 민경이에게 연기 훈련을 받고 싶어?”

“네, 언니에게 꼭 받고 싶어요.”

“좋아, 일단 말을 해 보마. 하지만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연기를 본인이 잘하는 것과 그걸 가르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거든.”

“감사합니다! 명심할게요.”

재석은 퇴근한 후 민경에게 고은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민경은 재석의 말을 듣고 신중하게 고민했다.

“……그거 최대한 빨리 대답해 줘야 하지?”

“시간적 여유는 충분해.”

민경은 잠시간 고민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럼 일주일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해.”

그 뒤로 민경은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이틀 동안 민경은 자신이 봐 온 대본들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고, 회사에 있는 대본들을 보기도 했다.

그로부터 3일째 되는 날, 민경은 뭔가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할게. 하지만 나도 길게는 못 해. 미국에 다시 가 봐야 하니까.”

“드라마가 시작한 후엔 하고 싶어도 못해. 길어 봐야 두 달 정도야.”

“그 정도면 괜찮아. 그리고 스케줄 조정해 줘.”

“어떻게?”

“고은이랑 매일 밤 두 시간씩 연기 연습할 거야.”

“알았어.”

민경은 제대로 된 연기 연습을 시킬 계획으로 이리저리 구상을 짜기 시작했다.

연습 첫날, 민경과 마주한 이고은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은아 각오는 됐니?”

“예.”

“좀 혹독할 거야.”

“괜찮아요.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 보고 싶어요.”

“좋아, 그럼 시작하자.”

민경은 가장 먼저 이고은의 발음과 호흡을 확인했다.

그 두 가지가 연기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수이니만큼 호흡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대단했고, 발음 또한 가사를 명확히 전달해야 하다 보니 훌륭한 편이었다.

“기초는 나름 괜찮아. 하지만,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보여. 특히 발음은 속삭이는 말을 해도 이해가 될 정도로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야.”

민경은 고은의 발음 연습 후에 본격적인 연기 훈련에 돌입했다.

고은이는 연기 훈련을 하는 동안에 모든 희로애락을 표현해야 했다. 그리도 감정 표현도 상황에 따라 조절해야 했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토해 내는 훈련은 정말 힘들었다.

감정 표현을 잘하는 고은이도 없는 감정을 쥐어짜야 할 정도로 힘든 훈련이었다.

첫날부터 사람의 감정이 바싹 마를 정도로 혹독했지만, 민경은 연기에 관해서는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냉정했고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고은이도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연기 훈련을 할 때는 민경의 말이 곧 법이요. 진리로 받아들였다.

훈련을 거칠수록 그녀의 연기력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다.

매일 바쁜 스케줄과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빠지지 않고 고된 연기 훈련을 받아들였다.

“독종이다.”

이고은도 얼굴은 곱상하지만,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쥐어짜다가 어느 순간 고은이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했던 연기가 자연스러워지면서 몰라보게 바뀐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민경은 지금 현상이 일시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걸 그대로 다시 해 봐.”

“예.”

민경은 고은이의 몸에 각인이 되도록 훈련을 시켜 댔다.

*  * *

민경과 고은이 열심히 연기 훈련을 하던 그때, 재석은 방송국 피디를 만나 저녁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야. 전 대표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 이고은을 영입하시다니.”

“뭘요. 그쪽 회사가 어려우니까 그쪽 매니지먼트 부서를 통째로 가져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 돈이 얼마입니까. 이고은의 유명세는 대단한데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희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싶으시다?”

“예,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계약서에 사인했으면 싶습니다.”

“아이고, 성격도 급하셔라. 그래도 이고은의 연기를 봐야죠.”

“아이고, 아이고. 피디님이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싶으셨군요.”

“제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이시라면 고은이와 자리를 마련해서 확인해 주십시오. 우리 회사는 자신 없으면 절대 내보이지 않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스케줄 비는 날을 알려 주세요. 제가 그때 찾아가도록 하죠.”

방송국 피디가 직접 찾아오려는 모양새가 되자 재석은 진심이라는 걸 확인했다.

“좋습니다. 그럼 돌아오는 수요일에 오시죠. 그때 고은이 스케줄이 없습니다.”

피디도 동의했다.

“그럼 대표님이 가수 이고은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확인하러 가겠습니다.”

하지만 피디는 알지 못했다. 이고은의 연기력이 배우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엄청나게 바뀌었다는 걸 말이다.

임민경의 고된 연기 훈련 덕분에 이고은의 연기 실력은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했다.

거기에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확정되면서 방영 전부터 이슈를 몰았다.

하나 그건 젊은 층에 한해서다. 주말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 평균 연령대는 젊은 층이 아니다. 즉, 이고은에게 관심이 없는 이들이다. 그냥 새로운 연기자가 하나 나왔네 하는 정도였다.

아직은 인지도가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배우 겸 가수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야 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사람이 두 가지를 겸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실력이라면,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연기자로서의 충분히 각인시킬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이걸로 대충 됐어.”

출연이 확정되면서 민경과 이고은은 더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민경은 미국을 떠나기 전, 고은에게 당부했다.

“내가 아는 건 다 알려 줬어. 이제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달렸어.”

“감사해요. 언니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 미국 촬영 끝나고 보자.”

“네, 언니.”

민경과 재석은 미국으로 떠났고, 이고은은 주말드라마 ‘달려라 순신’ 촬영에 돌입했다.

하지만 민경은 걱정이 되었다.

“민경아, 첫 번째 제자가 걱정돼?”

“걱정되지. 두 달 동안 내 모든 걸 알려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두 달 만에 배우기엔 너의 10년이 길지 않아?”

“그것도 그러네.”

민경의 경험을 단 두 달 만에 모두 배울 수는 없었다.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또다시 해야 할 수도 있지만, 이고은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터.

“걱정 마, 아주 잘할 거야. 누가 가르쳤는데 못하겠어.”

“그렇겠지?”

“물론이지. 다만, 변수는 그 주말드라마의 인기가 그리 대단하진 않으리라 예상된다는 거.”

“하지만 주말드라마 시청률이 있잖아.”

주말은 평일이 비해 시청률이 월등히 높은 경향이 있다.

“아니, 대본을 봤을 때 별로 좋진 않았어.”

“그럼 안 좋은 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확실한 건 고은이에게는 그런 장기간으로 연기를 할 상황이 필요해. 난 고은이를 연기자로 이름을 남기게 하고 싶어.”

“하긴, 단순히 가수로만 키울 생각이었으면 나한테 연기 가르쳐 보라고 말도 안 꺼냈겠지.”

“맞아, 연기자로서 장편 드라마에 출연해서 그 입지를 다지는 것도 좋은 일이지.”

“그다음은?”

“드라마 한 번 했으니, 가수 본업에 충실하면서 다음 작품을 노리는 거지.”

“오오, 꽤 계획적인데.”

“배우가 아니라서 드라마 안 했다고 잊히지 않아. 노래로 그걸 대신하니까.”

“그건 장점이네.”

다른 배우처럼 항상 대박 작품만을 노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고은은 굉장한 장점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이거 너무 얌체 같은데.”

“장점은 그거지만, 단점은 한없이 피곤한 거.”

“왜?”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건, 내 몸이 두 개가 되어도 부족하다는 뜻이니까.”

“나이 들면 하나를 선택해야 할 정도로?”

“맞아, 나이가 마흔이 됐어. 그때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정도로 체력적으로 따라 줄까?”

“어렵지. 지금 나도 점점 힘든데.”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는 힘들 거야.”

이고은은 나이가 어려서 하나를 선택하는데 적어도 10년 이상 남았다.

‘그전까지는 둘 다 같이하는 거지만.’

“그럼 미국 촬영에 집중하자고.”

“알았어요.”

민경은 워킹 데스 촬영에 들어가면서 이번 촬영이 유독 길어졌음을 느꼈다.

“대본이 많아졌는데.”

“이번 시즌부터 에피소드가 더 늘었어.”

“그럼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네.”

“그렇겠지.”

벌써 시즌4를 촬영하게 되었다. 이전 시즌부터 16번째 촬영이었다. 이번에도 회차가 늘어나거나 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대로 가는 거다.

거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민경의 몸값이 상승하여 벌써 3억 수준이었다.

거기에 한국에서 정식 방영되면서 많은 이가 시청했다.

옛날 외화처럼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의 인지도는 나왔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환진 감독이 ‘9번방의 선물’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작사에서 이메일을 통해 자세한 보고가 들어왔다. 시차 때문에 메일 확인이 느렸지만, 작업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좋아.”

재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류태룡은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처럼 날아오르게 된다.

벌어들이는 수익도 어마어마한 수준이 된다.

한편, 미국에 오디션을 보겠다고 하는 배우가 다시 나왔다.

“흐음.”

바로 소현이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오디션은 드라마 ‘마르코 폴로.’ 말 그대로 마르코 폴로가 겪었던 일을 드라마로 각색한 거다.

아직 소현은 그렇게 인기 있는 배우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인기를 얻는 건 나중 일이다.

여기에 출연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 드라마 출연 내용을 회사에 알린다면 분위기가 바뀔 테지.”

외부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내부적으로는 확실하게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었다.

재석은 소현을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며칠 뒤 소현은 재석을 보자 공손하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