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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엄폐물을 찾고 돌아다니는 일본군 병사들이 총탄에 맞고 쓰러지고 있었다.
-탕탕! 탕탕!-
“윽! 윽!”
중화기를 가진 일본군들은 매복에 걸려서 된통 당하고 있었다. 매복한 적들의 솜씨는 어느 저격수나 다름없이 백발백중이었고, 매복된 위치에서 일본군들은 별다른 반격할 위치를 찾지 못했다. 완벽한 덫이었다.
일본군들이 가진 중화기들로 하여금 반격할려고 했지만 적들의 공격은 그런 인원을 최우선으로 하여 처리 당했다. 몇 분간의 교전 끝에 기세등등했던 일본군 소대 하나는 전멸 당했다. 생존자들은 총을 버리고 허리를 숙인 채 벌벌 떠는 인원들 빼고는 없었다.
완벽한 패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일본군의 지휘부는 전멸 당했고, 적들의 피해는 없었다. 매복했던 적들은 이제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승리군.”
매복한 적들 중 하나였던 강덕재는 기쁜 목소리로 병주를 쳐다보았다.
“이제 보급할 수 있겠군요. 일단 포로들을 봐서 조선인이 있다면 물어봐서 편입시키기로 하죠. 그 외 나머지는 기절시키고 털어 놓으세요.”
강덕재는 고개를 끄덕인다.
매복한 적들, 그러니까 병주의 소대원들은 우선 포로들을 조준하는 인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무기들을 재빨리 수거하기 시작했다. 최근 생산된 아리사카 소총의 총알들을 빼낸 후, 총알들만 보충했다.
요즘 열악한 일본군의 상황 속에서 아무리 최근 나왔다고 해도 소대원들이 가진 총보다 조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외에 식량과 물통의 물들을 보충했고, 이제야 포로들의 심문을 개시했다. 우선 병주는 조선말로 포로들에게 물었고, 조선말을 듣고 대답할 수 없는 포로들에 한해서 소대원들을 시켜 기절시켰다. 일단 조선말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고향을 묻기 시작했고, 민족을 물었다. 일본인으로 대답한다면 기절시켰다.
마지막으로 조선인들만 남자, 자신들과 같이 함께할 것인지 물었고, 대부분 동의했다. 그리고 동의하지 않는 조선인들에 한해 아까의 일본인처럼 기절시켰다. 그리고 함께할 인원들에게 무기를 나눠주고는 다시 떠나기 시작했다.
병주는 포로들조차 완벽히 장악해 어느새 원래 탈영했던 소대원들처럼 편입시킬 수 있었다. 병주가 이끌고 있는 인원들은 현재 2개의 소대 정도 되었다. 남는 하나를 지휘할 소대장으로 병주는 강덕재를 임명했다. 그렇게 편성을 마무리한 병주의 무리는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 일본군에 탈영했던 조선인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병주는 그들을 편입시켰다. 규모는 하나의 분대를 만들 수 있는 규모였다. 병주는 그들을 예비 분대로 편입시켜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투입시킬 수 있는 병력으로 만들었다.
다행히 그들도 순순히 병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딱 봐도 병주가 많이 배운 것을 알고, 능력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병주가 장교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 이내 납득하고는 순순히 편성에 동의했다.
그렇게 병력을 증강한 병주는 행군 중에 산골 마을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산골 마을을 지키는 민병대가 경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병주는 거기서 능력을 하나 보여주었다. 친근감 있게 민병대랑 이야기하고는 마을에 들어선 것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거기 마을에서 병주의 무리는 옷과 음식들을 보충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병주의 소대들도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게 노력했다. 그렇게 마을에서 성공적으로 보충을 하고는 이내 다시 행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들은 중국군과 일본군이 전선을 형성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주의 무리는 전선의 병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매복하고는 밤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전선이군. 조금 달빛이 있지만 그래도 시간만 잘 타면 넘어갈 수 있겠어.”
강덕재는 전선을 이루고 있는 부분을 보고는 넘어갈 방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강덕재는 중국군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허어. 왜놈들이 상황이 안 좋다 안 좋았다 이야기하던데. 저걸 보니 알 수 있겠군.”
강덕재는 감탄한 눈빛으로 전선 중 중국군이 있는 곳을 보았다. 참호를 이룬 것은 둘 다 똑같았다. 다만 중국군의 대비가 더욱 잘 되어 있었다. 토치카가 일본군보다 더 많았고, 토치카 중간 중간 지점에 기관총들이 다수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차량들이 드나드는 것을 볼 때, 보급도 잘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주도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일단 어떻게 할 건가?”
“이 곳 전선을 돌파하는 것은 새벽 4시로 잡죠.”
강덕재는 병주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군. 둘 다 생각이 있으니 12시에 가면 경계를 설 것이고, 새벽 4시 쯤 되면 경계가 거의 끝난다고 해이해질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야.”
“그 때 동안 넘어갈 준비를 하고 소대원들의 잠들을 보충하죠.”
“알았네.”
그렇게 병주의 무리는 준비를 마쳤고, 이내 새벽 네 시가 되자 과감하게 전선을 돌파했다. 다행히 병주의 무리는 전선의 돌파에 성공했다. 두 군사 간에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1944년 4월 5일 오후, 전선을 돌파 후 행군하여 제 1차 목적지인 하읍현에 들어선 병주의 무리는 중국군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병주가 그나마 중국어를 할 줄 알아서 심문은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나저나 이제 당신들은 뭐 할 계획이오?”
심문을 담당하던 중국군 소위 한 사람이 담배를 물고 물었다.
“저희들은 이제 광복군에 입대할 계획입니다.”
“그건 잘 생각했소. 아마 당신네들을 받아줄 군대는 거기 밖에 없을 것이오. 내일 허창으로 가는 차 몇 대가 있으니 그걸 타고 허창에 도착하면 당신들처럼 탈영한 조선인 병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요. 거기에 대기 중인 조선인 병사들을 모아 안휘성 임천에 기차를 타고 가게 될 거요. 거기에 광복군이 있소.”
“호의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병주의 예의에 심문하는 중국군 소위도 기분이 좋은 지 한 마디 했다.
“뭐 별 거 아니오. 사실 중국군의 군수품들을 생산하는 조선인 몇 명이 있어서 이 전쟁도 이기고 있으니 다행이지.”
“조선인 몇 명이라면?”
“뭐 우리 총통각하께서 아주 중요시하는 인물 둘이지. 요즘 임시정부와 갈등을 빚을 정도니까 말이오. 그 이름이 길병윤, 송감연이라고 하지. 아마 그 둘이 없었다면 우린 불편한 후장식 소총과 칼로 저 잔악무도한 일본군과 싸울지도 모르지.”
병주는 그 말에 의아했다. 여기서 가출한 자신의 동생과 친구를 들을지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왜 조선인 둘의 이름을 듣고 놀란 눈치인 거 같소.”
병주는 고개를 젓고는 진정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아 별 것 아닙니다. 조금 아는 이름이 나와서 말입니다.”
“그렇소? 그 둘의 이름이 조선인들에게 퍼진 모양이군. 사실 중국대륙에 가면서 그 둘이 이름을 떨쳤지. 공산당 녀석들도 그 둘을 영입할려고 난리니까 말이야. 특히 공산당의 주은래가 난리칠 정도지.”
“허 그렇습니다. 참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이군요.”
그렇게 중국군 소위와 한창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병주는 두 사람을 칭찬하는 중국군 소위의 말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심문은 순순히 끝났다. 병주는 자신의 소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강덕재는 곁에 다가와 병주의 얼굴을 살피면서 심문의 결과를 추측했다.
“허. 표정을 보아하니 잘 된 모양이군.”
병주는 강덕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내일 허창으로 가는 차들이 오는 모양입니다. 우리들은 그걸 타면 됩니다. 그리고 허창에서 기다리다 임천으로 갈 것 같습니다.”
강덕재는 병주의 얼굴을 쓰윽 보더니 한 가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얼굴이 조금 이상하군.”
“무엇 때문입니까?”
“자네를 봤지만 평소에 그런 얼굴은 처음 보는군.”
강덕재의 말에 병주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사실을 밝혔다.
“아 그건. 아는 사람의 소식을 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아는 사람이라면? 혹시 자네 동생인가?”
병주는 고개를 끄덕인다.
“예. 중경에 제 동생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름만 같다면 모르는데 그 녀석과 같이 가출한 녀석의 이름도 들으니 확실할 것입니다.”
“허. 그런가?”
“예. 동생을 만나는 것은 중경에 갈 때의 일입니다.”
“그렇군. 알았네.”
강덕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주의 사정을 이해해주었다.
내일이 되자, 병주의 무리는 병력수송차를 타고 허창으로 향했다. 지붕까지 있는 쾌적한 수송차들이었다. 병주는 수송차 뒤의 안에 들어가 차체를 만지고는 생각했다.
‘이게 병윤이 만든 것들 인가?’
정확히는 병윤이 세운 중경공단의 작품이지만 병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도로화가 되지 않는 풀만 베어낸 자갈길이었지만 차의 흔들림은 없었다. 마치 잘 건설된 도로마냥 차는 잘만 갔고, 그 안에 있던 인원들 역시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강덕재는 차 밖 보이는 풍경을 보는데 여념이 없는 것 같았다.
차를 타고 가도 허창에 가는 시간은 의외로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정차하고 조금 쉬고, 밤이 될 때에는 차를 중심으로 천막을 치고 잤다. 그렇게 허창에 도착하기까지 4일정도 걸렸다. 역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중국대륙이었다.
허창에 도착한 병주와 그 무리들은 어떤 한 중국군 대위의 인솔 하에 그 조선인 청년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와아아! 휘익! 휘익!-
갑작스럽게 울려퍼지는 환영소리, 그리고 휘파람소리는 누군가를 격하게 환영해주고 있었다. 병주가 살펴보니 도시의 시민들이 대로 양변에서 환영을 했는데, 그 시민들을 막느라 중국군의 병사들이 진땀을 보이고 있었다.
“저건 무슨 일입니까?”
병주는 자신들을 인솔하는 중국군 대위에게 물었다. 중국군 대위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하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했다. 그리고 이 원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단 가기 전에 대로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마침 환영 때문에 못 가겠군요. 우리도 저기에 끼어들면 좋겠습니다.”
중국군 대위는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병주는 환영의 원인을 안 말해주는 중국군 대위에게 조금 찡그린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저 환영인파들을 지나치기에는 시간이 걸릴듯했다.
한편 시민들이 환영해주는 주인공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휘차량을 탄 젊은 사람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높은 지위에 오른 듯 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나이와 상관없는 듯 보였다. 그를 열렬히 환영하는 시민들이 그 증거였다. 병주는 눈빛을 반짝이며 중국군 대위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중국군 대위는 시선을 그에게 고정됐지만 그래도 병주의 물음에 대답했다.
“천율 신유철 군단장이라고 불리는 이요.”
“천율?”
“율법처럼 정교한 지휘로 적들을 쳐부수기에 생긴 별명이오. 왜놈들을 개박살내는데 아주 일가견이 있는 분이지.”
“저렇게 젊은 나이에 말입니까?”
병주는 환영인파 속에서 유유히 시민들에게 답례하는 주인공을 보고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더욱 대단하지요. 뭐 말로는 총통각하께 알랑방뀌를 껴서 자리를 차지했다 뭐했다라고 하던데. 알랑방뀌가 뭐 대수겠어요? 그저 실력 없는 인간들의 시기어린 질투지.”
병주는 중국군 대위의 평가를 들었을 때 저렇게 유유히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만큼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중국군 대위의 설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번의 상덕 공방전에서 왜놈들이 기습하다가 신유철 군단장의 작전에 역습을 당하곤 뒤도 안 돌아보고 퇴각한 것은 전설 중에 전설이지요.”
“으음...”
병주는 잠시나마 신유철 군단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보기에도 저 청년의 자신만만한 얼굴과 범상치 않은 기운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시민들이 그를 따라 이동한지라 덕분에 병주가 갈려는 길이 열렸다.
“이제 갈 수 있겠군요.”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중국군 대위의 뒤를 따라갔다. 조금 발걸음을 옮기니 이윽고 조선인 청년들이 모인 목적지로 도착했다. 청년들은 대략 천 명가량 되는 것 같았다. 중국군 대위는 병주에게 작게 목례를 취하고 제 갈 길을 갔다. 그리고 누군가 병주에게 다가가 물었다.
“형씨들도 여기에 왔나보네.”
대뜸 반말을 하는 흉터 진 사람이었다. 눈가에 길게 칼자국이 난 것을 볼 때, 그 사람이 얼마나 험하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병주는 그를 쓰윽 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흉터 진 사람은 피식 웃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나? 나는 평양의 김도진이라고 하지. 형씨들처럼 일본군에게 끌려갔다가 겨우 탈영해서 왔어.”
“김도진? 아, 난 문경의 길병주라고 하오.”
“문경? 거기는 어디래?”
진짜 모르는 듯 반문하는 김도진의 말에 병주는 피식 웃었다.
“뭐 그런데 있소.”
“그래? 나도 모른다면 깡촌이나 다름없는데.”
강덕재는 둘의 대화를 듣다가 이내 김도진의 말투에 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쏘아 붙였다.
“우리를 비아냥 대는거요?”
강덕재의 화난 눈빛에 김도진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샌님은 빠져.”
“못 빠지겠다면?”
“한 판 붙어보던지.”
김도진의 자신만만한 말투와 비아냥에 강덕재의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강덕재는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
“말로 해서 안 들을 것 같군.”
“싸움 좋지.”
김도진은 강덕재를 내리깔고는 씨익 웃었다. 강덕재는 병주를 보고 말했다.
“병주야. 말릴 생각 마라.”
병주는 이마를 치면서 못말리겠다는 표정이다.
“덕재형, 여기 주위에 중국군 병사들이 있는데 괜히 소란을 피우다간 어떻게 되는지 잘 알잖아요? 그리고 당신도 괜히 싸움 걸 생각 말아요. 뭐 하고 싶으면 다른 데서 하던 지요.”
김도진은 그 말에 마음이 들지 않는 듯 침을 찍 뱉으면서 말했다.
“여기에 당신만 있었다면 병신소리 들을 수 있을 텐데 운 좋은 듯 아슈.”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지.”
“덕재형!”
“알았다. 알았어. 젠장.”
강덕재는 손사래를 치면서 김도진을 한 번 쏘아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 둘의 모습에 병주는 한숨을 쉰다.
“오늘 일진이 사납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