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6화 (1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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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신유철이 아주머니에게 감사를 표하자,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군복을 입은 신유철을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말한다.

“걱정 말고 얼른 쉬게나.”

아주머니의 그 말에 신유철은 미소로 그 아주머니에게 화답한다. 위험지역을 빠져 나가는데 성공한 신유철과 병윤, 감연은 어느 한 민가에 쉬고 있었다. 위험지역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세 사람은 배낭을 메고 중경으로 무작정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가는 길에 식량이라든지 기타 필요한 물품 등은 따로 구했야 했다. 식량이야 병윤과 감연 둘이서 채집했고, 그나마 어른인 신유철이 그 둘이 일을 하러 간 사이 짐을 지키기로 하였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며칠을 걸었을까? 지금의 이 외딴 민가를 발견할 수 있었고, 거기서 지금처럼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서 여독을 풀 수 있었다. 민가에는 아까의 아주머니 외에 몸이 불편한 아저씨와 두 여자아이가 있어서 민가의 생계는 거의 아주머니가 책임지고 있었다.

한편, 병윤은 여자아이들이 머무는 방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이 익힌 의술들을 베풀고 있었다.

“아야! 아 따가워.”

여자아이 중 언니에 속하는 여자아이는 병윤에게 침을 맞자마자 칭얼거렸다. 대략 10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로 병윤과 나이 차이는 2살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년배 아이보다 이 여자아이는 체구가 작았고, 또 큰 형에게 의술을 배운 병윤이 보기에는 이 여자아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여자아이의 칭얼거림에 병윤은 굳은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그 여자아이를 엄하게 대한다.

“조금만 참아. 너 그러다 멋진 남자 못 만난다.”

병윤의 그 말에 여자아이는 병윤에게 소리 지른다.

“흥! 안 그래도 오빠같이 못생긴 호박을 만날 생각은 없어!”

침을 맞은 것이 귀찮고 아팠기 때문인가? 여자아이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면서 의사 노릇을 하는 병윤의 모습에 아예 삐진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런 여자아이의 모습에 병윤은 영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슬 여자아이에게 침놓는 것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밝은 미소로 여자아이에게 묻는다.

“어때? 속은 괜찮아?”

그 말에 아까부터 삐져있던 여자아이는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더니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리고 기쁜 듯 소리쳤다.

“아프지 않아! 우와!”

아까의 삐짐은 어디가고 기쁘고 건강하다는 것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병윤은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었다. 한창을 나돌아 다닌 여자아이는 슬며시 병윤을 보더니 한 마디 한다.

“오빠는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부모님이 자주 찾는 그 의사보다 훨씬 실력이 좋은 것 같아.”

병윤은 그 말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여자아이에게 답한다.

“의술은 알지 않아도 돼. 지금은 네가 건강한 모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

병윤의 친절한 말에 여자아이는 아까의 삐진 것은 어디가고 오히려 함박 웃음을 지으며 병윤에게 물었다.

“우와. 나와 비슷한 다른 아이들은 그런 말을 못하는데. 오빠는 뭔가 달라 보여. 나도 2살 더 먹으면 오빠처럼 돼?”

여자아이는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병윤을 쳐다본다. 병윤은 그 눈빛에 조금 함락당할 위기가 찾아오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

“치! 그게 뭐야?!”

그 때, 병윤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던 여자아이는 난데없이 얼굴을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병윤을 바라보며 한 가지 말한다.

“그런데 아빠도 치료해 줄 수 없어?”

자신보다 나이가 2살 많은 병윤이 의외로 실력 좋은 의사인 것을 확인하자 그렇게 말하는 여자아이였다. 병윤은 그 물음에 잠시 생각하더니 그 여자아이에게 말한다.

“글쎄. 이 집의 아주머니도 네가 몸이 나은 것을 보니 생각이 바뀌겠지.”

“맞아! 오빠의 솜씨는 정말 대단해!”

여자아이는 자리에서 털썩 일어나서는 어느새 밖으로 나가 논 것 같았다. 그 때 밖에서 잠시 일을 하던 감연이 안에 들어서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허참. 너는 큰 형에게 의술을 얼마나 오지게 배웠으면 저렇게 치료하냐?”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감연에게 권유한다.

“너도 배워 볼래?”

“아서라. 그런 거 익히다 머리 아파 죽을 거 같다.”

감연은 골치가 아픈 듯 표정을 찌푸리면서 손사래를 쳤다. 지난 번 병윤에게 호기심을 갖고 가르침을 청한 것이 그렇게 징할 줄은 몰랐던 감연에게 의학까지 배운다면 머리는 터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 신유철이 병윤과 감연이 있던 곳으로 가까이 오더니 기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한다.

“휴우. 이 집의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일단 쉴 수 있을 거 같다.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즘 이 민가 근처의 마을도 피난을 떠나는 분위기라는군.”

병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유철에게 반문한다.

“흐음. 패잔병이 많이 돌아다녀서 마을을 약탈하는 것도 있고, 일본군이 보급을 한다고 약탈하는 것이 있는 만큼 피난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겠어요?”

신유철은 그 말에 하아 하고 한 숨을 내쉬며 말한다.

“하아...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민가에 머무를 수 있는 거 자체가 아주 운이 좋다는 증거가 아니겠어?”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신유철의 말대로 자신들 세 사람은 지금 있는 상황이 운이 좋다고 여겼다. 남경의 그 지옥도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고, 지금 아직 피난가지 않는 민가에서 호의적으로 머무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때, 병윤이 이 집 안의 중요한 환자를 생각하고는 이내 신유철에게 말한다.

“그건 그렇고 이 집 가장은 아직 치료받을 생각은 없답니까?”

병윤의 그 물음에 신유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이 보기에도 병윤의 실력은 신선보다 더 뛰어난 의신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왼쪽 팔, 다리를 재생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병윤에게 치료를 맡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의사가운을 입지 않고, 나이도 어린 병윤이 의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오히려 병윤과 감연 두 아이는 신유철이 거둬서 같이 피난 가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때문에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우릴 머무르게 만든 것이라고 신유철은 감히 생각할 정도였다.

다음 날이 되었다. 아주머니의 호의에 민가에서 여독을 푼 세 사람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가에서 여자아이를 치료해준 대가로 걸으면서 먹을 수 있는 식량들과 옷가지를 얻었다. 그리고 피난하면서 비어진 집으로부터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왔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하고 가려던 찰나, 급히 이 집의 아주머니가 세 사람에게 뛰어오고는 말한다.

“헉... 헉... 아직 안 갔어?”

신유철, 병윤, 감연 세 사람은 의아한 눈빛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그 중 신유철이 대표로 급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이제 떠나려던 찰나입니다.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 말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유철에게 자신의 용건을 말한다.

“여기에서 병윤이라는 아이가 누구야? 어제 내 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내 딸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그 아이가 의술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아주머니는 그새 몸이 조금 불편한 자신의 딸아이가 팔팔 뛰어 나다니는 모습을 관찰하고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제 자신의 딸아이에게 물어보며 사실을 알아본 듯 했다. 아주머니의 물음에 병윤이 손을 들어 그녀에게 말한다.

“제가 병윤입니다.”

손을 번쩍 든 병윤은 자신이 멘 가방을 잠시 내려놓았고 아주머니 앞에 나섰다. 아주머니는 병윤의 얼굴을 보면서 기쁜 표정으로 병윤에게 묻는다.

“혹시 우리 영감도 치료해줄 수 없는감?”

“당연히 치료해드려야죠. 어제 우리 셋을 보살펴주었는데 당연한 일이지요.”

아주머니의 호의를 잊지 않았던 병윤은 감연에게 의료용가방과 침통 하나를 챙기고는 시선을 아주머니에게 두며 포부도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그 영감에게 가실까요?”

오히려 자신은 이미 준비했다는 듯 자신감을 표하는 병윤의 모습에 어린나이에 믿기 어려웠던 아주머니도 신뢰감을 느낄 정도였다. 아주머니는 병윤의 의젓한 모습에 미소를 짓고는 싱긋 웃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나를 따라오게.”

아주머니는 병윤과 감연, 그리고 신유철을 아주머니가 영감이라고 말한 환자가 있는 방으로 소개시켜주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병윤이 방 안을 살펴보니, 양 팔을 있었지만 한 쪽 팔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병윤은 그 영감이라는 사람을 보자마자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흐음 팔을 움직이지 못한 것을 보니 굳었군. 사고라도 당한 걸까?’

병윤은 눈으로 보자마자 저 사람이 어떻게 다쳤는지 그리고 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마지막으로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바로 생각이 났다.

“형은 깨끗한 물을 조금 준비하고, 감연이 너는... 그냥 서 있어라.”

그 말에 감연은 실망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병윤에게 말한다.

“고마워. 이 자식아.”

“할 일 생기면 듬뿍 안겨줄게. 기다려.”

“그래. 이 망할 자식아.”

두 사람의 유치한 대화 속에서도 병윤의 시선은 그 영감이라는 사람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자신을 살펴보는 여러 사람의 시선에 그 영감이라는 사람은 두리번거리다 이내 자신을 바라보는 병윤을 발견하더니 조금 불쾌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내인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향하고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다.

“여보. 지금 이게 뭔 일이야? 이 아이는 누구고?”

자신의 남편의 묻는 말에 아주머니는 그에게 대답한다.

“아. 어제 미미를 치료해준 분이에요.”

자신의 아내의 말에 영감이라는 사람은 놀라워하면서 말한다.

“미미를? 허. 누가 치료해주었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저 소년이었어? 전쟁 터지기 전에는 그 미미를 치료해주었던 사람이 없었는데 말이야. 평생 천형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영감의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얼굴을 굳히고는 영감에게 말한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요. 미미가 팔팔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어려 보려도 상당한 실력이 있는 것 같으니 얌전히 치료받을 생각이나 해요.”

“아... 알았어.”

아주머니의 말에 꼼짝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아저씨 어지간한 공처가임에 분명했다. 신유철이 보기에도 가장의 슬픔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병윤은 저 두 사람의 부부를 바라보면서 왠지 자신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영감이라는 사람을 치료할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낸 병윤은 환자에게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병윤이 환자의 움직이지 않는 팔 여기저기에 침들을 꽂기 시작했다. 병윤의 침을 꽂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영감은 자신의 움직이지 않는 팔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감각에 영감은 놀라면서 자신의 움직이는 팔을 살핀다.

시간이 지나 영감의 움직이지 않는 팔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여태 망부석이었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병윤이 침을 다시 놓을수록 팔은 감전된 듯 저릿저릿했다. 이윽고 치료를 끝마친 병윤은 침을 모조리 빼고 아주머니에게 간단히 이야기했다.

“며칠 쉬어주면 건강해질 것이에요.”

그 말에 너무 간단히 치료한 병윤의 모습에 오히려 미심쩍은 눈치의 아주머니였지만 결과를 보니 병윤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움직이지 않는 팔의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여보는 환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남편이 팔을 움직이는 모습에 입이 벌어지고 놀란 말투로 말한다.

“당신 팔이?”

영감은 움직이지 않는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내는 손을 매번 주먹을 쥐었다 핀다. 영감은 이런 모습에 조금씩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하아. 사고로 팔이 움직이지 않고 절망을 했는데, 현실을 부정하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지겠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방방곡곡을 떠돌았는데 지금 팔이 이제야 움직이다니 기이한 일이네. 거참.”

“흑흑흑...”

아주머니는 즉시 눈물을 터뜨렸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몇 년을 방에만 틀어박혔던 아저씨였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고초가 있었던 걸까? 겨우 겨우 모은 돈도 유명한 서양의학을 배운 선생을 찾아 치료받아도 차도는 없고 돈만 날렸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군인 한 사람과 아이 두 명을 잠시 머물게 해주었는데 한 아이가 아저씨의 팔을 치료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저씨보다 덜하지만 몹쓸 병에 걸린 자신의 딸아이들 중 첫째인 미미를 치료한 것도 예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미미의 건강한 모습에 혹시나 하는 심정에 아저씨의 팔 치료를 맡겼더니 아주머니는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연신 눈물을 흘렀다.

아주머니와 영감이라는 사람은 병윤을 바라보고는 연신 고개를 꾸벅인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이 팔을 움직이게 하다니. 정말 선생께서는 그 옛날 편작에 화타나 다름없는 의신이십니다.”

두 사람의 칭찬에 병윤은 몸 둘 바를 모른다. 하지만 병윤은 싱긋 웃으면서  두 사람에게 말한다.

“뭘요. 거지꼴이었던 우리들을 반겨주었는데요. 원래 선행에는 보답을 받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주머니, 아저씨의 선행이 이번에 하늘이 감동해서 보답해준 거라고 여기세요.”

그 말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이며 펑펑 울었다. 감연과 신유철은 저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저런 사람들이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병윤은 한 가정의 웃음을 되찾아줬다.

그 후, 병윤, 감연, 신유철 세 사람은 아주머니의 가족들의 열렬한 배웅을 받고는 중경으로 길을 떠난다. 이제 어느 정도 물자를 보충했으니 발걸음을 떠날 수 있었다. 신유철은 기특한 지 병윤의 머리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말한다.

“잘 했어.”

병윤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신유철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헤헤. 저 잘 했죠?”

이럴 때는 병윤은 왠지 어린 아이 같았다. 신유철은 그런 병윤의 모습에 피식 웃는다.

“당연히 잘했지. 저런 사람들은 복을 받아야 마땅해.”

감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는 말이에요. 저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 역시 갈 길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 때, 신유철이 병윤에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한 가지 묻는다.

“그런데 병윤아. 너 그런 의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무슨 의술이요?”

“내 팔 다리를 재생시킨 그 신의 경지 같은 의술을 말이야.”

병윤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신유철에게 말한다.

“큰형에게 배웠어요. 큰형이 원래 한의사를 하고 계시는데. 그 친형에게서 발명한 기술이에요. 원래 쥐 그리고 그 외의 동물들에게 실험을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에게 적용해보지 않았어요. 그걸 제가 배웠고요.”

“으음. 그 치료는 인간으로 치자면 내가 최초란 말이냐?”

“예. 그렇죠.”

“하아. 병윤아. 그 재생치료 당분간 봉인해라. 사람들 알면 좀 그렇다.”

“예...”

그 후, 길을 나선 세 사람이 중경에 도착하기까지 꽤나 우여곡절한 일이 많았다. 가다가 난데없이 일본군 비행기가 나타나지 않나? 또 어떤 때는 세 사람이 가진 소총을 노리고자 사람들이 세 사람을 습격한 일도 있었다. 어떤 때는 군인인 신유철을 보더니 자신의 군대에 강제로 편입시키려는 군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길을 잘못 들어서 어느 산에 갇혀 며칠을 노숙한 일도 있었다. 전쟁을 틈타 마을을 약탈하려는 도적떼에게 습격 받았던 마을을 셋이서 구해주기도 하였다. 거기서 병윤과 감연은 실력을 발휘해서 마을의 대장간을 빌려서 무기까지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생도 끝이었다. 바로 신유철과 두 아이가 중경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중국 전토에서 피난 중이었던지라 중경의 검문이 꽤나 까다로웠지만 신유철은 장개석의 직할군대였고, 그 직할군대에 속한 신분증도 가졌기 때문에 검문을 통과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1938년 5월 16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처럼  신유철과 병윤과 감연 두 아이가 헤어질 때도 되었다. 중경에 있는 한 식당에서 간신히 식사를 해결한 세 사람은 식당에서 값을 지불하고, 걸어 나가 곧 작은 공터에 모이고는 서로를 향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신유철은 조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두 아이에게 말한다.

“이제 슬슬 부대에 복귀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네. 그런데 내가 살펴보니까 그 대한민국 임시정부인가? 그들이 같이 총통과 같이 떠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

신유철의 말에 병윤과 감연 두 아이는 떠나는 신유철의 모습에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병윤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신유철에게 말한다.

“하하. 아니에요. 형. 중경에 도착하였으니 저희 살 길도 이제 스스로 찾아야죠.”

“예. 저희들은 형이 말한 대로 능력이 있으니 그 것으로 먹고 살아야죠.”

애써 밝은 병윤과 감연의 모습에 신유철 역시 의젓하다고 두 아이를 쳐다본다. 감연이 말한 대로 신유철이 보기에 두 아이는 확실히 많은 재주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저 둘이라면 아무리 어리다고 하여도 언제든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두 사람과 같이 여행한 신유철이 아직 어린 모습의 두 사람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허. 그건 그렇고 너희들은 어떻게 지낼 생각이냐?”

“뭐 익숙한 걸 하면서 지내야죠. 어쩔 수 있겠어요?”

감연은 괜히 으쓱거렸다. 이미 지옥도를 같이 돌아다니며 함께 헤쳐나간 신유철과 두 아이는 형제와도 같은 사이였다. 중국에서 치자면 바로 그 의형제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 그래도 같이 여행한 정도 있는데 이렇게 헤어지기는 아쉽긴 하다.”

“뭐 어쩔 수 없죠. 그건 그렇고 형 배장(소대장)에 임명된 거 축하드려요.”

신유철은 그 말을 듣자 괜히 머쓱 거렸다. 신유철이 중경의 군부대로 복귀하자 윗대가리가 군대에 복귀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창해서 어쩌구 저쩌구로 훈장을 던져주면서 배장(소대장)에 임명시킨 일에 대해서 신유철은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 살 집을 한 번 알아봤다.”

“허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 일인데.”

“너희들을 중경 찬 바닥에 자게 만들 수는 없잖아.”

“헷. 산에 노숙한 거 잊었어요? 여기서 살아갈 방법은 이미 마련했어요.”

감연은 코를 쓱 하고는 산에 노숙한 경험을 내세우며 자신감을 표했다. 하지만 그런 감연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신유철의 반응은 달랐다.

“그러지 말고. 그 집에 가봐라. 윗대가리에게 받은 포상금들을 거기에 썼으니 말이야.”

“이거 미안한데.”

“안타까워서 그런다. 너희들 능력도 많은데 찬 바닥에 구걸하면서 지낼 것은 아니잖아.”

“구걸은 아니더라도 일자리는 구할 생각입니다.”

병윤의 대답에 오히려 신유철은 피식 웃고는 반문한다.

“너희들이 직접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다만?”

신유철은 두 아이와 같이 중경에 가는 도중 있었던 도적떼의 습격에 대비한 마을에서의 일을 생각했다. 그 때, 신유철은 반자동소총을 처음으로 만져보았다. 대장간이 있는 마을에서 병윤과 감연이 신유철의 GEW98을 쓱 보더니 개조시켜주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또 그걸 응용해서 두 아이가 가진 아리사카를 아예 반자동소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대장간을 빌리더니 한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기관총을 만들고, 재료를 모아서 화약을 만들어 기관총의 총알까지 마련한 것에 대해선 신유철은 기가 질릴 정도였다.

그런 능력을 가진 병윤과 감연이었기에 신유철은 더욱 아깝다고 생각했다. 지금 차라리 윗대가리에 추천해서 무기를 만들게 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인맥은 없었던 신유철은 최대한 포상금으로 살 집만 만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재생시킨 것에 대한 보답도 같이 말이다.

“형의 정성을 봐서 입주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병윤은 집을 구하느라 고생한 신유철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집에 입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뭐 집세라든지 기타 비용에 대해 자기들이 마련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그래. 잘 생각했다. 이제 나도 떠날 시간이니 집만 소개해주고 바로 가야겠다.”

“예. 그러세요. 형.”

그렇게 신유철은 병윤과 감연이 지낼만한 집을 소개시켜주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렸고, 세 사람은 가는 도중 중경에 갈 동안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신유철이 말했던 집에 도착했다.

“자 여기다.”

신유철이 집을 소개시켜주자 병윤과 감연은 꽤 만족한 표정이었다. 사실 신유철이 소개한 집은 조금 낡은 집이었고, 하층민이 살 법한 집이지만 그래도 병윤과 감연은 만족했다. 우선 비를 피할 곳을 마련하지 않았나? 실내살림에 대해선 자기들이 만들면 되니까 상관없을 것이다.

안에 들어서보니 집의 환경에 대해서 일 할 것이 많다고 여긴 두 아이였다. 방에 짐들을 풀었고, 어느새 정리정돈하고 있었다. 신유철은 잠시 방의 정리를 도와주다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이런 갈 시간이군.”

다급하고도 두 아이를 보니 미안한 감정이 든 신유철의 모습에 오히려 병윤이 안심시켰다.

“하하. 살펴가세요. 형.”

“그래 고마웠다. 시간 있으면 찾아가볼 터이니 걱정 말고.”

“그래요.”

어지간히 급한 모양인지 시간에 쫓긴 신유철은 부리나케 집에서 나갔고, 감연은 그 모습을 보더니 한 목소리 했다.

“저 형 어지간히 시간에 쫓기는 듯 했군. 그래도 저 형 덕분에 우리 살 집은 구했네.”

그 말에 병윤은 피식 웃으면서 감연의 말에 답했다.

“뭐 할 일이야 많겠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않나? 유철이 형도 최대한 신경을 써주었잖아.”

“그러게 말이다.”

중경에 새로 구한 집을 둘러보았던 병윤과 감연은 집의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구한 집은 특이하게도 밑에 지하실 하나가 있었는데. 꽤 어두워서 백열등 같은 조명이 필요했다.

그런 지하실을 쳐다본 병윤과 감연은 서로를 향해 피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감연이 병윤을 보고 지하실을 둘러보고는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딱이군. 여기에 작업장을 만들면 되겠네.”

감연이 그렇게 말하자 병윤 역시 그 소리에 동의했다. 지하실은 꽤나 넓었다. 여기에 조명을 달아주면 작업장에 적당했다.

“흐음. 일단 우리가 가진 짐들을 풀까?”

“그러지. 그런데 여기의 조명에 쓸 전기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으음. 잠시만.”

병윤은 전력발전 방식에 대해서 궁리했다. 병윤이 알기로는 크게 화력발전과 수력발전으로 알고 있었다. 그 두 가지의 방식으로 전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병윤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이 해괴망측한 것들 중 기술의 숙련도가 오르니까 전혀 새로운 방식의 발전방법이 떠오르는데.’

병윤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생각한 기술항목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자 병윤의 눈앞에 글귀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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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 공학

[이름] : 전자기학

[숙련등급] : 중상급

[숙련도] : 38단 16%

[상세] : 전기와 자기의 기본 흐름을 이해한다.

[계통] : 공학

[이름] : 전력공학

[숙련등급] : 중상급

[숙련도] : 37단 16%

[상세] : 전력의 기본 사항들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계통] : 공학

[이름] : 광학

[숙련등급] : 중상급

[숙련도] : 39단 16%

[상세] : 빛에 대한 기본 원리 및 응용을 할 수 있게 한다.

[계통] : 자연

[이름] : 화학

[숙련등급] : 중상급

[숙련도] : 27단 86%

[상세] : 물질에 대한 자연의 기본 규칙을 알 수 있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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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가지 기술들은 고향에 있을 때, 전기와 빛, 그리고 화학에 대한 전문서적을 구해 읽어서 이해한 기술들이었다. 저 기술들 덕분에 병윤은 시냇가에 흐르는 물로 작동하는 발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택가 근처라서 물은 우물에서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수력 발전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화력 발전은 둘이 머무르고 있는 이 저택의 크기의 배 이상의 규모를 요구하기에 택도 없었다.

그리고 중경은 전기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도시였다. 중경 주변에 작은 화력 발전소가 겨우 조명을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런 중경의 상황이었기에 병윤과 감연 둘이서 이용할 수 있는 전기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병윤은 생각했다. 무언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방식이 떠오르는 듯 했다.

‘이 네 가지의 기술들을 가지고 새로운 발전방식이...’

그 때, 병윤의 눈앞에 새로운 글귀들이 떠오른다.

-축하드립니다. 네 가지 기술들을 조합하여 중상급 수준의 [공학]태양전지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습니다.-

‘응? 태양전지? 이건 뭐지?’

병윤은 태양전지라는 기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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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 공학

[이름] : 태양전지

[숙련등급] : 중상급

[숙련도] : 0단 0%

[상세] : 태양은 에너지로 이루어진 천체이다. 그 태양이라는 에너지 덩어리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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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병윤의 머릿속에 그 [공학]태양전지라는 기술의 내용들이 들어온다. 병윤은 마치 그 태양전지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다가 까먹고 이제야 기억이 나는 듯 지식들이 마구마구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태양전지라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감을 잡았다.

‘그래. 이 태양전지라는 기술이 있으면 기계를 돌릴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겠구나! 하하. 때마침 이렇게 생각이 나니 다행이네.’

병윤이 태양전지에 대해서 히죽 웃자, 감연은 그런 병윤을 징그럽다는 듯 쳐다보며 병윤에게 타박한다.

“아오. 징그럽게 웃지 마라.”

감연의 타박에 병윤은 엄지로 척 자신을 가리키며 감연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누구냐? 고향에서 이런저런 기계를 만든 사람이야.”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이라도 나셨어?”

감연의 물음에 병윤은 자신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 방법이라는 것은 뭔데?”

“넌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돼.”

“이 자식은 말을 해도 참으로 개같이 해요.”

그렇게 병윤과 감연은 유치하게 싸우면서 병윤이 생각한 태양전지를 만들기로 했다. 병윤이 생각한 태양전지는 도시에 있는 모래나 흙들을 모아놓고는 이내 병윤이 생각한 방법대로 도구들을 가지고 제조를 했다. 그러자 둘이 가져온 재료들은 색깔 있는 유리판 같은 그런 물건이 만들어졌다. 감연은 병윤이 모래와 흙으로 만든 요상한 물건을 가지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병윤을 쳐다본다.

“이게 뭐냐? 이것으로 전력을 생산한다고?”

“두고 봐라. 너에게 있어서 엄청 놀란 일이 될 거니까 말이야.”

병윤은 자신이 만든 유리판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가더니 이내 지붕 위에 올라가 그 유리판을 설치한다. 그 후, 유리판에 전선들을 연결하고는 이내 다시 지하실로 쪼르르 달려와 전선을 깐다. 감연은 그런 병윤의 행동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쳐다보며 말한다.

“네가 뭔 행동을 하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다.”

그 때, 병윤은 지하실에 연결한 전선을 지하실 지붕에 연결하고는 이내 그 전선과 백열등 하나를 연결하자, 백열등이 환하게 빛이 났다. 감연은 갑작스런 지하실의 빛에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무... 무슨 마술을 부린 거냐!?”

“내가 설치한 것은 그 태양전지라는 것이지. 한 마디로 태양의 빛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어.”

“이런 미친. 너의 그 머리에는 찬사를 할 수밖에 없다.”

감연이 경악하듯 그렇게 말하자 병윤은 미소를 짓고 말한다.

“일단 지하실까지 전력을 연결하였으니 이제 한 번 지하실을 꾸며볼까?”

감연은 그 말에 허탈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병윤 따라서 자신 역시 일을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 지하실은 대부분 완료가 되었다. 그렇게 되자 병윤과 감연은 방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있었다. 감연이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일단 어느 정도 지하실에 작업환경을 만들었는데. 뭘 할 거냐?”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흐음. 지금 이 중국은 그 왜놈들과 상대를 하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그래. 총기개조사업이 딱 좋겠군.”

“총기를 개조시킬 수 있는 기계는 어떻게 하려고? 만들 수는 있는데. 재료가 있어야지.”

“그거야 주변에 있는 흙이나 돌들을 골라내면...”

“미친놈. 또 그렇게 야금을 하려고?”

병윤은 그 말에 울컥하더니 이내 감연을 바라보고 묻는다.

“그럼 넌 어떻게 할 건데?”

그 물음에 감연은 바로 입이 턱하고 막혔다. 사실 이 집도 신유철의 도움으로 겨우 구한 것이다. 그 때문에 두 사람에게 수중의 돈은 여행을 하고 사람들을 도우면서 얻은 돈밖에 없었다.

“하아. 일단 돈으로 재료를 사면 되지 않을까?”

“잘도 어린아이들에게 재료들을 넘겨주겠다.”

“...... 에휴. 난 모르겠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하자.”

결국 감연은 항복 선언을 했고, 병윤은 감연의 그 모습에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자 사업에 필요한 기계들을 제작하기 위해 재료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기계라는 것이 금속이 필요하니까 주변의 돌들을 고르거나 아니면 자석을 이용하여 사철을 모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재료들을 지붕 위 태양전지의 전력을 이용하여 녹이더니 이내 원하는 형태의 금속을 만들고는 그 걸 기반으로 전력 방식 기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병윤과 감연의 일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아무도 그 둘을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렇게 기계들을 만들어 내고 겨우 사업할 준비를 끝마친다. 그렇게 걸린 시일이 겨우 5일 정도 되었다.

지하실의 칸들을 차지하는 기계들을 본 병윤과 감연은 뿌뜻한 표정으로 지하실 풍경을 돌아본다. 이제 어느정도 자신들이 생각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제 사업을 한 번 시작해보자고. 어떻게 할 거냐?”

“손님을 모아야지.”

감연은 그 말에 아리송한 얼굴이었지만 병윤은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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