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 / 0633 ----------------------------------------------
[1부] 흩어진 가족들
주은래를 보낸 병윤은 이제 일을 끝내 집으로 향했고, 그 집에서 같이 감연과 있었다. 병윤은 오늘 있었던 일을 베개에 배면서 눕고 있는 감연에게 퉁명스럽게 설명했다.
“그 주은래인가? 그 아저씨 또 오더군. 공산당에 입당하라고 말이야.”
“거참 거머리같은 아저씨군. 안 그렇냐?”
“그래 말이야. 아 싫다는데 왜 오라는지 모르겠어.”
“크크. 우리를 오죽 원하면 그렇게 찾아오는지 모르겠군.”
“그래 우리를 원하니까 권유하는 거겠지. 안 그러냐?”
“쩌업. 맞다. 에이 그 이야기는 그만두자. 그 거머리 같은 아저씨 이야기는 그만두자고.”
“그건 그렇고 이제 신유철 형은 운남강무학교에 입교하고 2년인가?”
“뭐 때때로 연락하고 휴가 때 찾아오라고 상관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 그런데 우리 앞으로 편지 왔더라.”
“편지 내용은 뭔데?”
“안 뜯었어.”
“안 뜯었으면 지금 보자고.”
감연은 받은 편지를 살펴보았다. 봉투의 보낸 이는 이범석이라는 이름의 인물이었다. 그는 잠시 이름이 낯이 익은 것 같지만 봉투를 일단 뜯어서 편지내용을 보기로 했다. 감연은 편지를 펼쳐서 자세히 훑어봤다.
“편지 내용은 뭐래?”
“내일 우리랑 밥 먹자고 하는 거 같은데.”
“그래? 보낸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있어?”
“흐음. 철기 이범석이라고 적혀있었어.”
“이범석? 아! 그 철기 이범석 장군!”
“이범석 장군! 아!”
병윤과 감연은 이제야 기억나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병윤과 감연이 살던 마을에서 독립군을 했던 사람이 내려왔다. 그는 이범석 장군 휘하에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말해주는 독립군의 활약에 별다른 이야기 거리가 없었던 어린아이들에게 대단한 인기거리였다.
그 당시 병윤과 감연을 비롯한 어린아이들은 이범석 장군에 대해 듣고 꽤 좋아한 것으로 기억했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고 있었다.
그 대단한 양반이 자신들을 초대하다니 병윤과 감연은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가 다시 재생되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 우리가 이범석 장군의 초대를 받다니. 꿈이냐 생시냐?”
“생시겠지. 얼른 가겠다고 연락해.”
“당연한 말씀을. 이 친구야. 히히히”
감연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전화기를 들고 편지에 기록된 전화번호의 다이얼을 돌리고 이범석 장군에게 내일 찾아뵌다고 연락했다.
다음 날, 마침 일을 다 처리해서 병윤과 감연이 쉬는 날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와중에 무슨 일을 쉰다고 하는가? 더욱 중요한 공단의 일인데 말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주구장창 하기 싫었던 병윤과 감연은 간부들에게 밀어붙여서 휴일을 통과시켰다. 물론 장개석이 그 것을 짜증낸 것은 분명했지만 병윤과 감연은 이거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일이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체계적으로 설득했기에 겨우 통과시켰다.
물론 끊기는 일 없이 만들기 위해서 토일 쉬는 노동자들, 월화 쉬는 노동자들 이런 식으로 순환체계를 만들었지만 말이다.
병윤과 감연은 따로 제작한 차량을 타고 선물을 든 채 이범석 장군의 현재 집으로 방문했다. 이범석 장군의 집은 현재 그가 근무하고 있는 중국 중앙훈련단과 가까웠다.
병윤과 감연은 이범석 장군의 집을 쓱 바라보고는 이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이범석 장군이 병윤과 감연을 직접 맞이했다.
“아 자네가 길병윤, 그리고 송감연이라는 친구이군. 만나서 반갑네.”
악수를 청하는 이범석 장군, 현관에서 이범석 장군에게 선물을 건넨 병윤과 감연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길병윤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송감연이라고 합니다.”
“아 이런. 초대해놓고 이런 꼴을 보이니 미안하군.”
“하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범석 장군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맞서서 용감하게 싸웠던 분 아니십니까?”
현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부에 속한 이범석 장군이었다. 이범석은 소년 시절, 중국으로 떠나 중국에서 무관학교를 졸업했고, 만주에서 독립군활동에 열을 올렸다. 대표적으로 청산리 대첩에도 참가하기까지 했다. 30년대 초중반에 독립군 조직들이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로 나뉘면서 이범석은 민족주의자로 나서기도 하였는데, 그 결과 공산주의 독립군에 밀리면서 본토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명성은 중국 중경에서 회장으로 지냈던 병윤, 감연 두 소년도 익히 들었을 정도였다. 더욱이 조선에서 암암리로 소문이 나돌 정도이니 얼마만큼 이범석 장군의 명성이 드높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귀한 손님들을 현관에 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자 들어오게. 여보. 음식 좀 내오게나.”
음식을 내오라고 시킨 이범석을 따라 병윤과 감연은 이범석이 자리에 앉자 맞은편 자리에 앉고 대화를 나눴다.
“그래. 자네들이 이 중경 공업단지의 총책임자로 있다고?”
“뭐. 장개석 총통각하가 잘 돌봐주신 영향이죠.”
“중국군의 총, 대포, 비행기, 전차들이 자네들이 운영하는 공단에서 나온 것을 보면 말이 많지. 안 그런가?”
“그 것밖에 재주가 없어서 그런데. 잘 풀리니 기분은 좋죠.”
감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이범석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자네들 충분히 대단해. 아마 왜놈들이 자네들을 알면 회유부터 할 정도일거야. 그 국부군 38식 보총인가? 그거 진짜 인기가 대단해. 우리 한인부대가 훈련받는데 예전 98식 보총으로 훈련받다가 맛보기로 38식 보총으로 훈련받았는데, 부대원들이 그 날부터 98식 보총을 쓰레기 취급하더군.”
“후후. 저희가 설계하고 제작한 소총을 좋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하아 사실 우리도 그 38식 보총으로 그 잔악무도한 왜구들과 싸우고 싶군.”
이범석은 천생 군인이었다. 자신도 무인의 피가 끓는듯했다. 한창 38식 보총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는 상상을 했던 이범석은 둘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아 이런. 너무 내 생각에 빠진 것 같군. 미안하네.”
“하하. 아닙니다.”
“혹시 궁금해서 그런데 38식 보총을 자네들이 설계했나?”
이범석의 질문에 병윤은 38식 보총을 설계한 기억들을 차츰 꺼내며 말했다.
“예. 그 98식 보총을 반자동이 되도록 개조하다가 아예 틀을 잡고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사실 중경에 막 도착하고 자리를 잡을 때, 친한 군인들의 소총을 개조한 일을 했었는데 개조하기 힘든 고장 난 소총 같은 경우 그 38식 보총으로 교체해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38식 보총이 인기가 끌면서 장개석 총통각하께서 알아봐주시고 공장까지 지어주면서 지원해주었더군요.”
“허 그런 비사가 있었더니 그 이야기는 내가 처음 듣는 건가?”
“예. 원래 그 친한 군인들이 다 아는 사실이라서 자주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거참 그 이야기를 듣는 건 내가 영광스럽게도 처음인 거 같군.”
“후후. 영광일 것까지야, 오히려 저희들이 전설적인 명성을 떨친 이범석 장군님 집에서 대접받는 것이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겠지요.”
“난 조선에 돌아가면 이범석 장군과 만났다고 해야겠군. 히히”
병윤에게 한마디 한 감연은 뭐가 좋은지 얼굴이 싱글벙글이었다. 감연을 본 이범석 장군은 내가 그렇게 인기 있었나?라고 다시 생각할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조선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조선에서 저 녀석 아버지 밑에서 대장간 일을 잠깐 했습니다.”
“허 자네들 몇 살인가?”
“이제 15살입니다.”
“그렇군. 그럼 어릴 때부터 대장간 일을 했단 건가?”
“예. 10살 때부터 저 녀석을 졸라서 대장간 일을 했죠.”
병윤은 감연을 곁눈질로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범석 장군은 병윤과 감연을 번갈아보며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감탄하면서 말했다.
“허. 10살 때부터 대장간 일을 했다니. 자네 참 효자군.”
“하하. 효자는 아닙니다. 그냥 좋아보여서 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부모님께 말도 안 하고 중국대륙에 갔는데 이런 불효자는 없을 것입니다.”
“흐흐흐. 그 것도 말이 되겠네. 하지만 걱정 말게. 자네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자네 부모님은 기뻐할 게 분명하네.”
“그런 말씀 들으니 위로가 되네요. 물론 저 녀석은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죠.”
“다른 이야기라니?”
병윤은 감연을 보고는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저 녀석. 평소 아버지에게 매를 예약했거든요. 아마 지금으로 치면 3년간의 매를 쌓아두고 있을 것입니다.”
“흐. 그거 참 큰일이군.”
감연은 병윤과 이범석 장군의 대화에 울상이었다. 그 대장간을 하느라 울긋불긋한 근육질의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상상을 하니 종아리가 떨린다.
그 때, 이범석의 아내인 김마리아가 조리를 다 한 음식들을 탁자위에 내놓는다. 오랜만에 보는 조선식 음식이었다. 특히 중앙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는 병윤과 감연이 몇 년에 한 번 먹을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후후. 어린 아이들을 보니까 기분이 좋네. 천천히 들어요.”
이범석의 아내인 김마리아는 병윤과 감연을 보고는 자기 집 아이를 보는 것처럼 어머니의 미소를 지었다. 병윤과 감연은 그 호사스런 김치찌개의 냄새를 킁킁 맡고는 이내 김마리아에게 고개를 돌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요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 병윤은 잠깐 김마리아의 손을 보았다. 김마리아는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무언가의 후유증인가?’
그리고 음식을 들고 온 김마리아의 걸음과 잡은 손의 움직임을 잠시 기억한 병윤은 다시 이범석 장군에게 고개를 돌렸다. 예의로 한 숟갈을 먼저 떠먹은 이범석 장군은 병윤과 감연에게 말했다.
“이제 드세나.”
“잘 먹겠습니다.”
병윤과 감연은 이범석을 따라 오랜만의 조선의 음식을 맛보았다. 3년 동안 중국의 이국적 음식을 먹느라 향수병이 든 두 사람에게 오랜만의 음식은 가끔 드는 고향 생각을 달래주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병윤과 감연은 게걸스럽게 잘만 먹었다. 그리고 무례하게도 감연은 한 그릇 더 달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잘 먹는 병윤과 감연의 모습에 김마리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밥을 먹은 후, 김마리아는 수정과를 후식으로 내놓았다. 이범석 장군은 수정과로 입가심을 하면서 이야기했다.
“후후. 우리 아내가 그렇게 요리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더군.”
“맛있었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래. 당연하지. 그건 그렇고 병윤 자네는 내 아내를 유심히 살펴보더군. 혹시 내 아내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건가?”
“하하. 어디 이범석 장군의 앞에서 그런 망측한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손이 떠는 것과 걸음걸이를 보고 조금 눈에 익더군요.”
“...... 그런가? 자네 눈이 좀 정확하군. 맞아. 사실 우리 아내는 조금 병이 있다네. 왜놈들에게 붙잡힌 적이 있다네. 고문을 받았다고 하더군. 그 때부터 일거야. 내 아내가 저런 것은.”
“이런. 안 좋은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하군요.”
이범석 장군은 사과하는 병윤을 보고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하하. 아닐세. 고문하는 놈은 왜놈들이지 않나? 자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흐음. 그럼 염치 불구하고 묻겠습니다. 병원은 가보셨습니까?”
이범석 장군은 그 말을 듣고 기억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병원에 가봤어. 그런데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세월이 걸린다는군. 그 것도 치료도 정확하지 않고 말이야. 장기간 세월동안 치료할 돈도 없고 싸울 수는 없어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기에 그대로 놔두고 있네.”
“흐음. 그렇군요.”
병윤은 이범석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침통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저. 제가 한의학을 배워서 그런데 제가 보기엔 저 여사님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범석 장군은 병윤의 침을 바라보다가 이내 병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입을 연다.
“자네 한의사였나? 아서게나. 내가 독립군 활동하면서 한의사를 매번 만나보았네. 독립군의 의료는 한의사가 했거든. 그 한의사도 고개를 뒤흔들었네.”
병윤은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리고 병윤의 얼굴에는 이범석 장군의 말을 듣고도 일말의 당혹함도 없는 자신감만 나타났다.
“일단 믿고 맡겨주십시오. 제가 한 두 번 한 일이 아니거든요.”
“저 장군님. 저 녀석 의술은 기상천외합니다. 잘린 팔도 재생시키는 녀석인데 이런 것은 껌일 것입니다.”
“잘린 팔도 재생해? 하하하. 그거 참 농담도 잘 하는군. 뭐 그렇게 청한다니 알았네. 내 믿어보겠네.”
이범석 장군은 재생 관련 이야기는 농담으로 치부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자신있어 보이는 얼굴이기에 선뜻 허락해주었다.
거동이 불편한 김마리아가 후유증을 이겨낸 것은 곧 이었다. 병윤은 여타의 훌륭한 침술을 이용하여 김마리아의 후유증을 치료한 것이다. 이범석 장군은 병윤의 솜씨와 자신의 아내가 치료받는 것에 대해 감탄한 표정이었다.
“허. 자네 공장만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군.”
병윤은 고향에 있는 한의사 밑에서 수행중인 병재를 생각하고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고향에 큰 형이 있는데, 큰 형에게 배운 것입니다.”
“큰 형이라니? 허어. 자네가 그 정도 솜씨였다면 큰 형의 솜씨도 알만 하겠군.”
“후후. 저조차 짐작을 못할 정도입니다.”
“아무튼 고맙네. 내 여러 가지 손님을 초대했는데 여러 가지 대접을 받는군.”
이범석 장군의 얼굴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이었다. 병윤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고향 생각나는 음식을 대접해주었는데 이정도도 못하면 도둑놈 아니겠습니까? 하하. 시간나면 도둑처럼 찾아올 터이니 반갑게 맞이해주면 좋겠습니다.”
“흐흐. 그 도둑놈이 나타나면 몽둥이를 들고 음식을 만들 터이니 기대해도 좋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고향 생각이 나더군요.”
감연의 말에 이범석 장군도 얼핏 고향 생각이 났지만 이내 독립에 점철된 자신의 신념을 바로잡았다.
“이제 곧 가볼 수 있겠지.”
이범석 장군은 씁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고향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꺼드렸다. 그 모습에 병윤과 감연 역시 숙연해지기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는 잘 계시고 있겠지?’
‘아빠, 매만큼은 쌓아놓지 마세요.’
감연은 아직 정신이 덜 차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