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60화 (6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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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병주와 김도진, 강덕재는 철기 이범석 장군의 집에 초대되었다. 강덕재는 꽤 잘 정돈된 집 앞의 정원에 조금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저 사람의 집이 저렇게 잘 살고 있었나? 하. 그런 돈이 있다면 조선인 병사들을 모집하는데 써야 하는데 말이지.”

강덕재는 조금 불만어린 말투로 정원의 화강암으로 매끄럽게 깐 길바닥을 밟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원 안 저택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는 작은 분수대 하나가 있어서 보는 눈을 즐겁게 해줬다.

“으리으리하군. 그런데 이거 소대장님 동생이 선물해줬다는 소식이 있던데.”

병주는 김도진의 말에 파르르 눈썹을 떨었다. 병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기에 이렇게 호화스러운 저택을 선물해준다는 말인가? 병주는 새삼스럽지만 병윤을 다시 봤다.

‘하기야 병윤의 능력이라면 이것보다 더 뛰어난 것도 줄 수 있겠지.’

그 때, 정원을 빙 둘러보면서 집으로 걷는 삼인방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범석 장군의 아내인 김마리아였다.

“어서들 오십시오.”

김마리아가 그렇게 인사하자 삼인방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김마리아는 청년들의 패기 있는 인사에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짓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인사하는 것보다 우선 이 집 안으로 들어가세요.”

“예. 염치불구하고 안내를 받겠습니다.”

강덕재는 사람 보기 좋은 미소를 지은 채 김마리아의 말을 받아 강덕재를 포함한 삼인방은 김마리아의 안내를 받아 그 호화스러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김마리아의 뚜벅뚜벅 걷는 발걸음 따라 삼인방은 김마리아를 따라감과 동시에 저택 안의 분위기를 느끼며 감탄한 눈치였다.

하얀 대리석 벽에 조화롭게 있는 창문틀, 그리고 벽마다 걸려있는 알 수 없는 그림들과 벽에 바짝 붙어있는 값비싼 도자기와 세밀한 조각상들이 평화롭고 기품 있는 집 안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철컥 끼익!-

김마리아는 어느 한 문 앞에 도착하더니 이내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삼인방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너...”

병주는 응접실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보고 얼굴을 굳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응접실에는 세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병윤과 그의 친한 친구 감연, 마지막으로 이 저택의 주인인 이범석이 삼인방의 모습을 훑어보고 있었다.

“여기에 앉으세요. 전 차와 과자라도 내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도우겠습니다. 사모님.”

그 때, 강덕재가 나서서 김마리아의 일에 돕겠다고 자청했지만 김마리아는 오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거절했다.

“손님에게 일을 시킬 수 없어요. 그러니 자리에 앉아주시면 제 마음이 편해질 것 같군요.”

강덕재는 그 말에 머쓱한 얼굴을 짓고는 결국 김마리아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이리와. 앉게. 내 자네들을 보자고 한 이유는 개인적인 친목도모도 있지만 여기 앉아있는 병윤과 저쪽의 신입 소대장이 친형제의 관계인 것도 있고 해서 저 둘의 해후를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

강덕재와 김도진은 이범석 장군의 말에 어느새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에 앉았지만 병주는 병윤을 보고 얼굴을 굳은 채로 병윤을 바라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이범석 장군은 굳은 얼굴의 병주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역에 도착하고 나서 행동했던 것은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경악할 일이었지. 그 행동으로 자신에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것이 목적이라면... 축하하네. 자네의 목적은 이미 충분히 달성했지.”

병주는 이범석 장군의 듣는지 마는지 병윤을 쏘아보고 있었다. 병윤은 그 눈빛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표정이었다. 병주는 그 표정을 보자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이범석 장군에게 돌렸다.

“제 동생 녀석을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주는 이범석 장군에게 꾸벅 감사의 인사를 올리자 이범석 장군은 병주와 병윤을 번갈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글세. 내가 병윤과 감연을 보살폈다고 말하면 오히려 아이러니하군. 솔직히 우리가 중경에 자리를 잡게 전적으로 도와준 것은 이 친구들 덕분이야. 내가 자네의 동생을 보살핀 것이 아니라 자네 동생이 우리들을 보살폈다는 말이 옳겠군.”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궁금합니다. 여기서 저 둘의 영향력은 어떻게 되기에 장군님이 그렇게 말씀하는지.”

그 때, 강덕재는 병윤과 감연을 번갈아보며 이범석 장군에게 자신의 의문점을 던지자 이범석 장군은 그 질문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네는 이 곳 중경의 유력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그거야 당연히 중경정부의 일원들 아닙니까?”

“아니야. 그들은 단지 이곳의 유력자들의 협력을 받아서 자리를 잡은 것에 불과해. 중경정부의 일원들 기반은 남경에 있거든.”

“그렇다면... 이 도시의 번영은 뭡니까? 중경의 지역유지들이 그렇게 힘과 돈이 있는 것입니까?”

“그래. 그들이 유력자이지. 그런데 이 도시의 번영은 지역유지만으로 돌아가지 않지. 이 도시를 번영시키기 위해 얼마만큼 돈이 들어가는지 자네는 알고 있나?”

“그렇다면... 저 두 사람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 이 두 사람이 이 중경에 자리를 잡은 지도 6년이야. 중경의 발전은 두 사람이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면 돼. 그 동안의 발전 동안 이 두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벌고 인맥을 쌓아올렸는지 아는가?”

“......”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두 사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 그 둘이 없다면 중경에서 나오는 물자들이 없었거든. 두 사람이 없으면 장개석 총통은 아마 미국 정부에게 거지처럼 물자를 구걸했어야 하는 처지일거야.”

“중경공단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은 또 어떻고? 이 탁자 고급스럽지 않나? 이 것도 중경공단에서 만들어진 거지. 중국의 모든 생산품이 중경공단에서 만들어지고 있어. 거기에 모자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지.”

김도진과 강덕재는 이범석 장군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자네들이 지휘하는 소대의 병사들 모습도 확인 했을 거야.”

“예. 정말 충실하게 무장되었습니다. 새 것 같은 소총에 수류탄, 단단해 보이는 방탄 헬멧, 구하기 힘들다고 하는 방탄복, 마지막으로 뒤에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군장들까지 말이죠.”

“그래. 그런데 그 것들과 같은 무장들을 중국군 병사들이 기본으로 하는 것이야. 그렇게 무장하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아는가?”

“그래. 저 두 사람이 운영하는 중경공단은 수백만 명의 중국 병사들의 무장을 책임지고 있다고 보면 돼. 거기다 야포, 전차, 장갑차, 비행기, 이동에 필요한 차량들도 생산하고, 거기에 중국인의 생필품 생산까지 도맡아하지.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경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인지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병윤에게 이야기 듣기로는 1200만 명은 족히 넘는다는군.”

이범석 장군의 말에 강덕재, 김도진은 물론이고, 병주조차 놀랍다는 얼굴을 지었다.

“내가 어떤 사람들을 모셨는지 잘 알겠는가?”

강덕재, 김도진, 병주는 이범석 장군의 말에 어벙벙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말하니 두 사람의 자랑거리를 내가 대신 소개해주는 것 같군.”

감연은 그 말에 기분좋게 웃고는 이범석 장군에게 말했다.

“하하하... 좀 더 소개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글세. 네 녀석의 얼굴을 보니 네 녀석이 자만할까봐 그만두련다.”

이범석 장군이 그렇게 말하자 감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이범석 장군은 감연의 얼굴을 보고 키득키득 웃더니 고개를 병주에게 돌렸다.

“이름이 길병주라고 했던가? 여기 병윤의 작은 형이기도 하고. 하... 자네 형제들은 참으로 대단하군. 자네의 형은 전세계에서 사람들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고, 자네의 동생은 비록 중국 한정이지만 중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존재가 되었지. 자네는 비록 그 둘과 달리 명성이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능력을 충분히 증명한 셈이지. 도대체 자네들의 아버지는 어떻게 자네들을 키웠는지 궁금하군. 그리고 자네 부모님이 참으로 부럽네.”

병주와 병윤은 이범석 장군이 언급한 부모님에 대해서 아련한 눈빛으로 고향을 생각했다. 부모님은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병윤은 전반적으로 부모님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지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작은 형님.”

병윤은 처음으로 병주에게 말을 걸었다. 병주는 무감정한 얼굴을 지으며 병윤의 말을 듣는다.

“큰 형과의 연락이 닿았습니다.”

“...!”

길병주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병윤을 쳐다보았다. 병윤은 아까의 죄책감의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병주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큰 형이 구출해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아버지가 뭐?”

“현재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병주는 경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왜... 왜 아버지가...”

“일본제국에서 큰 형을 회유하려고 아버지를 인질로 삼았다고 합니다.”

“......”

병주는 멍한 얼굴로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끝까지 조선에 남아 있을 걸 이렇게 중얼거리며 후회하는 얼굴이었다.

“그에 대해서 우리도 방법을 찾고 있네.”

이범석 장군이 나직이 병주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병주의 얼굴색은 바뀔 틈이 없었다.

“병윤 역시 자네처럼 암담한 표정을 지었지. 무려 4달 전에 말이지.”

“!!!”

4달 전이라면 자신이 일본군에서 탈영했던 때가 아닌가? 병주는 그 기막힌 타이밍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치 일본제국이 자신의 행동을 보자마자 아버지를 인질로 잡은 셈인 것인가?

“하하하... 죄송합니다. 아버지.”

병주는 그렇게 눈물 자국을 남기며 눈물을 흘렀다. 병윤 역시 병주의 얼굴을 보고 숙연한 표정이었다. 감연은 병윤의 등을 토닥였고, 강덕재는 병주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도 한 가지 기쁜 소식은 있어.”

이범석 장군이 으스대며 병주와 병윤에게 말한다. 병주와 병윤은 순간 이범석 장군에게 고개를 돌렸다.

“병윤아. 진작 너에게 말하지 못해서 참으로 미안하다.”

이범석 장군은 뜸을 들이며 흠흠 거리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구미 위원장에 계시는 이승만 박사께서 연락을 하더라. 현재 미국 재활치료센터의 장에 있는 자네들의 형인 길병재가 자신의 여동생을 치료하며 같이 생활한다고 말이지.”

그 순간, 병윤과 병주의 눈이 단박에 커졌다. 병윤은 특히 더 그랬는데, 지금 병윤은 팔과 다리, 손이 떨렸다. 그리고 이범석 장군에게 외쳤다.

“그... 그 여동생이라면... 큰 형에게 여동생이라면...”

“그래. 이름은 길효순이라고 하더라.”

병윤과 병주에게 큰 충격이 온 듯 얼굴을 짓는다. 병윤 역시 병주처럼 눈물을 흘림과 동시에 정신이 나간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 하하... 하하하... 누나가... 살아... 계셨다니... 그렇다면... 그건... 도대체... 뭐지...”

병윤은 처음 중국으로 밀항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누나가 끼던 동제 팔찌를 보았다. 그 것으로 병재는 누나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나는 살아있었다. 병윤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

병윤과 병주의 얼굴은 침묵을 지켰고, 이범석, 송감연, 강덕재, 김도진은 그 둘을 복잡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약 한 시간 뒤, 병윤과 병주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 것 같았다. 그만큼 이범석의 소식이 그 둘에게 충격적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자네는 제 1 지대에 파견가고 싶다고? 그건 왜지?”

“직접적인 전투를 치러 경험을 쌓기 위함입니다.”

“지금 우리 병사들이 얼마만큼 된다고 생각하나? 지금 우리 광복군은 병사보다 간부가 더 많을 지경이야. 그런데 그 귀중한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겠다니 제 정신인가?”

이범석은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호통을 쳤지만 병주의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그 것은 표면상의 이유입니다.”

“표면상?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뭐지?”

“그건 제 1 지대를 감시하기 위함입니다.”

“으음...”

이범석 장군은 턱을 손으로 쓰다듬어 병주의 제안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렇군. 제 1 지대는 김원봉의 사병세력이 주축으로 만들었지. 자네는 지금 그 속으로 들어가 첩자가 되기 위함인가?”

“예.”

이범석 장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의 수는 매우 부족하지. 그러나 그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병윤이 그 때 나직이 말했다.

“제가 총통님께 말씀드려서 광복군 제 1 지대를 신유철 장군이 지휘하는 사단으로 임시적으로 휘하에 넣으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범석 장군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병윤아. 너에게 매번 신세를 진다. 제 1 지대로 자네 소대를 파견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고, 신유철 장군은 엄청 유능하니 병사들을 아낄 수 있고, 또 신유철 장군이 너와 친하니 너의 친형인 길병주를 따로 챙겨주겠지. 그래 그 방법이 좋겠다.”

병윤은 병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다.

“작은 형님. 말없이 가출한 것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어. 고향에 가면 부모님께 석고대죄라도 하라고.”

“예. 대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형의 소대에게 아끼지 않고 넣을 작정입니다.”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병주는 이제야 병윤에게 마음이 풀렸는지 병윤을 보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이범석 장군의 집에서 병주와 병윤은 해후하게 되었다.

그 후, 병윤은 장개석 총통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광복군 제 1 지대를 신유철이 지휘하는 사단에 파견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장개석은 순순히 병윤의 요구를 들어줬다.

병주는 신유철이 지휘하는 사단에 파견될 그 날까지 병윤과 감연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듣고 서로 대화했다.

============================ 작품 후기 ============================

결국 병주는 전선으로 배치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이야기를 쓰다보니 병윤이 이야기를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지네요;; 하지만 광복 전까지 병윤이 이야기를 차지하는 것은 그다지 없어서 광복 후에야 병윤의 비중이 커지게 될 겁니다. 광복 전에는 병윤을 그냥 조연이라고 생각하세요.

많고 좋은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러니 모두들 저에게 댓글을 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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