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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건물 안에서 습격하려다 말고 되돌아가는 일본군을 바라보는 눈빛이 있었다. 고호윤은 창문틀 옆 벽에 기대고는 팔을 쭉 뻗어 거울로 일본군이 퇴각하는 장면을 보고는 창문틀 넘어 있는 병주에게 물었다.
“소대장님. 지금이라도 공격합니까?”
병주는 거울에서 비춰지는 일본군의 동태에 잠시 고민에 빠지다가 고호윤의 말에 작게 대답한다.
“일단 저들을 보내준다.”
그 말에 고호윤은 왜? 라는 표정이 절로 들어나오면서 말한다.
“저들이 병력을 더 끌어오고 이곳을 공격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차라리 그게 더 낫지.”
잔혹한 미소를 짓는 병주의 말에 고호윤은 과묵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렇습니까? 소대장님의 의도를 잘 알겠습니다.”
고호윤은 그렇게 말한 뒤 일본군 병사들의 모습이 안 보이자 한 손에 잡은 38식 보총을 내려놓았고, 그의 행동을 뒤따라 경계를 서고 있던 병주의 소대원들 모두 38식 보총을 내려놓는다.
소총을 내려놓은 고호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병주에게 한 가지 물어봤다.
“그런데 소대장님. 어떻게 적이 온다는 것을 포착했습니까? 그 때 당시 소대장님은 잠을 자지 않았습니까?”
병주는 고호윤의 질문에 입 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뭐 그런 게 있어. 난 잘 때도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그런 걸 잘 느끼나봐.”
“흐흠. 잘 때는 상당히 불편하겠습니다. 안 피곤하십니까?”
“아니 피곤하지 않지. 만약 그 때문에 피곤하다면 난 이미 못살겠다고 자살했을 거야.”
병주의 얼굴을 살펴본 고호윤은 듣고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아. 부럽습니다. 감각은 예민한데 피곤은 느끼지 않는다니. 이 무슨...”
병주는 고호윤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 녀석에게 나의 도깨비다운 능력이 있다고 말을 못하겠군.’
사실 병주가 피곤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숙달계열의 기술들 덕분이었다. 숙달계열이 전문 급에 도달하게 되면 그 계열에 속하는 행위들에 대해 피곤 자체를 못 느끼게 된다. 그 덕분인지 병주는 격렬한 전투 속에서 피곤은커녕 매번 체력이 생생했다.
‘하지만 수면욕이 없는 것은 아니지. 피곤을 못 느낀다고 잠을 안자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사실 병주는 몇 달간 잠을 자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다. 그건 병주의 형제인 병재와 병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병주가 잠을 자는 이유는 꿈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병주에게 꿈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병주가 깨어나면 그 꿈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치 재밌는 영화라도 본 후 감상을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병주는 일신의 즐거움을 위해 매번 잠을 잔다.
그러나 병주는 이번에 일신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소대원들의 체력관리를 택했다. 병주는 아까의 경계태세를 취하고는 시선을 고호윤을 비롯한 소대원들에게 돌렸다.
“아까처럼 2명만 남아서 경계하고, 나머지는 자라.”
고호윤은 놀란 얼굴로 병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정말 안 주무셔도 상관없습니까?”
“나 잠 안 자도 피곤하지 않으니 상관없다. 너희들이라도 자라. 내일이 되면 격전이 일어날 테니 체력관리를 해야지.”
“으음... 알겠습니다.”
병주의 말에 고호윤은 막상 자신의 잠자리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병주를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병주는 태연하게도 고호윤과 그 주위 소대원들에게 손을 앞뒤로 휘저으며 자라고 재촉한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얼른 자라. 너희들도.”
“예! 소대장님.”
결국 경계병 2명만 남고 나머지는 자신의 소총에 함부로 격발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둔 뒤 자신의 침낭 위에 소총을 끌어안고 잤다. 병주는 그 모습들을 보고 자식들을 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지으면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창문 넘어 어두운 밖을 쳐다본다.
“달이 없으니 심심하군.”
병주의 눈에서 달빛 없는 어두움만 가득한 풍경이 보였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 해가 떴다. 병주가 눈을 뜨고 경계를 서준 덕택에 침낭 위에 자고 있던 소대원들의 피로는 풀린 것 같았다. 소대원들은 하나둘 씩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침낭을 개서 동그랗게 묶고는 그걸 군장 위로 올렸다.
그 후 소대원들은 군장의 겉주머니에 있던 반합을 꺼내고는 반합 안에 있는 주먹밥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병주 역시 자신의 반합을 꺼내서 주먹밥으로 끼니와 식수를 대신했다.
“항상 주먹밥은 밋밋합니다.”
고호윤은 주먹밥을 우걱우걱 먹고는 주먹밥의 맛에 만족하지 않는 얼굴을 짓는다. 마치 배고프니까 억지로 우겨먹는다는 모습이 강했다.
“이 곳에 차들이 도착하면 식재들도 도착할 거야. 그 때까지 참아.”
고호윤은 그 말에 남은 주먹밥을 마저 먹고는 수통의 물로 입가심을 했다.
“휴우. 그냥 억지로 씹어 먹는 맛입니다. 주먹밥이라도 맛있게 했으면 뭐라 말을 안 할 텐데.”
병주는 고호윤의 말에 동의했다. 병주가 느끼기에도 이 주먹밥은 맛이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떻게 작전 수행을 합니까? 소대장님이 말씀하기로는 내일부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고호윤은 병주에게 고개를 향하며 병주에게 묻는다.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도를 하나 꺼내 펼친다.
지도는 남경 시내를 나타냈다. 그리고 지도 곳곳에 동그라미가 쳐지고, 글자들이 써져 있어서 조금 지저분했다. 병주는 자신의 소대가 위치한 곳을 검지로 가리키면서 말한다.
“우리 소대가 위치한 곳은 이 건물이야.”
고호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주는 고호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지도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소대가 위치한 건물을 중점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오늘 할 일은 이 동그라미 내에 있는 적들을 소탕하는 것이지.”
“으음... 꽤 범위가 넓군요. 우리 소대로 감당이 되겠습니까?”
“포격과 폭격으로 건물들이 많이 무너져 내렸으니 적들이 숨을 것은 별로 없을 걸. 뭐 폐허 속에서 끈질기게 숨는 적들도 있겠지만 말이야.”
“전 소대장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소대장님의 눈은 항상 적들을 포착하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말이라도 고맙다. 아 참 주의점이 있는데 이 동그라미 내에 대로 하나가 있을 거야.”
고호윤은 병주가 말한 지도의 대로가 어딘지 찾았다. 고호윤은 병주에게 시선을 돌리며 왜 대로에 대해 말하는지에 대해 이유를 묻는 표정이었다.
“일단 이 동그라미 내에 우리 소대에 배치된 41식 중전차의 활용은 이 곳 대로에서만 활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대로를 중점적으로 수색하면서 작전을 수행할 거야.”
그 말에 고호윤은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의 지역에는 우리 직접 수색하면서 작전을 수행해야겠지. 문제는 이 대로가 의외로 아군과 적이 교전 중일 확률이 높지.”
“예. 차량이 수월하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대로이니까 하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잘 공부하고 있군.”
“그런데 우리 1분대와 본부 분대, 전차만 끌고 갑니까?”
고호윤의 질문에 병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면서 말한다.
“아니. 우리 소대 모두 다 출전한다.”
“으음... 작전은 언제 시행됩니까?”
“적어도 이 거점의 방어준비를 갖춘 직후가 되겠지.”
소대원들은 어느 정도 밥을 먹고 주위를 정리했다. 병주는 전차장 김도진과 부소대장 강덕재에게도 고호윤에게 설명했던 것을 반복했다. 김도진과 강덕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도진이야 시가전에서 할 일이 적어서 충분히 쉬었다고 하지만 강덕재와 그가 이끄는 2,3분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병재가 충분히 자도록 배려해주었는데도 강덕재와 2,3분대의 분대원들의 얼굴에는 노곤함이 가득했다. 병주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엄청 많이 격전을 치룬 것 같군. 피곤한 얼굴들을 보니 말이야.’
그러나 그런 얼굴 속에서도 눈빛은 날카로움과 긴장감이 역력했다. 병주는 그들의 눈빛을 보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그 때, 병주의 허리춤의 가죽집에 결속된 무전기가 울린다. 병주는 가죽집에서 무전기를 꺼내 작동시켰다. 그 무전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곧 바로 받는 것 보니까 일어난 듯 싶군.-
“예. 잘 잤습니다.”
-그래. 일단 네가 말한 대로 차량은 1시간 뒤에 도착할거야. 그 때까지 정비하고 될 수 있으면 방어진지를 구축해.-
“건물 안 폐품들을 활용해 임시 방어진지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1시간 뒤에 보지.-
“으응? 지대장님께서 직접 오십니까?”
-아아. 내가 말을 하지 않았군. 자네가 말한 거점은 이제 우리 광복군의 거점이 될 거야.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그럼 1시간 뒤에 맞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주게나.-
병주는 무전기를 끄고는 가죽집에 다시 넣는다. 병주는 아까의 대화에 눈살을 찌푸린다. 강덕재가 그런 병주의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무슨 내용이 오고 갔길래. 얼굴을 찌푸리는 거냐?”
“지대장님이 이 곳을 직접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강덕재는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피곤한 기색은 더욱 가중되었다.
“아예 지대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말인 것 같군.”
“일단 피곤하기는 하겠지만 이 건물 안에 폐품들을 모아서 건물 앞에 임시 방어진지를 구축해야겠습니다.”
“으음... 알겠다.”
결국 병주와 병주의 소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건물 안 폐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때, 어제 피난 온 민간인들의 지도자인 진조원이 병주의 행동에 궁금증을 가지고 물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병주는 폐품 하나 주워 어깨에 지고는 진조원에게 시선을 돌린 후 말한다.
“이 곳이 지대의 거점이 되면서 임시 방어진지를 구축 중입니다.”
“지대? 그게 무슨 말이오?”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군인 백 명이 이곳에 임시로 주둔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에 진조원은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병주에게 말한다.
“우리가 도와줄 것은 없소? 이대로 있기가 뭐한지라...”
병주는 도움을 주겠다는 진조원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는지 진조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그럼 저희들이 하는 것처럼 폐품 줍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까?”
“폐품이라... 알겠네. 내 모두들에게 말해보지.”
진조원은 그 말을 한 뒤 자신의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자신이 병주에게 한 제안에 대해 말했다. 어느정도 서로 대화하다가 결국 민간인 남성들이 진조원의 말을 듣고 병주의 소대원들의 행동을 도왔다.
약 한 시간 뒤에 어느 정도 건물 안 폐품들을 정리하고 난 뒤, 그 것들을 조합하여 임시 방어진지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모래주머니라든지 방어진지는 어느 정도 물품이 필요하기에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임시 방어진지가 만들어지자, 그 때를 맞춰서 차량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차량들은 전부 방호차량으로 짐칸에는 원하는 보급품들이 가득했고, 어떤 차량에는 병사들만 수송되고 있었다. 병사들을 수송한 차량이 정차하자, 그 차량을 운전한 병사가 하차하여 짐칸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 직후 차량의 짐칸 양쪽에 앉아있던 병사들이 차례대로 하차했다.
그리고 그 병사들 중 몇 명은 경계상태를 취하고, 나머지는 전부 보급품을 실은 차량으로 가서 보급품들을 들고 어제 병주가 말한 거점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 병사들의 지휘관인 지대장 김원봉 역시 차량에서 내려서 병주와 그의 소대가 만든 임시 방어진지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대장 병주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김원봉은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병주를 만날 수 있었다. 김원봉은 병주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병주를 치하했다.
“어제 이곳을 점령하느라 고생이 많았군.”
“별 고생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곳을 왕림하신 지대장님께서 더욱 고생이 있는 걸 모르는 이가 있겠습니까?”
병주의 아부에 김원봉은 피식 웃었다.
“아까 임시 방어진지를 세운 것 보니 잘 세운 것 같더군. 이제 이곳을 지대의 거점으로 삼았으니 여기를 중점으로 작전을 시행해야겠군.”
“예. 저도 그 생각을 하고 마침 작전을 검토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가? 자네가 짰다는 작전을 보고 싶군.”
김원봉이 병주가 짠 작전에 관심을 가지자 병주는 거점 안 방으로 안내하고는 고호윤에게 작전을 설명한 것처럼 지도를 꺼내 아까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김원봉은 이 작전에 대해 의문점들을 말한 뒤 병주의 대답을 듣고 있었다. 병주의 작전 설명이 끝나자 김원봉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좋아. 자네 임천 분교에서도 봤지만 작전을 짜는데 빈틈이 없군. 더욱이 예상외의 경우에도 대비하다니 말이야.”
“전투랑 예외의 연속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해 대비할 뿐입니다.”
“자네처럼 생각한 이는 없을 거야. 이렇게 작전과 대비책을 준비해왔으니 이제 시행할 일만 남았군. 대로 쪽은 자네가 맡게. 나머지는 나머지 소대들에게 맡기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세운 작전 아니던가? 불안감을 가지지 말게. 이 김원봉, 그다지 무능한 이는 아니니 말일세.”
병주는 그 말에 김원봉을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이내 결심을 굳힌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대장님이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어제 합류시킨 민간인들 말이야.”
“예.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말한 것처럼 하기로 했네. 외곽 지역에 피난민 수용소가 있으니 그 쪽으로 보내면 되겠지.”
김원봉의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고맙습니다. 지대장님.”
“하하. 뭘. 조금 쉬다가 작전을 시행하지.”
김원봉의 지대 본부와 한 개 소대를 제외하고, 결국 나머지 병력들은 조금 휴식한 뒤 다시 시내로 나가게 되었다. 그건 병주의 소대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병주의 소대는 대로를 중심으로 전차를 이끌고 작전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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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시가전은 한동안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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