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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1940년 9월, 병윤과 감연은 15살 먹은 청소년이 되었다. 어느새 둘은 중경의 유력자로 꼽혔다. 중경의 유지들과 긴밀히 지내며 서로의 요구들을 주고받아 중경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아직 총각이자 청소년인 두 사람에 대해 혼인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직 친부모의 허락 때문에 함부로 결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라는 말로 혼인을 피했다.
“으음. 유력자들을 만나보니 특이한 인물 둘이 있었구먼.”
올해 임시정부의 주석에 임명된 김구는 유력자들의 만남에 간신히 꼽사리 끼고 한 말이었다. 중경정부도 중경의 유력자들과 협력하며 유지하고 있는 판국에 아예 중경에 대해 연고가 없는 임시정부는 당연히 유력자들을 만나봐야 했다.
“저도 신기했습니다. 아버지. 아직 어린 소년 두 명이 유력자였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김구의 장남 김인은 지금 아버지 김구의 비서직을 맡고 있었다. 김구와 김인은 유력자들의 모임에 장개석을 붙잡아서 겨우겨우 초대받았는데 그 모임 중 특이한 두 명을 기억했다.
유력자들의 모임에 눈도장을 찍은 김구와 김인은 한평생 떠돌이 신세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경에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남경 그 대학살에서 얼마나 많이 떠돌아 다녔는가? 일본에 대항한다고 하지만 별 비루먹은 거지 신세였다. 겨우 장개석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중경까지 도망쳐 나왔고, 중경정부와 유력자들의 합의에 의해 상해의 임시정부 청사처럼 청사를 세울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버지. 그 길병윤과 송감연이라는 친구 말인데. 조선인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뭐? 조선인?”
“예. 그런 소리가 들리더군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으음... 그런가?”
김구는 턱을 쓰다듬은 채 잠시 장고에 빠졌다. 이 인구 많은 중경에 두 조선인 소년이 유력자에 속하다니 꽤 신기하고도 놀랄만한 일이다. 사실 김구와 김인은 두 소년을 어떤 가문의 후계자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오히려 그게 합당했다. 그런데 후계자는커녕 조선인이라니 말이 맞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 궁금해서 말이야.”
김구의 호기심에 김인은 자신이 아는 바를 김구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현재 길병윤과 송감연 두 소년은 지금 국부군에 대한 군물품을 생산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공장을 가동할 때 필요한 공작기계 등을 생산 판매하는 일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
“군물품?”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 소총, 기관총은 물론이고, 전차, 비행기까지 만든다고 하더군요. 뭐 그 덕분에 일본군도 장개석의 직할부대에겐 여지없이 깨부숴질 정도로 화력이 아주 대단하답니다. 그 물품들이 두 사람의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다고 하더군요.”
“호오. 이거 잘하면 며칠 뒤에 창설할 광복군의 무기 및 병기등도 납품받을 수 있겠군.”
그러나 김인은 어두운 표정을 김구의 생각에 부정하듯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장개석이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 하지 않겠나?”
“일단 장개석이 허락을 해주어야 말이죠.”
“쳇! 필요할 때는 막상 장개석이 가로막는군. 젠장!”
김구는 역정이 난 듯 얼굴이 꾸겨졌다. 자신들이 힘을 보태겠다고 매번 장개석에게 청해서 겨우겨우 광복군의 창설을 허락 받았다.
“그 것보다 아버지. 일단 두 소년에 대해 만나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래. 인아 잘 말해주었다. 네 말대로 일단은 청사도 설립되었으니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아버지.”
한편, 책상에서 문서를 보고 있던 병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문서는 중국군이 요구한 군용트럭의 자세한 사항들이 적혀있었다. 사항은 이렇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요구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연비는 어떻고, 소총에 방탄되는 차체에, 어떤 지형을 통과해야하는 지에 대한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병윤말고 평범한 기술자, 연구인에게 의뢰하면 이 문서를 불태우고 자살하리만큼 너무할 사항들이 많았다. 그러나 병윤은 이내 얼굴을 피고 앞에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얼마만큼 만들어 달라고 전했습니까?”
그 말에 여성의 예쁜 얼굴에 걸맞듯 예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예. 그건 문서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되도록 보름 내로 납기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보름은 무립니다. 물품 맞추는 건 한 달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물품 되는대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거라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저번에 납기했던 비행기와 전차들을 더 생산해서 보내달랍니다.”
“그건 지난번에 초과해서 보낸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런... 하아.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생산해서 보내주겠습니다. 그 외에는 뭐 필요 사항이 없습니까?”
“아 그리고 공장에 필요한 광석의 공급이 늦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에?! 그거 큰 일 아닙니까?!”
천하의 병윤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광석의 공급이 늦는다니? 그렇다면 공장의 생산량이 그만큼 늦춰질 것이다.
“지금 사고가 발생해서 수습하느라 바쁘답니다.”
“으으으. 이거 큰일이군요. 생산량을 줄여야 하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눈앞의 단호한 표정을 한 여성, 장개석을 포함한 4대일가 중 하나인 진씨세가의 진세연이라는 이 여성은 장개석이 보낸 감시역이자 동시에 병윤의 비서였다. 일찍이 유럽의 학교에 졸업한 엘리트이기도 한 이 여자는 어느 행정업무에서 쓸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여성이니 병윤의 비서로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공단이라 불릴 만큼 거대한 공장단지의 사장이 바로 병윤과 감연이었다. 그 외의 공장단지에 대해 투자하고 있는 사람이 두 사람인 만큼 지금 중경정부의 공업의 핵심은 두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중경시의 공업은 예전 남경과 상해에 세워졌던 공업의 열배는 넘었기에 그 중요성은 장개석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자신의 심복 몇 몇을 공단의 관리자로 보냈다. 물론 병윤은 그들을 아주 잘 써먹었다. 일부 일들을 그들에게 떠넘겼으니 말이다.
진세연은 단호한 얼굴로 불가라는 외쳤다. 그 모습에 병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결국 병윤의 필살기가 나갈 수밖에 없었다.
“사퇴할까요? 일도 힘들다. 차라리 구걸하는 것이 낫겠네요.”
퉁명스러운 병윤의 말에 단호한 얼굴의 진세연의 무심도 깨졌다. 어느새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진세연은 다시 한 번 병윤에게 청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일단 사고가 났으니 광석 공급은 늦춰질 수밖에 없어요. 대신 위에 보내달라고 성홥니다.”
“그러면 저보고 어쩌란 이야기입니까? 광석 공급이 늦춰지면 생산을 할 수가 없어요. 공급부터 제대로 하고 요구를 해야죠. 제가 무슨 신입니까? 생산품이 저절로 생성해지나요?”
“으으으... 그러니까 회장님.”
“아 몰라요. 몰라. 지금 어떤 시국인데. 재료라도 갖춰져야 보내든 말든 하지. 차라리 제가 공장을 운용 못해서 보낼 수 없다면 몰라도 이건 제 손에서 벗어났어요. 공급부터 제대로 하고 쪼세요. 아무리 나라도 이건 못합니다.”
진세연은 병윤의 발언에 당황했다. 사실 진세연은 속에서 화가 났다. 이게 왠 말이냐, 위에선 쪼지, 아래에선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지.
‘이런 무능한 개자식들. 이런 일로 나까지 욕을 듣게 만들다니.’
이러니저러니 포기해도 병윤의 표정은 울상이었다. 결국 전화를 걸어 누군가에게 통화할 수밖에 없었다. 병윤은 다이얼을 돌려 귀에 수화기를 갔다대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총통 각하. 저 길병윤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중경정부의 가장 높으신 인간인 장개석의 목소리가 병윤의 귀에 닿았다.
“아 병윤군. 무슨 일인가?”
“저 총통각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재료공급이 늦춰져서 일부 물품에 대해 납기일이 조금 늦춰질 것 같습니다.”
“뭐?!”
벌써 화가 난 목소리가 전화기에 들렸다. 병윤은 벌써부터 자라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했다.
“지금 광석을 납기 하는 곳이 사고를 당해서 양해를 바란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거기 공급하는 데 어딘데?”
“그 정확한 위치는 아 사천성 야안시 부근의 광산입니다.”
“내 이놈들을 그냥. 알겠네. 우선 생산되는 대로 보내.”
“예. 예. 총통각하.”
송수화기를 조심스럽게 놓은 병윤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그 광석이 필요한 물품의 납기일부터 늦추고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일단 사정을 설명 드렸으니 일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진세연은 병윤의 긴장 풀린 표정을 보고 자신도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아마 병윤의 능력이라면 이 사태도 금방 헤쳐나갈 것이다. 진세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2시간을 서류랑 씨름했던 병윤은 이제야 일을 다 처리했다. 그리고 그 때를 노린 듯 진세연은 다시 방을 열고 말했다.
“아 사장님. 지금 주은래 공산당대표가 방문했습니다. 방으로 들일까요?”
“으음...”
주은래, 현재 모택동의 심복이자 장개석도 직접 찾아가 영입할 정도로 능력 좋은 인물이다. 지금은 서안 사건이후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중경에서 공산당대표로 있는 사람이다. 현재 주은래는 장개석과 애증의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영향력 대단하신 양반이 매번 이 곳을 찾아왔다.
“어쩔 수 없죠. 들이세요.”
-끼익-
온화한 눈빛의 중년 남성이며 양복까지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주은래는 문이 열리자마자 병윤에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 자주 뵙는 것 같습니다.”
병윤은 주은래를 보고 한 한 마디가 그 것이었다. 주은래도 이에 화답하듯 말한다.
“하하. 이 곳 중경공업단지의 총책임자를 가까이서 볼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군요.”
“아 진비서, 차를 갖다주게.”
진세연은 병윤에게 꾸벅 인사하고 차를 타러 갔다.
“요즘도 잉꼬부부라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까?”
“농담도 참으로 잘하시군요. 후후. 우리만큼 행복한 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그거 부럽습니다.”
“물론 앞으로 행복해질 회장님이 부러운 것은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군요. 뭐 아직 생각은 없지만요.”
그 때, 진세연이 뜨거운 찻잔을 탁자 위 주은래와 병윤 앞으로 놓았다. 병윤은 먼저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사실 차를 음미하는 것은 둘째치고 병윤은 뜨거운 물을 마신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들이켰다. 병윤은 차랑 친하지 않았다. 반면 주은래는 마치 상류사회에 속한 사람처럼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역시 경륜인 것인가? 병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용정차는 인생을 경험하게 해주죠. 그런 귀한 것을 내주신 회장님의 능력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손님들이 용정차를 많이 좋아하시니 그거라도 내어드려야죠.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본론을 이야기 해주지 않겠습니까?”
주은래는 찻잔을 음미하고 이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진짜 장개석의 휘하에 들어선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병윤은 바로 주은래의 말을 받아쳤다.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공산당 입당은 저에게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중국인이 아니라 조선인이 아닙니까?”
“진의 진시황 때, 그 때 당시 진에서 첩자 정국의 일 때문에 다른 나라의 인재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도왔던 이사는 상소를 통해서 진시황을 감복시켰죠. 이사는 이렇게 상소를 올렸습니다.‘첫째. 다른 나라에 가서 큰 일을 했던 백리해, 건숙, 유여, 상앙, 장이, 범수 들의 예를 들어, 외국의 인재들이 모국을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는 사례를 보였다.
둘째. 보물과 미녀는 국적을 따지지 않으면서 왜 인재는 국적을 따지는가.
셋째. 진나라를 떠난 인재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 일하게 되면 결국 다른 나라를 돕는 일이다.
넷째. 태산은 한줌의 흙도 거부하지 않으며, 황하는 한줄기의 시냇물도 거부하지 않아 높은 산과 큰 강을 이루었거늘 어찌 전하께서는 유능한 신하들을 내치려 하십니까’라고 말이죠. 우리 중국 공산당은 이 이사의 의견처럼 중국인, 조선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단지 뜻과 능력이 중히 여길 뿐이죠.”
“후후. 저를 제외하고도 이 곳 중국대륙에 능력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중국 천하에 인구는 수억에 달합니다. 그 중 주은래 선생이 원하는 사람은 수레에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이 조선이라는 소국의 작은 인재에 관심을 보이니 오히려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으음...”
주은래는 한 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병윤의 의연한 눈빛에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장개석이 자신을 찾아 영입하고자 하였을 때, 그 심정이 이러했을 것 같았다.
‘장개석이 기어코 잠룡을 발견하는군. 겉은 어린아이지만 속은 이 중국을 부흥시킬만한 능력을 지녔구나. 애석하군. 애석해.’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주은래 선생의 고사를 잘 들었습니다. 하나 배웠습니다.”
주은래는 고개를 떨구고는 진세연의 안내를 받아서 방을 나가 건물을 나갔다. 주은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자꾸 병윤이 있는 건물을 쳐다본다.
“저 선생님. 하시던 일은 잘 하고 계십니까?”
주은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8로군 군복을 입은 한 중년남성이 서 있었다. 주은래는 그 남성을 보고 반가운 기색을 한다.
“아. 등소평인가?”
현재 중일전쟁 중이었고, 등소평은 팔로군 129사단의 정치위원으로 있었다. 이번 중경에 온 것도 주은래를 만나기 위해 올라온 것이다. 아마 주은래 선생과의 일이 끝나면 다시 129사단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공장단지 굉장히 활기차군요. 장개석이 언제 이런 공장들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소총, 수류탄, 비행기, 전차, 각종 생필품에 모든 것을 생산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지.”
“휴우. 장개석이 서양세력에게 무릎이라도 꿇은 것일까요? 아니면 훔쳐온 것일까요?”
“전부 다 아니야. 서양세력이 저런 공장은 설립하기커녕 자원이나 뜯어먹기 바쁘겠지.”
“아니면 선생이 말씀하신 소년들입니까?”
“그래. 그 길병윤과 송감연인가 하는 소년들의 힘이지. 상해와 남경에 있는 공장보다 더욱 크고 효율 있는 공장을 설립한 것도 그 소년들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어.”
“아직 영입하고자 계시는 것입니까?”
“그의 능력은 초한쟁패기의 소하와 제갈량에 비견된다네. 아니 그들보다 능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건 동의합니다. 저런 공장단지를 만든 것이 두 소년이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래. 만약 우리가 그들을 잡는다면 중국대륙의 천하는 우리가 거머쥐게 될 거야. 그리고 가난 없는 인민들의 천국이 더욱 빨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