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 / 0633 ----------------------------------------------
[1부] 흩어진 가족들
병주의 소대가 거점으로 삼은 건물 앞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중간에는 병주와 호위병 2명, 피난온 민간인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대치하고 있었다.
호위병 2명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지도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병주는 중년 남성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당신들은 피난 온 사람들입니까?”
병주의 매끄러운 말투에 중년 남성은 긴장감이 조금 풀린 표정이다. 그러나 병주와 그 뒤의 병사들을 향해서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소. 우리는 이 곳 남경을 탈출하려는 민간인들이오.”
“이 곳은 현재 우리 중국군이 점령한 곳입니다.”
“나도 알고 있소. 방금 전 그 무시무시한 전차가 이 건물 앞에 있는 것을 발견했지. 평상시 몸을 대피할 장소가 이 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그래서 처음 목적지로 잡은 곳도 여기이오.”
“그럼 이 곳을 알고 찾아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우린 남경에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이오. 전투 통에 안전한 장소는 잘 알고 있지.”
“으음...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현재 이곳을 우리 소대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내 일행들과 상의할 것이 있소.”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십시오.”
피난 온 민간인의 지도자는 병주에게서 등을 돌리고 자신의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서로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몇몇 인원은 건물의 경계 상태를 관찰했다. 병주는 민간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의 귀에는 현재 민간인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럼 이 곳을 포기해야한다는 말씀입니까?”
지도자의 말을 들은 칼 잡은 청년이 언성 높게 외친다. 그러나 민간인 지도자는 그 청년의 언성 높은 어조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오히려 칼 잡은 청년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자네는 저 무장한 군인들을 공격해서 저 건물을 점령할 수 있겠는가?”
그 반문에 칼 잡은 청년의 기세는 순간 수그러들었다. 칼 잡은 청년 옆에 권총 잡은 청년이 지도자에게 대신 대답한다.
“그건 아닙니다. 우리는 애까지 딸린 여성들도 있는데 함부로 공격하다가 우리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저 기관총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저 무시무시한 전차의 포가 우리를 노린다면...”
그 때, 지도자 옆에 있던 해진 양복 입은 남성이 지도자에게 말한다.
“다른 곳으로 갈 길도 없잖습니까? 저 건물 외에는 안전한 장소도 없습니다.”
지도자는 그 말에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지금 이 전투 속 난리 통에 겨우겨우 운 좋게 피난에 성공했지만 이 순간 지도자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 때 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여성이 말한다.
“저 사람 얼굴을 보니 우리를 받아주지 않겠어요?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없고, 저 건물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좋겠네요.”
젊은 여성의 말에 모두들 할 말을 잃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먼저 고민을 끝낸 사람은 지도자였다. 지도자는 굳게 결심을 했는지 눈빛이 단단했다.
“일단 저 사람에게 교섭을 해보지. 저 사람이 아무래도 이곳을 점령한 책임자인 것 같으니까 말이야.”
칼 잡은 청년이 지도자에게 난감어린 어조로 말한다.
“정말 괜찮을까요? 우린 중국군에게 있어서 부역자 신세나 다름없는데 군공 세운다고 우리를 모두 죽이기라도 하면 큰 일 아닙니까?”
지도자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눈을 감고 칼 잡은 청년에게 말한다.
“솔직히 도박이야. 저 건물 속에 들어가지 못하면 우린 모두 죽네. 저 건물을 제외하고 다른 건물은 없어. 모두 폭격당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저 건물을 점령한 소대장의 말투가 정중한 것을 보니 우릴 해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에휴... 알겠습니다. 전 영감님만 믿겠습니다.”
칼 잡은 청년은 자포자기하고 말았고, 지도자는 칼 잡은 청년을 보고 눈을 찌푸리다가 그 청년에게 말한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자네가 이 사람들을 보호해주게.”
칼 잡은 청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 마십시오. 제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지도자는 칼 잡은 청년의 수호의지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지도자는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병주를 바라보더니 한 걸음 한 걸음 용기를 내며 걸어갔다. 지도자와 병주가 서로 이야기할 지점으로 걸어가자 지도자는 병주에게 입을 연다.
“우린 이 전쟁 통에 안전한 곳을 찾아 피난하는 처지이오. 저 건물 외에는 안전한 곳은 없소. 만약 있다고 하여도 그건 일본군 병사들이 있다오.”
병주는 눈을 반짝였다. 병주는 지도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보호해주었으면 좋겠소. 저 건물 안에 사람들을 들여보냈으면 하오.”
병주는 손가락으로 턱을 만지면서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지도자는 그런 병주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병주의 대답을 기다린다. 병주는 곧 날카로운 눈빛을 지도자에게 보낸다.
“뒤에 보니 애들을 안고 있는 여성들도 보이는군요. 저 사람들이 우리를 위협할 전력은 안 된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병주는 지도자의 기대를 들어줬다.
“일단 여러분들을 이 안에 들여보내겠습니다. 현재 이 건물을 거점으로 삼았으니 무기나 식량을 보급할 차량이 이 건물로 들어올 것입니다. 아마 그 차량을 타고 남경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오오오...”
지도자는 병주의 눈에 띄게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병주는 그런 지도자에게 한 가지 주의 사항을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저 무기를 가진 사람들의 무기를 수거하겠습니다.”
“......”
지도자는 그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병주의 말을 순순히 듣는다면 저항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저런 무기를 가지고 병주의 무장한 소대원들에게 덤벼들 수 없었기에 지도자는 결정을 내렸다.
“알겠소. 내 잘 설득해보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전 병사들에게 여러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모를 위협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맙소.”
지도자는 병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하더니 자신의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지도자는 일행들을 불러 모은 뒤 병주와 했던 대화들을 전달했다.
“으음...”
“끄응...”
무기를 수거하겠다는 병주의 말에 칼, 권총을 가진 청년 두 명은 잠시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고, 해진 양복을 입은 남성이 지도자에게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정말입니까?”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수단도 이야기 해주었으니 정말이겠지. 정말 우리를 공격해서 군공을 세울 작정이라면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공격했을 거야.”
그 말에 칼 잡은 청년이 지도자에게 말한다.
“꼭 무기를 수거하겠다고 합니까?”
“저 군인들에겐 이런 무기 따윈 통하지 않겠지. 내가 봤을 때, 지금 군인들은 방탄복과 방탄헬멧을 단단히 착용한 상황이야. 칼도 들어가지 않을 듯 보여.”
“...... 알겠습니다. 전 영감님의 의견에 찬성하겠습니다.”
칼 잡은 청년의 말에 권총을 잡은 청년도 옆에서 동조한다.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솔직히 다른 곳으로 가봤자 우리 모두 죽을 목숨입니다. 저 군인들에게 보호받고 남경을 빠져나갈 수 있는 차량을 탑승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권총 잡은 청년 따라서 피난 온 민간인들 모두의 동의를 얻은 지도자는 곧 그들을 이끌고 병주에게 향한다.
“우린 이 권총과 칼밖에 없소. 우리가 이걸 들고 당신들을 공격해봤자 씨알도 없겠지. 당신의 말은 들어줬소. 이제 당신이 한 말을 지킬 차례이오.”
병주는 칼과 권총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소대원들에게는 이미 명령을 해뒀습니다. 여러분이 잠시 머무를 방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 말에 지도자를 비롯해 민간인 모두가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은 안도감 때문인지 아이를 안은 여성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병주는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의 뒤에서 호위하는 병사 두 명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한다.
“이런... 둘이 부축 좀 해줘.”
호위병사 2명은 병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예!”
호위병사 2명은 아이를 안은 여성을 부축했다. 그리고 병주는 민간인들의 지도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여기 서 있기 뭐하니. 일단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갑시다.”
지도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호의를 받도록 하겠소.”
그 때였다. 병주와 민간인들 옆으로 일단의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병주에게 다가간다. 갑작스러운 군인들의 등장에 민간인들은 겁에 질렸다. 특히 피냄새가 자욱한지라 그 공포심은 더해간다. 그러나 병주는 그 군인들의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반가운 기색으로 맞이한다.
“형님. 잘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강덕재와 그가 이끄는 2분대, 3분대가 이 거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한참 격전을 치룬 듯 군복에 피들이 묻었다. 강덕재는 병주와 그를 따르는 민간인들을 보더니 병주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뭐냐? 민간인들 같은데.”
“저 민간인들은 피난하기 위해 이 거점을 찾아 왔습니다. 지금 바로 이야기해서 이 거점으로 민간인들을 받으려는 상황입니다.”
강덕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병주에게 말한다.
“에효. 한창 격전을 치뤘더니 몸이 피곤하다. 현재 2분대, 3분대들 중 2명만 경상이고, 모두들 멀쩡하다.”
“알겠습니다. 거점 안은 정리해뒀으니 들어가 쉬거나 정비하십시오.”
“고맙다.”
강덕재는 그 말을 하고 2분대, 3분대를 이끌어 먼저 거점 안으로 들어갔고, 병주와 민간인들도 따라서 들어갔다. 그 때 민간인의 지도자가 병주에게 물었다.
“아참.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병주는 그 말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는 길병주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물으십니까?”
“아. 아니오. 우리들을 받아준 사람의 이름이라도 알자는 심정으로 물어봤소. 난 진조원이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진조원씨.”
“그런데 당신은 정말 친절한 것 같소. 보통 군인들이라면 우리들을 귀찮게 여기거나 약탈하는 존재로 보던데. 당신들은 다른가 보오.”
병주는 진조원의 말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군인이라면 이 행동이 당연합니다.”
“으음... 알겠소.”
민간인들의 지도자인 진조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주를 졸졸 따라다녔다.
진조원을 포함한 민간인들은 건물 안 깨끗한 곳에 배정받았다. 그리고 병주의 소대원들이 가져온 비상식량과 옷들과 천을 민간인들에게 건네줬다. 병주의 환대에 진조원과 민간인들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병주는 민간인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불러서 조사했다. 그들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기타 등등을 말이다. 그리고 이 곳 주변에 일본군들의 목격과 그 들이 주둔할만한 건물들을 물었다. 진조원과 민간인들은 그들의 물음에 순순히 협조해줬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민간인들에게 캐낼 것은 다 캐낸 병주는 그 정보들을 무전기를 통해 윗사람인 김원봉에게 보고했다.
-그런가? 알았다. 자세한 사항은 내일 차량이 도착하면 보내줘.-
“예. 예. 알겠습니다. 차량이 도착할 때, 민간인들도 따로 보내겠습니다.”
-알았다. 그럼 부탁하지.-
“예. 예.”
병주는 다시 무전기를 허리춤의 가죽집에 다시 넣었다. 옆에 앉아 쉬고 있던 강덕재가 병주에게 물었다.
“지대장님이 뭐라 하시냐?”
“내일 차량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허... 그럼... 우린 이 곳에서 하루 쉰 뒤 다시 활동하면 되겠군.”
“예. 아직 시가전의 첫 날이니 체력을 보존해야죠.”
“그 말이 맞어. 내 꼴 좀 봐. 힘들어 죽겠어.”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앞으로 힘들 날이 많아 질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충분히 쉬어두세요. 저와 1분대가 오늘 이 건물을 빈틈없이 경계할게요.”
“휴우. 그럼 부탁하지.”
강덕재는 그 말을 하고 침낭 위에 그대로 눕고는 눈을 감았다. 정말 전투를 격렬하게 치뤘는지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병주는 그 모습을 본 후 주위의 병사들에게 말한다.
“1분대와 본부 분대, 그리고 전차 승무원은 건물을 경계한다. 2분대와 3분대는 정비 후 휴식을 취하도록.”
“예. 소대장님!”
소대원들은 병주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크게 대답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일본군 몇 명이 병주의 소대가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그들은 건물 앞에 배치된 전차를 발견하고는 놀란 얼굴을 한 뒤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한다.
“어떻게 할 거야? 이곳을 정말 칠거야?”
건물을 발견한 일본군 병사 한 명이 옆에 있던 병사에게 말한다.
“으음... 저 건물 안에 어떤 적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 건물을 거점으로 삼은 듯하군. 귀한 전차를 이 앞에 정차해두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습격할 거야? 말거야?”
“잠시만 일단 관찰한 후 판단해보자고.”
그 말에 일본군 병사들은 멀리서 그 건물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러나 무월광 시기라서 어둠은 상당했다. 건물의 창문 넘어 적들이 보이지 않았다.
“으음. 건물 창문 넘어 적들이 안 보이는군. 왠지 불안한데.”
“그래도 적들이 이 건물 안에 없을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린 습격하라는 명령이 없었잖아. 꼭 여기를 습격해야겠어? 저 건물 앞에 멀쩡한 적의 전차가 있는 것을 볼 때, 지금 이 건물 안에 적 병사들이 있다는 뜻인데.”
“으으음... 젠장! 칙쇼!”
일본군 병사 한 명이 고민을 하다가 판단이 안 되는지 머리를 부여잡으며 욕을 한다. 결국 일본군 병사들은 건물을 습격하지 않고 되돌아갔다. 왠지 저 건물 안 적 병사들이 일본군 병사들의 습격을 눈치 챈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군 병사들의 그 느낌은 사실이었다.
============================ 작품 후기 ============================
작가에게 댓글은 힘과 사랑입니다. 그러니 모두 댓글이라는 사랑을 베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