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3화 (1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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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야 여기서 저 쪽까지 잠수하려고?”

송감연은 멀리서 보이는 아리마루호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 잠수를 시작하기에는 딱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어쩌겠어. 지금이라도 가까우면서 들키지 않는 잠수지점을 생각해보던가?”

이내 감연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렀지만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병윤의 위치선정은 탁월했다. 거리는 문제였지만 일단 주위에 사람들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입과 코 안에 바닷물을 들이키면 어쩌지? 바닷물이 매우 짜다고 하던데.”

그 말에 병윤은 얼른 가방 속에서 물안경 2개를 꺼냈다. 언제 물안경을 샀단 말인가? 아니 산 게 아니라 보니까 병윤이 따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러나 감연은 그 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이거 갖고 잠수하기 싫어?”

“젠장할 녀석. 줘.”

병윤은 감연에게 물안경 하나를 획 꺼냈고, 감연은 그 걸 휙 받아서 바로 얼굴에 썼다.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성능은 탁월했다. 그 누가 뭐래도 병윤이 만들었기에 성능은 진짜 탁월했다. 물론 감연도 저렇게 만들라면 저렇게 만들 수 있지만 말이다.

-풍덩!-

가방을 단단히 결속시킨 병윤은 자신이 먼저 바닷속으로 풍덩 빠져들었고, 그 즉시 감연도 병윤따라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황해, 이름만 들어도 황해는 누렇고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아이는 위치를 확인하고자 물 위에서 잠시 떠오르고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잠수하는 식으로 아리마루호로 다가갔다.

이윽고 아리마루호의 배 밑을 확인한 병윤과 감연은 자연히 배 안에 침투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자 자연히 배의 창문을 생각했고, 병윤과 감연은 배 주위의 인부와 견시병의 시선을 피해서 창문을 향해 다가갔고, 둥그런 창문을 넘어서 배 안에 성공적으로 침투했다.

“휴우. 일단 배 안으로 들어간 거 같은데. 어디서 숨지?”

“글쎄다.”

-뚜벅뚜벅-

아주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두 아이는 얼른 그 소리를 알아차리고 당장 시야를 피할 숨을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아! 여기여기!”

병윤은 닫혀있는 방을 발견하고는 얼른 락픽으로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감연을 잡아당기고는 다시 방을 잠갔다.

-뚜벅뚜벅 텅 텅-

이제는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철제계단을 내려오느라 발걸음 소리가 이질적으로 변했다. 이제 소리는 방 밖까지 들렸고, 두 아이는 방 안을 두리번거려서 겨우 숨을만한 곳을 찾고 그 안에 숨었다.

-뚜벅뚜벅-

이윽고 방문 앞까지 발걸음소리가 들렸고, 이내 두 사람이 침투한 것을 못 느끼는지 다시 발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즉 그냥 복도를 지나친 것 같았다. 이내 발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병윤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들킬 뻔 했네.”

“그러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지?”

먼지로 둘러싸인 물건들. 아마 지금까지 사람의 손이 타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이에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방은 안 쓰는 창고인 것 아닌가라는 추측이 들었다.

“흐음. 잘 된 거 같군.”

“잘 되다니 무슨 소리야?”

“주위를 둘러봐. 먼지로 가득 찼잖아.”

그 말에 감연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감연 역시 병윤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운이 좋았네.”

“그래 여기 평소 잘 안 쓰는 창고 같은데 잘 됐어.”

“일단 여기서 상해로 갈 때까지 있으면 되겠군.”

“그래 맞아.”

그렇게 운이 좋게 아리마루호를 탑승하게 된 병윤과 감연은 상해로 떠나게 되었다.

1937년 12월 13일, 병윤과 감연은 드디어 중국대륙의 입구라고 불리는 상해에 도착했다. 아리마루호에서 빠져 나가는 것도 침투할 때랑 동일했다. 바로 창을 넘어서 바로 바다로 풍덩한 것이다.

그렇게 상해의 항구,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뭍으로 겨우 상륙한 병윤과 감연은 겨우겨우 상해에 도착했다. 병윤이야 기술 운동숙달의 영향으로 지치지 않았지만 감연은 달랐다. 병윤따라 거듭된 잠수와 밀항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피곤한가 보네.”

감연은 겨우 바다에서 빠져나오자 헉헉대면서 한 마디 감상을 날렸다.

“내가 이런 짓을 다시 하면 내가 미친놈이지. 바다는 역시 바라만 보는 게 좋은거야. 제기랄.”

“이제 상해에 도착했는데 너 중국어 알어?”

“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 어쩌지. 나도 중국어 모르는데.”

“너 형들에게서 영어 배우지 않았냐?”

“영어? 여기서 영어 쓰이기는 한데?”

감연은 병윤이 모르는 것이 있는 것에 대해 의외로 기분이 좋았다. 그 때문인지 감연은 힘든 것은 둘째치고 자신 있게 상해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 이 자식. 뭔가 모르는군. 아빠가 이야기했는데 상해는 영어를 쓸 수 있데. 물론 조계지에서의 일이지만 말이야.”

“조계지?”

“그래. 아빠 말에 의하면 조계지는 구라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래. 조계지라도 불란서, 영길리 등 여러 국가가 살고 있지만 말이야. 영어는 영길리 사람이 쓰니까. 영길리 조계지로 가는 게 좋을 거다. 아마도. 거기서 중국어책이라도 사는 것이 나을 거야.”

“허. 송씨 아저씨가 그런 곳을 갔다 왔나? 왜 이렇게 빠삭하지?”

“내 아빠 친한 친우인 박씨 아저씨가 있는데, 그 분이 워낙 여행광이라서 내 아빠에게 들려줬어.”

“박씨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군.”

“그래. 일단 쉬고 영길리 쪽 조계지로 가자고.”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어.”

“아 뭔데?!”

“영길리 쪽 조계지는 어디지?”

“그거야 내가 아냐? 그냥 상해 거리에 있는 코가 큰 구라파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그래 그렇구나.”

“말 시키지마. 힘들어 죽겠어.”

말을 끝낸 감연은 털썩 주저앉고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몇 시간을 감연의 체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아침에 쉬기 시작해서 그런가. 12월 추운 날씨에 바닷물에 젖은 옷들이 다 말랐다.

“옷도 다 말랐네. 그리고 좀 춥고 말이야.”

“일단 책만 사자고.”

“그래.”

병윤과 감연은 터덜터덜 일어나서는 아까 있던 장소에서 벗어나 상해 시가지로 들어갔다.

상해는 거대했다. 시가지를 찾는 것도 꽤 오래 걸렸다. 시가지에서 영어가 통하는 구라파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오히려 멸시를 받았다. 못생기고 냄새나는 쿨리라는 대사는 그냥 기본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오히려 말을 붙었다고 화를 내는 인간도 있었다.

덕분에 병윤과 감연은 화가 난 상태였다. 마치 구라파 사람들은 동양인을 보고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덕분에 반 욕설을 듣고 반은 정보를 들었다. 즉 욕설을 섞으면서 정보를 전달해줬다. 이렇게 말이다.

“아 냄새나는 쿨리 새끼가 어디 기어 들어와?! 저리 안 꺼져? 뭐 영국 조계지가 어디냐고? 씨발 거기가서 뭐하게? 조계지는 저쪽이니까 꺼져.”

겨우 욕설과 모욕을 참으며 영국 조계지를 찾은 병윤과 감연은 서점에 당도할 수 있었다. 물론 서점 안에 들어오니 서점주인의 안 좋은 말투는 덤이었다.

“하 거지새끼들이 여기까지 기어들어오나?”

역시나 듣는 모욕에 병윤은 이내 익숙한지 안면하나 안 바꾸고 서점 주인에게 용건만 물었다.

“책을 살 까 합니다.”

“얼씨구. 언제 우리말을 그렇게 배웠데.”

“일단 말을 배운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책 있어요? 없어요?”

“젠장. 뭐 원하는데 빨리 말해. 쫓아 보내기 전에.”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와 사전이 필요합니다만.”

“뭐 중국어? 하하하 난생 처음 듣는 농담이다. 여기서 중국어로 씨부리지 않고 영어만 배웠냐?”

“있어요? 없어요? 빨리 사고 나갈테니까.”

“허. 말하는 싸가지 보소.”

“책 팔기 싫으면 나갈까요? 돈 받기 싫어요?”

“젠장! 돈이 원수지. 잠시 기달려.”

서점주인은 투덜거리면서 자리에 일어나 자기나라의 국민을 위한 중국어 교재와 사전을 들고 왔다.

“얼마죠?”

“참고로 중국 돈은 안 받아.”

“일본 돈은 받나요?”

그 말에 서점주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영국 파운드나 미국 달러가 없으면 꺼져. 씨발 어디서 통용되지 않는 돈을 가져와가지고.”

이내 욕을 퍼붓던 서점주인은 시선을 돌려 시계를 쳐다본다. 시계는 매우 오래돼 있었다. 초침도 겨우겨우 들어가는 듯 했다. 서점주인은 그 시계의 모습에 짜증이 나고는 한 마디 퍼붓는다.

“젠장. 재수 없기는 시계도 그러네. 시계도 빨리 바꾸던가 해야지.”

‘시계? 혹시?’

병윤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감연을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말투를 바꾸고는 말했다.

“저 아저씨.”

“뭐? 안 꺼졌냐? 빨리 안 꺼지면 경찰 불러서 콩밥 먹일거야.”

“저 시계. 우리가 고쳐주면 책들 받아줄 수 있나요?”

서점주인은 이 말에 눈살을 찌푸린다. 상대는 척 봐도 어린아이가 분명하다. 그런 아이가 시계를 고치겠다니? 이것이 어른을 골탕 먹이는 거짓말이 아니고서야 뭐겠는가?

“지랄하네. 저거 얼마짜리인 줄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거야?”

“고칠 수 있어요. 고장 내면 물어주면 되잖아요.”

“뭘로 물어줄 건데?”

“에이 썅! 여기 됐죠?”

병윤은 가방에서 500원가량의 지폐를 꺼내면서 서점주인 앞에 내밀었다.

“이래도 고장 나면 그 돈 아저씨가 다 가져요.”

서점주인은 어느새 눈앞의 돈을 보자 탐욕이 일은 듯 했다. 비록 잘 받아주지 않는 일본 돈이지만 환전하면 그만이다.

“뭐 믿어보지.”

서점주인은 달칵달칵 거리는 시계를 떼어다 병윤과 감연에게 건네주었다. 시계를 건네받은 두 아이는 가방 속에서 작업도구를 꺼내다 시계를 분해하기 시작했고, 분해한 시계의 부품들을 일일이 검사하며 연장들을 이용하여 다시 수리했다.

“허. 너희들 어디서 일이라도 했냐?”

서점주인은 병윤과 감연의 일솜씨에 감탄이라도 했다. 저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아마 시계를 가장 잘 고치는 장인이라도 저렇게는 못 고치리라. 병윤과 감연은 부품의 수리가 끝나자 이내 시계를 다시 조립했고, 시계의 겉을 기름 묻힌 헝겊으로 닦으면서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서점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씨발 너희들은 어미 뱃속에 태어나서부터 시계를 고쳤냐?”

서점주인은 투덜거리면서 새 것처럼 수리한 시계를 다시 벽장에 걸었다. 그리고는 아까 뽑은 책들을 병윤과 감연에게 건넸다.

“자 여기 있다. 너희들이 무슨 일로 중국어를 배우는지 모르지만 차라리 시계 고치는 게 돈 많이 벌겠다.”

“그럼 장사 잘하세요.”

어느새 연장들을 정리하여 가방 속에 넣은 병윤과 감연은 서점주인에게 책들을 받고는 희희낙락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홀로 덩그러니 있는 서점주인은 병윤과 감연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시발놈들. 시계 고치는 기술 하나는 좋네.”

병윤과 감연은 서점주인에게 받은 중국어 교재와 사전을 보면서 중국어를 익히고 있었다. 물론 병윤의 눈앞에 글들이 떠오른 것은 병윤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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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 언어

[이름] : 중국어

[숙련등급] : 입문

[숙련도] : 0단 0%

[상세] : 중화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및 중화권에 살았던 사람들이 주로 쓰는 언어와 글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서 쓸 수 있는 단어들의 수가 더욱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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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윤은 중국어 교재를 속독했고, 그 걸 사전과 비교하면서 중국어에 대한 체계를 뇌에 확실히 새겼다. 옆에서 감연이 그 것을 보고 놀란 얼굴을 지었다.

‘저 녀석 무언가 새로운 거 익히면 저렇게 집중했지.’

간씨네에게 받은 전기에 관련된 책도 솔직히 감연이 처음 보면 머리만 아파서 집어던졌지만 병윤은 달랐다.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파악해서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중국어 관련 책들을 다 읽고 감연에게 설명해주는데 감연은 그때야 그 어렵기 만한 책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감연은 병윤을 통역사로 보고 있었다. 물론 자신을 잘 이해시킬 수 있는 통역사였지만 말이다. 아마 병윤이 선생 짓을 해도 인생의 앞길이 확 피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하루 동안 중국어를 공부한 병윤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감연에게 차츰차츰 설명해줬고, 명인에 이른 정치숙달, 조직학, 교육숙달, 훈련을 통해서 감연도 아주 빠르게 중국어를 익혀 나가고 있었다.

아마 중국인이 이 광경을 본다면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으리라. 저렇게 빠르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인간과 배우는 인간을 목격하면 자신도 한 수 가르쳐 줄 수 없냐고 물어볼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감연에게 중국어 강연이 끝나고, 아주 기초적인 중국어를 쓸 수 있는 병윤과 감연은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상해에서 위안부가 자주 모이는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일본군 부대는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 만약 누나를 찾고 구출한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를 말이다. 그렇게 병윤과 감연에게 희망이 보일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갔으면 모든 인간들에게 불행이라는 단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병윤과 감연은 곧 망연자실한 현실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병윤의 기술과 능력으로 어쩌지 못한 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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