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26화 (26/633)

0026 / 0633 ----------------------------------------------

[1부] 흩어진 가족들

사실 병주와 강덕재의 인연은 병주가 전문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생성되었다. 병주는 전문학교를 수석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문학교에 입학했을 때, 강덕재랑 만났다.

강덕재는 일본신학교에 유학중에 있는데 잠깐 귀국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강덕재는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병주를 신문사진에서 확인했고, 만남을 청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사실 최주평처럼 일본에 있는 강덕재와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경성에 있을 때, 매번 찾아오는 편이었다.

그렇게 병주의 방에서 한 참을 웃고 떠들은 병주와 강덕재는 농담은 그만두고 일상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최주평 형은 만주군에 입대했다고?”

“예. 뭐 출세에 대해 목숨을 건 사람이라서 장교에 그나마 조선인이라도 받아주는 만주군에 입대했어요.”

“그 사람답군.”

강덕재는 최주평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덕재는 최주평이라는 사람을 모르다가 자신의 결혼식 때 만났던 사이였다. 그 것도 병주의 소개로 만난 사이였다.

강덕재와 최주평과의 관계는 물과 기름과 같이 성향자체가 맞지 않았다. 물론 둘 다 성인인지라 대놓고 다투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껄끄럽다고 여겼다. 더욱이 강덕재는 출세보다 독립운동에 관심이 있고, 반면에 최주평은 출세를 위해 일본군 괴뢰군인 만주군에 입대한 처지라 입장 상 더욱 관계가 좋아질 리가 없었다.

그 때문에 만약 두 사람이 만난다면 병주는 두 사람의 사이를 중재 혹은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이었다. 즉 둘 사이는 어색하지만 병주가 끼었을 때, 그나마 관계가 유지되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쩝. 병주 너는 그 사람과 꽤 친밀한 모양인데.”

“뭐. 형보다는 인연이 먼저 시작되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우리 집 사정에 많이 도움을 준 편이고요.”

“그런가?”

“예. 제가 저번에 동생 하나 있다고 했죠.”

“아 그 가출했다던 남동생 말인가?”

“네. 그 최주평형이 병윤이를 찾는데 도와주었죠. 뭐 성과는 없었지만 말이죠.”

“허... 그런 일이 있었군. 그렇다면 그 병윤이와는 연락이 없었겠네?”

“저도 답답하죠. 그 병윤이가 어디서 뭘 지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 말이죠.”

“뭐 때문에 가출했는지는 알 수 있는가?”

“사실 이야기하면 그런데, 저에게 누나가 있습니다. 그 누나가 저보다 먼저 경성으로 상경했는데 누나가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 때부터일 걸요. 병윤이 가출한 것을 말이죠.”

“으음...”

“아마 그 녀석 누나 구하겠다고 가출한 게 틀림없을걸요.”

“그렇다면 어디로 갔는지 예상이 되지 않나?”

“뭐 당연한 일이겠죠. 누나를 위안부로 팔아넘긴 업체부터 찾아가 정보를 얻고는 어딘가로 갔다고 말했죠. 그 때 상해에 위안부들이 모였다고 했으니 그 쪽으로 밀항했겠죠. 그 이후부터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죠.”

강덕재는 쯧쯧거리며 결론을 말했다.

“그 때부터 일본과 중국이 전쟁이 붙었으니까 말이야.”

“뭐 그런 셈이죠.”

그렇게 길병윤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병주는 이야기가 마치자 씁쓸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누나는 위안부로 끌려가고, 그에 따라 동생녀석은 누나 찾겠다고 가출하지 않나? 그리고 박출환 때문에 병재가 징용으로 끌려갔다. 징용이 끌려간 후 병재에 대한 소식을 접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상심이 컸다. 요즘 어머니는 병재와 병윤 때문에 우울증 증상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딸아이 하나 낳았다. 노신인데도 딸아이를 낳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이제 조선에 남은 가족은 부모님과 병주, 그리고 갓난아기 네 사람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 왜놈들은 자네 가족들을 주목하지 않는군.”

“거참 놀리시는 것이에요?”

“말도 마라. 사실 이번 결혼한 것도 내 아내를 지키기 위해 결혼했으니 말이야. 내 장인어른이 중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처가가 왜놈들에게 주목을 받는 편인지라 집사람을 지킬려고 어쩔 수 없이 결혼 한 거야.”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평범한 결혼식이 아니었네요.”

강덕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또 난관이 있어. 사실 병주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긴 한데, 우리 집사람과 내가 조금 곤란한 처지에 조금 처해있어서 말이야.”

“곤란한 상황이라면?”

“이런 말하기 조금 그런데. 사실 나는 일본군에 자원입대를 할려고 생각중이네.”

갑작스러운 강덕재의 폭탄발언에 병주는 놀라면서 소리쳤다.

“네?! 그건 무슨 말씀이죠? 형님.”

“만약 안 가게 된다면 내 집사람이 정신대에 끌려가게 된다네.”

“아!”

병주는 단박에 강덕재의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 현재, 일제는 가구 하나가 정신대, 징용, 자원입대 하나라도 안 한다면 강제로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처지였다. 지금 강덕재의 한 가구는 현재 강덕재와 그 아내 두 사람이니 당연히 강덕재가 징용 아니면 자원입대를 하거나 아내가 정신대를 가야했다.

물론 병주는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병재가 징용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들이 지원하라는 청도 거절할 수 있고 말이다.

“누구나 다 이해는 하겠지. 사실 자네를 만난 것도 이번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말이야.”

강덕재는 별일 아닌 듯 이야기한다.

“그런가요?”

“뭐 그런 것이지.”

“한 가지 맞춰보죠. 그냥 일본군에 입대할 생각은 없는 것이겠네요.”

강덕재는 병주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예상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일본군에게 엿을 먹여야겠고, 흐음... 탈영해서 일본군들을 상대할 작정이겠군요.”

강덕재는 자신의 목적을 아예 확신이라도 하듯 때려 맞추는 병주의 말에 피식 미소를 짓는다. 저 남의 속을 훤히 드려다 보는 천부적인 능력, 아마 병주가 점술사를 한다면 떼돈을 벌거라고 강덕재는 생각했다.

“이쯤 되면 잘 알겠군.”

병주는 강덕재의 말에 피식 웃었다.

“최주평 형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이해는 하실 거 에요. 사실 그 형의 큰 형이 독립운동가라서 말이죠.”

그 말에 강덕재는 처음 듣는 듯 하는 표정이었다.

“허어 그 형의 사정도 꽤나 복잡하겠군.”

“안 복잡한 집안 사정이 어디에 있겠어요. 저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말이죠.”

“그건 그렇지.”

강덕재는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전문학교 학생이기 때문에 소위부터 시작할 거 에요.”

이내 심지를 굳은 듯 병주는 표정을 진지하게 짓는다.

“동생녀석을 상관에 두는 상황은 처음이겠군.”

강덕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둘은 일본군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했다.

11월 9일, 타라와 섬, 병재의 하루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병주와 병윤이 이런 생활을 상상할 수가 있을려나? 그러나 병재는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졌다. 그 희망에 따라 이런 지옥같은 곳에서도 병재는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었다. 끈질기다고 표현하기에는 다른 징용자의 생활과는 조금 틀렸지만 말이다.

병재는 어제처럼 쉬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남으면 바깥으로 나가서 약초를 채집하거나 했다. 그리고 채집한 약초들을 가지고 약들을 만들고는 했다. 물론 밖에 나가는 동안 일본군 병사들을 만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병사들도 자신들을 치료해주는 사람이 병재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고 있는지 눈앞에 병재가 보이는데도 마치 안 보이는 것처럼 연기했다. 그런 모습이 조금 웃기기는 했지만 병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을 잘 활용했는지 병재는 며칠 동안 약초를 캐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약들을 만들 수 있었다. 더욱이 더 좋은 것은 일본군 병사들에게 더 이상 소독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병재가 자체적으로 소독제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병재는 이 징용기간동안 지금 유일하게 붕대를 제외한 의료물품들이 풍족했다. 그 붕대도 일본군 병사들이 치료받고 가져다주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거리도 없을 것이다.

병재가 밖에 약초를 캘려고 돌아다니느라 일본군 병사 몇 명이 병재의 상태가 치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 때문인지 징용자들이 없는 이때에 일본군 병사 몇 명이 찾아왔다.

병사들은 이미 이곳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고 있는지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 때문에 병재는 차례대로 병사들을 진료했다.

“상처가 심하군요. 곧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병재의 능숙한 일본어에도 병사들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처음 이용하는 병사들이야 깜짝 놀라겠지만 지금 이 곳의 병사들은 이 곳의 병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진료를 받은 일본군 병사의 상처를 두루두루 살피는 병재는 소독제를 뿌리고 약들을 바른 후, 침을 몸 이곳저곳을 놓고 뺀 후, 붕대로 감았다. 그렇게 병재는 간단하게 치료했다.

다음은 풍토병에 걸린듯한 안색이 안 좋은 병사였다. 병재가 살펴보니 벌레에 물려서 병균이 침투한 것으로 보였다. 아마 이 곳에 주둔하는 군의관도 치료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병재는 침을 놀리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다.

안색이 좋지 않았던 병사도 어느새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고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암묵적 법을 잘 알고 있기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안내해준 병사들과 함께 나갔다. 물론 부식과 붕대를 받아서 말이다.

다음은 신기했다. 병사가 아니라 소위, 즉 초급장교이기는 하지만 장교 급이 여기를 찾아온 것이다. 병재는 소위 계급장을 깜짝 놀라며 말을 했다.

“여기는 징용자들을 치료해주는 곳인데, 어떻게 이런 불결한 곳에 왔습니까?”

소위는 이미 알고 왔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친다.

“일단 머리가 아파서 말이야. 군의관에게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치료는커녕 더욱 아프기만 해서...”

“으음... 사실 저는 징용자라 이곳에 치료하는 것이 불법적이라서...”

일본군 소위는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법이고 나발이고 일단 치료는 가능한가?”

병재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라고. 일단 너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이 사실은 없는 거야.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이번에 시선을 뒤의 병사들에게 돌려서 동의를 강요했다. 물론 병사들도 소위의 동의를 받아들였고 말이다.

“침으로 일단 치료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소위는 깜짝 놀랐다.

“뭐 침?!”

“약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침을 사용하면 빠르기 때문입니다.”

소위는 병재의 말에 조금 불만이었지만 이내 침을 맞기로 결심했다.

“알았어. 아프지는 않은 거지?”

병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을 소위의 얼굴 곳곳에 놓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두통으로 찡그렸던 소위의 얼굴이 확 펴졌다.

“허. 진짜 신기하네. 그 죽고 싶을 만큼 짜증나는 두통이 단박에 사라지니 말이야.”

“일단 장교님의 병은 편두통입니다. 원인을 잘 알 수 없다고 알려진 고통이 꽤 심한 두통이지요. 사람마다 원인이 아주 달라서 말이죠.”

“그럼 편두통은 치료가 된 거야?”

“예. 일단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했으니 편두통을 겪지 않으실 것입니다.”

“허어 신통방통하군.”

병재는 소위의 얼굴에 있는 침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빼냈다.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러운 소위의 얼굴이 어느새 진중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제 제가 여기서 치료하는 것은...”

“아아 걱정하지마. 내가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아까 말했듯 너만 입 다물면 돼. 아무 걱정이 필요 없을 거야. 아 그건 그렇고 여기에 치료받으면 부식이나 붕대를 가져오면 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병재는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위는 그 말에 알았다는 듯 뒤의 병사에게 부식과 붕대를 건네받고 그걸 다시 병재에게 줬다.

“자 여기 받아둬. 이걸로 치료비는 됐어.”

“네. 감사합니다. 건강한 삶 살아가십시오.”

부식과 붕대를 건네받은 병재는 진심인지 아닌지 하여튼 감사의 인사를 했다. 소위는 그런 병재의 감사에 만족한 표정을 짓고는 이 방에서 나갔다. 그 후 병재는 아직 남은 병사들을 다시 치료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고, 징용자들 중 환자들은 병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차례대로 병재에게 치료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환자들을 간단히 치료한 병재는 간만에 정필중과 이야기를 나눴다.

“허어 구로다에게 끌려가고 이렇게 태평하게 치료하는 인간은 자네가 처음일거야.”

병재는 정필중의 감탄 어린 감탄에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 구로다 개자식에게 죽다 살아남았지만 질긴 목숨인지 지금까지 살아있습니다.”

“뭐 구로다에게 끌려가면 대부분 죽거나 운이 좋으면 죽기 일보직전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자네는 운이 아주아주 좋나봐? 이거 고향에서 투전하면 아예 몇 가구 울리겠는데?”

정필중의 농담에 병재는 피식 웃었다.

“투전하면 저 불러주십시오. 그 운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네요.”

“아 걱정말라고. 물론 고향에 돌아간다면 말이지.”

“물론 그 고향에 돌아간다는 조건이 힘들지만 말이죠.”

“크크크. 맞는 말이야. 이놈의 섬 공사도 점점 끝나가니까 말이야. 그런데 내가 흉흉한 소문을 조금 들었는데 그 왜놈들이 말이야. 공사가 끝난다면 우리들이 번거롭다고 싹 다 죽여 버린다는 말이 돌고 있어.”

병재는 정필중의 말이 금시초문인지 눈동자가 크게 떴다.

“그 미국인들과 붙을 때도 징용자들을 고기방패로 내세운다는 말도 있네.”

“허... 그게 정말입니까?”

“악독한 왜놈들이니 잘만 하지 않겠나?”

병재는 정필중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병재 자신은 의술이 있어서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미래에는 어떤 일이 기다릴 줄 몰랐다. 아마 자신도 고기방패가 되거나 학살당할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병재는 씁쓸했다. 그리고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저는 그 구로다 개자식을 죽이고 죽을 것입니다.”

구로다에게 고문당한 고통이 생생하게 기억된 병재의 얼굴은 증오심과 살기로 가득했다. 죽더라도 구로다를 죽이고 죽겠다는 병재의 살기어린 말에 정필중은 긴장을 했는지 침을 삼킨다.

“진정하라고. 일단 공사를 빨리 지어서 죽게 되는 것을 피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내 동료들이 일부로 설렁설렁 지을 것이네. 미국인들이 이곳에 올 때까지 말이야.”

병재는 정필중의 진지한 표정을 처음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