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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시런 중대장의 직속상관인 1대대장 윌리엄 존스 소령은 시런 중대장의 말에 무슨 미치고도 황당무계한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이봐. 시런 중대장.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보고 올린 데로입니다.”
“뭐? 잘린 팔이 재생한다고? 그게 개소리가 아니면 뭐야?”
“저도 보고를 드리지 않을려고 했지만 제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올렸습니다.”
“하아. 시런 중대장. 자네 전투 때문에 어딘가 미친 거 아니야?”
존스 대대장의 한심한 눈빛에 시런 중대장은 억울했지만 말을 계속했다.
“대대장님 말씀대로 차라리 제가 미쳤다고 믿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제 눈에 확실히 보였고, 눈을 통해서 그 장면을 제 뇌에 확실히 각인했습니다.”
“알았어. 그만 가봐.”
“예!”
시런 중대장은 존스 소령을 향해 경례를 올리고는 막사를 나갔다. 존스 소령은 시런 중대장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아까의 보고서를 찬찬히 살폈다.
‘팔이 잘렸는데, 그 팔이 접합한 것이 아니라 마치 식물처럼 팔이 재생했다라. 이거 전투 때문에 나도 미친 거로군.’
안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일본군의 집단자살에 존스 소령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했다.
‘이 나이 먹고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나?’
그렇게 존스 소령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고서를 보고는 자신의 장래를 걱정했다.
바드레드 일병이 있는 군병원 막사 안에는 얼빠진 오드밀러 군의관은 계속 바드레드 일병의 목과 팔을 확인했다. 실밥에 묶인 목과 그리고 조금씩이지만 자라는 팔을 번갈아 보았다. 바드레드 일병은 자신을 마치 귀신 보듯 관찰하는 군의관을 상관하지 않는 채 초코바로 계속 생기는 허기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오드밀러 군의관이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있을 때, 바드레드 일병 역시 오드밀러 군의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믿기 어려운데 댁이야 오죽하겠어.’
오드밀러 군의관은 연신 번갈아보는 짓을 하면서 계속 확인하고 확인했다. 자신의 가치관이 맞는 이유를 찾을 때까지 계속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오드밀러 군의관은 계속 확인했지만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턱을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
“저 군의관 선생님. 전 괜찮은 건가요?”
멍하니 있는 오드밀러 군의관을 조심스럽게 보는 바드레드 일병은 초코바 하나를 다 먹은 후 조용히 물었다.
“누가 치료했나?”
“예?”
“누가 치료했냐고?! 말해!”
갑작스럽게 버럭 소리 지르는 오드밀러 군의관의 모습에 바드레드 일병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오드밀러 군의관은 바드레드 일병이 대답하지 않자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말하라고! 누가 치료해줬어?!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야. 이런 기술은. 이런 의학은. 이건...”
오드밀러 군의관은 그렇게 말을 잇고는 갑작스럽게 침묵했다.
“그 치료해준 의사는 한국인 노무자인가? 그 사람입니다.”
“뭐라고? 노무자? 아니 그게 문제는 아니지. 이름은 뭐야?!”
“워.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바드레드 일병의 말에 오드밀러 군의관은 흠흠거리며 헛기침을 한 후 가다듬으며 바드레드 일병에게 질문했다.
“그래. 그의 이름은 뭔가?”
“저도 모릅니다.”
“뭐야?!”
바드레드 일병은 진짜 몰랐다. 그의 얼굴과 차림새는 기억나지만 이름은 묻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아마 심문관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때, 군의관을 부르는 한 목소리가 들렸다.
“군의관 선생님. 급한 환자입니다. 빨리 와주십시오.”
미령의 목소리가 들렸고,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거리는 오드밀러 군의관이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젊은 여성의 간호사가 있었다.
“어디야?”
오드밀러 군의관은 바드레드 일병을 한 번 쏘아본 후, 간호사를 따라 급히 급한 환자에게 향했다. 졸지에 자신을 담당하는 군의관이 없어진 바드레드 일병은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기 저는 어떻게 합니까?”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예.”
바드레드 일병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군병원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강아지풀에 문지르는 느낌의 팔을 연신 쳐다보았다. 자신의 잘렸던 팔은 어느새 팔꿈치를 넘어 손목까지 자랐다. 바드레드 일병은 배고프다는 느낌이 들자 헤이드 병장이 건네준 초코바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훈련을 받느라 생긴 멀쩡한 팔의 멋진 근육들도 줄어든 것을 본 바드레드 일병은 이 재생치료라는 것이 몸의 살들을 이용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여기 있었네. 지금 군의관님이 찾고 있어요.”
아까의 간호사가 뛰어왔는지 헉헉거리며 바드레드 일병을 찾았다. 바드레드 일병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찌푸리고는 간호사를 따라갔다.
한편, 여기서 가만히 있으니 꽤나 심심해진 병재는 김강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향이 벌교읍이라고?”
“예. 전라도 벌교읍에 살았는데, 거기서 해안가에 집에 있었죠. 우리 부모님은 꼬막을 캐면서 생계를 유지했어요.”
“꼬막이라. 꼬막은 뭐지?”
“꼬막이 꼬막이죠. 조개는 알죠?”
“어 그건 알지.”
“그 꼬막이 조개 중에 작은 녀석이라 보면 돼요.”
“그래? 하아 조개라... 난 그 문경 주위 시골에서 살다 왔거든. 문경은 알지?”
“문경이요? 거긴 어딘데요?”
문경을 모르는 김강연의 말에 병재는 조금 찡그린 눈치였다.
“아 모르면 됐어. 하여튼 바다는 여기 끌려올 때 빼고는 못 봤다고 말해주지.”
“아 그래요? 그건 그렇고 형은 여기에 어쩌다 끌려왔어요?”
“뭐 이제 와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 내 살던 고향에 원수 하나가 있거든. 그 원수가 면서기라서. 그 놈이 징용에 나를 넣어 버린 거지. 그 때문에 여기까지 끌려왔고.”
“전 그냥 인원이 모자르다고 꼽사리로 끌려갔어요. 제가 우리 집에서 유일한 남자이자 장남이라서 나이는 상관없이 끌려왔어요.”
“그래? 남자뿐이라면 동생들은 다 여동생들이야?”
“뭐 지금이면 가장 큰 여동생이 8살 정도 먹었지만요. 형은요?”
“나도 고향의 집에서 장남이지. 여동생 하나, 그리고 남동생 둘이 있다. 여동생은 경성에 가서 일하다가 위안부로 끌려갔고, 내 막내 남동생은 그 여동생 찾고자 친구 하나랑 같이 가출해버렸다.”
“막내가 몇 살인데요?”
“너랑 비슷할 거야. 그 녀석이 지금쯤이면 18살이 되었을걸.”
“우와 저랑 같은 나이네요.”
김강연은 기쁘다며 박수치면서 좋아했다. 병재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가출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살아 있을 거야.”
“당연히 그래야죠.”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형은 결혼했어요?”
“결혼?”
“아 형 나이 정도면 고향에서 결혼하지 않겠어요?”
“없어. 총각이야.”
“우와. 이 나이 먹도록 총각이라니.”
김강연은 진심으로 놀랍다는 듯 병재를 쳐다보았다.
“그만 쳐다봐라. 고향에 돌아가면 결혼하겠지.”
“아닌 거 같은데요. 이미 결혼할 때가 늦어서 결혼하지 못할 거 같은데요.”
“내가 결혼 못하면 너도 결혼 못해.”
“저는 고향 돌아가자마자 결혼할 거 에요. 형은 그냥 평생 노총각으로 사세요.”
“이 녀석이.”
병재는 발로 김강연을 꾹꾹 눌렀고 김강연은 그에 대항하고자 양발로 이러 저리 병재의 발을 옆으로 쳐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정필중은 피식 웃는다.
그 때, 미군 병사 하나가 징용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찾아왔다. 한참 가만히 있거나 이야기를 나누던 징용자들이 일시에 병사를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병사는 그 눈빛에도 무시하고는 자신의 할 일을 하고자 했다. 병사의 입에서 징용자들이 해석하기 어려운 영어가 큰 소리로 외쳐진다.
“여기 길병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징용자들은 병사의 외침에도 이해를 못하는지 옆의 사람에게 물었지만 다 모르는 눈치였다.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참 김강연과 장난을 치던 병재는 자신을 찾는 병사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고는 병사에게 발걸음을 돌렸다.
“아 예. 제가 길병재라고 합니다.”
징용자들은 병사의 입에서 나온 영어가 병재의 입에서도 나오자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저 사람 뭐지?”
“아 그 사람 있잖아. 그 의사 선생.”
“아! 그 사람.”
징용자들은 다행히 병재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병사와 병재는 그런 징용자들의 웅성거림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우선 저를 따라오시오.”
병재는 영문을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병재와 병사는 발걸음을 옮기며 사라졌다. 김강연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정필중에게 다가가 물었다.
“길씨 형은 자주 불러 다니네요.”
“휴우. 그러게 말이다.”
한편 병사를 따라갔던 병재는 어느 콘크리트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호사 복장을 한 여자들이 돌아다녔고, 척 보기에도 환자로 보이는 병사들이 건물을 왔다갔다하는 것을 확인한 병재는 어디에 도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병원이군. 아마 그 미군병사에게 한 재생치료 때문일까?’
병재의 짐작대로 건물 안은 난리가 났다. 건물 안, 해병 제 2사단의 사단장 줄리안 C.스미스는 놀란 눈빛으로 바드레드 일병의 재생되는 팔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것은 주위를 이루는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드레드 일병은 사단장과 참모들이 자신을 향해서 집중하는 눈빛에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 것은 시런 중대장과 존스 대대장 역시 바드레드 일병과 같은 심정이었다.
스미스 사단장은 정신을 가다듬고 바드레드 일병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팔이 날아간 것을 확인하고 그것으로 기절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깨어 나보니 팔이 자랐다는 것을 확인했고?”
“예.”
“뭐 이상한 것은 없는가?”
“깨어날 때, 너무 배가 고파서 계속 먹은 것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으음. 알겠네. 나머지는 그 노무자를 담당했던 심문관에게 물어보지.”
“옛썰.”
스미스 사단장의 시선이 바드레드 일병에서 당시의 심문관에게 향했다. 심문관은 자신을 바라보는 스미스 사단장의 눈빛에 긴장한 얼굴이 역력해보였다.
“자네에게 물어보지. 자네가 건네준 이 신상명세서를 보니까. 그 친구 원래 전통의사였다는군.”
“예. 그 노무자는 고향에서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조치를 보니 순식간에 수술을 했더군. 그 침술을 제외하고 우리 의학에도 밝은 모습이군.”
“원래 고향에서 우리 의학들을 양의학이라고 하던데, 그는 그 것을 따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명세서대로 의사라고 할 수 있겠군.”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잽들이 그런 실력의 의사를 가지고 노무자로 활용했지?”
“그건 저도 자세히 모릅니다.”
“알겠네. 그건 그 친구에게 물어보지. 아 도착했나보군.”
스미스 사단장은 방 안을 들어온 병사와 병재를 바라보자, 그 주위의 참모들과 장교들 역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의 시선 집중에 병사는 부담스러워했지만 병재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병사는 사단장에게 경례를 올렸다.
“사단장님. 말씀하신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알겠네. 자네는 나가봐.”
“옛!”
병사는 경례를 다시 한 번 올리고는 방에서 나갔다. 스미스 사단장은 시선을 병재에게 둔 채 입을 열었다.
“아 자네가 그 노무자인가? 내 앞의 의자에 앉게나.”
“예.”
병재는 짧게 대답하고는 스미스 사단장 앞의 비어있는 의자에 살포시 앉았다. 스미스 사단장은 병재가 의자에 앉자마자 신상명세서를 한 번 바라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원래 한국에서 있었다고 하더군. 일본군에게 왜 끌려왔는지 말해줄 수 있나?”
“몇 년 전부터 징용을 지원하라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마을의 면서기라는 작은 급의 행정관이 있는데, 그 면서기가 징용을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면서기는 저랑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때문에 징용에 끌려왔습니다.”
“흠흠 그렇군. 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미안하네. 자네 원래 그 곳에서 의사였더군. 내가 알기로 징용을 한다고 하여도 보통 있는 실력대로 차출되지 않나 싶은데. 의사로 징용되지 않고, 노무자로 있었더군. 그건 왜 그런가?”
“정식적인 의료면허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가?”
“그 면허를 따기 위해선 우선 보통학교를 거쳐 고등보통학교, 대학 순으로 공부 졸업해야 의사면허를 딸 수 있습니다.”
“흐음. 정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
“예.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