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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1943년 11월 5일, 타라와, 태평양 전쟁은 일본군에게 절망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중일전쟁에서 중국군이 반격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여 여러 번 패배를 당했고, 간신히 안정시킨 점령지조차 쫓겨나고 있었다. 일본의 생산력은 중일전쟁에 투입시켰고, 졸지에 태평양 전쟁은 일본해군이 가지고 있는 생산력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라는 탄약, 모자라는 군복, 모자라는 식량, 모자라는 물품들 이 곳 타라와에서 주둔중인 일본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거기에 더 비참한 사람들이 있다면 여기까지 끌려온 징용자들이다.
-퍼억!-
“일어나!”
일렬로 서 있는 노동자들, 황색 군복을 입은 일본군 오장 구로다 센죠는 일어선 노동자들을 매번 발차기로 날려버린다. 노동자들의 얼굴은 공포와 긴장으로 가득했고, 구로다 센죠의 발이 날라 가면 맞는 노동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퍽! 퍽!-
구로다 센죠는 일렬로 서 있는 노동자들의 배를 한 번 씩 꼭 차주었다.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권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게 의식처럼 치르는 구로다 센죠의 발차기도 끝났다.
발차기를 맞은 징용자들은 이미 헐벗고 굶주린 상태이며 힘도 없었다. 여기는 사지다. 죽을 장소이다. 영원히 엄마와 아빠를 볼 수 없겠지. 노동자들의 체념과 절망만이 가득 찼다. 그러나 일어나야 했다. 이 끈질긴 생명을 이어나가야 한다면 일어나야 했다.
구로다 센죠는 일어나는 노동자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쳐다보고는 침을 찍 뱉는다. 그리고 눈초리가 노동자들을 훑는다. 그의 눈빛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은 제발 나는 걸리지 말아라하고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그리고 구로다 센죠의 눈길은 어느새 노동자 한 사람에게 멈췄다. 이윽고 소리친다.
“야!”
“옙!”
어느새 목표가 자신이 되어버린 노동자는 울상이었다. 구로다 센죠는 그런 노동자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고는 아까와 같은 발차기가 들어갔다.
-퍼억! 퍽! 퍽!-
구로다 센죠의 발차기는 배를 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발로 차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리사카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연신 몸 이곳저곳을 구타했다. 구로다 센죠의 얼굴은 그런 구타행위를 하면서 연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구타당하는 징용자들은 비명을 작게 질렀다. 아직 힘이라도 남아있나? 하긴 그래야 이 끔찍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퍼런 멍이 곧 생겨났다. 이미 구타당한 흔적이 이번 구타를 당하면서 흔적을 덮어 씌웠다. 구로다 센죠는 마지막으로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한 번 내리치고는 침을 찍 뱉고 끝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소리친다.
“치워.”
그 말에 일렬로 서 있는 노동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쓰러진 노동자들을 옮긴다. 괜히 가만히 서 있어서 구로다 센죠의 다음 목표가 되기는 싫었다. 그 징용자들의 행동을 본 구로다 센죠는 간단히 말했다.
“캬. 역시 조선인은 패는 맛이 있어.”
구로다 센죠, 그는 미쳐가는 일본군 내부에서도 가장 쓰레기같은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옆에 서 있는 일본군 병사들이 징용자들을 안쓰럽게 쳐다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도 구로다 센죠가 없다면 필히 징용자들을 구타할 것이다. 이 일본군은 그런 곳이다.
한편 구타당한 징용자를 옮긴 노동자들은 자신이 머무는 거처로 향했다. 마치 급한 응급환자를 데려오는 구급대원같이 행동했다. 이 더러운 거처 속에서 그나마 깨끗한 바닥 위로 아까의 구타당한 징용자를 놓았다. 그리고 징용자 속에서 누군가 앞에 나섰다.
“저 의사선생님. 살릴 수 있을까요?”
의사선생이라? 여기 징용자에게 의료 혜택은 없다. 일본군의 군의관들은 징용자들을 치료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가 악화된 징용자들을 마치 길가에 치어버린 동물처럼 여길 뿐이다. 하지만 징용자들의 의사 선생은 따로 있었다. 저 권위의식만 가득 찬 꼴통 같고 돌팔이인 군의관보다 훨씬 나은 선생이 있다.
그는 같은 징용자였다. 그 징용자는 어느새 침들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는 아직 청년이지만 노련했다. 그 청년은 침들을 아까 구타당한 징용자에게 놓았다. 아직까지 아파서 끙끙거리는 징용자는 어느새 고통은 사라진지 오래다. 징용자는 다시 한 번 손을 놀리며 침들을 다시 꽂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리고 구로다 센죠에게 맞은 멍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진정 기이한 일이었다.
징용자들은 저 광경을 지켜볼 때는 언제 봐도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저 청년이었다. 청년은 이미 치료가 끝났는지 침들을 다시 거둔다.
“쉴 시간은 충분히 줬으면 좋겠지만 저 썩을 왜놈들에게 그런 시간 따위 안 주겠죠?”
청년의 말 한마디에 징용자들은 피식 웃었다. 그 것으로 징용자들과 청년이 일본군에 가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 것보다 차도는 괜찮겠지?”
결과는 이미 알지만 마치 의례적으로 물어보는 한 징용자의 의견에 청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차도 없으면 제 보잘 것 없는 의사노릇도 때려치워야겠지요.”
“의사노릇이라니? 저 병신같은 군의관보다 낫다고 생각하다만.”
“크크크. 그건 맞아.”
“그 군의관에게 잘못 걸려 팔다리 잘린 일본군 몇 명이 있는지 모르지.”
징용자들은 일제히 일본군의 군의관들을 비웃었다. 자신들을 치료해주지 않는 악감정도 악감정이었지만 청년의 실력이 태양의 밝기라면 그 군의관들의 실력은 반딧불의 밝기였다.
사실 군의관을 믿지 못하는 것은 일본군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오는 신병들이 처음 오는 환경에 돌림병으로 군의관에게 치료받지만 약과 진료를 잘못 해서 사망해버린다. 그런 과정들을 잘 알고 있던 고참들은 그런 군의관들은 절대 믿지 못했다. 정말로 아프면 다른 곳으로 간다. 바로 청년이 있는 징용자들의 거처였다.
진짜 아프거나 아픈 신병이 있다면 고참들은 간부에게 징용자의 상태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징용자들의 거처를 찾았다. 물론 구로다 센죠처럼 일렬로 쭉 서서 구타당하는 짓거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청년을 찾아와서 치료를 받았다. 팔다리 잘릴만한 중상도 풍토병으로 매번 고생하는 것도 본토에서조차 치료받지 못한 중병들도 전부 청년의 손길이면 치료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치료받으면 고참들은 자신의 부식거리를 청년에게 넘겼다. 자신들도 아는 거다. 이런 치료를 받을려면 얼마나 많은 대가를 바쳐야하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청년은 징용자였고, 그 때문에 부식거리로 치료대가를 때웠다.
그래서 청년은 일본군 병사들에게 받은 부식거리가 꽤 있었다. 그리고 청년은 그 부식거리는 정말로 아사하기 직전인 징용자에게 나눠줬다. 청년은 기막히게도 사람의 상태를 잘 알아차렸다. 그래서 단순히 배고프다고 청년에게 청하면 거절당하기 일쑤다. 물론 자신이 배고프다고 얼른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난리치는 인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면 매번 청년에게 설득당하거나 아니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압박당했다.
“그건 그렇고 길병재 자네, 아무리 봐도 신기해. 그 실력이면 군의관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이런 징용자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어.”
아까만 해도 환자를 보던 한 징용자가 청년에게 말했다. 청년의 이름은 길병재, 중국대륙에 있는 길병윤의 큰 형이었다. 병재는 그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면허 없어서 의사 노릇 못했습니다.”
“크크. 그 놈의 면허. 자네에게 면허는 한이 되겠군.”
병재는 고개를 젓고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면허가 있더라도 인정해주지 않겠지요.”
“크크. 왜놈들도 알 만하군. 자네 같은 인재를 징용자로 끌려가다니 말이야.”
“뭐 그렇지요.”
병재는 징용자로 끌고 온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사실 병재는 징용자로 끌려다니면서 각종 힘이 부치는 공사 혹은 작업등을 해왔다. 그나마 명인에 달한 기술 노동숙련과 운반 덕택에 이제까지 버텼지만 말이다.
“휴우. 언제쯤 고향에 갈 수 있을까?”
아까처럼 일본군을 비웃던 징용자는 갑작스런 고향생각에 눈물이 젖어온다. 배고프고 구타당하며 지금까지 이어온 생활, 그나마 앞의 병재가 있기에 병 걱정, 죽을 걱정은 없다. 그러나 그 것들이 지금 버텨온 지옥 같은 생활에 위안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어머니가 해주신 밥 한 사발 먹고 싶을 뿐이다.
“정형. 또 감상입니까?”
병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정형, 즉 정필중이라는 이름을 가진 징용자는 병재의 말을 듣고 대뜸 화를 낸다.
“아 이 사람이?! 내가 고향 생각 하는 것이 뭐 어때서?!”
병재는 정필중의 반응이 익숙한지 고개를 절래 흔든다.
“아 목소리 큽니다. 정 형. 지난번처럼 구로다 그 자식한테 쳐 맞고 싶습니까?”
병재가 이렇게 조용히 대답하자 정필중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아무도 듣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자 조용히 한 숨을 내쉰다.
“씨발. 육시럴하지만 더욱 육시럴한 곳이야. 여기는...”
정필중은 저번에 구로다 센죠에게 구타당한 고통이 기억나는지 배를 쓰다듬는다. 그 기억을 또 올리면서 정필중은 조용히 욕을 한다.
“뭐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병재도 여기가 좋아서 징용나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재는 정필중보다 더욱 불만이었다. 가뜩이나 그 씹어 먹을 박출환 그 개자식 때문에 징용에 끌려가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 더워 죽는 환경, 작업량이 채워지지 않으면 채찍질과 집합, 그리고 구타당하는 가혹한 생활, 필시 아사할 것만 같은 부식들, 다행히 의술을 배운 것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다. 계속 생존하다 만약 조선으로 돌아온다면 기필코 박출환 그 개자식을 육시할 것이라고 병재는 그렇게 다짐했다. 병재의 눈빛에는 박출환에 대한 살기가 나온다.
욕을 하던 정필중조차 조용한 살기의 병재의 눈빛에 어느새 감정을 잊어버렸다. 병재는 덩치는 보통 체격이지만 그 속에 담긴 힘만큼은 달랐다. 정필중은 저 병재의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눈빛은 누군가를 처리하고자 할 때의 눈빛이다. 즉 병재는 사람 살리는 일 이외에 사람 죽이는 일도 가능하다. 징용자 무리들 중에서 정필중같이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도 있지만 도둑질, 강도질 하다 끌려온 범죄자도 있었다.
그 범죄자는 특별히 일본군에게 우대받았다. 뭐 그 이유야 짐작이 가겠지만 바로 자기들 눈에는 관리를 잘한다는 이유였다. 그 때문에 그 범죄자는 징용자들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었는데, 징용자에게 나온 부식들을 독차지하면서 일이 있을 때는 몰래 빠져나간다. 그리고 일이 터졌을 때, 구타를 자청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즉 그들은 징용자들의 등을 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병재만큼은 못 건드린다. 처음 여기에 도착했던 병재를 보고 손봐줄려던 몇 명이 있었지만 예상외의 병재의 힘과 무술실력에 그들만 병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징용자들의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은 오로지 병재밖에 없었고 말이다. 물론 자기들을 후원하는 일본군에게 이야기하는 인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병재에게 두들겨 맞다가 죽어서 바다로 퐁 처리되어 은폐되었다. 물론 그들의 최후는 일본군조차 병신취급 당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병재도 징용자들의 세력 중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일본군에게 공인되지 않아서 관리하는 인간이 아니라 징용자와 같이 노역을 하는 신세이다. 물론 구로다 센죠의 구타에는 반항하지 못했다. 그 인간에게 반항했다간 그 주위의 병사들의 총으로 총살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정필중은 병재의 말에 문뜩 암담한 생각과 절망에 가득 찬 채 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몰라. 계속 장애물이나 만들겠지. 미군들을 막는다고 말이야. 젠장! 차라리 쳐들어 왔으면 좋겠군. 여기서 사나 죽는 거나 매한가지 아냐?”
병재는 정필중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겠죠. 차라리 미군들의 포로로 잡혔으면 좋겠군요.”
“쳇. 그 생각 내가 먼저 했는데.”
정필중은 병재의 말에 투덜거린다. 병재는 그 정필중의 귀여운 투덜거림에 피식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지옥 같던 하루는 또 갔다.
11월 6일, 다음 날이 되었다. 피곤과 굶주림 속에서 살고자 일어난 징용자 한 사람이 곤히 자고 있던 징용자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슬슬 정신을 차린 징용자들은 점호를 받고자 집합하고 있었다.
징용자들의 우두머리들이 집합한 징용자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어제 같이 이야기한 정필중과 병재도 같이 있었다. 정필중은 지금까지 자리에 없는 징용자들을 보고는 병재에게 입을 열었다.
“쯧쯧 또 곡소리가 일어나겠군.”
병재는 정필중의 말에 동감하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또 지옥 같은 하루를 맞이하는구나라고 느낀다. 그러나 정필중의 예상과 달리 다행히 집합시간에 늦은 인원들은 없었다. 징용자들을 총 관리하는 구로다 센죠는 오늘은 입질이 없자 짜증난 표정이었다. 매일 사람 패는 맛을 보고 살아온 그에게 빠짐없이 집합한 징용자들을 보고는 기분이 엿 같았다. 그 때문에 그 기분을 풀고자 구로다 센죠는 징용자들을 두리번거린다. 그렇지만 공포에 질려있는 징용자의 얼굴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이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정하곤 단상에 올라가 입을 연다.
“아아. 잘 잤나? 버러지 같은 놈들? 보니까 오늘도 기분 좋게 일 할 표정이 보이는군. 그래. 그런 표정을 짓고 일을 해야지. 하하하. 오늘도 천황폐하와 그 적자들을 위해 힘을 다하도록.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
구로다 센죠는 연설하던 중에도 징용자들의 모습을 보며 트집을 잡을려고 했지만 그의 행동에 익숙한 징용자들이 걸리기 만무한 일이다. 이내 연설을 끝낸 구로다 센죠는 주위의 일본군에게 눈빛으로 지시한다.
그의 눈빛을 읽은 일본군 몇 명이 하이! 하이! 거리면서 행동을 개시한다. 이윽고 일본군들은 도구들을 꺼내며 징용자들에게 배분한다.
“자! 자! 우두머리들 모여.”
이내 우두머리들은 자신들에게 모이라고 일본군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몇 몇 가지들을 지시한다. 물론 지시 와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본군은 우두머리들의 정강이에 군화로 쫀다.
한편, 정필중과 병재는 배분하는 도구들을 받았다. 정필중은 삽, 병재는 곡괭이를 받았다. 물론 그 것들의 상태가 좋을 리 만무하다. 삽의 금속 부분은 깨지기 직전이고, 곡괭이의 자루는 금이 갔다.
그러나 그 것들을 받은 것도 정필중과 병재는 운이 좋다고 여겨야 했다. 그 것들보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도구들을 받은 징용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런 도구들을 받은 징용자들은 울상이었다. 왜냐하면 주어진 작업량들은 모두 다 평등하기 때문이다. 즉 모두 무리하게 진행한다. 그 작업량을 해치우기 위해선 체력과 힘이 있어야 했지만 도구도 좋아야 했다.
일본군은 징용자들을 위해 그런 상태불량인 도구들을 순순히 바꿔줄 위인들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도구를 하사한 천황폐하의 은덕을 몰라본다고 구타를 한다. 그리고 도구가 없다면 맨손으로 끝내는 정신력이 없다며 더욱 팬다.
“이거 잘하다가 도구 부숴먹겠군. 젠장.”
정필중은 주위의 일본군들을 생각하지 않는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다행히 주위에게 들리지 않았다. 정필중은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작업도중 도구를 부숴먹으면 천황폐하가 하사하신 도구들을 부숴먹다니 하면서 구타당할 것이 분명했다.
“천천히 하세요. 만약 부족하면 제가 도와드리죠.”
정필중은 병재의 고마운 제안에 피식 거리며 고마워했다.
“이거 자주 그러지마. 저번에 걸려서 구타당한 것 잊었어?”
“차라리 작업량 같이 끝내서 덜 맞을려고 합니다.”
“목적 나오네. 드디어.”
그런데 정필중은 병재와 너무 대화했던 것일까? 그 둘을 부른 일본군 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둘! 뭘 그렇게 속닥거려?! 빨리 안가?!”
정필중과 병재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얼른 징용자들의 행군에 합류했다. 인솔하는 일본군의 구령소리에 발맞추어 가니 어느새 노역장에 도착했다. 작업은 어제와 같았다. 바로 끝내지 못한 토치카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곳 타라와를 상륙할 미군들을 맞이하여 일본군은 징용자들을 동원하여 토치카들을 건설하고 있었다. 정필중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다는 듯 건설 중인 토치카를 보고 영 감흥이 없었다.
징용자들도 예상했다는 듯 어제 끝내지 못한 토치카들을 바라보았다. 병재도 토치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도 대충대충 해야겠군.’
병재도 열심히 일할 마음은 없었다. 시간 맞추어 작업량을 끝낼 생각만 가득하다. 작업량만 일찍 달성해봤자 일만 더 줄 뿐이고, 보상은 없다.
징용자들도 병재처럼 생각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천황폐하와 그 적자들을 위하여 목숨을 각오하듯 일 할 마음가짐 따위는 없었다. 다만 병재와는 달리 자신들은 그 작업량을 끝마칠 수 있을지 걱정할 뿐이다.
인솔한 일본군들이 작업시작 전 징용자들에게 기미가요를 부르라고 지시한다. 일본군은 항상 징용자들에게 기미가요를 제창하게 만들어 트집을 잡았다. 즉 제대로 큰 소리로 부르지 않은 인원에게 작게는 집단구타를 하고, 크게는 몇 명을 총살시킨다. 그렇기에 징용자들은 기미가요를 크게 똑바로 불렀다.
구타당하기도 싫고, 불운하게 찍혀서 죽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작업장에는 살고자하는 징용자들의 마음이 담긴 기미가요가 울러퍼졌다.
============================ 작품 후기 ============================
문맥과 문법이 안 맞는 부분 수정했습니다. 혹시 그런 부분과 오타가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