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7화 (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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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심의호 할아버지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조신혜를 바라보지만 이내 한 숨을 쉬면서 일단 배운 사람이라도 어디냐? 라는 표정을 지었다.

“에휴... 지금 계집아이가 문제인가? 그 것보다 자네, 조영감이 그렇게 극찬한다던데 실력을 보일 수 있는가?”

그 말에 조혜신이라는 소녀는 자신감에 차있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뭐든지 물어보라는 말 같았다.

“흐음 그렇다면...”

심의호 할아버지는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고, 조혜신은 그 것들을 척척 대답했다. 심의호 할아버지는 질문을 던져대는 즉시 대답하는 조혜신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오. 이래서 조영감이 그렇게 극찬했나. 일단 기본은 된 거 같군. 자세한 것은 안에서 이야기하지.”

심의호 할아버지는 마치 기대했던 인재를 본 듯 아까의 실망한 표정은 집어 치우고 반가운 기색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멀뚱멀뚱 있는 병재에게 돌렸다.

“병재야. 창고에서 약초정리는 끝냈나?”

그 말에 마치 준비되어 있듯 병재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예. 어르신께서 시키신 일들을 끝마쳤습니다.”

“그래? 허참 저 녀석 갈수록 일 처리하는 것이 빨라진다 말이야. 에잉 됐다. 일을 끝마쳤으면 너도 가서 쉬어라.”

여유 있게 서 있는 병재를 보고 심의호 할아버지는 힘든 잡일이라도 시키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올랐지만 마땅히 시킬 일이 없기에 심의호 할아버지는 이내 마음을 다 잡고 쉬게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심의호 할아버지는 병재에게 못 푼 화를 조신혜에게 돌렸다.

“아 얼른 들어와. 계속 서 있으면 뭐해?!”

“아! 예 예”

조신혜는 갑작스럽게 화내는 심의호 할아버지의 심술궂은 호통에 얼른 부리나케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병재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어르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저 여자아이인가? 하... 아까 주고받는 거를 보니 몇 개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모르겠군. 역시 몇 년을 배운 사람의 실력인가?’

그러나 조신혜를 부러워하던 병재는 다시 생각했다.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면 4일 간 배웠어도 몇 개 알아들었으면 그 것이 잘 된 거 아닌가? 솔직히 저 여자아이 입장에서 4일 만에 그만큼 배웠으면 오히려 놀라워 할 거야. 히히히’

큰 실력격차에 허탈했던 병재는 자신이 가진 무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괜히 좌절한 것 같았다. 병윤의 정치숙달과 조직학이 얼마만큼 큰 영향을 주는 지 다시 생각해보자 오히려 병재로선 엄청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 것보다 병주 녀석이 준 거나 봐야겠네.’

병주가 학교에서 훔쳐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영어교재와 영어사전을 이번엔 병재가 이용했다. 이렇게 여유시간을 가질 때, 영어교재와 영어사전을 공부하는 것이 이런 여유시간에 나오는 심심함을 달랠 수 있었다.

그렇게 병재는 잠시 동안 두 책을 펼치면서 공부했다. 어느 정도 2시간이 지났을 때, 문이 벌컥 열렸고 밖으로 나온 이는 부리나케 들어온 조신혜였다. 조신혜는 열심히 공부하는 병재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병재 앞으로 가더니 대뜸 말을 걸었다.

“이봐요. 당신 책보는 거에요?”

병재는 조신혜의 말소리가 들리자 조금 전 열심히 봤던 영어교재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조신혜의 얼굴을 보고 대답했다.

“예 그런데요?”

“흐음... 그래요? 혹시 뭐 보는지 볼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병재는 아까까지만 해도 붙잡았던 영어교재를 간단히 조신혜에게 넘겼다. 그리고 조신혜는 영어교재를 받아서 내용을 보자마자 입술이 대뜸 튀어 올랐다.

“뭐 이런. 꼬부랑 글자들이 이렇게 많아?! 이거 뭐 길래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건지 알 수 없네요.”

병재는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특히 무지렁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글을 배운 지식인이 영어를 모르는 것이 오히려 더 신기했다.

“알파벳은 처음 보는군요?”

그 말에 조신혜는 무언가 알아차린 듯 박수를 작게 짝 쳤다.

“아! 알파벳이요? 알파벳하면 영어인데 이게 영어였어요?”

마치 알파벳을 처음 보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조신혜의 모습에 병재는 괜히 오지랖을 떨어 부연설명을 하고 말았다.

“예. 알파벳이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등 구라파에서 쓰이는 모든 언어의 글자가 알파벳이요. 그런데 우리가 자주 쓰는 것이 그나마 영어라서 영문자로 이루어져 있지요.”

조신혜는 그 말을 듣고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영어교재를 다시 보다가 이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다시 병재에게 영어교재를 건넸다.

“어렵네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배운 한자가 제일 어려운 것인 줄 알았는데, 한자에 맞먹는 것이 있었다니... 하... 그런데 당신은 왜 영어를 공부하죠? 심의호 어르신이 하시는 일에 영어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조신혜의 근본을 찌르는 말에 병재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한의학을 배우는 데 영어는 필요하지 않죠. 다만 익혀두면 유용하잖아요.”

그 말에 조신혜는 반박할 수 없었다. 하긴 뭐든지 배우는 것이 좋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조신혜는 자기가 쓸모 있을 거 같아서 공부하는 데 괜히 방해할 필요를 못 느꼈다. 다만 조신혜가 보기에 병재는 심의호 할아버지의 잡일을 하는 것 같은데, 한의학에서의 잡일은 워낙 까다롭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잡일을 마치 누워서 떡을 먹는 것처럼 가볍게 해내고 여유시간을 즐기는 병재를 보니 신기할 뿐이다.

또한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 찾아와서 잡일부터 하는 지 조신혜로선 알 수가 없었고, 괜히 물어본다고 병재가 대답해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하기에 조신혜는 가만히 병재 옆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혹시 여기서 같이 생활하나요?”

“아니요. 산 밑에 마을에 있는데, 저는 원래 거기서 살아요.”

“아 그래요?”

조신혜는 병재가 산 밑 마을에 산다고 하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지금은 10월 하순이라서, 웬만한 농촌은 이미 추수가 끝난 지 오래일 것이다. 아마 조신혜가 생각하기에는 농한기에 일이 없고 해서 아마 농한기동안 잠시 잡일을 하는 것 같았다.

둘이서 대화 없이 가만히 시간을 보내다가 이내 병재는 영어교재를 다 읽었는지 책을 덮었고, 조신혜처럼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맑았으며 구름 사이로 돌아다니는 새들을 보니 화폭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병재가 하늘에 시선을 돌린 것은 하늘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는 조용히 속으로 영어교재를 보면서 습득한 영어 기술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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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 언어

[이름] : 영어

[숙련등급] : 하급

[숙련도] : 23단 16%

[상세] : 영어가 영향력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언어와 글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서 쓸 수 있는 단어들의 수가 더욱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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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영어교재 하나를 정독했다고 이렇게 영어라는 기술이 쑥쑥 올라가나?’

병재는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있지만 병윤의 정치숙달과 조직학이 얼마만큼 큰 힘을 보이는지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아! 나도 병윤처럼 정치숙달과 조직학이나 배워둘까?’

병재는 이번에 해가 떨어지고 집으로 내려가면 바로 병윤에게 달려가 정치숙달과 조직학을 습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병재가 심의호 할아버지 밑에서 잡일을 하고, 병주가 보통학교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을 때, 홀로 떨어진 병윤은 심심했다. 물론 심심하면 아이들과 같이 놀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아까운 것 같았다. 병윤은 오히려 병재처럼 누구 밑에서 잡일이나 할까 생각했다.

‘노동숙달과 운반이 있고, 개인정보창에 각종 능력들이 있으니 아마 힘들지는 않을 거야.’

병윤은 잡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자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잡일들이 뭐가 있는지 말이다.

‘흐음? 뭐가 있더라? 마을에서 잡일치고는 방씨 아저씨 땅의 돌 고르기 하나 빼고는 없었던 거 같은데.’

방씨 아저씨도 그나마 아빠를 보고 잡일을 시킨 것이지, 척 보기에도 어린애인 병윤을 보고 잡일을 시킬 까닭이 없었다. 병윤은 다시 생각했다. 농사는 농한기니까 접어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다 딱 하고 떠올랐다.

‘맞다! 이 마을에 대장간 하나 있었지?’

조선시대가 가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대장간은 설 곳을 잃었다. 질 좋은  공장제 강철농기구를 박리다매하는 형편에 품질도 실력에 따라 들쭉날쭉한 수공업으로선 대장간은 사양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장간은 물건을 만들어 판매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망가진 농기구를 수리하는 편으로 몰렸다. 무언가 만들고 생산하는 것보다는 수리하는 편이 오히려 수지가 맞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고치면 쓸 수 있는 것을 언제 읍에 가서 농기구를 산다는 말인가?

농기구 사는 것에 허리를 휜 소작농들도 차라리 농기구를 고쳐 써먹는 것이 더욱 편하고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을에 존재하는 대장간은 농기구를 만들어 낸다기보다는 수리하는 장소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대장간은 대장간이었다. 대장간의 작업장은 평소 수리하는 데 이용했지만 농기구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비용 면에서 만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병윤이 생각해보니 현재 마을 대장간을 운용하고 있는 송동호 아저씨, 즉 송씨 아저씨가 지금 마을 형들을 붙잡아 잠시 일할 수 있냐고 권유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병윤은 거기까지 생각하자 무릎을 딱 쳤다.

“그래! 내 친구 송감연이 송씨 아저씨의 아들이었지? 참!”

송감연은 병윤의 동갑인데다 불알친구이기도 하다. 아빠는 송씨 아저씨랑 데면데면한 사이였지만 병윤은 감연과는 친했다. 병윤은 감연을 통해서 송씨 아저씨 밑에 잡일을 할 생각에 싱글벙글했다.

송감연은 지금 가장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불알친구인 병윤이 찾아와서는 지껄이는 소리를 듣자 크게 되묻는다.

“뭐? 우리 집 대장간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게 뭐 화통을 삶아 먹었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커?”

“지금 목소리가 크게 나야지. 그럼 아 그렇구나하고 납득해야 옳나?”

“좀 그래주면 안되겠냐?”

“너네 집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 왜 갑자기 우리 집에서 일한다고 난리냐?”

“그런 게 조금 있어.”

송감연은 병윤이 갑자기 자기 집 대장간에서 일을 한다 길래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 줄 알았다. 혹시나 해서 농담 아닌가하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로 대장간에서 일하는 거 소개시켜달라고 병윤이 졸랐다. 그래서 지금 이 모양이다.

송감연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한숨 푹 쉬었다. 10살 먹은 어린아이가 내기도 힘들만큼 바꿔 말하면 할아버지가 인생의 경험을 추억할 때 내는 한숨이었다. 그리고 송감연은 진심으로 병윤의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할 정도였다.

물론 대장간에 일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일손 구하는 것도 정정하며 할 일 없는 동네 형들만 한해서지. 병윤과 같은 어린아이가 할 일은 아니었다. 송감연은 매일 아버지에게 제발 가업을 잊지 말라. 힘들어 죽겠다며 공부 열심히 해서 자기는 편한 일이라도 하라고 제발 소리쳤다. 그렇게 죽는 소리를 하는 것이 대장간 일이었고, 송감연 자신도 보기에 자기 아버지 일 하는 모습을 보면 왜 이렇게 죽는 소리를 하는 지 확실히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일을 병윤이 하겠다고? 송감연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다른 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병윤은 전생이 거머리였는지 아주 끈질기게 송감연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거 하라고, 우리 집 대장간은 그래! 너네 형 병재형 인가? 병재형 나이대의 형들만 뽑는다고. 왜 네가 그 일을 하려고 그래? 나 아빠한테 잡혀 죽는 걸 보고 싶어?!”

“어 보고 싶으니 빨리 소개나 시켜줘”

“이게 지금?! 아! 아빠가 왜 화날 때, 육시럴 육시럴 거리는지 알겠다.”

송감연은 하마터면 뒷목이라도 잡을 뻔 했다. 병윤이 하겠다고 할 때, 뒷탈이 없으면 그냥 소개시켜 주고 끝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일을 소개시켜 준 후 병윤이 일을 못할 때, 왜 그 친구를 소개시켜 주냐고 종아리 매 맞을까봐 그래서다.

“일단 소개나 시켜줘. 나야 너네 아버지처럼 쇠를 두들기는 것은 못하겠지만 뭔가 옮기거나 준비하는 것은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아 모르겠다. 몰라. 난 일단 소개시켜주고 끝이야.”

송감연은 마치 포기한 듯 인생의 한이라도 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저렇게 끈질기게 구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병윤과 같이 지낸지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였다. 그런데도 송감연은 이런 병윤의 모습을 처음 봤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 송감연은 병윤을 데리고 자기 집 대장간으로 향했다. 제발 화가 나한테 미치지 말라고 속으로 빌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기도는 대장간에 도착하고 송씨 아저씨에게 말을 붙이는 순간 여지없이 깨졌다. 대장간 일을 험하게 해서 그런지 얼굴도 우락부락했고, 망치 질을 힘차게 해서인지 어깨와 팔 근육이 소도 잡을 만큼 단단했으며 손바닥은 굳은 송씨 아저씨는 그 생김새만큼이나 표정도 마치 애를 잡는 듯했다.

“감연아.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요즘 농기구를 두들기느라 귀가 잘 안 들리는 모양인데.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뭐라고?”

“아. 아빠 그러니까. 병윤이가 우리 집 대장간 잡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졸라서 말이지.”

송씨 아저씨는 이제는 익숙해 질만 한데 자기의 화난 표정을 보고 울먹이는 자기 아들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얼굴의 힘줄이 도드라지게 튀어 올랐다.

“감연아? 지금 우리 집 대장간의 일을 할 사람이 누구라고 했니?”

“아 그러니까 말이지...”

송씨 아저씨는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화가 극에 달한 듯 뒷목을 잡았다. 송씨 아저씨의 그 모습에 송감연의 시선은 대뜸 병윤에게 향했다. 그리고 ‘난 모르겠다. 난 할 만큼 했다. 너가 알아서 해라’는 표정이었다. 병윤은 송감연의 표정을 읽고 발걸음을 옮겨 송씨 아저씨와 대면했다.

“감연이에게는 소개 시켜달라고 부탁한 거뿐이에요. 그러니까 아저씨.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모습에 자기아들 또래 되는 아이는 도깨비라도 보듯 도망치는 아이들이 다수였는데 오히려 호기 있게 자신의 앞에 나서는 병윤의 모습에 조금은 화가 가라앉힌 모양이라서 뒷목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송씨 아저씨는 한 숨을 내더니 이내 송감연에게 말했다.

“감연아. 방으로 들어가 있어라.”

그 말에 송감연은 마치 다행인 듯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방 안으로 갔다. 그 모습에 송씨 아저씨는 자기 아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보내고는 이내 시선을 이 일의 원흉인 병윤에게 돌렸다.

“너가 내 아들의 친한 친구라고 많이 이야기하더구나. 내 너네 아버지인 길씨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말이야. 그런데 감연이한테 대장간 일이 어떤 지 들었음에도 계속 부탁한 모양이군. 그래 심부름이라도 하겠다고?”

그 말에 병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는 듯 병윤은 가슴을 들이 밀었다.

“에효 애들이 뭐가 알겠냐만은... 병윤아. 다시 한 번 말할게. 정말 대장간 일을 하고 싶냐? 여기서 화상은 일상에 속하는 것이고 망치질 한 번에 근육통이 오가는 곳이다. 그런 힘든 일은 동네 청년들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야. 그런 청년들도 힘든 일을 너가 하겠다고?”

“일단 시켜만 주세요. 일의 경과는 맡겨준 후 아니다 싶으면 돌려보내주면 되지 않을까요?”

병윤의 이 말에 송씨 아저씨는 송감연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녀석 끈질기다. 대장간 일은 힘든 것은 둘째 치고 왜놈들이 값싸고 질 좋은 공장제 농기구를 만드느라 미래도 없었다. 그런 일에 병윤이 하고 싶다는 의지의 눈빛을 보내자 송씨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병윤의 말대로 일단 시켜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집으로 보내주면 되는 일이다. 지금 일감도 쌓여있으니 잡일이라도 병윤에게 떠넘기면 자신에게 손해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송씨 아저씨의 화는 이내 가라앉힌다.

“그래 알았다. 너 말대로 잡일이라도 시켜달라고 했겠지. 아주 부려 먹어주마. 너가 결정했으니 후회는 하지 마라.”

“옙!”

그렇게 해서 병윤은 송씨 아저씨의 일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송씨 아저씨는 모를 것이다. 병윤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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