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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된 일본인 환자들은 전처럼 똑같이 일본군 부사관 들의 통제 하에 줄을 섰다. 오늘이 병재의 치료가 마지막이라는 말에 환자는 더욱 많아졌다.
병재는 굳은 얼굴과 무감정한 표정으로 이제는 전부 다 재생된 환자에게 말했다.
“이제 완벽히 팔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럼. 약을 드시고 하시면 됩니다.”
“......”
“환자분. 별 다른 말씀이 없으시면 다음 환자에게 차례를 좀 넘겨주시겠습니까?”
병재의 냉정한 말에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던 불구자에서 정상인이 된 환자는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차례로 넘겼다. 그러나 사람으로써 마땅한 도리가 있는 법. 아까의 환자는 병재에게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
병재는 그냥 못들은 척 다음 환자를 향해 진료와 치료에 집중했다. 아까 환자는 병재의 굳은 얼굴에 많이 민망한지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나갔다.
병재의 치료는 계속 되었다. 예의 무감정한 표정과 굳은 얼굴로 객관적인 말로 환자들을 치료했다. 환자들도 그런 병재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는지 조용히 치료받았다.
병재는 환자의 치료가 끝나자 약을 건네준 후 주의사항만 말해줬다. 그리고 다음에 한 말은 간단했다.
“다음 환자분.”
그렇게 병재의 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정이 없는 딱딱한 말투와 굳은 얼굴, 일본인 환자들은 마치 병재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 때, 불구치료를 처음 받은 환자가 병재의 말을 듣고 난감과 혼란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환자는 말을 떨고 울면서 물었다.
“다음 치료는 정말 없는 것입니까?”
“...... 제가 주어진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치료가 끝났으면 차례를 다음 환자에게 넘기세요.”
“말도 안 됩니다. 왜?! 왜 저는 끝까지 치료받을 수 없는 것입니까?”
“위에 이야기하세요. 전 단지 명령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
병재의 냉혹하고 단호한 말에 환자는 침묵을 지키며 울상을 지었다. 병재의 뒤에 호위하는 병사들조차 병재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옆의 병사와 서로 대화했다.
“이거 어쩌지? 난리날 것 같은데.”
“젠장. 분위기 장난 아닌데. 나조차 살이 떨리겠어.”
“무슨 일이 있었나?”
“그래도 이번 재생치료를 받은 일본인 불구자는 참 안됐어. 쯧쯧.”
“그런데 딱히 군의관님을 건드린 것은 첫째 날 그 미친 놈 빼고는 없잖아.”
“나야 모르지. 혹시 몰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본인들이 군의관님을 건드렸는지.”
병재는 뒤의 대화하는 것들을 모두 듣고 있었지만 무시한 채 단호한 말투로 말한다.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저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결국 병재의 외침은 반복되었고, 이 후 처음 재생치료 받는 불구자는 일본인 부사관 들의 손에 붙들려 강제로 의무실에 나가게 되었다. 병재는 그 광경을 보고도 무시하고 업무를 계속 진행했다.
줄을 서고 있는 일본인 환자들은 일본인 부사관들 손에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서로 한 마디 했다.
“오늘 일진이 왜 이래?”
“난들 아냐? 뭔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나보지?”
“쩝 난감하군. 게다가 오늘이 마지막 치료라메?”
“뭐 기한은 서로 합의해서 정한 것이니까 말이야. 연장에 대해서 말들이 많아. 조만간 결론이 나겠지.”
“젠장. 난 오늘 재생치료를 처음 받는데.”
“그런데 왜 저 군의관은 미군에 속한 거야?”
“미군들에게 들은 소문은 저 조선인 군의관은 징용 중이었데.”
“징용? 그런데 그 실력이면 노역이 아니라 군의관에 배치되어야 정상아니야?”
“아 그거. 내가 미군에게 듣기로는 저 조선인 군의관 징용에 끌려갈 때, 의사 면허증 없다고 그냥 노역자로 편성된 거라고 들었어.”
“뭐.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 있어. 원래 제대로 되었다면 저 실력의 사람이 원래 일본군에 소속되어야 맞는 일 아니야?”
“우리 군대가 어처구니없는 게 한 두 가지냐? 우리 병사들의 부식을 뺏어서 먹은 장교들이 대다수인데 저 조선인이야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게 수군거리던 일본인 환자들은 곧 일본인 부사관의 통제에 가라앉혔다. 약 3시간이 지나며 환자들의 줄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여 이제 마지막 환자만 남겨두었다. 병재는 나머지 환자의 치료를 마무리하고, 뒤에 호위하는 병사들과 함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호위하는 병사 하나가 짐을 정리하다가 넌지시 병재에게 물었다.
“저 군의관님. 아까는 왜 그러신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마치 별 특별한 일이 없다고 여기는 병재의 얼굴에 묻는 병사의 얼굴은 난감하게 변했다. 그러나 병사는 말을 계속했다.
“아까 그 처음 재생치료를 받는 불구자 말씀인데요.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싶어서요.”
병재는 난감한 어조로 말하는 병사의 말에 피식 웃었다.
“글쎄요. 그렇다고 거짓을 말해줄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일본인 환자들에게 너무 냉정하신 것이 아닌지.”
병재는 굳은 얼굴로 병사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 이번 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위에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가 얼마나 나쁜지를 말이죠.”
“......”
결국 병재의 말에 병사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결국 병사는 의문을 제쳐둔 채 민망한 표정으로 조용히 짐 정리를 계속했다.
병재와 호위병사들이 짐 정리를 다 마치자 병사들은 앉아서 쉬기로 하고, 병재는 옆의 원래 의무실로 가 김강연이 담당하고 있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니 돕고 있다는 말보다 비유하자면 제자가 스승 앞에서 실제 환자들을 치료할 때, 스승이 자세히 가르치며 실제치료의 경험을 쌓게 도와주고 있다는 말이 정확했다. 그렇게 김강연이 담당하고 있던 환자들의 수는 차츰 줄어들면서 결국 오늘 있었던 마지막 일본인 환자들의 치료 및 진료는 끝이 났다.
“하아. 끝났군요. 형님은 안 힘드세요?”
“힘들지는 않어.”
“그런데 아까 들어갔을 때부터 표정이 안 좋았는데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되겠어요?”
병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김강연에게 간단히 말한다.
“...... 그런 게 있어.”
김강연은 말을 안 해줄 병재의 표정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병재에게 한 마디 했다.
“형님. 형님이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것 하나만큼은 알아주세요. 형님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저 김강연은 형님을 목숨처럼 도와줄 테니까 형님만 무거운 짐을 들지 마세요.”
병재는 눈에 예의 창이 떴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모임원 김강연과의 관계가 존경으로 상승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재는 예의 창들을 무시하고는 제 할 일만 다했다. 김강연은 그런 병재의 모습을 안타까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오늘 일본인 수용소의 할당된 일들을 모두 끝마치게 된 병재와 김강연은 여유 시간을 가지고 잠시 쉬었다. 병재는 속으로 효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채 울적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밖으로 걷고 있었다.
그 때, 병재의 귀 멀리서 대화소리가 들렸다.
“정말 괜찮을까요? 요기나가 대위님.”
“나 참. 이제 대위라고 부르지마라고. 난 이제 뭣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도 저의 마음에는 언제나 요기나가 대위님입니다.”
“쳇 별 하찮은 아부는. 그리고 뭐가 걱정되길래 이러는 거야?”
“그 사이판의 요괴 말인데. 정말 죽었을까요?”
전 군수과장 이키치 요기나가는 전 행정병이었던 병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별 걱정 없어. 넌 그 상태로 살아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 하냐?”
“그래도 그 험난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년 아닙니까?”
“흥. 사람이라면 살아남기 불가능해. 내 장담하지. 장담하고말고. 그리고 전 상부에 대한 명령을 왜 이제야 신경 써. 이미 일본제국은 끝났어. 끝났다고.”
“그래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우린 최선을 다해 전투하다 항복한 거니까 봐줄지도 모르지. 아니면 이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거나.”
“쩝. 요기나가 대위의 말씀을 들으니 신경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네요. 그래도 솔직히 전 화장실에서 뒤를 안 닦은 찜찜한 기분이 드네요.”
“나도 그런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뭐 어쩔 거야? 살든가 죽든가 매한가지 아니겠어? 그 상태로 아직 살아있다면 그 여자는 계속 지옥을 보고 있겠지.”
그 때 전 행정병은 마치 소름끼치는 한기라도 느끼는 듯 몸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그런데 진짜 죽으면 큰 일 아닙니까? 가뜩이나 요괴로 불리는 여자인데 그 지독한 꼴을 당했으면 엄청난 원혼이 서릴 것이 분명한데 말이죠.”
요기나가는 전 행정병을 보고 한심하게 보고 비웃었다.
“세상에 원혼이 어디에 있나? 지금 원혼이 있다면 우리 둘 뿐만 아니라 그 여자 이용한 모두들 죽고도 남을 일이지. 날 보라고. 난 아직 살아있단 말이지.”
“정말 괜찮을까요? 요기나가 대위님. 그 사이판의 요괴라 불리는 여자 길효순의 폐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거 말이에요.”
그 말에 몰래 두 명의 대화를 듣고 있던 병재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병재는 순간 달려들 정도로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대화를 들었다.
“하긴. 너라면 걱정이 많겠지. 하도 걱정이 많아서 전에 있을 때도 매일매일 상부에게 까이지 않을까? 너 그거 버릇이야. 날 봐. 난 그 여자를 처음 재임했을 때 당시부터 이용했다고.”
요기나가의 길효순에 대한 험담은 계속 되었다. 중국 전선에 팔려나갈 때부터 친한 동생들을 보는 눈앞에서 죽이고, 매번 강간하며 심하면 똥오줌을 가리지 않고, 질 속에 넣어버리며 좀 더 열심히 하라고 마약을 먹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길효순이 임신한 사실이 보이자 자궁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런 잔혹한 일을 길효순은 지금까지 버틴 것이다. 요기나가는 자신이 한 일을 마치 무용담처럼 떠들며 마지막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여자를 마지막에 처리하라고 한 지 알아?”
“그 여자의 마지막을 대일본제국을 위해 충성을 바치라는 뜻으로 한 거 아닙니까?”
“그래. 그래. 대일본제국을 충성하라고 노예처럼 부리다가 버려지라고 말이지. 이미 위안부로 팔려온 이상 인간이 아니잖아. 물품이라고 적지 않았어? 물품이라고 그 여자는 말이야. 우리 마음대로 강간하고 즐기다 버리면 끝인 장난감 같은 여자라고. 그 여자가 죽는다고 우리에게 원한을 품을까봐 걱정이라고. 날 봐 난 아직 살아있다고. 원혼 따위는 없어. 그러니 입 다물고 앞으로 사실을 묻으면 되는 거야. 인생 살면서 여자 후렸던 재밌는 기억이 있다고 여기지 뭐.”
요기나가의 말에 결국 병재는 정신 줄이 딱 끊어졌다. 병재는 순식간에 달려나가 둘의 앞에 섰다. 요기나가는 갑자기 나타난 병재의 모습에 깜짝 놀란 눈빛이었다.
“넌 뭐야? 그 옷은? 젠장 이제 보니 조선인 군의관이었군.”
요기나가는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병재를 보고 비웃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뭐야? 나 치시려고?”
병재는 뿌드득 이빨을 갈더니 손으로 목을 턱 잡았다. 병재의 힘에 요기나가는 허공 위로 떠올렸다.
“뭐 커.. 컥.. 뭐... 뭐야. 이 자식... 왜 이래...”
전 행정병이 병재를 보고 몸으로 밀치려고 했다. 그러나 병재는 간단히 피하면서 팔꿈치로 지나가는 전 행정병의 등을 찍었다.
-퍽!-
“억!”
전 행정병은 그 타격으로 한 방에 기절했다. 병재의 살기어린 시선은 다시 요기나가에게 향했다. 요기나가는 심상치 않은 병재의 분위기에 컥컥 거리며 공포가 이는 얼굴로 쳐다봤다.
병재는 잡은 손으로 밀쳐 요기나가를 던졌다. 요기나가는 밀친 힘에 볼썽사납게 굴러 떨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요기나가는 콜록콜록 거리며 병재를 쳐다보며 두려운 눈빛을 내보이며 말했다.
“왜... 왜 그리시오. 말로 합시다. 말로.”
그러나 병재는 요기나가의 얼굴에도 순식간에 달려들더니 이내 요기나가의 배를 올라타 울분을 담아 말했다.
“이 죽일 놈! 죽일 놈! 난 세상에서 왜놈들이 제일 싫어! 나까지 모자라. 내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게 만들고, 내 여동생을 그렇게 만든 놈들! 네 놈이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그 사이판의 요괴. 그 요괴의 오빠가 나야! 이 죽일 놈아!”
병재는 피눈물을 흘리며 요기나가에게 주먹을 날렸다.
-퍽!-
“윽! 억!”
“죽일 놈! 죽일 놈! 내 여동생을 그리 만든 죽일 놈! 원혼이라고? 내가 그 원혼이다. 이 죽일 놈아! 네 놈뿐만 아닌 일본 놈들 전부 죽일 놈들이야. 감히 감히 내 동생을.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을!”
-퍽! 퍽!-
병재는 계속 요기나가의 얼굴을 향해 때렸다. 어느 순간 비명을 지르던 요기나가는 아까부터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병재는 계속 때렸다. 이 원한, 이 분노, 저 녀석이 주범이다. 모두가 주범이지만 저 녀석이 제일 주범이다. 병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요기나가의 얼굴에 주먹을 퍼부어댔다.
“죽일 놈! 죽일 놈!”
그 때, 김강연과 시렌 소령이 서로 대화하다가 병재의 모습을 봤다. 병재가 저런 화난 모습으로 사람을 때리는 모습에 얼른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 둘의 발걸음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로 옮겼고, 주먹을 내려치려던 병재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하게. 그만해!”
“형님 그만하세요. 그만해요!”
둘은 병재의 힘에 버거워한 채 병재를 요기나가에게 떼어낼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병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스로 양쪽 팔을 사람 한 명씩 붙잡아 간신히 그만두게 만들었다.
“이... 이거 놔! 이거 놔! 내 여동생을! 내 하나뿐인 여동생을! 저리 만든 죽일 놈이! 이 죽일 놈이! 으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병재는 울분과 원한을 담아 소리쳤다. 병재의 피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김강연과 시렌 소령은 병재를 안쓰럽게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팔을 붙잡아 말렸다. 그리고 병재와 요기나가를 가까스로 떼어내게 된 것은 호위 병사들이 힘을 보태어 한 일이었다.
시렌 소령은 가까스로 요기나가에게서 병재를 떼어낸 후 요기나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요기나가의 얼굴은 코가 깨지고 피멍이 생겨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입에 피거품이 문 것으로 볼 때, 기절한 것 같았다.
“이 죽일 놈을! 이 개자식을! 효순아! 효순아!!!!!”
일본인 포로수용소에서 길병재의 원한과 울분이 담긴 포효가 계속 터졌다.
============================ 작품 후기 ============================
사실 병재의 능력이라면 한 번에 얼굴을 박살내는게 당연한데, 병재의 본능이 사람 죽이는 것을 막았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설정구멍을 일부로 내서 죄송합니다.
좋은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더욱 더 좋고, 많은 댓글을 작가에게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