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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15화 (1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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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그렇게 침들로 준비를 마친 병윤은 아까 지져준 의료용 칼로 젊은 병사의 썩은 상처들을 쨌다. 병윤은 병재에게 의술을 배운 것이 허투루 배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정확히 썩은 살만 도려냈다. 그리고 침들을 다시 놀려 도려낸 곳에 피가 나오지 않게 한 뒤 소독제를 뿌리곤 붕대로 감쌌다.

그리고 침들과 의료용 칼들을 이용하여 젊은 병사의 겉에 보이는 상처들을 치료하고 붕대로 감았다. 그리고 침들을 놓아서 상처가 치유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입에 진통제와 깨끗한 물을 먹였다.

“허어. 거참 그런 거 언제 배웠데?”

“큰 형에게 배웠어.”

“네 큰 형이 네가 이렇게 치료한 걸 알면 돌아가시겠는걸.”

“어쩔 수 없지. 급한 걸.”

“일단 여기가 그나마 일본군의 시야에 벗어난 걸로 보이니까. 여기서 지낼까?”

“뭐 그래야지.”

병윤과 감연은 가방에서 연장들을 꺼내고는 일단 잠시 머무를 만한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위의 풀과 나뭇가지를 모아서 비를 피할 곳을 만들었다. 그리고 젊은 병사가 메고 다니는 가방을 풀어서 혹시나 모를 필요한 물품 등을 꺼냈다. 다행히 가방 속에는 모포 하나가 있어서 그걸 정신 잃은 젊은 병사에게 덮었다.

그렇게 잠시 쉴 곳을 만들고 하루라는 시간이 흘렀다.

“......”

“안 깨어나는데? 죽은 거 아냐?”

“숨은 편안히 쉬고 있어. 차라리 깨는 게 문제인걸.”

“그렇지. 팔과 다리가 잘라졌으니까 말이야. 장애인이라는 이야기 아냐?”

“장애인이라. 그렇게 될까?”

“팔과 다리 한쪽 씩 없으면 장애인이지. 그럼 뭐야.”

“뭐 너에게 알려두는 건데. 사실 큰 형에게 한 가지 비기가 있어.”

“비기?”

감연은 호기심이 동한 듯 고개를 병윤에게 가까이 붙였다.

“그래. 비기. 뭐 재생의학이라는 건데. 없어진 신체를 다시 재생시킬 수 있는 기술이지.”

“뭐?! 그게 가능해? 신도 그건 불가능해!”

“가능하기는 해. 단지 전제조건이 있지만 말이야.”

병윤의 가능하다는 확신 어린 표정으로 말하자 감연은 매우 믿지 못한 눈치였지만 마지못해 말했다.

“뭔데?”

“음식이야.”

“음식? 그게 무슨 소리인데?”

“생각해봐라. 살을 다시 재생시킬 때, 여분의 살이 필요하지 않아?”

그 말에 감연은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거 아니냐는 얼굴이었다.

“너 자랄 때. 음식 먹고 자라지.”

“그거야 당연하지 않아? 아! 그래서 식량이 필요하겠군. 식량이 있어야 그걸로 살을 만들고 살로 재생시킨다고?”

“그렇지. 사실 부작용이 있기는 해. 굉장한 허기를 가진다는 것이 문제지.”

“얼 만큼 허기를 가지는데?”

“한 10일 먹을 것을 하루 만에 먹어야 될 정도?”

“이런 미친.”

“뭐 그렇지. 이 재생의학이란 것도 대가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에휴. 그래도 그 정도 대가면 다행이다.”

“뭐 다행이지.”

“흐음 여기서 식량 구할 것은 물고기 밖에 없는데. 주구장창 저 형, 물고기만 주구장창 먹겠네.”

“뭐. 맛은 겁나 없지만 마지못해 먹을 수 있는 풀도 몇 개는 있어. 그걸 요리하면 되니까. 상관은 없겠지.”

“너도 참 잔인하다.”

“살아야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감연은 그 말에 맞다는 듯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치료가 끝난 젊은 병사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3일 뒤였다. 그 동안 병윤과 감연은 냇가에 있는 물고기들을 낚시하면서 훈제하고 저장하고 그랬다. 즉 병사의 팔과 다리를 재생시킬 수 있는 식량들을 마련한 것이다.

젊은 병사는 눈을 떠보니, 천의 천장이 아니라 왜인지 수풀로 엮어진 곳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수술했다지만 상처의 고통들이 젊은 병사가 깨어나자마자 전해졌다.

“으윽!”

그리고 오른쪽 팔과 다리의 감각은 느껴졌지만 이내 왼쪽 팔과 다리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 쪽은 정상이었다. 얼굴의 양쪽 눈 전부 다 정상이었고, 코도 벌렁거렸고, 입도 문제는 없었다. 그 때문에 젊은 병사는 지금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다.

온 몸에 힘이 없던 지라 목만 움직여 시야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는 보았다. 왜 왼쪽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는 지를 깨달았다.

“팔과 다리가 없어? 으으으... 으으으... 안 돼...”

젊은 병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비명은 저지를 힘이 없어서 아까의 말도 간신히 소리 낸 것이다. 오히려 속으로 곰곰이 자신이 어떻게 상황에 처해있는 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때는 남경대학살이 한창 진행 중에 있을 때였다. 젊은 병사의 이름은 신철유, 국부군 보병 104사단에 속한 병사였다. 그는 장개석 휘하의 직할령 병사였다. 평소에 2번째로 상해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에 대해서 승리를 맛보기도 한 정예 병사였다. 그러나 상부의 정확하지 않은 판단과 일본군의 예외적인 강력함에 밀려 상해에서 후퇴, 남경에 이르렀다.

남경정부는 중경으로 도피하였다. 당생지가 남경방어부대의 사령관에 남았다. 하지만 파죽지세의 일본군의 기세에 못 이겨 자신만 나살려라 도망가고는 유일한 도망길인 다리를 끊었다. 그리고 신철유와 그의 전우들은 지옥을 맛보았다. 어떤 중대는 항복하다가 거짓항복이라고 학살당하지 않나? 죄 없는 민간인 부녀를 끌어다 우물 속에 집어넣고는 수류탄을 던져서 학살하지 않나? 아예 귀찮다고 기관총으로 포로들을 다 죽이고, 그 것도 심심하다고 사람들을 참수하기까지 했다.

일본군들은 진정으로 악마였다. 아니 악마도 저런 짓은 안 할 것이다. 신철유와 그의 전우들은 빨리 남경에 탈출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무작정 장강에 놓여진 쪽배를 찾다가 재수 없게도 그들을 발견한 일본군 포병부대가 박격포로 날려버리는 것으로 기억은 끝났다. 아마 팔과 다리가 잘린 것도 박격포의 영향이겠지.

‘이렇게 죽는 것일까? 아니 살아도 장애인이 되겠지. 여타 다른 군인처럼 팔 다리 없는 장애인이 말이야.’

신유철은 눈물을 흘렀다. 자신이라도 이런 결과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가난하게 태어났고 살기위해서 군인에 지원했다. 운 좋게도 군인들 중 가장 형편이 좋다는 국민당 직할부대에 뽑혔지만 이젠 다 끝났다. 팔 다리 없는 병신을 누가 써줄 것인가? 돈은 벌 수 있을까? 아니 살 수는 있을까?

암담한 미래에 신유철은 절망감이 들었다. 그렇게 운명에 대해 한탄하고 있었던 신유철에게 자신을 구해준 두 사람을 보았다.

‘아이?’

12살 소년, 그 정도 되는 어린아이다. 얼굴의 살을 보니 삐쩍 마르지는 않아 잘 먹는 듯 했다. 그러나 조금 헤진 옷을 볼 때, 신유철은 오히려 헷갈렸다.

“정신이 드세요?”

신유철에게 말을 건 두 아이 중 하나, 신유철을 치료해준 병윤은 며칠 배운 조금 어색한 중국어로 신유철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들은 누구야?”

신유철은 아까의 절망감을 뒤로 한 채, 호기심이 들자 말이 나왔다. 조금 쉬었던지라 말을 할 체력은 회복된 거 같았다.

“저는 길병윤이고, 저 녀석은 송감연입니다.”

“길병윤, 송감연?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디지?”

“당신 발견한 곳에서 냇가에 가까이 있는 곳이요. 당신을 치료할려고 임시적으로 만든 거처에요.”

“으음... 그런데 상처를 감싼 붕대들은 누가?”

“저와 제 친구가 했어요.”

“너희들이?”

“예. 우연히 의료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해서 썼지요.”

“그런 거 군의관들이 하지 않나? 척보기에도 어려보이는 너희들이 날 치료했다고?”

“의사였던 형이 있어서 치료한 것 뿐이에요.”

“그건 그렇고 내 왼 팔, 왼쪽 다리 너희가 자른 거야?”

그 말에 병윤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미 발견한 당시 팔과 다리는 날라가 버린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였다.

“으음... 하... 어쩌지...”

“아 맞다. 조금 준비는 하세요.”

“준비라니?”

“팔과 다리를 재생시킬거에요.”

“뭐라고?!”

신유철은 깜짝 놀랐다. 이 아이가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를 하는 것인가? 팔과 다리를 재생시키다니 가능한 일인가?!

“뭐. 사람에게 처음 하는 일이지만 잘 될 거에요.”

“뭐어?!”

“치료 받을 거 에요? 안 받을 거 에요?”

신유철은 오히려 확신어린 병윤의 눈빛을 보아하니 조금 신뢰성을 가졌지만 그래도 그런 불가해한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있던 신유철은 승낙도 거절도 아닌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 모르겠어.”

“네에?”

신유철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말했다.

“치료해주었으면 좋겠어. 살아가도 팔다리 병신이 되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낫겠지.”

“쩝. 알겠어요. 감연아. 준비 좀 해줘.”

감연은 병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금 움막 안에는 병윤과 신유철 두 사람 밖에 안 남았다. 병윤은 가방 속에 침통을 꺼내곤 말했다.

“허기질 것이에요.”

“응 그게 무슨?”

병윤은 얼른 신유철의 몸에 침들을 꽂았다. 현란한 손놀림, 마치 자로 된 듯이 꽂는 병윤의 솜씨에 젊은 병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침을 놓을 때, 따끔거리지도 않았다. 상처의 고통 때문에 침이 들어간 감각도 마치 모기 무는 것처럼 느껴졌다.

“준비 됐어?”

“아 여기.”

흙으로 빗고 구운 그릇 위에 놓여 진 풀때기와 훈제물고기 등을 신유철 앞에 놓았다. 평소에는 쳐다보지 않는 것들. 너무 배고파서 먹을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신유철은 속으로 저 것들을 매우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배가 고파지지? 으으 너무 배고파. 안되겠어.’

신유철은 나머지 오른 팔로 허겁지겁 풀 때기와 훈제물고기들을 집고는 입에 가져대었다. 평소에 쳐다보지 않는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매우 맛있을 수가 없었다. 병윤은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상대로 한 재생의학은 성공적이었다.

“감연아 물도 갖다 줘. 체하겠다. 저 사람.”

“쳇. 알았어.”

감연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물이 채워진 수통을 신유철에게 건넸다. 물론 목이 조금 멕힌 신유철이 수통의 물을 한 점 없이 싹 마셨다.

그렇게 신유철의 식탐은 감연이 열 번 째로 그릇을 다시 채우고는 끝이 났다. 신유철은 언제 이렇게 먹어봤는지 몰랐다. 이렇게 이상한 맛이 나는 풀때기도 어떤 천상의 맛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훈제물고기는 더 이상 설명을 생략할 정도였다. 그러나 식욕을 채운 신유철은 궁금증이 일었다. 아까의 비정상적인 식욕, 그건 너무할 지경이었다.

“으으.. 그건 뭐지?”

“팔과 다리를 재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주죠. 조금씩 쉬면 자라날 것이에요. 팔과 다리가.”

“그런가? 거 신기한 일이 다 있네.”

신유철은 병윤이 한 말을 믿지 않은 듯 했다. 그냥 식탐 한 번 불러 일으켰다고 팔과 다리가 돋는다면 그건 아마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겠지. 신유철은 상상속에서 할법한 것이라고 여겼다. 병윤은 다시 침을 놓았고, 신유철은 마취를 당한 것처럼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이 되자 신유철은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아니 너무 현실같지가 않아서 말이 안 나왔다. 잘려진 왼쪽 팔과 다리가 재생하고 있었다. 어깨 죽지부터 잘라진 팔이 원래 팔의 팔꿈치만큼 재생했고, 다리 역시 무릎만큼 재생했다. 신유철은 이게 꿈인지 생신인지 볼에다 오른팔로 세게 꼬집었다. 아프다. 얼얼했다. 이건 현실이었다.

“정신이 조금 들었어요?”

어제의 자신을 치료해준 병윤이 다시 찾아가서 신유철에게 물었다. 신유철은 정신이 멍해있었다가 병윤을 발견하자 눈빛이 되살아났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거야?”

“어제 말했잖아요. 팔과 다리를 재생시킨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뭐 저를 포함해서 몇 명만 가능한 일이지만요.”

“당신 혹시 신선입니까?”

신유철은 정말로 이런 믿기지 않은 일에 자신이 혹시 전설속의 어린 신선을 만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신선이 아니라면 이런 결과를 나타낼 수 없었다.

“신선은 무슨. 헛소리마시고 어제처럼 게걸스럽게 먹게 될 테니 준비하고요.”

“......”

병윤은 다시 침을 놓았다. 아까의 과정은 어제의 반복이었다. 식욕이 활성화가 된 신유철은 돼지처럼 먹어댔고, 병윤은 침을 놓아 다시 마취시켰다. 그런 과정을 내일까지 반복했다.

12월 27일, 추운 날이었다. 일본군이 여기 순찰할 낌새는 안보였다. 아니 인기척이라곤 움막 안에 있는 세 사람이 전부였다. 신유철은 오늘 특별했다. 그리고 눈을 깜빡여서 자유자재로 왼쪽 손가락을 움직였고, 왼쪽 발가락을 움직였다. 이 감각, 이건 기적이었다. 다시는 못 느낄 감각이었다. 그러나 느껴졌다. 지금 느껴졌다.

“......”

신유철은 다시 찾은 팔과 손, 다리와 발에 말을 못 잊었다. 다시 재생된 새 팔과 새 다리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하얗고, 손의 핏줄이 요동치는 것이 눈에 선히 보였다. 신유철의 팔과 다리를 덮는 옷이 찢어져 맨살뿐이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지금의 이 감각 느끼고 싶었다.

“다행히 잘 재생되었네요.”

병윤이 신유철의 모습을 보고 처음 한 소리였다. 마치 익숙한 일을 끝내고 감상을 말하라고 할 때, 대답하는 그런 말투였다. 그러나 신유철은 병윤을 보고 자신의 새 팔과 새 다리를 보고, 병윤을 보고, 새 팔과 새 다리를 보고 그렇게 시선을 돌리다가 문뜩 병윤을 껴안았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흑흑흑...”

“이거 놓아요.”

병윤은 이렇게 좋아하며 우는 신유철의 감정에 당황스러운지 가까스로 힘을 써서 신유철을 간신히 떼어놓았다.

“선생님. 감사해요. 전 전...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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