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8화 (4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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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존경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병재는 상세한 설명 속에 걸리는 문구가 있는지 잠시 생각하고 곧 추측한다.

‘이 관계는 고정된다? 그렇다면 존경에서 신뢰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인가? 정형과의 관계는 이대로 쭉 가는 건가?’

만약 조선에 돌아가 병원을 개원하리라 마음을 먹었던 병재는 정필중과의 관계를 깊이 생각한 후 파악했다.

‘그렇다면 만약 병원을 개원한 뒤 정형과는 계속 붙어 다녀야겠군. 정형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말이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병재는 정필중을 험하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평소 이대로의 관계가 오히려 병재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여차하면 내가 없을 시에는 병원을 맡을 수도 있고 말이야.’

병재는 그렇게 생각하자 정형의 존재가 크게 보였다. 그렇게 정필중에 대한 생각을 끝낸 병재는 곧 나머지 모든 관계에 대한 것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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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나를 필히 죽여야 할 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대방은 나의 대화를 듣지 않을 것이며 나를 제거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도 강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죽일 가능성이 없다 치면 최소한 나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해 목숨을 걸 것이다. 이 관계는 고정된다.

분쟁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눈을 부딪치자마자 나를 죽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상대방과의 대화의 여지는 있지만 상대방은 그 대화를 듣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 제안한다면 내가 판단했을 때 큰 이익이 된다고 하여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되며 상대방은 나를 배신하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한다.

증오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부터 바꾼다. 그리고 상대방은 내가 말하는 제안을 상대방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고 하여도 거절할 것이다. 상대방은 나를 매우 의심할 것이며 상대방 자신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를 죽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은 나를 배신할 때, 배신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작아도 나를 즉시 배신할 것이다.

불화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나을 볼 때,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욕 혹은 안 좋게 바라본다. 상대방은 나를 의심하지만 대화의 여지는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제안할 때, 상대방은 자신에게 작은 해가 있다면 거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상대방은 나를 배신할 때, 큰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면 나를 즉시 배신할 것이다.

의심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나를 볼 때, 자신이 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 매번 판단한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의도로 행했던 말과 행동들이 상대방 스스로가 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상대방은 나를 배신할 때, 매우 큰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면 나를 즉시 배신할 것이다.

무관심 : 나와 상대방과의 관계는 서로 간 모르는 상황이다. 상대방은 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즉 나의 존재가 상대방 스스로에게 있어 어떠한 이해득실이 없다.

면식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내가 상대방에게 제안을 했을 때, 그 제안이 상대방 스스로 판단했을 때 상대방 자신에게 해가 된다면 거절하겠지만 이익이 된다면 승낙할 가능성이 있다.

호의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나를 바라볼 때, 미소를 짓는다. 상대방은 먼저 나에게 제안을 할 가능성이 있으며 서로 간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나를 배신할 때 이익이 매우 크다면 배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신뢰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나를 볼 때, 서로 정겨운 호칭까지 주고받는다. 그리고 상대방은 나와의 대화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행동하겠지만 해가 된다면 나를 말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배신할 상황이 온다면 상대방은 매우 고심하게 되며 최소한 나에게 상대방 자신의 배신을 알릴 가능성도 있다.

경외 : 나와 이 관계에 도달한 상대방은 나를 볼 때, 존경과 찬사가 가득한 눈빛이 역력하다. 나의 제안이 분명 상대방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해도 그 즉시 나의 제안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상대방은 나에 대한 배신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배신하게 되더라도 그 것은 상대방 자신조차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며 가급적이면 상대방은 나에게 이 배신에 대해 사죄한 뒤 이 상황을 상대방 자신 스스로 해결하거나 아니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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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관계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병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상대방에 대한 문구가 정형이 처음이군. 그렇게 되면 박출환과 나의 관계는 아직 원수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데... 허참, 박출환과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건가?’

병재는 박출환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정필중은 병재가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잠시 멍해 있다가 고심하고, 이내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하자 병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다.

“뭘 그렇게 갑자기 멍 때리고 있어?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정필중의 걱정스러운 어조가 담긴 말이 나오자 병재는 그 즉시 얼굴을 바꾸며 걱정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하하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가르치는 요령에 대해 배우고자 하셨죠? 자자 얼른 가르쳐 드릴게요.”

갑작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병재의 모습에 정필중은 ‘뭐 아무 것도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고는 병재에게 굳이 묻지 않았다.

“알겠네. 일행들을 데려오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정필중은 같이 타라와를 탈주한 일행인 노송규, 김강연, 채병호를 데려왔다. 그들은 정필중과 마찬가지로 병재에게 의술을 배운 자들이었고 또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병재를 도와 명예교수직을 받았다. 전적으로 병재의 가르침 덕분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 명예교수직에 맞게 실력을 쌓아올렸다.

“영감 왜 불렀어? 나 바쁜 거 안 보여?”

채병호는 자신을 데려온 정필중을 보고 투덜거렸다. 하기사 병재 만큼은 아니더라도 채병호 역시 병사들의 치료에 바쁜 몸이다. 그러나 막상 채병호는 정필중에게 투덜거리면서 정필중을 따라갔다. 정필중은 그 투덜거림에 대꾸했다.

“바쁜 거 감수할 만큼 너에게 좋은 일이니까 그만 투덜거려.”

“쳇. 알겠수다.”

채병호는 정필중의 말 한 마디에 투덜거림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자, 옆에 있던 김강연이 정필중에게 묻는다.

“뭔가 무슨 일 있나요?”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김강연의 말에 정필중은 얼굴표정 바꾸지 않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원래 병재가 나에게 무얼 가르쳐준다고 하거든. 사실 나 혼자 듣기에는 그래서 같이 들으려고 너희들을 데려왔지.”

노송규는 정필중의 말에 작게 끄덕거렸다. 확실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노송규가 생각하기론 병재의 가르침은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이렇게 의사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병재 덕분이 아닌가?

“그런가? 그런데 영감 무얼 배우기에 이렇게 우리들까지 데려 온 거야?”

병재가 어떤 걸 가르치기에 이렇게 자신까지 데려오는지 아직 생각을 못한 채병호가 정필중에게 물었다. 정필중은 채병호에 대해 ‘아직도 불만인가?’ 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건 병재에게 직접 들어봐.”

“에이... 알려주면 뭐 어때서?”

그 때, 한창 서로 대화중이던 일행들 앞에 병재가 나타났다. 병재는 채병호, 김강연, 노송규, 정필중을 바라보더니 싱긋 미소를 짓는다.

“자아 모두 모였군요. 이제 슬슬 시작할까요?”

그렇게 병재는 강의를 시작하려던 바로 그 때, 병재의 귀 멀리서 누군가 뛰는 소리가 들렸다. 병재는 고개를 돌려 급히 뛰어오는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병재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오드밀러 군의관이었다.

“그거 나도 참가하면 안 되나?”

이 장소에 뛰어서 도착한 오드밀러 군의관은 병재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드밀러 군의관은 어디서 병재가 강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몰라도 여기로 급하게 뛰어온 것이 눈에 보였다. 병재는 갑작스럽게 참가하는 오드밀러 군의관을 잠시 살피더니 ‘뭐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하여 병재의 가르침에 참가하려는 오드밀러 군의관을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건 병재 뿐만 아니라 나머지 네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정필중을 포함한 일행 네 명은 군의관들과 사이가 좋았다. 그 것이 전적으로 병재 덕분인지는 둘째 치고, 군의관들과 대화가 통한 것과 자신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는지 군의관들과 곧 친근해졌다. 그건 일행 네 명과 오드밀러 군의관 사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정필중이 오드밀러 군의관에게 굳이 알리지 않은 이유는 오드밀러 군의관이 바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드밀러 군의관은 그 바쁜 것을 둘째 치고, 지금 참가하려는 모습을 보니 정필중은 오히려 오드밀러 군의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원래 정형이 가르치는 요령에 대해 조금 강의를 해달라는 말에 이렇게 짬을 내서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자신이 바쁘다고 생각하거나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병재 앞에 모인 사람들 아무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병재의 강의를 듣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병재는 자신의 앞에 앉아 듣는 자세를 취한 사람들에게 강의를 시작했다.

약간의 짬을 내서 한 강의는 어느새 열기를 이뤘고, 많은 성과를 주게 되었다. 사실 전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렇게 성과 높은 가르침은 병재의 기술들 덕분이지만 막상 병재의 강의를 듣는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채병호는 어느새 정필중에게 빨리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화를 냈고, 김강연은 조용히 병재가 말한 것들에 대해 머릿속으로 조용히 복습했으며 노송규와 오드밀러는 안주머니에 있던 수첩에 병재의 강의내용들을 필기하여 그 것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정필중은 채병호의 화를 받아주며 병재에게 질문들을 던졌다.

그렇게 막간의 강의가 끝나가던 찰나였다.

“군의관님! 군의관님! 아 씹, 군의관들은 이 시간에 어디에 간 거야?”

자신들을 부르는 병사의 외침에 병재를 포함한 군의관들은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병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오드밀러 군의관이 맨 첫 번째로 병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군의관을 찾던 병사는 자신에게 되묻는 오드밀러 군의관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말했다.

“지금 급한 일입니다. 혹시 여기에 미스터 길 군의관도 계십니까?”

병사의 말에 병재는 얼른 손을 들어 병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급한 환자입니다. 지금 여력 있는 군의관님들은 없어서 찾았습니다.”

병재는 병사를 말을 듣고 부리나케 몸을 움직여 대답을 한다.

“아 예. 알겠습니다.”

병재는 대답한 후, 바로 병사를 따라 자신의 근무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병재와 병재를 부른 병사가 급히 자리를 떠나자 병재의 가르침을 받던 사람들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서로 자신에게 배정된 근무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으으으!”

헤이드 병장은 고통으로 연신 괴로운 얼굴을 한다. 바드레드 일병과 분대원 에일던 이병이 헤이드 병장의 어깨 한쪽씩 어깨동무로 짊어지어 병재가 근무하는 의무대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헤이드 병장이 이동한 경로에 놓인 땅에는 피가 한 방울씩 자국을 남겼다. 헤이드 병장의 오른쪽 발목은 흔적도 없이 잘려진 상태였다. 왜냐하면 헤이드 병장이 차란카노아 설탕공장을 공격하다 대인지뢰를 밟았기 때문이다.

“젠장... 그러게 조심 좀 하시지.”

바드레드 일병은 헤이드 병장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헤이드 병장의 발목을 바라보며 착잡한 얼굴을 지었다. 헤이드 병장의 얼굴은 고통과 피곤, 수척한 모습 등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부축하는 바드레드 일병은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헤이드 병장에게 말했다.

“좀만 참으쇼. 이제 다 왔수다. 저 쪽으로 가면 살 수도 있고, 잘린 발목 재생할 수도 있으니까.”

헤이드 병장은 바드레드 일병의 말에 미안한지 고개를 떨궜다. 헤이드 병장과 부축하는 두 명은 간신히 발걸음을 옮겨 병재가 근무하는 의무시설 안으로 들어가 시설 안을 살폈다. 시설 안에는 조용히 잠드는 환자들과 서로 이야기하는 환자들, 또 심심하다고 카드놀이 하는 의무병들뿐이었다. 바드레드 일병은 자신이 찾는 사람이 없자 갸우뚱 거렸다.

“얼레? 어디로 갔지?”

그 때, 카드놀이를 하다가 한 판 지게 된 의무병 하나가 바드레드 일병에게 다가가 신경질 나는 표정 그대로 나타난 채로 물었다.

“누구 찾으십니까?”

바드레드 일병은 의무병이 신경질 그대로 나타내는 표정을 보이자 화가 났는지 험악한 어조로 말했다.

“씨발 좆같은 표정하고는 그 미스터 길 군의관은 어디 갔어?”

졸지에 바드레드 일병에게 욕을 듣게 된 의무병은 짜증을 부린 채 말했다.

“아 좀 기다려보쇼. 지금 사람 불러 이리로 오라고 했으니까.”

의무병의 짜증난 어투 그대로 들은 바드레드 일병은 어투도 어투지만 의무병이 심각하게 부상을 입은 헤이드 병장을 보고도 별 일 아니라는 듯 여기는 태에 그대로 열이 받았는지 얼굴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그 때, 시설 안으로 바드레드 일병이 기다리던 사람과 그 사람을 부르러 갔다는 병사 한 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드레드 일병이 기다리는 사람, 바로 병재는 헤이드 병장의 상처를 보고 얼굴을 바꾸더니 이내 짜증난 표정을 짓는 의무병을 향해 말했다.

“환자를 의자에 앉혀.”

“예.”

의무병은 아까의 짜증은 어디로 갔는지 갑작스럽게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는 바드레드 일병과 에일던 이병이 부축하던 헤이드 병장을 받아서 조심스럽게 원형 의자에 앉혔다. 의무병의 빠른 태도 변화에 바드레드 일병과 에일던 이병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바드레드 일병은 그런 의무병의 태도에 화가 났다.

‘씨발 우리들에게는 연신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선 막상 군의관이 오니 얼굴이 진지하게 바뀌는군.’

바드레드 일병은 그 의무병을 향해 속으로 욕을 퍼부은 뒤 의자에 앉은 헤이드 병장을 지켜봤다. 자리에 앉은 병재는 헤이드 병장의 상처를 본 후 가장 급한 지혈부터 시작했다.

-푹! 푹!-

병재는 헤이드 병장의 잘려진 발목 위로 침을 놓아 지혈을 한 후, 상처에서 나와 잘려진 발목에 묻은 피를 깨끗한 물로 씻어냈다. 병재는 잠시 헤이드 병장의 얼굴을 살폈다.

“수혈까지 할 상황은 아니군.”

병재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철제 2단 수레의 상단에 놓인 알코올이 묻힌 솜들을 꺼내고는 헤이드 병장의 잘려진 발목을 다시 한 번 닦았다. 헤이드 병장은 잘려진 발목에 나오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릴 만했지만 병재가 잘라진 발목부위를 마취라도 했는지 헤이드 병장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이 곳에 부축한 인원이 누구죠?”

그 말에 바드레드 일병이 얼른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때, 병재는 바드레드 일병의 손을 든 모습을 보고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났다.

‘내가 처음으로 재생치료를 한 병사군.’

병재는 바드레드 일병의 얼굴을 보고 바로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헤이드 병장의 얼굴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타라와에 있을 때, 자신들을 구출한 미군 병사들이라는 것도 기억했다.

‘내가 너무 무신경했군.’

“일단 급한 치료는 끝났습니다. 상처의 상태를 본 후에 재생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드레드 일병.”

속으로 병재가 자신을 아는 체 하지 않아서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던 바드레드 일병은 병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조금 기뻐한 눈치였다.

“휴우. 현재 헤이드 병장의 상태는 문제는 없습니다. 치료에는 시간이 걸릴테니 그 때까지 헤이드 병장을 포함해 당신들도 쉬세요. 피로에 쌓인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당신의 소대장에게는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바드레드 일병은 헤이드 병장을 포함해 자신의 분대원들까지 신경써주는 병재의 말에 아까까지만 하여도 병재에 대해 서운했던 감정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러나 병재는 그런 것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소견서를 작성하고는 분대원들도 상태를 볼 때, 전투력 유지를 위해 조금 쉬는 것이 좋다는 개인 의견도 덧붙였다.

병재는 그 소견서를 에일던 이병에게 건넸다.

“의무병은 이 환자의 소대를 잘 모를 수 있으니 죄송하지만 당신이 갔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환자에 대해 계속 치료하겠습니다.”

에일던 이병은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일던 이병은 소견서를 받고는 자신의 소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병재는 헤이드 병장의 치료를 계속했다.

헤이드 병장의 급한 치료가 끝나고, 쉬고 있을 때쯤 시설 밖 어두운 곳에서 헤이드 병장의 일행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맞이한 의무병과 그 의무병에게 열받은 바드레드 일병과 싸움이 났다.

============================ 작품 후기 ============================

사이판 편은 타와라 편처럼 길어질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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