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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1944년 4월 17일, 병재, 병주, 병윤의 아버지인 길남효는 서대문 형무소의 노역 생활에 얼떨떨하게 참여하게 된 것이 11일 째 되었다.
노역 생활은 다행히 잘 적응되고 있었다. 불령선인이라는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는 큰 죄목에 걸려서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했던 길남효는 막상 감옥에 집어넣고 별 고문 없이 잘 지내고 있어서 아직까지도 얼떨떨했다.
‘하아. 우리 집 여보는 잘 지내고 있을라나.’
자신의 안전이 확실해지자 길남효는 걱정이 일었다. 이제 집에는 자신의 아내와 아직 아기인 딸아이 밖에 남지 않았다. 홀로 집에 남겨진 여인과 아이, 길남효는 그 둘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직감했다.
아마 놈팽이 녀석들이 건드리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공출을 받아내고자 인간말종 짓을 하고 다니는 박출환 패거리에게는 기회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럴 때, 다 큰 아들이 한 명 집에 있어서도 걱정거리야 없겠지만 지금 아들 셋은 집에 없다.
‘하아. 정말 괜찮을까? 집은?’
길남효는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따라 노역하기 위해 도구를 쥔 손 움직임이 느려졌다. 바로 그 때 같은 감옥의 방에서 생활하고 있던 방장 김절평이 팔꿈치로 길남효의 옆구리를 툭툭 친다. 그리고 작게나마 귓속말로 소리친다.
“지금 순사들 눈초리 돌아가는 거 안 보여요?”
김절평의 절박하고도 엄한 말 한 마디에 길남효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이런 경고를 알려준 김절평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미... 미안합니다.”
다시 길남효의 손놀림은 빨라졌다. 순사들은 돌아다니면서 노역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생긴다면 눈을 부라리며 옆의 방장에게 눈치를 주는 형편이었다.
물론 그 순사들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달랐지만 말이다. 바로 지금이 그 때였다.
“넌 뭐야? 남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손이 보이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는 뭐하고 있나?”
그 때 순사의 눈초리를 받은 노역자 한 명이 겁에 질린 눈빛을 하고선 바로 사죄부터 올렸다.
“아! 죄송합니다. 빨리 하겠습니다.”
순사는 그런 노역자의 사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허리춤에 매달린 나무봉을 꺼내면서 노역자 옆구리를 비스듬히 세게 때렸다.
-퍽! 퍽!-
노역자는 옆구리에 느껴지는 거대한 통증에 자동으로 무릎의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순사는 그런 노역자를 바라보며 있는 화를 다 풀겠다는 듯 발로 짓밟았다.
-퍽! 퍽!-
“여기서 변명부터 할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게으름을 피우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잘 알려주었는데. 아직 매가 부족한가?”
노역자는 온몸에 느껴지는 고통에 자연히 나오는 목소리는 동정심과 애처로움을 자극했다.
“컥! 컥!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게으름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순사는 멈출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한 듯 손에 잡았던 봉으로 노역자의 몸 여기저기를 백정이 소 잡듯이 때렸다.
-퍽!-
“너희 조선인들은!”
-퍽!-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퍽!-
“거기다 법을 어긴 범죄자 녀석들이!”
-퍽!-
“천황폐하의 은덕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너희들이!”
-퍽!-
“그 은혜를 저버리는 짐승처럼 게으름을 피우다니!”
-퍽!-
“그런 인간을 쓰레기라고 말하지!”
-퍽!-
“쓰레기는 처분이다! 알았나?!”
순사는 마구 패던 행동을 뒤로 한 채 부라린 시선을 노역자들에게 향했다. 순사에게 구타당하던 노역자는 온 몸에 피 칠을 한 채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순사가 구타하는 것을 눈으로 슬며시 지켜보던 노역자들은 순사의 말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얼른 크게 대답했다.
“예!”
“다시 한 번 말한다! 천황폐하의 은덕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녀석이 있다면 이건 약과다!”
순사는 피가 묻은 나무 봉을 손목으로 나무 봉에 묻은 피들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그러자 공포스러운 순사의 모습을 본 노역자들은 아까보다 더욱 크게 대답했다.
“예!”
노역자들은 겁에 먹은 눈빛으로 순사를 쳐다보며 손놀림이 빨라졌다. 순사는 그런 노역자들의 행동을 바라보고는 자신이 구타했던 노역자에게 침을 뱉었다.
-퉷!-
노역자는 기절했는지 자신이 침을 맞은 것에 대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순사는 신경 쓰지 않고 누군가를 불렀다.
“이 더러운 자식 방장 누구야?”
그 말에 속으로 ‘좆 됐다!’라는 심정으로 튀어나오는 방장이었다. 방장은 순사 앞으로 튀어나와 자동적으로 사과부터 올렸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아까부터 기분이 안 좋았고, 피를 보았던지라 눈에 살기가 도는 순사는 마음에 안 드는지 방장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쫘악!-
방장은 사람이 겪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지만 감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방장은 간을 내어 주다시피 순사에게 굽실거리며 말했다.
“예!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방장은 자신의 방의 인원들에게 구타당한 노역자를 치우도록 명했다. 한편, 순사의 경고를 듣고 손놀림을 빠르게 하던 길남효는 그런 광경을 눈으로 흘겨 보면서 속으로 한 마디 했다.
‘인간 같지 않은 새끼들.’
노역자를 구타하는 순사에게 분노보다는 공포와 불안감이 떠올랐다. 자신도 저런 노역자가 되면 어떡하지? 자신은 저렇게 구타당하면 살 수 있을까?
길남효는 그렇게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마음을 않고 오늘도 별 일 없기를 바라며 노역을 계속했다.
같은 시각, 병재, 병주, 병윤, 그리고 길남효의 집은 한창 난리 중에 있었다.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박출환과 이봉호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김민숙은 아기를 껴안고 집 안 곳곳을 수색하는 이봉호와 자신을 향해 마치 벌레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박출환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봉호는 집을 한창동안 수색하다가 별 성과가 없었는지 빈 손 뿐이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뭔가 없나 해서 먼지가 낀 잡동사니들을 만지다 손에 묻은 먼지들을 작은 박수로 탁탁 털면서 말했다.
“형님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뭐? 아무 것도 없어?”
박출환은 이봉호에게 눈을 부라렸지만 이봉호는 정말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자신이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출환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고는 길남효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김민숙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괜히 껄렁패가 아니라는 듯 못이 박힌 몽둥이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김민숙에게 위협을 가했다.
“어이! 아줌씨. 정말 잘 숨겨두었나 본데. 빨리 말해. 나 급한 거 알잖아?”
둘의 수색을 지켜보았던 김민숙은 박출환의 위협에 두려움으로 발발 떨면서 말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정말 진실로 애처롭게 말했다.
“정말. 정말로 없어요. 우리 집에는 쌀이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자 얼굴을 굳힌 박출환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던 몽둥이의 끝으로 김민숙의 가슴을 향해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아줌씨. 그럼 왜 아줌씨는 지금까지 살 수 있었지? 앙? 씨발 헛소리 하지말고. 얼른얼른 끝내자고. 아직 젖먹이인 아기까지 세상하직 하고 싶지 않다면 말야.”
박출환은 김민숙에게 으르렁거리면서 흉악한 시선을 김민숙이 안고 있던 아기에게 향한다. 아기는 자신을 향하는 흉악한 시선을 느꼈는지 큰 울음을 터뜨린다.
“응애애애애! 응애애애애!”
박출환은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싫다는 눈빛을 내며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야 봉호야.”
“예 형님.”
“내 궁금한 게 있는데.”
“예... 예. 말씀. 하십시오. 형님.”
이봉호는 박출환의 살기를 느꼈는지 말끝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기를 멍석으로 패면 어떻게 될까?”
이봉호는 기분이 나쁘다고 아기를 멍석으로 패서 죽이자는 박출환의 말에 눈동자가 커졌다.
‘씨발. 사람 맞아? 아무리 그래도.’
“형님... 그건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이봉호 자신도 자신이 개망나니자식인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짐승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맞을 각오를 하고 박출환을 말렸다.
“씨발. 아기 울음소리가 엄청 짜증나는데. 죽도록 패면 잠잠해지지가 않을까 싶은데?”
박출환, 이 인간 같지 않은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김민숙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힉! 제... 제발! 우리 아이만은 살려줘요.”
그러나 박출환의 흉악한 시선은 여전히 아기에게 향했다. 그리고 김민숙에게 으르렁거리는 말투는 여전했다.
“그러니까 빨리 물건을 가져오란 말이야. 아줌씨 대신 아기가 그 꼴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하.. 하지만. 정말로...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박출환은 그 말을 듣고도 얼굴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박출환 옆에 있던 이봉호가 김민숙을 옹호해주었다.
“형님.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로 없는 것 아닙니까?”
“씨발! 이 년! 이 년은 간씨에게 받은 것이 있다고 내 감이 말하고 있단 말이야! 넌 지금 눈에 보이는 거짓말이 안 보이냐?”
“하지만... 최근 간씨도 사정이 궁한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씨발! 이 년 아들네미가 간씨네에게 준 것을 생각한다면 뭐라도 안 줬겠냐?”
박출환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이봉호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봉호는 손사래를 쳤다.
“저도 형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서 집안 곳곳을 찾아봤는데 아무 것도 없어요. 더군다나 아기를 협박했다면 보통 어미들은 모성애로 진실이라고 부는데, 저 아줌씨는 없다고 말하잖아요. 정말 있으면 당장 꺼내왔겠죠. 안 그러면 자신의 아기가 죽는데.”
이봉호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박출환의 얼굴은 더욱 찡그려졌다. 박출환의 살기어린 시선은 김민숙에게 향했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한 박출환은 아까 자신의 어깨를 툭툭 쳤던 못이 박힌 몽둥이로 김민숙의 종아리를 세게 때렸다.
-퍼억!-
“악!”
김민숙은 비명을 지르며 종아리에 거대한 통증과 함께 넘어졌고, 그와 동시에 안고 있던 젖먹이를 놓치고 말았다. 포자기로 감싼 아이는 바닥에 떨어질 때 다행히 포자기가 충격을 완화해주었다.
그러나 아기에게 충격이 왔던지 울고 있던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응애애애애! 응애애애애!”
김민숙은 종아리에 욱씬거리는 고통과 찢겨진 상처를 통해 피가 흘러나오는 상태였지만 모성애가 무엇인지. 오히려 기어서라도 아기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눈여겨보고 있던 박출환은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로 김민숙의 허리를 밟았다.
-퍽!-
“악!”
김민숙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기어나갈려고 했지만 박출환은 발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박출환의 시선은 아기를 감싸고 있던 포자기를 향했다.
“야 저거라도 챙겨.”
이봉호는 인간 같지 않은 박출환을 바라보다 아기가 감싸진 포자기를 풀었다. 박출환은 이봉호의 행동을 지켜보고는 다시 시선을 김민숙에게 향했다.
“아줌씨. 오늘은 이걸로 끝낼게. 다음번에 준비를 해두었으면 좋겠어. 저 아기가 몽둥이로 대가리를 부러뜨려서 마을나무 가지에 아기 시체를 주렁주렁 매달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으으으으....”
김민숙은 박출환이 말한 끔찍한 말이 그대로 이어지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공포에 떨었고, 박출환은 그 것이 마음에 드는지 비열한 미소를 짓는다.
“아 참 말하는 것을 깜박했네. 아줌씨 큰 딸, 효순이 있지? 그거 사실 장씨에게 일부로 찔러 본거야. 경성에 성노예를 모집한다고 해서 나도 출세하고자 누군가 팔아넘겨야 했거든. 그래서 아줌씨 큰 딸이 당첨 된 거야. 뭐 거래는 잘 됐어. 그 때문에 이번 일은 여기서 끝을 맺는 거야. 어때? 고맙지?”
박출환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키득키득 거렸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집에 아기와 자신 둘이 남게 되자 김민숙은 예상외의 진실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던 아기는 더욱 크게 울었다.
“응애애애! 응애애애!”
김민숙은 아기의 울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힘겹게 일어서고는 포자기가 뺏겨서 추워 울부짖는 아기를 간신히 껴안아 체온을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오른쪽 발을 간신히 힘겹게 끌면서 방 안까지 들어갔다.
‘효순아... 효순아...’
자신의 딸 효순이가 저 간악한 박출환 때문에 벌어진 일을 생각하고, 더욱이 자신의 큰 아들이 박출환 때문에 징용에 끌려갔다는 것을 합해 생각하자 박출환에 대한 증오와 분노, 그리고 박출환을 보복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자괴감에 빠졌다.
김민숙은 이런 고난과 같은 역경에 지금 살아야 하나? 라는 체념과 아까까지의 공포와 자신을 이렇게 만든 박출환의 분노, 그리고 그 분노를 풀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에 눈물 한 방울이 나왔다.
“흑! 흑... 흑... 흐흑... 살자. 살자구나. 우리 아이 살자구나. 어미가 지켜줄게. 어미가 지켜줄게.”
집에는 아기를 감싸며 지금 이 순간을 체념과 저주로 한탄하는 김민숙이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