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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12화 (1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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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1937년 12월 10일 인천, 합병 전 조선시대에서 수도 한성의 물자의 거대한 입의 역할을 했던 도시이다. 구한말에 구라파의 세력들과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인천은 주요한 항구도시가 되었으며 그 것은 지금까지의 광경을 보면 잘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누나인 길효순이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소식에 병윤은 무작정 경성으로 상경했다. 물론 가족들과 이야기 하지 않고 몰래 상경했다. 아마 병재와 병주는 필시 자신을 붙잡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윤에게 혹 하나 붙었다.

“이게 바다냄새구나.”

바로 절친한 친구라고 여기는 송감연 녀석이다. 사실 병윤은 혼자 상경할려고 했다. 그럴려고 가족들과 이야기 하지 않은 건데, 딱 감연이 녀석에게 걸리는 바람에 감연과 어찌어찌하다 같이 상경하게 되었다.

“너는 왜 나까지 따라와서 난리냐?”

“뭐 좋잖아. 이렇게 친구 녀석 따라 가서 도시라고 해봤자 문경밖에 안 가본 나에게 경성과 인천이라는 큰 도시를 구경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너 지금 나의 상황을 알고 하는 소리냐?”

“친구 녀석 좋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다. 걱정마라. 얼른 너네 누나를 구출하자고.”

송감연은 그 말을 하고서 시선을 다시 바다로 돌렸다. 방파제에 철썩 거리는 파도의 모습에 송감연은 어느새 풍경을 즐기는 듯 했다.

‘하아. 저 녀석은 내가 놀러가는 줄 아는구만.’

병윤은 송감연의 모습을 보고 이마에 손을 집은 채 얼굴을 찌푸렸다. 그나마 감연과 함께였기에 얻은 성과도 있었기에 마냥 찌푸릴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장씨 아저씨에게 누나의 정보를 마지막으로 말해준 사람은 오쿠보 방직의 사장인 오쿠보 도이미치를 두건을 쓰고 은밀히 기습해서 징발업자의 정보를 얻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때, 감연이 녀석도 두건을 쓰고 망을 봐준 혁혁한 공이 있기에 병윤은 마냥 나무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징발업자가 한주환이라는 녀석이었지? 아마.”

감연은 처음 보는 바다의 광경을 그만 보고 시선을 다시 병윤에게 돌렸다.

“그래. 물론 정확하지는 않지만.”

병윤은 씁쓸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는 오쿠보 도이미치의 정보를 상기시키고 있었다. 병윤의 얼굴을 보니 정보는 그다지 신빙성은 없었다. 협박으로 얻은 정보라서 엉뚱하게 알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주환에게 정보를 얻는 것도 오쿠보의 경우처럼 습격하는 것이 좋을까?”

“글세... 오쿠보의 말을 들어보면 그 녀석 평소에 경비원을 대동하고 다닌다고 하던데.”

역시 나쁜 놈들은 자신의 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인가? 원한 맺은 사람이 많은 지라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자하는 편이다. 사실 오쿠보 녀석도 경비원을 대동하는 편인데 방심해서 혼자 다니다가 둘에게 습격 받아서 얻어터지고는 정보를 분 경우이다. 평상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흐음... 이런 거 원래 장부상 기록하지 않나?”

“장부?”

“그래 장부. 보통 이런 거 기록을 남겨놔야 대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감연의 추측에 병윤은 타당한 지 턱을 스다듬었다.

‘흐음. 장부라... 보통 장부는 금고 혹은 비밀장소에 숨기지 않나? 몰래 들어가는 것은 기술 은밀 덕택에 자신은 있지만’

병윤의 기술 은밀도 어느새 전문 급에 들어서서 집 안 침투는 자신 있는 편이다. 경계 삼엄한 군부대도 몰래 들어갈 자신도 있었다.

‘문제는 금고의 열쇠. 그런 거 찾다가 발각될 수 있어. 가만 열쇠? 대장간에서 일할 때, 자물쇠도 고치지 않았나? 그렇다면...’

병윤은 생각하다 아!하고는 마치 무언 가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미소를 지었다. 감연은 병윤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인지 물어보았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거야?”

“떠올랐지. 너 말대로 장부를 터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인 것 같네.”

“오? 그래?”

“너 만능열쇠 원리 알지?”

“아 그거? 보통 자물쇠 수리하다가 희희덕덕 거리면서 했던 거잖아.”

“그래. 그 방법으로 하자고.”

감연은 병윤의 방법이 좋은 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둘이서 구체적인 계획을 짤 차례였다.

“그런데 한주환의 작업장이 어디인지 알아봤어?”

“훗. 내가 누구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한주환 녀석의 집과 작업장이 줄줄 나오더만.”

“오. 그렇다면 지도는?”

감연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고는 병윤에게 건네주었다. 병윤이 송감연에게 기술들을 가르쳐주었을 때, 설계도 그리는 법도 가르쳐줬는데 병윤이 펼친 종이도 설계도 비슷한 지도였다. 자로 딱 잰 듯 주변건물의 크기와 간격이 종이에 표시되어 있다.

“그럼 이 지도를 기본으로 계획을 세워보자고.”

감연은 일을 시작하려는 병윤의 진지한 표정에 덩달아 자신도 진지해졌다. 병윤은 지도를 기준으로 병윤과 감연이 갈 행로를 결정했고, 적이 감시로 세워 둘만한 곳을 표시했다. 그리고 여기서 일어날 법한 온갖 상황들을 가정하면서 그에 따른 대처방법도 계획했다.

그렇게 두 아이는 비록 12살 먹은 아이였지만 계획만큼은 어느 전문 도둑조직 못지않았다. 그렇게 철저히 도주계획까지 세운 병윤과 감연은 이내 계획이 마음에 드는 지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밤 12시, 징발업자 한주환의 작업장은 한산했다. 비록 불법적인 일이었지만 쉴 때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을 파고든 두 아이가 있었다. 바로 병윤과 감연이었다. 작업장의 불이 꺼지고 사람이 없는 한산함을 확인한 두 아이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 건물 골목 사이사이로 움직였다.

지도를 보면서 다시 확인한 행로를 정확히 밟으며 혹시나 있을만한 감시 역을 확인했던 두 아이는 한주환이 평소 있는 건물 앞까지 당도했다. 병윤은 감연에게 시선을 보내서 망을 보게 만들었고, 자신은 품속에서 만능열쇠를 꺼내며 자물쇠에 끼어 넣었다.

-끼기.. 끼. 딸깍!-

몇 번의 손놀림과 정확함으로 병윤은 자물쇠를 금방 풀었고, 병윤과 감연은 자물쇠를 잠시 치우고 문을 조용히 열어 방 안을 확인했다. 어두웠던지라 방 안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었기에 병윤은 감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윤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고 감연은 다시 문을 닫아 자물쇠를 잠갔다. 그리고 병윤은 방 안의 창문을 열었고, 감연은 그 창문을 통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이제 살펴보자고. 넌 벽에서 찾으면서 혹시나 인기척이 들려오면 알지?”

병윤의 말에 감연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병윤은 책상의 잠겨있는 서랍들을 만능열쇠로 열어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장부가 있는 지 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거 알려지면 끝장이라는 듯 병윤의 원하는 장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젠장... 왜 없지? 혹시...”

병윤은 벽과 바닥 천장을 손마디로 톡톡치면서 소리를 확인했다. 혹시 비밀금고라도 파악 할려는 듯 했다. 그런 병윤의 노력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동양화 걸리는 것 옆에 벽의 소리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미세한 경계를 이루는 것을 확인했다.

‘이걸 어떻게 열지? 아! 여기 그림 안에 작은 막대기가 있네.’

병윤은 얼른 작은 막대기를 밑으로 내렸다.

-그그그-

막대기를 내리자 병윤이 확인한 비밀의 금고가 드러났다. 금고는 열쇠와 다이얼을 동시에 필요했다. 병윤은 우선 금고의 다이얼을 확인하면서 돌렸다. 미세한 소리를 잘 확인하면서 말이다.

-딸칵!-

다이얼식 금고를 수리한 경험이 있었던 병윤에게 다이얼을 해체하기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다이얼 밑에 있는 열쇠투입구에 만능열쇠를 넣었고 해제시켰다.

-끼익!-

금고에는 돈 2천원과 금괴 2개가 있었고, 병윤이 원하는 장부도 있었다. 병윤은 그 것들을 얼른 챙겼고 다시 금고를 닫았다. 그리고 은밀히 창문 밖을 감시 중인 감연에게 말했다.

“챙겼어. 도망가자고.”

감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윽고 병윤과 감연은 혹시나 있을 방 안의 흔적을 지우는 데 주력했다. 이내 보이는 흔적을 모두 제거한 두 아이는 얼른 창문 밖으로 빠져나가 작업장에서 도망쳤다.

약 3시간 뒤, 병윤과 감연은 아까 계획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되돌아오는 길에 사람은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휴우. 다행히 성공적이군.”

송감연이 아까의 긴장을 풀려는 듯 땀을 훔치는 데 반해 병윤은 자신이 훔쳤던 장부를 확인했다. 장부는 위안부매매 명단이라고 적혀있는데, 병윤은 그 명단을 훑어보다가 이내 자신 누나의 이름을 확인했다.

“찾았다. 그런데... 젠장!!!”

병윤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장부를 바닥으로 쿵하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내려쳤다. 그리고 절망감에 주저앉고 말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

병윤은 한 숨을 쉬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궁금증을 여긴 감연은 병윤에게 묻기보다는 내려친 장부를 다시 펼쳤다.

-촤르륵-

“길효순... 길효순... 아 여기있군. 길효순. 중국전선 일본군에게 넘겼음.”

송감연은 황당한지 장부를 힘없이 놓아버렸다.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장부에 중국전선 일본군에게 넘겼다는 한 줄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그 외의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자... 잠깐... 이렇게 되면 한주환을 덮칠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하아... 소용없을 거야.”

병윤은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얼마나 뻘짓을 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징발업자가 일본군에게 위안부를 넘기는 역할로 끝인 것을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징발업자는 위안부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필요까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일본군이 넘겨받은 위안부를 어디 군부대로 보내는지는 일본군의 일이었다.

“그래도 한주환은 위안부를 넘길 때 만났던 일본군을 알고 있지 않을까?”

“......”

“그 녀석을 덮치면 자동적으로 너 네 누나를 찾을 길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하아. 보통 중국전선에 간다면 상하이에 모인다고 했지?”

“그래 장부에도 써져 있다고.”

병윤은 다시 일어나서 장부를 확인했다. 거기서 한주환 개인의 의견도 써져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알기론 위안부는 상해주재 군부대에 모이는 것으로 확인된다. 앞으로 돈을 직접 벌어먹기 위해선 상해로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적혀있었다.

“... 가야겠네. 상해로 말이야.”

“그런데 상해로 어떻게 가지?”

“뭐 어쩌긴 어째? 지금쯤 중국과 전쟁이 터졌고, 알고 보니까 지난달에 상해를 일본군이 점령했으니까 아마 상해로 가는 배도 통제받지 않을까 싶은데.”

감연의 표정은 우물쭈물했다. 생각해보니 상해로 가는 배는 보급품을 자주 싣는 듯 했다. 이 시기에 상해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 했다.

“어쩌지?”

병윤은 이 난감한 사태에 울고 싶었지만 골똘히 생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술들과 능력은 많다. 분명히 방법이 있으리라. 이내 방법은 생각났는지 눈을 떳지만 대신 얼굴을 찡그려졌다. 감연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 여겨졌다.

“휴우. 이거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는데.”

“그게 뭔데?”

“상해로 밀항할 수밖에 없어.”

“밀항?!”

감연은 아까도 장부를 훔치느라 다리가 후덜덜한데 이제는 한 차례 넘어서는 밀항까지 언급되자 손이 떨렸다. 병윤은 손발을 떠는 감연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뭐 겁나면 집으로 돌아가도 좋아.”

그 말에 감연은 속으로 찔렸지만 오히려 그 말을 부정할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나 겁 안 났어. 밀항 좋지. 밀항 하자고.”

“너 진짜 괜찮겠어? 너 아빠가 걱정하시지 않을까?”

“젠장! 아빠 혼자서도 잘하겠지.”

“이 불효자식 보소.”

“그래 나 불효자식이다. 그런데 아빠야 나를 걱정하시겠지. 그러나 아빠가 그런다고 아들생각에 일까지 때려 칠 정도로 식음을 전폐하나?”

“에효.”

병윤은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이내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친구 녀석 좋다는 게 괜히 하는 이야기야? 어이 친구. 같이 가자고.”

“나도 답이 없지만 너도 어지간히 답이 없다.”

“그래 나 답 없다. 이 답 없는 친구야.”

그렇게 병윤과 감연은 상해로 밀항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여관에서 짧은 새벽을 보낸 병윤과 감연은 새벽에 훔쳐왔던 돈으로 대금을 지불했고, 그 돈으로 밀항할 때 필요한 도구와 중국 대륙을 갈 때 필요한 도구들을 샀고, 자신이 발견한 은밀한 장소에 주머니 속에 넣을 만큼 작은 도구들을 제작했다. 예를 들자면 다용도 칼이라든지 손잡이가 접히는 금속제 망치 같은 거 말이다.

자신들이 샀던 모든 것들을 둘이 멜 수 있는 가방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상해로 떠나는 모든 배들을 확인했고, 자신들이 밀항할만한 배를 골랐다.

“저게. 상해로 떠나는 수송선인 아리마루호인가?”

배의 톤수로 따져도 수 천 톤에 이를 만큼 거대한 수송선인 아리마루호는 항구에 정박해있었고, 그 주위에 인부들이 짐들을 하역하고 있었다. 배의 갑판에는 소총 아리사카를 오른쪽어깨에 짊어 든 일본군 견시수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젠장. 경계가 삼엄한데. 어떻게 들어가 밀항하지?”

“흐음...”

병윤은 생각했다. 저 배에 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어느 것이 있을까? 이내 생각을 끝낸 병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방법은 두 가지야.”

“두 가지씩이나?”

“그래. 첫 번째는 저 인부들이 짊어지는 짐 속에 숨어드는 것이야.”

“짐 속에?”

“그래. 우리가 숨을 수 있을 만큼 큰 짐에 숨는 것이지.”

“으음.”

감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숨는 큰 짐이 쌓여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요한 큰 짐들은 이미 옮긴 듯 항구에 남은 큰 짐은 방수포로 둘러싸인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저 큰 짐들은 아마 배에 운송하지 않을 건 가봐.”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 밖에 없네.”

“그게 뭔데?”

“너 가방 안의 짐들 방수포로 보호했지?”

“서... 설마?”

“그래. 두 번째 방법은 바다에 입수해 잠수해서 배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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