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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남경 시내의 한 대로, 그 대로를 따라 가는 한 병력과 전차 한 대가 있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전차는 평평한 대로를 마치 물 만난 고기마냥 만큼 엔진소리를 내며 신나게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차의 뒤를 따라 은엄폐하는 병사들도 보였다.
병사들의 이끌고 있는 병주는 기술 관찰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면서 이 폐허 저 폐허 속에서 혹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연신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병주의 감각에 어딘가 인기척이 들면 순간 정지시키고, 병력을 주위 폐허로 엄폐시킨다. 그 후, 병주는 자세히 관찰해서 적이면 바주카포를 장비한 병사에게 향해 바주카 로켓을 쏘게 만들거나 아니면 전차 밖으로 기관총을 잡고 있는 전차장 김도진에게 말해 전차포를 쏘게 만들었다.
또 어쩌다 부비트랩을 비롯한 함정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때만 되면 병주는 고호윤을 비롯한 분대장들과 부소대장 강덕재를 이끌고 함정들을 해체시키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줬다.
그런 방식으로 병주의 소대와 전차는 대로를 따라 전진하고 있었다. 약간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병주는 주먹을 쥔 오른손을 번쩍 들고 손을 폈다. 바로 정지하고 주위로 엄폐하라는 수신호였다. 병주 자신 역시 주위로 엄폐하면서 수신호를 보내게 한 원인을 지그시 바라본다.
옆에 강덕재가 벽에 기댄 채 물어본다.
“무슨 일이야? 엄폐하는 것은 보면 함정은 아닌데.”
“적의 저격병입니다.”
“저격병? 아 그 개자식들.”
강덕재는 저격병이라는 병에 이빨이 갈렸다. 방탄 헬멧과 방탄복이 없었다면 강덕재는 저 세상에 있을 정도로 저격을 맞았다. 또 총알이 방탄헬멧 혹은 방탄복에 맞았다고 하여도 안 아픈 것도 아니었다. 소총탄의 충격이 몸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자네의 그 사격실력을 볼 수 있겠군. 저격병에는 저격으로 상대해야지.”
강덕재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병주를 쳐다본다. 병주는 강덕재의 눈빛이 은근히 부담스러운지 얼른 저격용 조준경을 꺼내고는 자신의 소총에 결합시켰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저격병이 있던 곳으로 돌렸다. 적의 저격병은 아직 자신과 자신의 소대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병주는 자신의 소총의 유효 사거리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강덕재에게 시선을 돌린 후 말한다.
“강형. 전 저격병을 처리하러 갔다 오겠습니다. 그 때 동안 강형이 우리 소대원들을 지휘 좀 부탁하겠습니다.”
강덕재는 염려 말라는 표정을 짓고는 말한다.
“자네라면 몸 다치지 않고 잘 돌아오겠지.”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전진한다. 이윽고 적 저격병을 맞출 수 있는 유효 사거리 내로 들어가자 병주는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적 저격병을 보고 얼굴을 찡그린다.
‘쓰레기 자식들’
병주는 조준경으로 적 저격병 주위를 관찰했다. 적 저격병은 자신의 주위 병사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냥 그 뿐이라면 병주는 욕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적 저격병 주위에 징그럽게 창자가 삐져나와 상체만 나뒹구는 여성의 시체와 곱게 죽지 않은 아이들의 시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병주는 조용히 속으로 저들에게 분노를 되새긴다.
‘저 놈들에게 학살당한 원혼들이여. 성불하시오. 저 놈들은 내가 지옥으로 보내주겠소.’
그렇게 마음속으로 희생자들을 성불한 병주는 저격용 조준경에 오른 쪽 눈을 가까이 하고는 적 저격병의 관자놀이를 조준한다. 병주의 호흡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손놀림도 완벽하게 제어했기에 병주의 눈에 보이는 조준경의 십자 선이 흔들리지 않았다. 병주는 그렇게 조준을 완벽하게 끝내고 서서히 검지 끝으로 한 단계씩 힘을 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이윽고 총성과 함께 병주의 총 옆구리에 탄피 하나가 튀어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반자동인 병주의 소총이 즉시 재장전 되었다. 총알은 적 저격병의 관자머리에 즉시 닿자마자 관통하고 머리통을 터뜨렸다. 머리통이 터지면서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병주는 그 광경에 눈 깜빡하지 않고 주위의 병사들의 머리를 조준하고는 쐈다.
-타앙! 타앙! 타앙!-
적들의 머리통이 터지면서 퍽 하는 소리가 병주의 귀에 미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노닥거리며 즐기던 적 병사들은 그렇게 병주의 손에 곱게 죽지 않고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병주는 통쾌하다는 감정보다는 씁쓸하다는 감정이 앞섰다. 그 감정은 얼굴에 드러났다. 병주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한다.
‘이것이 전쟁이잖아.’
씁쓸한 얼굴의 병주는 아까 적 저격병이 있던 곳을 바라보고는 등을 돌린 뒤 자신의 소대에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긴다. 결국 적 저격병이 있던 곳은 적 병사들에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민간인들과 병주에 의해 머리통이 터진 적 병사들의 시체만 남았다.
병주는 발걸음을 옮기고 손으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타고, 폐허 속을 슬라이딩으로 통과하면서 빠르게 자신의 소대가 있는 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강덕재는 씁쓸하기 그지없는 병주의 얼굴을 보고 뭔 일인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뭔 일 있었어? 얼굴이 왜 그래?”
강덕재가 병주를 걱정하는 말투로 말하자 병주는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얼버무린다.
“아무 것도 아니야. 일단 적 저격병을 처치했으니 전진해도 괜찮겠지.”
강덕재는 병주의 얼버무림에 오히려 궁금증이 남겼지만 병주에게 그 일을 끝까지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결국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가 갔다 온 사이 별다른 일은 없었다.”
“예. 고마워요. 강형.”
“뭘 이 정도 가지고.”
강덕재에게 자신의 지휘권을 양도받은 병주는 다시 소대원들의 은엄폐를 해제하고 다시 대로를 따라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함정을 해제하고 매복하고 있던 병사들을 오히려 기습하고 처리하면서 어느덧 병주의 소대는 오늘 정한 자신의 작전구역 끝에 도달했다. 병주는 사방을 살펴보니 걸리는 것이 없었다.
병주는 허리춤의 가죽집 안에 있는 무전기를 꺼내다 김원봉에게 보고했다.
“여기는 가 소대 가 소대. 어미새 있는가?”
-어미새 양호.-
“현재 가 소대 가 소대 맡은 작전 구역 내 적 소탕 및 함정을 해제하였다는 보고.”
-아 알았다.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하겠다. 그 때까지 주위에 은엄폐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양호.”
병주는 김원봉에게 보고를 마친 후 다시 무전기를 허리춤의 가죽집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시선을 부소대장 강덕재에게 돌린 후 말한다.
“주위 안전한 곳에서 은엄폐한 후 쉬라고 합니다.”
강덕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휴우. 별 피해 없이 작전이 끝나 다행이야.”
“예. 다행입니다. 상당히.”
병주는 아까 저격병을 처리할 때가 기억이 났는지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병주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박수를 작게 친다.
-짝! 짝!-
작은 박수소리에 모든 소대원들이 병주를 주목했다. 병주는 그들의 얼굴을 전부 살펴보고는 말한다.
“일단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안전한 곳을 찾아서 은엄폐한 뒤 쉬도록 한다.”
-예! 알겠습니다.-
병주의 기술 관찰 덕분에 경계가 용이하면서 쉴 수 있는 곳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병주와 그의 소대원들은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후 몇 명을 경계병으로 내세우고 나머지는 정비하거나 쉬었다.
몇 몇 인원은 허기진 배를 채우거나 수통의 물로 마른 목을 적셨다. 그리고 어떤 이는 벽에 기대어 쪽잠을 자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탄창에 총알을 재어 넣거나 장비들을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전투 중 생겨난 경상이 있는 인원들에 한해서 구급 병이 응급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병주는 자신의 수통의 물을 마시면서 마른 목을 적셨다. 병주의 얼굴에는 땀이 났지만 비교적 생생했다. 마치 고생을 하나도 안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대원들은 그런 얼굴의 병주를 보고도 뭐라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직접 병주가 얼마만큼 열심히 전투 속에 끼어들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병주는 하는 일이 정말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상관에게 보고하지, 혹시 모를 인원들을 점검하지, 소대원들을 챙겨주기 위해 경계도 대신해주지, 짬을 내어 가르치고, 마지막으로 상담까지 한다.
그런 병주의 모습을 보았기에 소대원들은 병주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유능하고 자상하고, 때에 따라선 엄격한 병주의 모습은 소대원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마 병주가 사지로 진격하자고 말한다면 소대원들은 전부 다 동의하면서 갈 것이다.
목을 어느 정도 적신 병주는 다시 수통의 뚜껑을 닫고, 군장 옆 주머니에 넣었다. 그 후 병주는 자기의 장비를 관리했다. 총기를 분해해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하고, 그 다음 조립하고, 어느 정도 빈 탄창에 총알을 재어놓고, 저격용 조준경을 살펴보고, 나침반은 이상 없는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지도를 꺼내어 자신과 자신의 소대원들이 어디에 위치했는지까지 지도에 점을 찍으면서 확인한다.
고호윤의 맞후임이자 1분대의 화염방사병으로 임명된 선동호는 덩치가 있는 남성이었다. 그는 등 뒤에 군장대신 기름통을 대신 멘 것과 더불어 일반 병사들보다 온 몸에 방호장비를 덕지덕지 착용했다. 또한 안면이 경화 플라스틱으로 된 방독면을 전투 시에 쓰고 다녔다.
뭐 지금은 휴식 중이니까 선동호는 그 갑갑한 방독면을 옆에다 두고 기름통도 바닥에 두었고, 본인은 벽에 기대어 전투 중 생긴 땀과 체온을 식히고 있었다. 고호윤은 선동호를 보고 말한다.
“고생이 많다. 땀 좀 봐라.”
“에휴. 화염방사병은 완전 사람을 잡습니다. 잡아요. 더운 것은 둘째 치고 가까이 가서 공격해야하기에 온 몸에 방탄장비를 덕지덕지 붙는 것이 무겁고 뻣뻣합니다.”
“그런가?”
“그렇게 의아해하실 때가 아닙니다. 분대장님이 직접 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선동호의 그 말에 고호윤은 손사래를 친다.
“난 그 고생 하기 싫다. 너나 해라.”
“하아 너무하십니다. 진짜.”
그 때 선동호는 고호윤과 대화하다가 한참 정비 중인 병주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허. 소대장님 정말 굉장하지 않습니까? 저렇게 자기 정비를 하고 어디에 위치했는지 살펴보고, 또 빈 시간마다 가르치고, 저라면 피곤해서 못할 것 같습니다.”
고호윤은 선동호의 말에 피식 웃고는 병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소대장님 저러신 것 하루 이틀 봤냐? 일본군에서 장교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해왔던 일이야. 더군다나 원래 조선에서 대학생이라고 하더라.”
“우와. 대학생... 그거 진짜 머리가 좋은 사람만이 갈 수 있지 않습니까?”
“머리뿐만 아니라 집안도 좋아야하는데 소대장님은 장학금을 타면서 대학 다녔다고 하더군.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아마 일본군에 있었다면 지금쯤 출세에 출세를 거듭했을 거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팽개치고 독립운동에 끼어들었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허. 그런 사연이... 그런 노력이 알게 모르게 있었으니 지금의 소대장님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것도 맞는 말이겠지.”
“그나저나 요즘 시가전은 한창 격렬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야 괴물같은 소대장님이 계시니까 편한데 다른 곳은 사정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소대는 부비트랩을 잘못 건드려 몇 명이 죽거나 저격병의 공격에 운수 나빠서 대갈통이 깨졌다는 소식만 전해집니다.”
“그게 전쟁이지. 어쩔 수 없는 거야.”
선동호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저와 고 상병님은 운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도.”
그러다 선동호는 갑자기 얼굴을 고호윤에게 들이밀고는 입 한쪽을 가리며 작게 말했다.
“그런데 요즘 참한 아가씨 없습니까?”
“참한 아가씨?”
“예. 요즘 여자가 고픕니다. 여자의 품이 그리워서 제 하체가 울고 있습니다.”
고호윤은 선동호의 하체를 보고 비웃으며 말한다.
“그 여자를 기억하며 딸딸이나 쳐.”
“으으. 너무하십니다.”
“소대장님 그런 거에 관용 없는 거 알잖아. 민간인 건드리면 죽음 모르냐?”
“에휴. 소대장님은 엄해도 너무 엄합니다. 그러고 보니 소대장님은 여자도 안 만나는 것 같은데.”
그 말에 고호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다. 누구 여자 만난다는 말은 없었거든.”
“허. 그 잘생긴 얼굴로 여자들이 줄줄 따라올 거 같은데. 그런 염문설 하나 안 돕니까?”
“몰라. 내가 소대장님 여자관계를 어떻게 아냐?”
“부소대장님에게 물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호윤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서 한 번 물어보자고.”
“헤헤헤. 알겠습니다.”
고호윤과 선동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부소대장 강덕재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덕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명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너희들이 나를 찾아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고호윤은 그 말에 넉살좋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부소대장님께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소대장은 한쪽 눈꼬리를 올리면서 고호윤과 선동호를 바라본다.
“하하하. 그 저게 소대장님 있지 않습니까?”
“병주가 뭐?”
“소대장님은 여자 만났다는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호윤의 말에 강덕재는 피식 웃고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래. 없어. 그게 왜?”
“저. 저런 사람이 왜 아직까지 여자가 없는지 궁금해서...”
“하 별 걱정이야. 병주 녀석이야 알아서 하겠지.”
그 때 선동호가 고호윤 대신 나서서 말했다.
“우우! 부소대장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부소대장님 반응을 보니까 부소대장님만의 비밀로 하는 것 같은데. 같은 전우들끼리 비밀 없다고 부소대장님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난 말 한 적 없다. 그거 병주가 말했어.”
“그... 그래도.”
선동호의 기세가 누그러지자 강덕재는 할 말 없다는 듯 말하지 않는 것이 너무 했는가? 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결국 심심했던 강덕재는 아직도 장비를 정비 중인 병주를 보고 손으로 한 쪽 입을 가린 채 말한다.
“자네들이 알고 싶은 것은 작게 말하지. 이해하겠나?”
고호윤과 선동호는 강덕재의 말에 갑작스럽게 집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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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됩니다.
작가에게 댓글은 사랑과 힘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베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