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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끝내게.”
정필중은 거동이 더 이상 하기 힘들어 보이는 구로다를 보고도 냉혹하게 말했다. 병재는 소총의 총검으로 구로다의 심장을 찔렀다.
-커 컥!-
구로다는 심장에 총칼이 틀어박히자 절명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구로다 심장 부위에 피가 흘러나왔고, 병재는 그걸 보고는 땅에 침을 한 번 내뱉었다.
“퉤. 인과응보다. 이 개자식아.”
“허참 망설임이 없군.”
정필중은 바로 죽여 버리는 병재의 단호함에 조금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했다. 병사 두 명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은 정필중은 병재에게 말했다.
“저 녀석도 얼른 털어.”
정필중의 말을 들은 병재는 시체로 변한 구로다를 뒤져서 물품들을 얻었다. 라이터, 담배, 권총, 권총탄 등 꽤 있었다. 병재는 권총과 권총탄들이 담긴 혁대를 정필중에게 건넸다.
“이건 몸 지키기 위해 쓰세요.”
“고맙군.”
감사의 인사를 건넨 정필중은 혁대를 차서 혁대 주머니에 권총을 넣었다. 챙길 물품들을 챙긴 정필중 일행들은 시체로 변한 구로다와 기절한 병사 2명만을 남긴 채 바로 자리를 떴다.
정필중과 그 일행들은 병재가 물품들을 숨긴 장소로 가서 가방들을 습득한 후 멨다. 그리고 길 잡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김강연의 안내에 따라 자신들이 탈출로로 따라갔다.
일본군 병사들이 보이면 숨는 방법을 이용해서 일행들이 목표로 하는 지점까지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일단 지낼 곳이야. 꽤 멀리 있지. 밑에 구덩이를 파놓아서 그 곳보다는 열악하겠지만 안전할걸세.”
정필중이 병재에게 말했다.
“허 언제 이런 준비를 해놨답니까?”
“뭐 그런 게 있어.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짬에 짬을 내서 만들었지.”
“괜히 여기로 온 게 아니군요.”
“그럼 당연한 말 아닌가? 여기 말고는 우리가 잠시 머무를 만한 장소는 없을 거야.”
“예. 일단 구덩이 안에 짐들부터 내려놓죠.”
정필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재를 구덩이에 데려갔다. 병재는 조악한 나무 사다리로 구덩이에 들어가서 구석에 짐들을 놓았다.
“사다리는 어디서 구했죠?”
정필중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한마디 했다.
“다 방법이 있어.”
“정형 꽤 능력이 있네요.”
“그럼 없을 줄 알았어?”
“하하. 아닙니다.”
“일단 짐들을 정리해놨으면 위장한 채 숨어있자고.”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을 마저 정리하고 다시 사다리를 올라타서 구덩이에서 나왔다.
구덩이에 나온 병재가 보니 수풀 속에서 숨은 노송규와 김강연이 망을 보고 있었고, 남은 소총 하나를 잡은 채병호가 김강연 옆에서 무슨 사태가 생기면 바로 발사할 준비를 했다.
병재는 얼른 발걸음을 옮기며 망을 보고 있던 노송규 옆으로 다가갔다. 노송규는 뒤의 인기척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병재를 확인하고는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노송규는 병재에게 건네주는 말없이 오로지 망을 보는데 집중했다. 그 때문에 병재는 눈앞에 떠오른 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술 [화기]화기숙달을 습득하였습니다.-
-기술 [화기]조준을 습득하였습니다.-
-기술 [화기]재장전을 습득하였습니다.-
병재는 얼른 [화기]총기숙달과 [화기]조준, [화기]재장전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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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 화기
[이름] : 화기숙달
[숙련등급] : 입문
[숙련도] : 2단 88%
[상세] : 총, 대포, 기관총 등 각종 화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화기에 대한 계통의 기술들의 효과를 2% 증가시키고, 화기에 관련된 기술들에 대한 몸의 피로증가와 정신의 피로증가가 0.2% 감소한다.
[계통] : 화기
[이름] : 조준
[숙련등급] : 입문
[숙련도] : 2단 77%
[상세] : 도구를 이용해 목표의 거리와 방향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숙련도에 따라서 조준이 정교하게 변하고 흐트러짐이 적어진다.
[계통] : 화기
[이름] : 재장전
[숙련등급] : 입문
[숙련도] : 1단 62%
[상세] : 바로 화기가 발사할 수 있게끔 탄들을 교체하는 기술이다. 화기의 성능에 따라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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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한 번 잡았다고 기술 세 개가 습득되다니 신기하군.’
일일이 세 개의 기술들을 확인한 병재는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는 노송규와 같이 망을 보았다. 말이 없는 두 사람은 조용히 몇 시간동안 이곳을 찾는 인간들이 있나 없나 살폈다. 비록 새벽 밤이라고 하지만 일본군 미군들이 싸우면서 조명탄들을 쉴 세 없이 발사하는 바람에 낮처럼 변했다. 뭐 그 덕분에 시야를 확보하는 데 용이했다. 말없이 망만 보다가 몇 시간이 흐르고, 아침 6시가 되면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족한 잠들은 2개조로 나뉘어 해결했다. 그래서 소총들은 망을 보는 인원들에게 몰아주었다. 잠은 4시간마다 번갈아 잤다. 노송규와 병재가 한 조였고, 채병호와 김강연이 한 조였다. 병재가 식량을 꽤 챙겨왔던지라 식량걱정은 없었다. 물도 역시 걱정할 것 없었다. 물통에 물들이 가득 찼다.
1943년 11월 22일 오후 5시, 미해병대 1대대에 속해있는 헤이드 병장이 분대장으로 있는 헤이드 분대는 연신 탈진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늘도 처절하게 저항하는 잽들의 이마에 총알이 박아두었지만 며칠 동안 자지 못한 잠들이 그들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피곤하다고 하여도 그들의 눈빛은 흐리멍텅하지 않고, 긴장으로 얼룩졌다. 피곤으로 몸이 진다면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이드 병장님. 멍청한 잽들이 여기까지 설칠까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존 바드레드 일병이 굳은 얼굴을 하는 헤이드 병장에게 물었다. 그러나 헤이드 병장은 역시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일단 긴장하고 있어. 언제 우리를 습격할지 모른다.”
“쩝. 눈이라도 붙였으면 좋겠군.”
이 차가운 바닥이지만 눈이라도 붙이고 싶은 바드레드 일병은 투덜거린다. 그 때, 헤이드 병장이 수신호로 분대원들을 정지시킨 후 주위 엄폐물에 엄폐할 것을 지시했다. 분대원들은 그 수신호를 받자마자 바로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겼다. 무언가 발견한 것일까? 바드레드 일병은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서 적을 찾았다. 그리고 수상한 수풀 속에 일본군의 소총인 아리사카의 총신이 보인 것을 확인했다.
“휴우. 멍청한 잽들은 우리를 발견 못한 것 같습니다.”
바드레드 일병은 이번이 신의 도움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느꼈다. 적들이 발견했다면 아마 몇 명은 죽을 것이 분명했다.
“방심은 하지마. 일단 상황을 지켜본다.”
헤이드 병장은 바드레드 일병과 말하는 와중에도 총신이 보이는 장소를 집중했다. 바드레드 일병은 수류탄 하나를 품에서 꺼내고는 말했다.
“던집니까?”
“아직이다.”
반면 헤이드 분대를 발견한 병재와 노송규는 놀란 얼굴을 했다. 정필중이 미군을 만난다면 얼른 항복하라는 말이 나왔기에 기회가 온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군들이 이곳을 공격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병재는 노송규를 보고 급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깨우세요. 저는 영어를 할 수 있으니 얼른 저들에게 먼저 투항하겠습니다.”
“아. 알았네.”
노송규는 얼른 급히 움직여 구덩이로 향했고, 병재는 입고 있던 옷을 찢어 주위 나뭇가지로 걸었다. 그리고 외쳤다.
“투항하겠습니다.”
주위에 몸을 숨긴 헤이드 병장은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영어에 그조차 깜짝 놀란다. 그리고 바드레드 일병에게 수류탄을 다시 넣으라고 지시한다. 헤이드 병장은 다시 반대편을 살펴보니 어느새 수풀 위에서 흰색 깃발은 아니지만 옷가지가 걸린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확인했다. 헤이드 병장은 그 것을 보고 소리쳤다.
“소총을 양손으로 하늘위로 잡고 나와라.”
병재는 헤이드 병장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 말대로 소총을 양손으로 머리위로 올리고는 천천히 나왔다. 헤이드 병장은 병재가 나온 모습을 살핀 후에 건너편 분대원 두 명에게 말했다.
“포박해.”
헤이드 병장의 말을 들은 분대원 둘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한 사람은 병재를 조준하고, 한 사람은 병재를 제압했다. 제압한 병사 한 명이 병재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 혼자인가?”
“아닙니다. 지금 동료 네 명이랑 같이 있는데 그들도 곧 투항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군가?”
“저는 일본군 휘하에서 끌려온 징용자입니다. 동료들도 같습니다.”
“으음. 알겠다. 헤이드 병장님! 제압했습니다.”
그 직후, 정필중을 포함한 네 명이 따라서 손을 들고 투항했다. 네 명은 영어를 몰라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엄폐물에서 나온 헤이드 병장은 병재를 포함한 다섯 명이 나온 것을 확인했다. 그나마 영어를 구사하는 병재에게 가서 물었다.
“내가 보기에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당신 혼자뿐이군.”
“예.”
“일단 자세한 것은 중대본부에 가서 이야기하지. 바드레드. 저 사람들 본부로 가서 심문할 수 있도록 해.”
“옛썰!”
헤이드 병장의 말에 바드레드 일병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병재를 포함한 다섯 명은 바드레드 일병과 병사 한 명을 따라서 그 본부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새 발걸음을 옮겨서 중대본부에 도착하게 된 다섯 명은 한 막사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가장 먼저 영어구사가 가능한 병재부터 시작되었다.
심문자를 마주본 채 병재가 의자에 앉자, 심문자는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적더니 이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제 이름은 길병재라고 합니다.”
“으음... 길... 병... 재... 꽤 이름이 어렵군.”
그래도 심문자는 발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병재의 이름을 서류에 적었다.
“생년월일은 어떻게 됩니까?”
“1919년 8월 15일입니다.”
“그럼 소속은 무엇입니까?”
“원래 일본군에게 끌려온 한국인 징용자입니다.”
“흠흠... 한국인 징용자.”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나요?”
“자세한건 잘 모르지만 두 달 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 달 전... 일단 기본적인 사항을 적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물어보죠.”
심문관은 서류에 기본적인 것들을 적고 고개를 병재에게 향했다.
“예.”
“우선 한국인 징용자라고 하던데 내가 알기로는 영어를 그만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 그건 조선에서 조금 관심이 있던 지라 영어를 배웠습니다.”
“흠. 그랬군요. 그런 사정으로 영어가 통한다니 상당히 다행이군요.”
“예.”
“그럼 조선에서 뭐했기에 이곳까지 끌려온 것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원래 조선에서 한의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끌려온 것은 저에게 원한을 품은 한 사람 때문입니다.”
“흠흠. 한의사라 전통 의술 같은데 주술사 같은 것입니까?”
병재는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음 그런가요? 뭐 좋습니다. 일단 의사출신이라고 해두죠.”
“예.”
“그리고 원한 있는 한 사람 때문에 끌려온 것이라는 말은 왜 했죠?”
“예. 그건 그 놈이 제가 살던 마을에서 일제의 협력자라는 소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징용에 관해서 추천을 해주는 권한까지 있습니다. 그 권한 때문에 여기까지 끌려온 것입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인솔한 병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징용된 곳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그 장소에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예. 원래 일본군 측에서 일이 끝난 징용자들을 처리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5명은 저희들을 죽이려는 일본군 하사와 두 명에게서 저항에 성공하여 빠져나와 지금의 구덩이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왜 구덩이에 있었죠?”
“일단 그 장소가 저희들을 추격할 수 있는 일본군을 격퇴하기에 용이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군이 온다면 얼른 항복하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렇군요. 당신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그런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동료들 중에서 당신 혼자입니까?”
“그건 아마 그럴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은 여기서 나가지 말고 옆에서 통역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통역을 부탁하는 심문관의 말에 병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필중을 시작으로 김강연, 노송규, 김강연, 마지막 채병호의 심문에 병재가 통역을 해주었다. 심문관은 모든 심문이 끝나자 힘든 지 의자에 몸을 젖혔다. 그러다 아하고는 통역을 맡은 병재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예.”
조금 무언가 곤란한 얼굴의 병재의 모습에 심문관은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일 있나요?”
병재는 심문관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다가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걸 말해주어야 말아야하나 라는 표정이 눈에 딱 보였다. 이내 결심을 굳힌 병재는 심문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얼굴을 보니까 알 수 있겠군요. 혹시 간질을 앓았습니까?”
병재의 말을 들은 심문관은 깜짝 놀랐다. 심문관이 과거에 간질을 앓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 돈을 까먹을 만큼 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완치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병원의 치료가 헛수고는 아닌 것이 입대 이후부터 발작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병재는 심문관의 얼굴을 보고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심문관은 일단 병재가 무슨 소리부터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병재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