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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사이판 전투를 총지휘하는 제 5 상륙군단의 군단장 홀렌드 C. 스미스 중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하아.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거야?”
병재가 소속되어 있는 해병 제 2사단의 사단장 토마스 왓슨 해병 소장은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 미스터 길은 어떻게 되었어?”
“현재 헌병들에게 붙들려 수감 중인 상태입니다.”
“피해자는?”
“죽지 않았습니다. 다만 얼굴에 크나큰 부상을 입어서 생활에 큰 지장을 줄 것 같습니다.”
“...... 죽었으면 말이 많아지겠군.”
“죄송합니다.”
“그게 자네가 사과할 일이야. 그 일을 벌인 당사자를 탓해야지.”
스미스 중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좋게 생각하자고. 사실 우리야 포로들을 대우해주지만 저 새끼들은 우리 포로들을 기분 안 좋다고 다 학살해버리잖아.”
“그 말씀은?”
“한 마디로 도찐개찐이지. 아마 언론이 물어도 난감할 거야. 사건이 일어난 건 잘못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사고 묻어도 상관없잖아. 죽었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토마스 왓슨 소장은 스미스 중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사실이야. 그렇죠. 일본인 포로수용소에선 그 일에 대해 조용합니다.”
“뭐 때문이야?”
“얼마나 열이 받았으면 저렇게 달려들었겠냐? 라는 의견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그 미스터 길이 일본인 환자들에 대해 잘 치료해준 모양입니다. 첫 날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계속 치료해준 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 참. 그렇게 의견들이 돌아가면 묻어도 괜찮겠네. 그런데 그 미스터 길은 왜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나?”
토마스 왓슨 소장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옆에 있던 조선인 군의관이 그 이유에 대해 추측해서 전달했습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그래도 궁금하긴 하군. 뭐라고 말하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전 사실 그 미스터 길의 의무실에 한 여성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군단장님도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스미스 중장은 그 말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자신도 화가 나는지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정말 열 받은 사진이었지. 사람을 어떻게 그런 지경까지 처하게 만들 수 있는지 참. 그런데 머무르고 있다는 말을 쓴 거 보니까 치료한 거 같은데. 하. 내가 보기엔 그냥 시체였는데 말이야.”
“이 사진을 찍고 그의 의무실에 여성을 운반한 종군기자가 말하더군요. 하체는 이미 썩은 채로 구더기 차지가 되었고, 간신히 숨만 붙여 있다고 말이죠.”
“말을 들으니 더욱 끔찍하군. 그런 상태의 여성이 살 수 있는 거야?”
“여기 있는 군의관들도 미 본토에 명문의학대학을 졸업해 20~30년 넘게 근무하는 명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죠. 아마 무덤자리를 만들라고 조언하겠죠. 하. 역시 그 사람의 실력은 저조차 가늠하기 힘들죠.”
“저조차 라니. 보통 인간이라고 말해야지.”
“이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그 여성은 의무실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간혹 가다 미스터 길의 동료인 조선인 군의관들이 치료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자는 지금 함묵증에 걸려 있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을 극심히 두려워해 사실 치료도 여성 간호사가 전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 하아. 그 미스터 길과 여성과의 관계는 뭐야?”
“김강연이라고 하는 조선인 군의관이 여동생이라고 말하더군요. 외치는 것을 들었답니다.”
그 말에 스미스 중장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씨발. 이해가 가는군. 이해가 가.”
“......”
“그래서 저 난리를 쳤던 것인가? 하아. 알겠네. 그 미스터 길이 갇혀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게.”
토마스 왓슨 소장은 깜짝 놀란 얼굴로 말한다.
“예? 군단장님이 직접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요즘 병사들 사기가 말이 아니야. 갑작스럽게 미스터 길이 구금된 것을 소문으로 들은 모양이야. 아마 중상을 입어도 치료받을 수 없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지.”
토마스 왓슨 소장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소문을 들었는지 씁쓸한 얼굴이 담긴 얼굴로 말한다.
“저도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잠시 동안 구금하는 거 아닙니까? 미스터 길이 사람 패서 죽이는 것은 아니니 말이죠.”
“병사들은 그걸 모르지. 아마 미스터 길이 아예 군법회의에 들어 징역살이를 할까봐 그렇게 떠돌고 있더군. 물론 그런 동양인 의사 한 명이 큰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더군다나 정부와 의회가 재활치료센터를 건설하고, 그 책임자로 미스터 길로 내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 사실을 알면 헛소문인 것을 알 텐데.”
“글세. 직접 전투를 치르는 병사들의 생각은 다른가봐. 하여튼 난 그 미스터 길이 구금되어 있는 곳으로 가겠네. 자네는 어떻게? 따라가겠나?”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스미스 중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토마스 왓슨 소장과 서로 대화하면서 지휘차량을 탔다. 그리고 그 차량은 시동을 걸어 병재가 갇혀있는 곳으로 향했다.
병재가 갇혀있는 구금소에는 병재 뿐만 아니라 사고 친 병사 몇 명이 함께 갇혀있었다. 사고 친 병사들은 처음 여기 들어온 병재를 보고 놀란 눈치였었다. 그러나 병재가 멍하니 있으며 아무런 말도 안하고 침묵을 지키자 구금소 안의 병사들은 병재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지냈다.
-뚜벅! 뚜벅!-
헌병이 병재가 있는 구금소에 다가오고는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는 길병재를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헌병은 자신에게 주어진 할 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감정을 접어들고 병재에게 외친다.
“미스터 길. 면회입니다.”
그러나 병재는 여전히 헌병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헌병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더니 한 마디 중얼거렸다.
“완전 정신이 나갔군. 하아.”
결국 헌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쇠로 구금소의 문을 철컥 열고는 가만히 멍하게 천장을 보고 앉아있는 길병재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팔을 잡아 자신의 옆구리에 끼운 채 끌어간다.
병재는 헌병의 강제적인 안내를 받아 결국 면회소의 의자에 앉혀졌다. 그러나 병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 보였다. 그 때 면회소 임시 창문 넘어 스미스 중장이 마주 앉아 말했다.
“이거 말해도 못 들을 표정이군. 그 쪽발이가 뭐라고.”
-탕! 탕!-
스미스 중장은 자신 앞에 높여진 탁자를 탕 탕 치자 병재는 비로서 고개를 스미스 중장에게 향했다. 그러나 병재의 눈빛은 흐리멍텅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았다.
그래도 스미스 중장은 병재의 관심을 자신에게 향했다는 것에 성공했다고 여기는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재의 정신을 확 차릴만한 것으로 말이다.
“자네의 의무실에 머물고 있는 여성 말이지. 자네 동료들이 잘 치료하고 있다네. 그런데 증상이 너무 심각하다네. 어떻게 그런 여자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군. 아편과 메스암페타민의 금단증상이 너무 심각하고, 함묵증에다 남성을 보면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지 몸을 덜덜 떨고 있다네.”
스미스 중장의 말에 병재의 눈이 커졌다. 병재는 눈물을 흘렸다.
“미스터 길 당신에게 현실이란 참으로 가혹하군. 자네의 여동생이 그런 지경을 만들게 한 작자들을 의사의 양심이라는 명목으로 치료했으니 말이야.”
“......”
“의사의 양심 좋지. 그런데 내가 이런 일을 지시했지만 나도 상상을 못했어. 그런 자네의 사정을 파악하지 못해서 시킨 점을 내 사과하지.”
“......”
“자네가 패 죽이려고 했던 작자는 살아남았지. 그런데 이것은 잘 알아둬. 자네가 치료하지 않으면 그 자는 평생 정상적으로 살기가 불가능해진다네.”
병재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몸도 떨었다. 아직도 그 자식을 패 죽이려던 기억이 생생했다. 비록 김강연과 시렌 소령의 만류 때문에 그 자식을 끝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고싶은 말이 무엇이죠?”
스미스 중장은 병재의 말을 듣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되었군.”
“제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에겐 자네가 아직 필요해. 필요하지. 암 필요하고말고. 자네가 그 자식을 죽이지 않았으니 자넨 금방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그 자식에 대한 원한을 잊으라 말씀입니까?”
병재는 살기를 띄는 눈빛으로 스미스 중장을 쳐다보았다. 험난한 전장을 몇 번 살다온 스미스 중장은 그 눈빛에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겉으로는 밝은 미소를 띠었다.
“이 말 하나만 기억하게. 원수는 그냥 죽이는 것은 자비야. 하지만 병신으로 만든 채 평생의 괴로움과 세상의 잔혹한 시선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혹독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자네는 선택할 수 있어.”
“선택? 그게 무엇이죠?”
“만약 그 자식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다고 생각해보게. 그러면 자네는 그를 치료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자식이 평생 잘못을 뉘우치지 않다면 앞으로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지 자네 머리로 예상이 가지 않겠나?”
“......”
병재는 얼굴을 굳힌 채로 스미스 중장을 쳐다보았다.
“일단 그 자식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지. 자네가 원한을 맺은 상대는 그 자식뿐만 아니니 말이야. 내 이 것 하나만큼은 말하지. 자네를 절대 일본인 포로수용소에 발을 디디게 만들지 않을 거야.”
“그 정도의 이야기로 끝날 것은 아닌 눈치군요.”
스미스 중장은 그 말에 ‘눈치 좋은 녀석’ 이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그렇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자네의 관심을 끌고자 말한 거야. 사실 보통 군의관이었다면 택도 없지. 미스터 길 자네라서 그런 거야.”
스미스 중장은 그 말을 하고는 밑에서 종이를 꺼내 병재에게 건네주었다. 병재는 종이를 받아보고는 천천히 살펴보았다.
“...... 이건 귀화요청서 아닙니까?”
“알아. 잘못 꺼낸 것은 아니야.”
“이것을 쓰게 만들 의도는 무엇이죠?”
“솔직히 자네의 입장을 봐. 자네의 고향은 이미 적국에게 점령당했다네. 자네에게 돌아갈 나라는 없어. 그리고 자네의 어머니는 지금 보호 중에 있다지만 아버지는 인질로 잡혀있지. 자네가 고향에 돌아가봤자 희망은 없네.”
“......”
“우리는 자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어. 먹고 싶은 음식? 아니면 대궐같은 집에서 살고 싶나? 광대한 미 본토 홀로 여행하는 것은 어떤가? 그리고 자네 여동생을 돌봐야할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나?”
스미스 중장은 병재에게 이렇게 유혹하면서 말했다. 병재는 여동생을 돌봐야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말에 강하게 얼굴을 떨었다. 스미스 중장은 병재의 그 순간을 잡고 말했다.
“자네의 실력의 1%도 못하다고 하지만 우리 미본토의 의사 실력은 세계에서 무시하기 힘들지. 거기에 여의사 하나 없겠나? 내가 알기로는 자네 여동생은 극심한 남성 공포증에 몸을 떨고 있더군.”
-뿌드득!-
병재는 이빨을 갈았다. 아직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이 눈에 선했다. 그 지독한 생활을 이겨내고 살았지만 남은 것은 후유증이었다.
“자네는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지. 그러니 우리도 자네에게 대답할 준비가 된 거야. 어떻게 할 건가?”
병재는 이빨을 가는 것을 그만두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굳힌 얼굴로 말했다.
“군단장님이 이 것 말고 다른 제안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군요. 그 쪽에서 원하는 것은 이거 하나만 믿기에는 부족해 보이는군요.”
스미스 중장은 ‘눈치 좋은 녀석.’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아까의 귀화 신청서를 거두고 다시 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병재는 종이의 내용이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게 본심이군요.”
병재가 살펴본 내용에는 미국인 군의관에게 재생치료를 전수해줄 것이라고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스미스 중장은 병재가 자신과 그 위의 본심이 한 번에 알아차린 것에 대해 씁쓸한 얼굴로 쳐다본다.
“사실 제가 가진 재주가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이방인이죠. 조국 잃고 떠도는 외국인에 불과한 몸입니다. 이곳에 기득권을 순순히 넘겨줄 인간은 없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물론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재주를 홀랑 빼먹고 내팽개치죠.”
“자네가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어떤가? 할 수 있겠나? 아까 이야기했던 대우는 이것에 서약해주면 해주지.”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하죠. 하겠습니다.”
스미스 중장은 그 말에 비로소 밝은 미소를 지었다. 병재는 그 말을 하고 난 뒤, 자신의 이름을 쓰고 서명해 그 것을 다시 스미스 중장에게 건네줬다.
“그럼 누구에게 그 것을 가르칠 건가?”
병재는 잠시 생각하더니 스미스 중장에게 말한다.
“오드밀러 군의관이 가장 적당한 상대이군요.”
“오드밀러? 아 그 친구. 자네의 가르침을 사사 받았다는 그 친구. 그렇군. 그 친구가 가장 적당하겠군.”
“사실 전수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재생치료를 할 수 있는 감각도 감각이지만 거기에 필요한 의학지식도 상당합니다. 보통 인간이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실전을 겪어도 최소 80년은 걸리죠.”
스미스 중장은 걸리는 시간에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하나의 예입니다. 제가 가르칠 것은 그 것의 핵심입니다. 큰 줄기를 가르쳐드리죠. 제가 예상하기로는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병재가 재생치료를 발견하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이 10년 정도 되었다. 아마 불구를 능숙히 진료 및 치료하려면 10년이 걸리겠지만 병재는 자신의 기술들을 믿었다.
‘말로는 5년이 걸린다고 하지만 그건 하루에 10분씩 아주 짬을 내야 가능한 거지. 아마 1년이면 충분하겠군.’
아마 스미스 중장이 병재의 생각을 파악한다면 괴물같은 눈빛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 중장은 병재의 속을 파악하지 못하고 만족한 눈빛으로 병재를 쳐다보았다.
“그럼 계약은 된 거군. 잘 부탁하지.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니 자네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게.”
병재는 아까의 우울함은 어디가고 싱긋 웃었다. 스미스 중장과 병재는 동상이몽에 빠져있지만 뭐 어떤가? 서로 좋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몇 시간 뒤, 병재는 구금소에 풀려나 자신의 의무실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을 두려워하는 효순을 진정시킨 뒤 자신에게 밀린 할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7월을 넘기며 사이판 전투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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