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49화 (149/152)

그 말에 류태룡이 살짝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그러려고요.”

“그 설마가 지금 사람을 스타로 만들었죠.”

재석이 말에 류태룡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영어는 배워 두면 나중에 자식들에게 영어 못한다고 구박 듣는 일은 없겠죠. 어쩌면 영어 회화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솔직히 영어는 배워 놓으면 손해 볼 일이 없다.

류태룡은 재석의 말에 동의했다.

“영어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꾸준히 배워 놓을게요.”

그는 영어를 천천히 배울 생각이었지만, 재석의 생각은 달랐다.

‘최대한 빨리 배우게 만들어서 오디션 보게 만들어야지.’

정말 무서운 야심을 가진 재석이었다. 그래도 류태룡은 재석이 하라는 건 그래도 할 사람이라서 문제가 없었다.

며칠 뒤 봉도준 감독의 설원 열차가 개봉했고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강호도 홍보에 도움을 줬기 때문에 정말 많은 이가 찾아왔고 관심을 보였다.

믿고 보는 장강호의 연기가 헐리우드에서 어떻게 먹히는지 관심도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뒤, 그들의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내용이 무척 심오했기 때문이었다. 상업성이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영화는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그나마 SF 장르가 통하는 게 있어서 진입 장벽이 낮았다.

거기에 더즈니는 손해를 안 보려고 여러 나라에 이 영화의 판권을 팔아 치우면서 본전을 뽑아 올렸다.

투자금의 90퍼센트를 회수한 상황에서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막상 까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가 찾아와서 영화를 보는 거였다.

거기에 이 영화 원작은 프랑스 소설이었는데, 프랑스에서 개봉하자마자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그해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며, 봉도준 감독의 이름이 프랑스 전역을 울렸다.

그리고 더즈니는 미국 배급을 하면서 의외의 선전 덕분에 생각보다 괜찮은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봉도준의 파워를 다시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다. 봉도준의 이름 하나로 관객들이 900만 가까이 본 거다.

재석은 이 상황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홍보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이익을 낼 줄이야.”

‘9번방의 선물’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났는데 그다음 영화로도 큰 이익을 얻어낸 거였다.

두 영화로 얻어낸 수익은 300억을 넘어섰다. 물론 이것저것 다 제하고 회사에 떨어진 금액이지만, 재석에게 돌아오는 금액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후후후.”

절로 미소가 나오는 그림이었고 동시에 다음 작품을 위해 물색을 하는 때가 찾아왔다.

“이제 뭘 할까?”

그렇게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장강호가 출연할 영화가 하나 생겼다.

“올해는 강호 형님이 부지런히 뛰어다니셔야겠네요.”

재석은 미소를 지으며 영화 시나리오를 들고 장강호를 찾아갔다.

재석의 손에 들어온 건 바로 ‘얼굴’이었다. 장강호의 출연을 원하는 영화였지만, 아쉽게도 직접 제작은 불가능했다.

“하아, 다른 제작사라니.”

다른 일 때문에 놓친 게 아니라, 아예 재석의 회사에 시나리오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전부 다 잡을 순 없지.”

돈 되는 걸 놓쳐서 아쉬웠지만, 이 영화도 돈이 꽤 많이 들어가는 영화라 투자 혹은 배급사를 찾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배급사가 필요한지 한번 알아봐야겠네.”

재석은 직원에게 지시하여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배우를 캐스팅한 후 티켓 파워를 이용해 배급사 혹은 투자자를 모집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석은 그 제작사에 직접 연락을 취해 사장과 만남을 가졌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전화를 주실 줄 몰랐습니다.”

“좋은 작품을 가지고 오셨는데 당연히 연락을 드려야지요.”

“하하, 좋은 작품이라니. 정말 그리 보셨습니까?”

요즘 재석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면, 충무로에서는 최고의 칭찬이며 동시에 돈이 되는 작품을 말한다.

“물론입니다. 제가 작품을 가지고 거짓으로 말해 봐야 해코지밖에 안 됩니다. 다 같이 먹고살자고 하는 짓에 그런 나쁜 짓 안 합니다.”

재석도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 그길 막아 봐야 누워서 침 뱉기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회사가 배급과 투자를 전부 다 책임지겠습니다. 정확한 계산만 맞는다면 확실히 지원해 드리죠.”

“아이고,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죠.”

제작사 사장은 재석의 손을 붙잡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계약을 맺고 영화에 상당한 투자를 결정지었다.

제이이브에서 투자 결정 소문이 돌자 많은 배우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제작사에서 일순위로 지명한 배우가 바쁜 와중에도 역할을 맡겠다고 달려와서 대본을 받아갔다.

제이이브에서 배급하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성공작이 될 거라는 소문이 금세 퍼졌다.

그리고 촬영 시작도 안 했는지 영화사에서는 미리 접촉해서 언제쯤 개봉할지, 상영관은 얼마나 내주면 되는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재석은 촬영을 시작하면 자세히 이야기하자면서 그들을 돌려보냈다.

배우 캐스팅이 끝나고 제작사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거기에 제이이브 소속 배우 중 두 명이 캐스팅됐는데, 장강호와 김종석이었다.

김종석은 장강호의 아들 역할을 맡았는데, 아직 사극을 해 본적 없는 난감한 상태였다. 결국 재석은 장강호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형님, 종석이 좀 봐주십시오.”

“종석이?”

“예, 사극을 안 해 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허, 그거 큰일이네.”

“종석이한테 지금 하는 영화는 큰 도전입니다. 이후에 사극 관련 영화나 드라마의 출연 유무가 걸린 상황입니다.”

“흐음.”

재석의 말에 장강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같은 소속사 식구라서 모른 척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재능을 갖춘 배우라서 잘만 키우면 미래가 기대되는 부분이 있긴 했다.

“알았다. 종석이는 내일 나랑 볼 수 있을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영화 준비한다고 고민하는 중이라 따로 스케줄이 없는 상태니까요.”

재석의 말대로 김종석의 스케줄은 영화 준비 때문에 여유롭게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다음 날, 김종석은 장강호를 만나 맡은 배역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파악해 나갔다.

“우선 해 봐. 지금 사극 연기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하니까.”

“예, 선배님.”

김종석 입장에서 장강호는 대선배다. 그것도 선생님이라고 불려야 할 정도지만, 장강호가 그걸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전 과거 시험을 볼 겁니다.”

아주 딱딱한 사극 톤이었다. 지금 처해 있는 신분은 단순한 관상쟁이 아들이다.

“아니야,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말투를 쓰면 어떻게 해.”

장강호는 후배를 위해 엄하게 가르쳤다. 김종석은 이런 기회가 흔치 않기에 정말 열심히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나중에는 선배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 호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선생님, 이 부분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전체 흐름을 이어 가야지. 이때는 관료가 된 후잖아. 그러니 그 느낌이 나야지.”

관료라는 말에 김종석은 그에 맞게 대사를 연습했다.

사극을 처음 경험해 보는 김종석에게 장강호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단비 같았다.

재석은 장강호가 자신의 연습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후배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형님, 이야기 들었습니다. 종석이를 확실히 가르치고 있다면서요.”

“아이고, 정말 힘들다. 사극에 사 자도 모른다. 이대로 촬영 들어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 정도였습니까?”

재석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말도 마라. 그나마 지금 발견해서 잡아 준 게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다행이네요. 형님 아니었으면 종석이는 다음에 사극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얼굴이 사극에 쓰기에는 너무 예쁘장해서 문제다. 곤란할 정도야.”

“뭐, 얼굴은 타고난 거니까요. 답이 없죠.”

“그래도 연기의 기본은 되어 있어서 몇 년 뒤에는 정말 기대되는 배우가 될 것 같다.”

장강호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흔히 말하는 싹수가 보이는 배우라고 생각해도 된다.

‘역시 미래에 크게 될 나무는 내가 아니어도 다 알아보는군.’

장강호는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좋은 배역을 맡은 사람이 아니다.

‘정말 타고난 연기자지.’

장강호 덕분에 김종석의 연기는 회귀 전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런데 내가 종석이한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거 조금 닭살 돋는다. 으으으.”

장강호는 살짝 소름 돋는지 팔을 비벼 댔다.

“형님, 형님 정도면 연기에 한해서는 선생님 소리 들어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아이고, 됐다.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선생님이고.”

장강호는 사투리까지 쓰면서 몸서리를 쳤다. 연기에서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경우는 원로 배우들이다. 그들의 연기는 정말 정점에 달해 있지만, 몸이 늙어 맡을 수 있는 배역의 한계가 명확했다.

“그래도 형님이 있어서 정말 안심입니다.”

“그런데 제수씨가 이고은한테 연기 지도를 했다는 거 사실이가?”

“예, 제가 직접 부탁했더니 정말 모든 스케줄을 다 접을 정도로 고은에게 집중하더군요. 겨우 두 달 정도 같이했는데 고은이는 스승님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미국까지 진출한 제수씨인데 스승님 소리 들을 만하지.”

“형님도 다르지 않잖아요.”

“내가 미국에 간 건 봉 감독 덕분이지, 내 힘이 아이다. 솔직히 나 미국 자신 없다. 영어야 배워서 여행 갈 때나 써먹을 정도지 연기할 수준은 안 된다.”

장강호는 설원 열차를 찍으면서 뭔가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도전은 해 보셔야죠.”

“한국에서도 못 해 본 역이 아직도 많아. 굳이 미국까지 갈 필요 없다. 돈 못 버는 것도 아니고.”

장강호는 깔끔하게 미국 진출을 접은 모양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장강호가 그리 결정했다면 그런 거였다.

“아쉽네요. 형님이 미국을 주름잡는 걸 보고 싶었는데요.”

“걱정 마라. 젊은 후배들이 미국을 주름잡겠지. 거기에 제수씨 말고 두 명이나 더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갸들은 젊잖아. 나처럼 늙어서 미국으로 가 봤자 핵심 배역 따긴 벌써 틀렸다.”

하지만 장강호의 눈빛은 말과 다르게 도전 욕구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 형님, 기회만 되면 바로 치고 나갈 생각이네.’

재석은 장강호의 눈빛을 보면서 좋은 기회를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정도는 확실히 해 줄 만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영화 쪽을 찾아봐야겠지.’

한평생 영화인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미국에서도 영화인으로 살고 싶을 거다.

‘영화, 영화라…….’

장강호가 그 뜻을 펼치기 적당한 영화를 찾아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얼굴’에 집중해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다음 영화에서도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엎어야 했다.

‘올해는 장강호의 해야.’

장강호는 설원 열차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행보가 이어지는데, 그야말로 엄청나다.

‘정말 올 한 해가 기대되네.’

하지만 영화판은 류태룡도 만만치 않은 실적을 올렸고, 다른 배우들도 드라마판에서 뛰어난 기록을 펼칠 것이다.

얼마 뒤, 영화 ‘얼굴’의 촬영이 시작되기 무섭게 김종석에게 드라마 제의가 들어왔다.

“얼굴이 핫하니까 아주 들어오는 것도 핫하네.”

김종석에게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너의 말이 들린다.’였다.

“시청률이 아주 핫한 드라마가 나오는구먼.”

배경은 현대지만, 반쯤 판타지와 다름없는 드라마다. 김종석은 이 드라마를 받아 들고 고민했다.

현재 영화에 집중하고 싶은데, 드라마를 하게 되면 어려워질 수 있었다.

그러자, 재석이 그 고민을 깡그리 날려 줬다.

“종석아, 배우라는 직업은 다양한 연기를 여러 상황에서 할 줄 알아야 해. 넌 경계를 넘나들며 연기를 펼친 경험이 없어. 어쩌면 이번 기회는 아주 중요할 거야.”

“경계를 넘나들며 연기한다…….”

사극과 현대극은 차이가 분명하다. 동시에 그 경계가 명확해서 저쪽에서는 저런 모습, 여기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아직 연기 경력이 일천한 김종석에게는 이런 경험도 필요했다.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실력보다 훨씬 높을 때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거 잘 해내면 내가 계약 조건을 좀 바꿔 줄게.”

“계약 조건을요?”

“그래, 잘나가면 계약 조건 바꿔 주는 거야. 어때 의욕이 생겨?”

“아주 많이 생깁니다.”

단순히 열정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 돈이라는 당근을 준다면 사람은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럼 기대하지.”

재석이 제안에 김종석은 연기에 대한 엔진이 터지도록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연기에 관해서만 생각해 본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상황이었다.

정말 미쳤다고 해야 하는 표현이 딱 맞았다.

며칠 후, 재석은 김종석에 대한 보고를 매니저를 통해 직접 듣게 되었다.

“그래, 김종석의 몸 상태는 어때?”

“상당히 피곤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뭐랄까……. 좀비 같습니다. 얼굴은 죽어 가는데 꼭 해내겠다면서 혼자 중얼거릴 때가 많습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중복된 스케줄은 최대한 피하자고.”

“그런데 이 스케줄, 사장님이 계획하신 거 아닙니까?”

“한번 경험시키려고 한 거야. 그리고 이번뿐이야. 배우의 컨디션은 아주 중요하니까.”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하지만 연기를 오래하면 할수록 이런 상황 변화에 더 쉽게 적응이 가능해진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죠.”

“그래도 배우가 하고 싶다면, 그에 따른 스케줄도 조정해 줘.”

“예.”

재석의 지시는 명확했다. 소속 연예인이 하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현재 일과 관계없이 할 수 있게 하도록 하는 거다.

연기에 대한 열정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매니저의 몫이다.

재석은 그렇게 지시를 내렸고, 새롭게 영화를 제작할 작품을 선별해야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두 작품이 재석의 눈에 띄었다.

“흐음, 이건…….”

김조현의 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온 것.

“영화 ‘얼굴’은 놓쳤지만, 이게 들어온 게 어디냐.”

아직 김조현의 몸값이 얼마 되지 않을 때 들어왔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었다.

‘은밀하게 대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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