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8 / 0633 ----------------------------------------------
[1부] 흩어진 가족들
1944년 7월 15일, 중국 중앙군관학교 임천분교의 한 나무 단상에는 군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중년남성이 단상 밑 연병장에 줄을 서 나란히 직사각형 대형으로 가만히 서 있는 광복군 간부 후보생들을 밝은 미소로 둘러보았다.
“이제 여러분은 정식 장교이다. 장교란 무엇인가? 단순히 병사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장교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병사에게 그 직위를 맡겨야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병사들을 지휘하기 위해서 장교인가? 그렇다면 그런 병사에게 그 직위를 맡으면 된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장교의 역할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병사들의 존중을 받고,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정확히 판단하면서 병사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음은 물론이고, 사기를 고양시키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가 바로 장교다. 여러분이 장교로 임명되었다고 우월의식을 가지지 말라. 그대들의 능력을 넘나드는 사람은 많다. 여러분이 그들보다 유리한 것은 여기서 교육받은 것뿐 단지 그 것이다. 그 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궁리하라. 그러면 여러분의 길은 열리게 될 것이 분명하리라!”
-와아아아아!-
광복군 간부후보생들은 연설을 듣고 난 뒤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은 학교 주위의 산까지 울려퍼질 정도였다.
그 큰 환호성을 들은 중년남성은 간부 후보생들에게 일정 단위의 연설을 끝마친 뒤 오늘도 멋진 연설을 했다고 자신을 자화자찬했다. 그리고 수여식이 있었다. 모든 광복군 간부후보생들이 현직 참모이자 사회자로 나선 이가 한 명씩 한 명씩 부르고는 따로 임명식을 가졌다.
그 속에는 병윤의 형제들 중 둘 째인 병주와 그의 친한 친우인 강덕재, 김도진 역시 끼어 있었다. 병주가 임명식을 받기 위해 단상 위로 올라가자 사회자와 수여식에 참관하는 학교 교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이 그 괴물이라고 불리는 인간이야?”
“말도 마라. 자네가 저 녀석의 질문을 안 받아봐서 모르지. 받게 되면 내 지식의 밑천을 탈탈 털리게 될 거야.”
“그래도 다행이긴 하지. 수업에 열성적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참여해주는 것 같고...”
“그거야 서로 귀찮으니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합의한 거지. 저 녀석은 괜히 질문할 것도 없고, 나는 그런 질문을 안 받아봐서 좋고.”
“그렇다면 우리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것인데. 왜 여기에 교육받는 거지?”
“그걸 알면 내가 이러겠냐?”
“으음... 그렇군. 일단 확실한 것은 저 녀석이 괴물이라 불리는 능력을 지닌 자라고 알면 되겠군.”
“그렇지. 저 녀석 밑에서 굴려지는 병사들은 아주 힘들더라도 전투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겠지. 저 녀석에게 오합지졸을 맡기면 어느새 정예군으로 탈바꿈 되니까 말이야. 거기다 작전술, 독도술, 사람을 파악하는 기술들과 허를 찌르는 정찰술 등 엄청 많은 능력을 지녔으니 아마 저 녀석이 정식 군으로 간다면 앞으로의 예상은 뭐 뻔하겠지.”
“뭐가 뻔한데?”
“아오. 저 녀석의 적들이 주구장창 패배할 까봐 그런다. 왜?!”
병주는 중국 중앙군 소위에 임명받으면서 귀는 교수들의 대화를 몰래 들었다. 병주는 싱긋 미소를 짓는다. 병주를 시작으로 강덕재, 김도진도 차례대로 임명받았고, 시간이 지나 모든 광복군 후보생들의 임명절차가 끝났다.
그리고 광복군 간부후보생들은 일제히 모자를 던지며 자신의 앞길을 축복했다.
‘이제 서로 갈 길을 가겠지.’
병주는 광복군 간부후보생들의 얼굴들 일면을 살펴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간부후보생들과 병주와는 많이 친했다. 병주의 친화력이 돋보였지만 병주의 권위와 통솔 때문에 군인인 그들이 병주에게 매력을 느끼고 홀로 다가선 것이 컸다.
그러나 병주는 이제 그들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병주가 가는 길에 같이 합류하는 이도 강덕재와 김도진을 비롯한 몇 명뿐이었다. 강덕재가 병주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한다.
“이제 이곳의 생활을 마쳤으니 중경으로 떠날 차례인가?”
“여기서 짐을 다 싸게 되면 그렇게 되겠죠.”
“여기서 중경까지 기차가 개통되었다고 하니까 우린 그 것을 타고 중경에 가면 될 거야.”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말한다.
“갈 돈은 있어요?”
“이거 왜 이러는가? 내 돈이 없어서 그런가?”
“하하. 아니에요. 그냥 농담 좀 한 거 에요.”
병주의 웃음에 강덕재는 조금은 열받은 표정으로 병주를 바라봤다.
“이 자식이! 못 된 장난만 치고!”
“워워! 이제 장교가 되었으니 화도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아니야! 이 자식아!”
결국 강덕재의 헤드락에 병주는 걸리고 말았다. 김도진과 그 주위의 간부후보생들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언제봐도 보기 좋은 사이군.”
“그러게나 말이다. 병주는 이곳의 생활을 청산하고 중경으로 간다지.”
“그런데 왜 중경에 가는 거야?”
“중경에 우리 임시정부가 있잖아. 그 쪽에 가는 거지. 뭐.”
“아 그런가.”
간부후보생들은 병주와 강덕재를 바라보면서 서로 수군거렸다. 그 때, 광복군 정식 군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군인 무리가 병주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광복군 간부후보생들은 그들을 보고 서로 대화했다.
“광복군 제 1 지대이군.”
“아마 일본군과 직접 대적한다는 그 부대인가?”
“그런데 그 사람이 왜 병주에게 다가오는 거지?”
“김원봉 지대장의 모습도 눈에 띄는군. 직접 발걸음을 옮겼네.”
“뭐 병주의 능력이라면 어느 사람이라도 몸을 달겠지. 중국군 위에 있는 사람들도 병주를 영입하려고 직접 발로 뛰는데 김원봉 지대장은 오죽하겠어?”
김원봉과 그 뒤를 따르는 부관, 참모들은 이제는 정식으로 임명된 광복군 간부들의 면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병주에게 다가갔다. 병주와 강덕재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김원봉과 그 무리에 대해서 조금은 경계어린 표정을 취했다.
“축하하군. 이제 정식 장교가 되었군.”
김원봉이 병주에게 악수를 취하자 병주는 당당하게 악수를 받았다.
“예. 이제 직위가 생긴 샘이죠.”
“그래서 자네의 결정은 어떻게 할 건가?”
병주는 싱긋 웃으며 김원봉의 말에 단호히 대답한다.
“아직은 보류입니다. 이 쪽 말만 듣고 결정하는 것은 바보나 다름없습니다. 저 쪽 말도 듣고 결정해야겠지요.”
김원봉은 그 말에 오른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런가? 할 수 없군. 만약 자네들이 중경에 갔다가 노하구로 안 가면 거절이라도 봐도 되겠지.”
병주는 당당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직은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결정은 제 몫이니까요.”
“그렇군. 그런데 중경공단의 회장 길병윤 말이야...”
그 말에 아까까지만 해도 당당했던 병주의 얼굴이 어느새 굳어졌다.
“자네의 얼굴을 보니 그건 사실이었군. 참으로 대단한 형제야. 한 명은 중국군들의 군수와 중국인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공단의 총 책임자이자 한 명은 앞으로의 능력이 기대되는 장교지.”
“그런 사실까지 파악했군요. 하하하. 이거 전 그 녀석에게 비밀로 해서 다가가려고 했는데 말이죠. 이걸로 당신을 껄끄럽게 여기는 이유도 하나 추가되겠죠.”
김원봉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래. 자네의 동생이 자본가라서 나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 같군. 그러나 그건 세상 사람들의 오해야. 난 단지 사람들을 억압하는 존재들이 양보했으면 좋겠거든. 그런데 날 보고 그런 사상을 공산주의라고 빨갱이라고 말하는 거야. 누구보다도 조선의 독립을 힘써온 나를 말이야.”
병주는 김원봉의 회한 아닌 회한이 담긴 말에 씁쓸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당신의 활약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념의 차이가 서로를 갈라지게 되겠죠. 지금은 조선의 독립으로 한 마음 모았다고 하지만 만약 독립하게 된다면 뭉쳐진 마음은 이념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겠죠.”
“그 말을 들으니 이제 마음을 정한 것 같군. 중경에 가면 그 이야기를 잘 듣고, 결정하라고. 노하구에 올 것인지? 아니면 중경에 머무를 것인지.”
김원봉은 병주에게 선택을 안겨주고는 자신의 제 1 지대에 가입하겠다고 하는 광복군 간부들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김원봉과 그 무리가 멀리 떨어지자 강덕재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
“잘 말했어. 자네가 저런 빨갱이 자식 밑에서 생활하게 놔둘 수 없지.”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그러나 일본군과 직접 맞닥뜨린다는 매력적인 면도 있기는 하지요.”
“자네 일본군과 직접 싸워보고 싶나?”
“그렇게 하려고 일본군에서 탈영한 것 아닙니까?”
“저 부대 말고 일본군과 대적하는 곳은 있겠지...”
“글쎄요. 제가 알기론 저 부대만을 빼놓고 다 공작으로 활동한다는데요.”
강덕재는 병주의 말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만약 자네가 제 1 지대로 간다고 하여도 난 원망 안 하겠네. 그건 자네의 결정이니까 말이야. 만약 자네가 나에게 결정을 권유하면 같이 동참하겠네. 우린 서로 피는 안 통하지만 그래도 형제들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병주의 눈앞에 창이 하나 나타났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모임원 강덕재와의 관계가 존경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응 이건 처음 보는 문구인데.’
태평양에 있던 병재의 그 문구처럼 병주 역시 그 일이 나타났다. 그리고 병주는 관계에 대한 정보들을 살펴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관찰이 준신 급에 도달하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지겠군.’
“자네 왜 멍하니 생각하고 있나?”
강덕재의 말에 병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병주는 뒷목을 긁으며 어색하게 말한다.
“하하. 아직 김원봉 지대장이 한 말이 생각나서 말이죠.”
“그런가? 자네는 아직 그 말에 대해서 미련을 끊지 못했나 보군.”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의 사람들의 말도 들어봐야겠죠.”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이제 짐을 싸고 슬슬 중경에 갈 준비를 하죠. 그리고...”
“그리고?”
“제 동생 병윤 그 자식의 다리를 밟을 것입니다.”
병주는 이빨을 뿌드득 갈며 성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강덕재는 얼굴에 살기가 이는 병주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며 병주를 말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이니 만큼 그런 건 자제해둬.”
“형님도 알다시피 그 자식은 죽일 놈이에요. 그 자식은 아직 철이 덜 들었어요. 내 만나면 그 자식부터 패 죽일 거요.”
병주가 강덕재를 말릴 분위기에서 반전하며 이제는 강덕재가 병주를 말릴 분위기가 되자 강덕재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병주를 설득한다.
“거의 6년 만에 만나는 것이잖아. 중경에 도착하면 회포를 풀고, 그 때 해도 늦지 않을 거야.”
병주는 그 말에 아까의 분노는 접어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병윤이 그 개자식을...”
그렇게 병주는 병윤을 생각하며 이빨을 갈았다.
기찻길은 제대로 복구되었는지 중경에는 며칠 만에 도착했다. 병주와 병주를 따라온 광복군 간부들은 기차의 창 넘어 휙휙 변하는 풍경의 모습에 지겹다는 듯 쳐다보았다.
“지긋지긋하군. 언제 중경에 도착할까?”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몇 시간 뒤에 도착하게 된다는 말도 있던데...”
“젠장 카드놀이도 이제 지겨워졌어. 빨리 중경에 도착해서 쉬고 싶다고.”
“여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피곤한 것은 처음이야. 기차로 몇 날 며칠을 지새우다니 생각도 못했어. 내 고향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 역시 대륙 넓어.”
“그래. 대륙은 넓어. 너의 콧구멍도 말이지.”
“이 자식이! 내 콧구멍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결국 병주를 따라온 광복군 간부 2명이 아웅다웅 다퉜다. 병주와 강덕재, 김도진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김도진은 병주와 강덕재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정말 평화로운 광경이네.”
강덕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정말 평화롭지. 저들이 군인이라는 것을 빼고 말이야.”
“앞으로의 일이 더욱 복잡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놔두죠.”
“그래 그래야지.”
강덕재는 병주의 말에 동조하고는 다시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풍경은 여전히 똑같아서 강덕재의 얼굴은 지겨움으로 가득했다.
“앞으로 기차는 못 타겠어. 만약 타게 된다면 읽을거리들을 왕창 준비해야겠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김도진은 웬일로 강덕재의 말에 동의했다. 병주가 안 보는 사이에 티격태격 하는 사이인데도 김도진 역시 기차 밖 풍경을 지겹다는 듯 쳐다보았다.
기차 안에서 지겹게 시간을 보내는 병주와 병주를 따라온 광복군 간부들과 달리 기차는 중경으로 향해 칙칙폭폭 달려 나갔다.
약 4시간 뒤에 기차는 중경에 도착했다. 병주와 간부후보생들은 각자의 짐을 가지고 내릴 준비를 한 뒤, 기차가 정차하자 사람들 따라서 내려갔다.
-북적! 북적!-
중경정부의 임시 수도이지만 중경은 사람이 많았다. 그에 따라 중경역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중경에서 출발하는 사람들과 중경에 도착한 사람들이 서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며 그 사람들 사이에 음식이나 잡동사니들을 팔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보였다.
병주와 병주를 비롯한 간부후보생들은 서로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
“우리를 환영해주는 인파는 어디에 있는 거야?”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그 때, 강덕재가 시선을 두리번거리다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다! 저기에 있어.”
병주를 비롯한 광복군 간부들은 강덕재의 손가락을 향해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방향의 시선의 끝에는 현수막을 위로 치켜 든 채 자신들을 환영하는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있었다. 광복군의 총사령관인 지청천, 총참모장 이범석은 물론이고, 임시정부의 주석인 김구와 그 내각의 일원들 병주와 광복군 간부들을 모두 환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주는 그 속에서 병윤과 감연의 모습을 확인했다. 병주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뛸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사람들을 재빨리 헤치며 빠르게 자신들을 환영하는 임시정부의 요인들을 향해 뛰어갔다.
병주는 병윤을 목표로 해서 위로 솟구쳐 뛰더니 이내 주먹을 치켜들고 자신을 보면서 경악한 표정의 병윤에게 내질렀다.
-퍼억-
병주의 온 힘이 담긴 주먹에 병윤은 뒤로 튕겨 나갔다. 이 장면을 지켜본 임시정부의 인원들과 강덕재, 김도진이 포함된 광복군 간부들은 병주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경악했다.
============================ 작품 후기 ============================
병재와 효순이 만난 것처럼 병주와 병윤이 만나도록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병주가 메인이기는 하되 병윤 역시 출연하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에게 많고도 좋은 댓글은 큰 사랑과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