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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우와 움직여!”
소녀는 연신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만족한 표정이었다. 처음 치료를 받을 때만 하여도 바늘이 콕콕 찔린다는 예상에 아픈 와중에도 울상을 지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따갑다는 고통도 없었다. 그냥 바늘은 쑥 들어갔다.
“엄마!”
소녀는 활기차게 엄마를 불렀다. 그런데 소녀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엄마 왜 울어?”
소녀는 침상에서 일어나 엄마 주위에 다가와 울고 있는 엄마에게 의문을 지었다.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이 그렇게 슬플 일인가?
그 때 소녀에게 꽂았던 침들을 다시 수거하여 정리한 병재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 에이미가 폴짝폴짝 뛰는 것이 좋아서 우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럼 정말이지.”
병재는 미소를 지으며 소녀에게 대답했다. 그 때 한창 감정을 쏟아냈던 소녀의 엄마는 소녀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눈물을 훔쳤던 소녀의 아버지가 병재에게 말했다.
“군의관선생님. 고맙습니다.”
“하하. 이것이 제 일입니다. 에이미가 건강해져서 다행입니다. 미스터 브라운”
미스터 브라운의 눈가에는 눈물이 조금씩 맺혔다. 그도 감정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브라운은 생각했다. 자신의 딸의 병이 불치병이라니. 이런 흉맹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에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딸 에이미의 움직임이 이상하더니 에이미가 어느 순간 움직이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발병, 그리고 병원에 찾아갔다. 그 곳에서 하나의 절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딸 에이미가 소아마비에 걸렸다는 것이다. 걸리면 죽을 때까지 움직일 수 없다는 병이었다. 그 때의 기억은 생생했다.
‘내 딸 에이미가 소아마비일 리가 없어! 이봐 소아마비가 아니라고 말해줘?’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이런 개자식! 내 딸은 소아마비가 아니라고! 나는 신께 기도를 열성적으로 했고 기부도 했다고 왜 내 딸이 소아마비냐고?! 왜 도대체 왜!’
그 때 브라운은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엄청난 분노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
‘이봐! 잘못 진찰했다고 말해줘! 내 딸 에이미가 소아마비일 리가 없어 그렇지? 그냥 소아마비가 아니라 잠시 뭔가 상태가 안 좋은 것 일거야.’
‘......’
‘그냥 돈을 더 주겠어. 제발 제대로 진찰해줘. 인간은 실수할 수 있는 동물이잖아. 당신이 잘못 진찰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신이시여. 정말 잘못했다면 저에게 이러시지 왜 제 딸에게...’
미스터 브라운은 의사의 멱살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내 딸에게 이런 끔찍한 재앙이 닥쳐와야 했는가? 도대체 왜?
그러나 브라운은 그런 의문사항은 접어들었다. 일단 치료가 급우선이었다. 이 곳의 병원은 그나마 최신식에 의사선생의 실력도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에이미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갔고, 발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이내 무릎, 다리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에이미는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병마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내 팔도 움직이는 것을 버거워했다.
그 후 브라운은 절망했다. 비록 자신이 부자이지만 신에게 신실하게 기도드리지만 빈민들에게 기부하고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지만 그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으로도 에이미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넓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의사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다녔다. 실력 있다는 의사들을 일일이 찾아가 에이미의 치료를 부탁했다. 그러나 에이미의 병세는 그칠 줄을 몰랐다. 브라운은 에이미의 병세를 보자 조급한 마음에 세계 각지에 있는 의사들을 찾을려고 했지만 이미 세계는 전쟁 통이었다. 약 몇 개월 몇 년을 허비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이런 천형의 병을 내린 신을 저주하고는 이내 체념했다.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찾아와 희망의 말을 주었지만 체념하고 말았다.
그렇게 실력 있는 의사를 찾는 것을 반복하면서 그 많던 재산의 반을 썼다. 그렇게 체념하며 집에서 지내다 우연히 신문을 봤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팔을 재생시킨 동양인들의 내용이 나타났다.
브라운은 그 것을 처음 봤을 때, 요즘 전쟁 통인지 기삿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브라운은 그렇게 치부했다. 그러다 어느 날, 프린스 리라는 어느 망명국의 한 인사가 눈에 띄었다. 사실 프린스 리는 파티에 자주 출석하고 했다. 요즘 일본과의 전쟁 때문인지 프린스 리, 그러니까 그 쪽 말로는 이승만 박사라는 동양인이 영향력을 조금씩 가졌다. 물론 그 동양인은 그 장소에서 무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망명국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브라운은 그와 관계를 맺지 않고, 방해도 하지 않으며 그냥 동물원의 동물처럼 구경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프린스 리를 본 순간 집에서 본 신문이 생각났다. 신문에 나온 의사들의 출신이 조선출신이라고 적혀있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라고 프린스 리가 말하지만 옛 이름이 조선이라고 했으니 아마 그 의사들을 알고 있을지 모를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동물원의 동물처럼 구경했을 프린스 리에게 다가가 하나의 부탁을 했다.
‘하하. 프린스 리는 자주 파티에 참가하시는군요?’
‘아! 전 상원의원 에이버리 브라운씨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요즘도 자신의 나라를 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하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저 짐승같은 일본제국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군요. 저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숭고하군요.’
‘감사합니다.’
프린스 리의 눈빛은 이미 브라운을 파악한 것 같았다. 하지만 브라운은 파티의 인원들 중 자신의 사정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라 알고 있었다. 아마 프린스 리도 자신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오늘 신문을 봤는데 말이죠. 요즘 하와이에 있는 군의관들이 떠들썩하군요. 이번 재생의학의 발견은 세계 각지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하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악의 축과도 같은 추축국들에게 연합의 생명과도 같은 병사들의 목숨을 살릴 기술들이 발견됐으니 얼마나 기분 일입니까?’
‘그런데 말이죠. 프린스 리에게 물어보는 것인데 혹시 그 하와이의 군의관들과 잘 아는 사이이오?’
내 말을 들은 프린스 리는 조금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 군의관들이랑은 만난 사이죠. 제가 운용하고 있는 협회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흐음. 내 염치불구 하겠지만 프린스 리에게 한 가지 신세를 지냈으면 좋겠군요.’
‘하하.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프린스 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브라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다고 브라운은 기뻐 날뛰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기분은 들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여기를 한 번 찾아보자고.
브라운과 아내, 자신의 소중한 딸 에이미를 데리고 하와이를 찾아갔다. 다행히 그 소문의 군의관들은 출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프린스 리가 운용하는 협회의 사람을 만나 소문의 군의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소문의 군의관은 젊었다. 이름은 길병재라고 불리는 젊은 군의관은 에이미의 병을 한 눈에 알아봤다.
‘마비성 소아마비군요.’
‘치료는 할 수 있겠나?’
‘지금껏 한 3년 정도 앓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치료는 30분이면 끝날 것입니다.’
‘...... 거짓말은 아니지요?’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솔직히 브라운은 길병재를 젊은 돌팔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신문의 사진의 인물이 지금 보는 길병재의 얼굴과 똑같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바늘들을 이용하여 내 사랑스러운 에이미의 몸 이곳저곳을 찌르고는 다시 빼고 바늘들을 쿡쿡 찔렀다. 브라운은 이게 뭐하는가 싶어서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이내 한 번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만약 그의 말대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그 때는 나의 권력으로 그 프린스 리와 저 녀석에게 분노를 표출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는 그가 말한 대로였다. 에이미는 팔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후로 다리를 떨었고 무릎을 움직이며 마지막으로 발가락을 쪼물딱쪼물딱 거렸다.
기적이었다. 그렇게 빌고 빌었던 신께서 지금 응답해주는 기분이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딸 에이미가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신을 욕했던 날, 저주했던 날을 생각한 브라운은 부끄러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브라운은 병재의 손을 맞잡으며 울고 있었다. 병재는 브라운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불치병에 걸렸던 환자와 그 가족들이 그런 시선을 보냈다. 마치 신이라도 보는듯한 그런 눈빛을 말이다. 그러나 병재는 그 시선이 부담이 갔다. 그래서 브라운에게 안 된 말이지만 착각을 깨드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브라운씨가 해야 되는 일은 사랑스러운 에이미를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 나은 게 아닐까요?”
브라운은 그 말을 듣고 얼른 시선을 병재에서 자신의 아내가 안고 있는 에이미에게 향했고 에이미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브라운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엄마 왜 울어?”
“아까의 그 오빠처럼 좋아서 우는 거야.”
“힝. 좋으면 우는 거야? 기분 좋으면 웃는 거라고 들었는데.”
브라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자 봐 웃었지?”
“히히. 아빠 바보 같아.”
브라운은 에이미와 아내를 살포시 껴안았다. 병재는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봤다. 그러나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들은 잘 지낼까?’
브라운의 가족들은 병원에 한동안 있었고, 브라운 부부는 병재를 신에게 영접하듯 대하자 병재는 부담스러운 나머지 이내 좋게 쫓아 보냈다. 물론 브라운 부부는 떠나면서 필요한 일이든 말만 하라고 말했다.
병재는 대기하고 있던 환자들의 치료를 다 끝을 내었고, 이내 한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 가족들의 소식은 알아보았습니까?”
병재 상대편의 사람은 이승만의 세력인 대한인 동지회에 속한 김충호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이었다. 김충호는 자신이 아는 바를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알아보고는 있네. 현재 자네의 동생들 중 한 사람과는 연락이 닿았네.”
병재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그... 그 것이 정말입니까?! 누... 누구입니까?”
“지금 확실히 연락되고 있는 사람은 자네의 막내라고 불리는 길병윤일세.”
“벼... 병윤이요?!”
김충호는 혼비백산하게 놀라는 병재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놀라고 그래? 무슨 못 본 사람 본 것처럼 말이야?”
“......”
“얼레. 갑자기 말을 잃어버리고 난리여.”
“휴우...... 다행입니다. 몇 년 동안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병윤의 소식을 들은 것이 다행입니다.”
병재는 한 숨을 쉬면서 지금까지 소식이 없었던 병윤의 소식에 안도감을 느꼈다. 김충호는 그런 병재를 바라보며 넌지시 말을 던졌다.
“반응을 보아하니 몇 년을 떨어져 지낸 것 같군.”
“혹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라면 걱정마. 아주 잘 지내고 있어. 현재 중국의 중경공단이라는 곳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으니 말이야.”
“회? 회장이요? 허어...”
병재는 병윤이 회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김충호는 그런 병재를 바라보며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참나 나도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 저렇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대한 공장들을 운용하는 회장이 되다니 말이야. 중국의 총통인 장개석이 매우 신임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자네 형제들은 무슨 괴물들인가? 한 명은 잘린 팔다리 병신들을 새 삶의 기회를 만드는 신의에, 한 명은 총, 총알, 전차, 비행기,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공장들을 운용하는 회장이라니.”
병재는 병윤의 능력이라면 어디든지 가더라도 먹고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재의 예상보다 더 병윤은 높이 올라간 것 같았다.
그러나 병재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납득했다.
‘하기야 나도 병윤에게 받은 이 능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그건 그렇고 괘씸한 녀석! 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리는데 갑자기 가출이라니 내 이 녀석을 그냥!’
병재는 병윤이 가출하고 나서부터 박출환 때문에 징용되기까지의 일들을 회상했다. 갑작스런 여동생의 소식에 병윤은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예상했다. 왜냐하면 병윤은 어머니보다 자기 누나를 더욱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윤이 그 충격을 먹고 가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약 1년간은 병윤을 찾기 위해서 온 가족이 돌아다녔다. 병주의 지인까지 동원하여도 병윤을 찾지 못했다. 그 때의 어머니의 얼굴이란 말을 못할 지경이었다. 병재와 병주는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선 병윤을 찾으면 자신들을 걱정 끼친 대가를 마땅히 치르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