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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30화 (3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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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붕대가 풀러진 바드레드 일병의 목은 구멍이 났다. 아마 총탄이 목에 박혀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았군.’

목에 박힌 총알은 다행히 목의 척추에 닿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살릴 수 없다고 절망할 일이지만 병재에게는 별 일 아니었다. 병재는 과감하게 메스를 들고 바드레드 일병의 상처를 조금 쨌다. 그리고 조금 벌러진 상처에 총알을 찾은 병재는 핀셋으로 총알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그리고 목의 구멍을 실로 꼬았다. 병재의 능숙한 솜씨에 헤이드 병장과 심문관은 놀란 표정이었다. 헤이드 병장은 믿을 수 없었기에 손가락으로 바드레드 일병의 코 밑에 대었지만 숨이 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재는 고개를 돌려 심문관과 헤이드 병장을 바라보았다.

“우선 급한 것을 처리했습니다. 일단 며칠 쉬어주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허어. 이 정도일 줄이야.’

심문관은 놀란 표정으로 병재를 쳐다보았다. 심문관이 바드레드 일병의 목의 구멍을 보아도 헤이드 병장이 다급히 찾던 군의관이 고개를 돌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목의 척추와 신경을 손대지 않고, 총알만 빼낸 병재의 솜씨에 감탄을 내지를 정도였다.

헤이드 병장은 심문관보다 놀라는 표정이었다. 저런 실력의 의사라니? 오히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저런 실력이라면 일본군의 군의관이 되지 않고, 왜 노무자가 되었던 것이지?’

일단 숨을 쉬는 바드레드 일병의 모습에 헤이드 병장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 둘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병재는 시선을 돌려 바드레드 일병을 보고 한 가지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걸 할까?’

병재는 바드레드 일병의 잘려진 팔을 보고 한 가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으음. 일단 물어봐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할 때였다.

“뭐야? 바드레드 일병이 여기에 있었나?”

헤이드 병장 분대를 지휘하는 브레이 소대장과 중대장 시런 대위가 막사 안으로 찾아온 것이다. 심문관과 헤이드 병장은 둘을 보자마자 얼른 경례부터 했다.

경례를 받은 헤이튼 중대장이 심문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예. 일본군 노무자들 중 다행히 의사가 있어서 치료 중에 있습니다.”

“의사?”

심문관은 쩔쩔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까일 것을 받자고 결심하고는 그냥 대답했다.

“일단 급해서 치료했습니다. 결과는 양호합니다.”

“그래 척 봐도 양호해 보이는군. 아직 처참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저 노무자가 의사라고 거짓말했다면 지금 쯤 환자도 죽어있겠지.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실력은 제가 확인했습니다.”

시런 중대장은 화난 표정으로 심문관을 쏘아붙이며 말했다.

“내 지켜보겠어. 차오면 저 녀석 대대본부로 보내.”

“예.”

중대장은 그 말을 하고 얼른 막사를 떠났다. 브레이 소대장은 얼른 헤이드 병장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저 동양인이 바드레드 일병을 치료했습니다.”

“어떻게?”

“음 뭐라고 해야하지. 바드레드 일병의 몸 곳곳에 꽂힌 저 침들 보이십니까?”

헤이드 병장이 침들을 가리키자 브레이 소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헤이드 병장은 말을 계속했다.

“저 걸로 바드레드 일병을 지혈했습니다.”

“뭐? 허... 어디 귀신이라도 씌운 거 아냐?”

“그건 정말입니다. 옆의 심문관님도 봤으니 그건 확실했습니다.”

말이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심문관은 얼른 헤이드 병장의 말의 신뢰성을 덧붙였다.

“어이 브레이. 그건 내가 확인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야.”

“그래?”

소대장은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둘이 그렇다고 하니까 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마음이지만 척 봐도 바드레드 일병이 지혈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는데?”

“그건 일단 깨끗이 씻은 메스로 상처를 벌리고는 핀셋으로 간단히 총알을 빼냈습니다. 그 것으로 끝입니다.”

“말만 들으면 나도 의사 노릇을 할 수 있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헤이드 병장은 브레이 소대장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의 눈에도 병재는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목에 박힌 총알을 빼내고 실로 구멍을 꿰맸다.

그 때, 병재가 고개를 돌려 심문관, 헤이드 병장, 브레이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병재는 심문관에게 말했다.

“저 후속치료를 해도 괜찮습니까?”

“후속치료요?”

“예. 환자의 팔을 재생치료를 할려고 합니다.”

심문관은 그 말을 듣고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건 헤이드 병장과 브레이 소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레이 소대장은 황당한 말투로 병재에게 말했다.

“당신 사기꾼 노릇하면 돈 많이 벌겠어.”

“저만의 비법이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브레이 소대장은 시선을 돌려 심문관에게 향했다.

“어쩔 거야?”

“에이 모르겠다. 해보시오.”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들을 바드레드 일병의 잘린 어깨 죽지 부근에 꽂았다.

‘사람에게 재생치료를 해보는 건 처음이군.’

고향에서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를 보고 재생치료를 습득했다지만 정작 사지가 잘린 사람에게 써보지 못한 병재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재생치료를 사용했다. 병재는 바드레드 일병에게 꽂힌 침들을 통해 바드레드 일병의 몸 속 피와 살의 움직임을 느꼈다.

‘성공이군.’

아마 시일이 지나면 잘린 팔이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병재는 그 생각을 하자 얼른 침들을 빼 거뒀다.

“그 것으로 끝이야?”

브레이 소대장은 병재에게 비아냥대며 말했다. 그러나 병재는 그 말을 듣고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시간이 걸린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좋아. 지켜보겠어. 사기꾼씨.”

브레이 소대장은 의심과 조롱의 눈빛을 병재에게 보내고는 막사를 나갔다. 막사 안에 남은 심문관과 헤이드 병장은 곤혹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심문관이 이내 일어나고는 병재에게 말했다.

“저도 사실 못 믿겠습니다. 일단 저는 제 일을 하러 나가 보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병재는 그 말을 듣고 바드레드 일병을 살펴보고 이내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헤이드 병장에게 말했다.

“이상 징후가 보이면 저에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건 걱정 마시오.”

“예. 알겠습니다.”

병재는 그 말을 듣고 심문관과 같이 막사를 나섰다. 졸지에 막사 안에는 헤이드 병장과 바드레드 일병만이 남았다. 헤이드 병장은 아직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바드레드 일병을 보며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나의 아버지시여. 불쌍한 양에게 부디 기적을.’

11월 23일, 타라와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미군이 승리를 거뒀다고 하지만 피해는 참혹했다. 미군의 전사자와 행방불명자는 1085명, 부상자는 2233명이었다. 반면 일본군은 129명의 한국인 징용자와 17명의 일본군만 남겨둔 채 전멸했다.

전투가 끝나고, 헤이드 병장이 속해있던 중대도 대대본부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정필중, 병재를 포함한 다섯 명의 징용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 차례 소란이 벌어졌다.

“이건 말도 안 돼!”

브레이 소대장은 정말 믿기지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찌나 놀라운 일인지 턱을 벌리고 침을 흘리는데도 온 정신이 광경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브레이 소대장뿐만 아니다. 심문관, 헤이드 병장, 그의 분대원들, 그리고 시런 중대장들 역시 브레이 소대장과 같았다.

얼떨떨한 것은 가까스로 눈을 뜬 바드레드 일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드레드 일병은 어제 있었던 참혹한 전투 속에서 자신의 목이 총알에 꿰뚫리고, 일본군 병사의 일본도에 어깨가 잘려 팔이 날라 간 것을 기억한다. 아마 그 기억을 끝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바드레드 일병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눈이 떠지자마자 고통들이 한꺼번에 밀려나와서 조금 힘들었던 것이다.

눈이 떠질 때, 자신은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얼빠진 모양의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잘린 어깨에 향한 것을 보고 자신의 시선도 어깨를 향했다. 그리고 말을 하지 못했다.

바드레드 일병의 어깨는 어느새 재생되었으며 팔이 팔꿈치까지 자라난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드레드 일병이 팔꿈치를 만져보니 자라난 팔의 피부는 아기가 갓 태어날 때처럼 뽀얗고, 부드러웠다. 그 믿기지 않은 광경에 바드레드 일병은 ‘자신이 괴물이 아닌가?’라는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 때, 차가 끼익하고 멈췄다. 아마 차가 대대본부에 도착한 모양이다. 시런 중대장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얼른 그 노무자를 불러와!”

그 말에 병사 하나가 멈춘 차를 확인하고는 얼른 뛰어 내려 병재를 데리러 발걸음을 떠났다.

“그 노무자 정체가 뭐야?”

브레이 소대장은 바드레드 일병의 팔꿈치까지 성장한 팔을 보고 얼빠진 목소리로 심문관에게 말했다. 심문관은 간신히 턱을 닫아 브레이 소대장의 말에 대답했다.

“몰라. 의사라고 말한 것뿐이야.”

“씨발. 의사도 저런 게 가능하다 말이야.”

“나도 믿지 못하니까 나에게 말해도 소용없어.”

잠시 후, 얼떨결에 병사의 다급한 안내를 받아 바드레드 일병이 있던 곳을 온 병재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병재는 바드레드 일병과 자신을 번갈아보는 사람들의 눈에 아랑곳 않고, 입을 열었다.

“일단 팔꿈치까지 자란 것 같군요. 혹시 갖고 있는 열량높은 음식물 있습니까?”

그 말에 시런 중대장은 품속에서 초콜릿 여러 개 꺼냈다. 그 행동을 지켜본 브레이 소대장, 심문관, 헤이드 병장을 포함한 병사 모두 품속에서 가지고 있던 음식들을 꺼내 병재에게 전달했다.

“일단 재생치료에는 허기가 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 말에도 안 그래도 배가 너무 고팠던 바드레드 일병은 시런 중대장이 보는 앞인데도 몰래 숨겨둔 초코바 하나를 꺼내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바드레드 일병은 게걸스럽게 초코바 하나를 먹고는 병재가 건네주는 음식물 하나하나들을 비웠다. 그렇게 평소 먹을 수 있는 양을 초월한 바드레드 일병은 그래도 부족하다는 듯 음식물들을 계속 먹어치웠다.

“저러다 위장이 터지겠군.”

헤이드 병장은 게걸스럽게 먹는 바드레드 일병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브레이 소대장, 심문관, 시런 중대장 역시 바드레드 일병이 평소에 저렇게 먹었나 싶을 정도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한 눈에 끈 바드레드 일병은 그 많던 음식물들을 다 먹어치우고는 이제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병재는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눈빛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치료를 계속하겠습니다.”

병재의 말에 시런 중대장이 믿기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병재는 그 걸 보고 품속에서 침들을 꺼내더니 어제와는 달리 재생된 팔꿈치 부근에 침들을 놓았다.

바드레드 일병은 갑작스러운 병재의 행동에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생각하고는 가만히 병재의 침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팔꿈치가 간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재는 됐다는 눈빛을 하고는 침들을 거뒀다. 그리고 시런 중대장에게 인사했다.

“일단 치료는 끝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손까지 완벽히 재생될 것입니다.”

중대장은 그 말을 듣고 어이없고도 멍한 눈길로 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헤이드 병장은 어제 전해드렸던 기도에 대해 생각했다.

‘뭐지. 신께서 나의 기도에 답해드렸나?’

신의 힘이 아니라면 저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헤이드 병장의 머리로 저 광경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 알았네. 돌아 가봐.”

병재는 시런 중대장의 말에 꾸벅 인사하고는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런 중대장은 고개를 돌려 심문관에게 향하고 입을 연다.

“저 노무자 정체가 뭐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자네가 심문하지 않았나?”

“고향에서 전통의사를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이상은 제가 질문을 안 했고요. 제 간질을 완치해서 의사로 소개한 것 그 걸로 끝입니다.”

“미친. 저런 의사가 왜 노무자를 하고 난리야.”

“모르는 일입니다.”

한편, 병재는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정필중은 곧 바로 병재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병재 너를 불렀데?”

병재는 그 말에 간단히 대답했다.

“어제 치료해준 병사의 치료를 다시 한 것뿐입니다.”

정필중은 그 말에 ‘그냥 그렇구나’라고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네는 정말 왜 여기에 끌려온 것인지 모르겠네.”

“아 말했지 않습니까? 그 박출환 놈 때문에 여기까지 끌려왔다고요.”

“원래 끌려갈 때, 의사라고 말 안 했어?”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면허가 없으니 의사는 무슨 의사라며 그냥 노무자로 끌려왔지요. 뭐.”

“아 그랬지 참.”

“그건 그렇고 저희들은 아마 하와이의 수용소에 갈 것 같습니다.”

정필중은 자신과 일행들의 상황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했다.

“그래? 허참 이 개 같은 섬에서 벗어나 수용소에 가다니.”

정필중은 수용소라는 말에 씁쓸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보였다. 그 것은 병재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섬은 병재를 포함한 징용자들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운이 좋아 여기서 빠져나간다고 하지만 수용소라니? 병재는 섬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빠질까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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