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48화 (148/152)

“반가워요. 내일 오디션 보는 날이죠?”

“예.”

“짐을 풀고 잠시 나와서 식사부터 같이하죠.”

“아니요. 내일 오디션이라 오디션 준비를 해야 해요.”

“그렇다면, 따로 부담 주지 않을게요. 먹고 싶을 때 먹고 내일 오디션 갈 때 데려다줄게요.”

“사장님이 직접요?”

“내일 여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라서…….”

사장이 제일 바쁠 것 같지만, 생각보다 한가한 몸이 된 재석이었다. 미국에서 일은 주명진이 도맡아 하고 있기에 그는 따로 할 게 없다.

민경의 매니저로서 일 이외에는 말이다.

“그냥 혼자 갈게요. 사장님에게 부담 주기 싫습니다.”

“아니, 내 회사 소속 배우를 관리하지 않으면 사장이 아니지요.”

그렇게 재석은 기사 노릇을 했다.

오디션을 보고 나온 소현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재석의 집에서 식사를 함께했다.

“후우, 정말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에요.”

“그럼 오디션 결과까지 듣고 한국으로 갈 겁니까?”

“아니요. 결과는 한국에서 들을 거예요.”

어차피 결과를 어디서 듣건 미국으로 다시 와야 하는 건 변함없다.

“그럼 합격하면 다시 얼굴 보겠네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소현은 꼭 합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아시아 사람을 많이 뽑는 드라마라서 확률이 가장 높았다.

다음 날 아침, 소현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빠는 그 오디션 현장을 봤어요?”

“아니, 보지 않았어. 출입 금지더라고.”

“그럼 아무것도 못 본 거예요?”

“나중에 어떤 역을 했다는 것만 들었어. 그 외에는 자세한 걸 알 수 없었어.”

“결과가 도착할 때까지 그냥 넋 놓고 기다려야 하네요.”

“그렇지.”

그리고 미국 지사로 소현이 ‘마르코 폴로’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내용을 받았다.

결과는 곧바로 한국에 알려졌고 소현의 집에서 만세를 외쳤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소현은 곧바로 미국으로 다시 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오디션 합격이라 장기 체류를 위한 준비였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재석과 민경이 촬영 때문에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주명진이 매니저를 붙여 줘서 움직였다.

소현의 오디션 합격 소식은 한국 본사에도 알려졌다. 이로써 제이이브에서 배우 두 명이 미국 진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확실히 민경 혼자서만 진출해 있을 때와 차이점은 뚜렷했다. 미국 오디션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젊은 배우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특히 문자영과 신지경은 어떤 드라마 오디션을 볼지 고르면서 영어 연기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그들은 지독하게 연습에 몰두했다.

특히 신지경은 오디션에 떨어진 뒤에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를 갈고 준비했다.

이번에 오디션을 볼 드라마는 ‘원스’라는 작품으로, 광고 회사에서 벌어지는 시트콤이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는 로빈 윌리엄의 작품으로 소문이 난 상태였다.

그의 나이가 적지 않아 드라마 시즌이 언제까지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점이 단점이었지만, 그래도 믿고 보는 로빈 윌리엄의 드라마였다.

거기에 신지경이 도전한다.

‘얘도 생각보다 독종이야.’

정말 야리야리하게 생겨서 겁도 많을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을 향해 전진하는 스타일이었다. 정확히는 두 사람이 진출한 것에 용기를 얻고 다시 시작하는 거였다.

어찌 되었든 철저하게 준비해서 다시 도전했고 이번에는 당당히 합격했다.

“언니! 나, 붙었어!”

신지경은 역할도 하나 받았다. 오너 일가를 보좌하는 로렌 역이었다.

“잘됐다!”

둘 다 좋아하면서 서로를 축하해 주었다.

‘이렇게 될 줄이야.’

신지경은 원래 한국 드라마 출연 일정이 있었지만, 그것과 병행하며 미국 드라마 오디션까지 붙은 거였다.

미국 지사는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인들의 진출이 시작된 거다.

졸지에 재석의 집에 두 명의 연예인이 떡하니 눌러앉았다.

하지만 재석은 그 집에 머물지 않았다. 민경의 촬영 때문에 이리저리 오가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신지경과 소현이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게 되었다.

둘 다 오디션에 붙어서 서로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어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둘은 다시 헤어져야 했다. 둘 다 드라마에 대한 미팅이 잡혀서 그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드라마가 끝나고 한국에 올 때까지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거기에 배역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그 뒤로 미국에 진출한 배우가 세 명이 되었다. 이제 한국의 제이이브라는 회사는 배우를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진출시키는 능력이 있는 곳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들은 드라마 출연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물론 촬영 상황이 다르다는 건 민경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신지경은 민경이 먼저 가서 경험해 본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사람들과 대화도 곧잘 했다.

오디션 합격 내용은 신문에 작게 실렸다. 물론 신지경의 미국 오디션 합격 내용이었다. 그래도 신지경쯤 되니까 기사가 난 것이다.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소현의 경우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재석은 일부러라도 홍보를 하려고 했지만, 소현은 거부했다.

동양인들이 너무 많아 보이는 드라마에 출연했기에 신지경과는 상황이 달랐다.

‘확실히 로빈 윌리엄 쪽에 무게가 실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네.’

재석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로빈 윌리엄이 곧 죽는 걸 깨달았다.

“아, 맞다. 그 아저씨 사망 이후 시즌 다음을 계속할 수가 없었지.”

그 아저씨가 출연한다고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됐는데 결국 죽었다.

“허허, 겨우 시즌1로 끝나야 하나.”

그래도 드라마에 출연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다음 준비는 다음에 하면 된다.

미국으로 세 명이 진출했다. 재석은 이를 기회로 삼아 언론에 신지경이 로빈 윌리엄과 같이 드라마를 찍게 됐다는 내용을 알렸다.

그 소식을 접하기 무섭게 언론사에서 신지경의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그중 몇몇 거대 언론사의 인터뷰만 응했다.

신지경은 민경과 다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현의 미국 진출도 주목을 받았다.

회귀 전에는 지금과 달랐다. 그저 홀로 드라마 오디션에 합격했고 미국에서 연기했다.

어찌 되었든 한 명이 아닌 세 명이라는 점은 굉장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얼마 후.

“사장님, 저희 쪽에 은밀하게 접촉해 온 사람이 있습니다.”

“은밀? 접촉?”

재석은 의아했다.

“누가 접촉을 해 왔습니까?”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배우입니다.”

회사를 옮기고 싶은 배우가 당당하지 않고 은밀하게 접촉한다는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데요?”

“조주현입니다.”

“잘나가는 배우네요. 이유는 잘 모르고?”

“예.”

재석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쪽 계약 만료되고 나서 당당하게 찾아오라고 하세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직원은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갔다.

“굳이 그런 인간을 받을 필요는 없지.”

제이이브는 소속 배우를 미국 진출까지 성공시켰다. 타사 소속 배우들이 혹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계약이 끝나지 않은 사람까지 들일 필요는 없었다.

아시아 진출로 판이 커졌을 때도 그랬지만, 조용히 접촉해 온 인간치고 그 속셈이 좋은 사람을 못 봤다.

재석의 회사에 다시 한 번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전부 거절했다.

“찰거머리들 참 많네.”

이럴 때는 외근이다.

재석은 기분 전환도 할 겸 ‘9번방의 선물’ 촬영장에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배우들이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류태룡이 달려와 재석과 손을 마주 잡았다.

“사장님, 오셨어요.”

“잘하고 계셨습니까.”

“사장님 덕분에 제가 돈 벌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류태룡은 어떤 역을 맡건 정말 성실히 임하는 사람이다.

“오늘 촬영 끝나고 한잔 어떠십니까?”

“하지만, 그래도 될지.”

다른 배우들도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걱정 마세요. 다 같이 마시면 되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체 회식이 성사되었다.

회식에서 많은 사람이 술과 고기를 즐겼다. 물론 막 먹는 사람도 있지만, 몸을 신경 쓰고 적당히 먹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되었던 재석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냥 영화에서 맡은 역을 잘 해내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회식 때 촬영에 관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촬영에 대한 불편 사항을 들었으며, 이를 개선해 주기 위해 내용을 기록했다.

“오늘 회식은 참 보람찼네요. 배우들의 불편 사항을 얻어서요.”

“사장님, 굳이 안 바꾸셔도 됩니다. 감독님이 다 알아서 하실 텐데요.”

“감독님이랑 이야기할 겁니다. 촬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일이니까요.”

재석의 직책은 사장이지만, 그가 하는 일은 매니저에 가까웠다. 대신 한 명이 아닌 여러 배우가 촬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게 얻어 낸 정보는 감독과 상의 후에 지원해 줬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불편 사항을 확실하게 개선해 주었다.

얼마 뒤, 재석에게 제의가 들어왔다. 한국 배급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더즈니의 제안이었다. 더즈니는 한국에 자체 배급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재석에게 제안한 것.

곧바로 재석은 받아들였다. 영화는 바로 설원 열차.

더즈니는 미국 상영관 1000개를 잡았다. 2000개는 잡을 줄 알았는데, 설원 열차의 상업성이 생각보다 떨어져 큰돈이 안 될 거라 여긴 거다.

재석은 반대로 더즈니에게 받은 이 영화를 가지고 대형 영화사에 직접 찾아가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거기에 마케팅 광고에도 인력을 총동원했다.

여기에 장강호도 영화 홍보에 앞장섰다. 친분이 두터운 봉도준 감독을 생각해서 움직인 거였다.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이 꽤 높아져 있었다. 거기에 머블 영화에서 당당히 히어로 한 축을 담당하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더 없이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그렇게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의 출연에 힘입어 개봉 날짜까지 공지하며 꾸준히 광고했다.

또한, 뉴스를 통해 회사의 사활을 걸어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이어간다는 소식을 전달했다.

미국에서 상영관 1000개, 그것도 한국과 미국 동시 상영으로 광고가 나갔다.

여기에 재석이 이미 투자를 해서 돈을 뽑아내야 했다.

관객들이 오게끔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개봉을 한 영화는 ‘9번방의 선물’이었다.

일정상 이미 상영관을 먼저 잡아 놨기에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9번방의 선물’이 개봉하자 첫날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였다.

-‘9번방의 선물’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그 말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지만,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9번방의 선물’은 대히트를 쳤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더욱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상영관에 줄을 섰고, 주말에는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평일에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자리가 남아 있는 상영관을 찾아 헤맸고, 두 번 보는 사람은 한마디를 남겼다.

“이 영화 두 번 봤는데 마지막 순간에 또 눈물이 나네요.”

두 번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끈 ‘9번방의 선물’이었다.

특히 류태룡은 전작에서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이제는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딸바보 아빠로 완벽하게 연기 변신을 해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 뒤로 홀로 주인공 역을 맡아도 될 만큼의 자격을 갖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재석은 그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기란 서로의 호흡인데 홀로 주인공을 맡아도 된다고 추켜세우다니.”

하지만, 이 영화를 끝으로 류태룡에게 들어오는 영화 출연 제의는 끊임없었다. 어떤 영화는 100억도 있었다.

“사장님,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요. 그것보다 이번에 들어온 CF 제의입니다. 한번 보세요.”

영화 하나 잘 찍어서 들어오는 CF는 수도 없었지만, 류태룡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정적이었다.

“너무 많아서 제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럼 회사에서 회의를 거쳐 몇 가지를 추려 내 드릴 테니 거기서 선택하세요. 전부 다 할 수 없다는 거 명심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이틀 뒤에 류태룡은 서너 개를 선택했다. 그 촬영은 그야말로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의 스케줄이 정말 빡빡해졌기 때문이었다. ‘9번방 선물’ 이후 스케줄은 그의 체력을 단숨에 고갈시킬 정도로 살인적이었다.

“사, 사장님, 너무 힘듭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합니다. 지금 열심히 일해서 그간 못 벌어들인 거 확실히 끝을 봐야죠.”

물론 밥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만큼 일거리를 줬던 재석이지만, 막대한 돈을 벌어다 주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스케줄이 소화되자 재석은 갑자기 류태룡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기 비행기 표입니다.”

“갑자기 웬 비행기 표입니까?”

“가족끼리 여행 다녀오세요. 그동안 해외여행 제대로 못 즐겼는데 이번에 편안하게 가서 구경도 하고 아내에게 점수도 따고 그러세요.”

“진짜입니까?”

류태룡의 얼굴이 밝아지자, 재석의 얼굴도 밝아졌다.

“물론이죠. 비록 패키지 상품으로 가는 거지만, 충분할 겁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여행 다녀온 뒤에 영어 공부도 좀 하세요.”

“에이, 제가 무슨 영어를 배웁니까. 미국에 진출한다고 저 같은 사람 주인공 시켜 주겠어요?”

“그건 당신 데뷔할 때부터 듣던 이야기네요.”

“흐음······.”

솔직히 류태룡이 주인공 역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극을 이끌 정도의 주인공 말이다. 동시에 영화가 크게 성공할 거라는 건 전혀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솔직히 미국에서는 주인공 역을 영원히 안 줄 수도 있지만, 한국보다 몸값을 비싸게 받을 수는 있죠. 인지도 쌓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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