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74화 (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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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고호윤과 선동호는 벽에 기대며 쉬면서도 눈빛은 초롱초롱 반짝였다. 그리고 귀는 강덕재의 말을 듣기 위해 쫑긋 세운다.

“사실 난 일본에서 유학을 갖다온 몸이지. 저 녀석과의 만남도 내가 먼저 청한 것이나 다름없어.”

고호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어본다.

“부소대장님이 소대장님을 찾았다고 했습니까?”

“그래. 내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갔을 때, 신문을 봤거든. 그런데 거기에 떡하니 수석입학자인 그 녀석이 있던 거야.”

고호윤은 그 말에 놀란 얼굴을 했지만 강덕재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하기야 소대장님의 능력이라면 대학 수석 입학 정도는 거머쥐겠습니다.”

강덕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래. 그걸 보고 난 먼저 찾아갔지. 그런데 그 때 당시 꽤 헌앙한 청년이었지. 아마 난 거기에 끌린 것이 틀림없었어. 그 만남 이후로 우린 형제사이가 된 거야. 사실 지금도 저 녀석이 나에게 강형 강형 한 것도 그 것 때문이야.”

고호윤과 선동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저 녀석은 대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교수들에게 붙들려서 매번 조교노릇을 했지. 워낙 능력이 좋아서 교수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불렀거든.”

“허. 그 정도라면 보통 상류층 사람들이 중매쟁이를 보내지 않겠습니까?”

강덕재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나도 불가사의한 일이지. 사실 저 녀석에게 온 중매쟁이는 없었어. 아니면 저 녀석이 중매쟁이를 만났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겠지.”

“허.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야 난 모르지. 사실 저 녀석이 여자 만나는 것도 보지도 못했어. 그리고 그 흔한 기생집에서 기생들을 만나는 사실도 없었어. 여유시간이 되면 지인들과 같이 술이나 마시거나 커피를 마셨지. 단지 그 것뿐이었다고.”

“그럼 소대장님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들은 없었습니까?”

강덕재는 그 말에 잠시 눈을 감고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 무슨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을 번뜩였다.

“있기는 했지. 내가 알기로는 몇 명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양갓집 규수들이 대학에 다니기도 했어. 그 중에는 아마 일본인 처녀들도 있는 걸로 기억할 거야. 매번 길상~ 길상~ 하면서 쫓아다녔지.”

고호윤과 선동호는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여자들의 미모는 눈이 부셨지. 아마 멋모르는 청년들이 본다면 좋아서 졸래졸래 쫓아올 정도였지. 그런 여자들이 병주 녀석만 보면 좋아서 쫓아왔어. 저 녀석이 워낙 얼굴판이 좋잖아. 거기다 능력이 있지. 앞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청년이었어.”

선동호는 그 말을 듣고는 소대장 병주의 얼굴을 잠깐 본 뒤 말한다.

“허어. 제가 그 때 당시 소대장님의 입장이었으면 그 여자들을 차지하고 말겠습니다.”

강덕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 때 당시 저 녀석은 매번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위해 틈나는 시간마다 일을 했지. 저 녀석이 여자들에게 얻어먹은 적도 있기는 한데 별로 없었어. 그만큼 성실한 녀석이었지.”

“...... 소대장님 혹시 여자 기피증이 있습니까?”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고호윤의 말에 강덕재는 희미하게 웃음을 짓고는 대답한다.

“여자 기피증이라. 글쎄다. 아마 기피증보다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그 녀석은 여자들을 반길 때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했거든. 그런데 그 녀석은 그 관계를 어느 정도 조절했지. 마치 더 이상은 넘어가지 말라는 식으로 말이야.”

“흐으음... 뭔가 아리송합니다. 기생집도 안 가고, 여자들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또 중매쟁이와 만났다는 이야기도 없고, 이 무슨...”

고호윤의 말에 강덕재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래. 나도 사실 의문이었지. 그래서 직접 물어봤네. 왜 자네는 그런 능력을 가지면서 남들 하는 결혼 하지 않냐고 말이지.”

“오오! 그래서 그래서 대답은 어떻게?!”

“대답은 싱거웠어. 아직 결혼생각이 없다더군. 지금 자기 형도 결혼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먼저 형을 앞설 생각은 없다하더군.”

“...... 이게 뭡니까?!”

선동호는 결국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고호윤 역시 마찬가지의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본 강덕재는 능글맞게 웃을 뿐이다.

“아무튼 저 녀석의 여자관계는 매번 시시해.”

“혹시 소대장님 고향에 있는 여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까?”

선동호의 말에 강덕재는 잠시 고민한다가 이내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표정을 짓는다.

“난 사실 저 녀석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해. 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사람? 그게 누굽니까?”

강덕재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 사람 이름은 최주평이라고 하는데 현재 만주군 장교로 있다네. 원래 병주 저 녀석이 대학에 있을 때 매번 편지를 하던 사이였지.”

“허어... 만주군 장교라니... 그러면 적으로도 만날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만주로 진격하거나 아니면 만주군이 중국전선에 배치되면 만나겠지.”

강덕재는 씁쓸한 얼굴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했고, 그 모습을 본 고호윤과 선동호는 말을 잃었다.

그 때, 한창 무전기에서 무언가 명령을 들었던 병주가 무전기를 다시 집어넣고, 작은 박수를 친다.

-짝! 짝!-

그 순간 서로 말하던 고호윤과 선동호, 강덕재는 물론이고 정비를 다 끝내고 쉬고 있던 병사들까지 일순간 병주에게 주목했다.

“위에서 명령이 들어왔다.”

전차에 탑승하던 김도진이 병주에게 물었다.

“무슨 명령입니까?”

“우린 대로변 남쪽을 따라 진격하면 대로들이 교차하는 광장이 나온다. 그 광장에 방책을 내세우고 진격을 막는 일본군을 물리치기로 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그 방책을 공략하고 있는 아군 부대들이 있는데 방책을 부술 전차를 급히 찾는 거 같다는 보고다. 현재 그 부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전차가 우리부대인 것 같다. 우린 거길 지원한다.”

그 말을 들은 소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자신의 준비를 했다. 선동호는 주변에 벗은 방호장비들을 다시 덕지덕지 붙이고 짜증나는 방독면을 착용한 뒤 화염방사기를 들었다.

어느정도 진격할 준비가 갖춰진 것을 본 병주는 자신 역시 자신의 짐을 챙기고 진격할 준비를 한 뒤 소대원들에게 외친다.

“그 곳을 공략하게 되면 우리 일은 끝난다. 잘 알아 들었겠지?”

-예!-

소대원들은 사기 넘치는 목소리로 소대장 병주의 말에 대답한다. 결국 병주의 소대는 쉬는 것을 중단하고 명령대로 대로 남쪽 대로를 따라 진격을 시작했다.

방책을 사이에 두고 병사들이 총격전을 개시한다. 수류탄들이 날아오고, 총탄들이 빗발친다. 대로들이 모이는 광장을 공격하는 소치현 영장(대대장)은 저 짜증나는 방책을 보고 눈을 찌푸린다.

“아직도 전차는 도착하지 못했나?”

그 말에 영(대대) 통신반장이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곧장 연락을 받고 진격 중이랍니다.”

“언제 도착한데. 그리고 얼마만큼 온데?”

“그게... 전차는 한 대, 병력규모는 배(소대) 규모의 병사들입니다.”

“뭐?! 배(소대)에 전차 한 대가 배치되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그 배(소대)는 광복군 제 1 지대의 소대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 그 녀석들인가?”

“그 녀석들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알 거 없다. 그들이라면 큰 도움이 될테지. 알았다.”

“예.”

영(대대) 통신반장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의혹을 남긴채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 거 같았다. 그래도 영장(대대장)의 표정이 한결 가벼운 걸 보니, 그 온다는 지원부대가 배(소대) 규모의 병사들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보다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한편, 방책을 설치하고 방어하고 있던 일본군 사정 역시 좋지는 않았다. 방책을 수비하는 일본군들의 지휘관은 연신 소리쳤다.

“방어해라! 끝까지 방어해! 여길 뚫리면 남부 시가지의 방어가 풀린다. 목숨 걸고 방어해라!”

연신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지휘관의 목소리에 조선인 징병자인 신영규는 짜증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젠장! 저런 상대에게 어떻게 방어 하라는 거야?’

신영규는 저렇게 총을 맞아도 안 죽는 병사를 보니 머릿속에 슬그머니 공포심이 나돌았다. 군복과 소총만 있는 자신들보다 저들은 완벽하게 총과 방탄장비를 장비한 채 방책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신영규는 속으로 지휘관에게 욕설을 한 채 진격하는 병사들을 조준한 뒤 쐈다.

-탕! 퍽!-

퍽하는 소리와 함께 신영규의 총탄에 맞은 병사 한 명이 뒤로 넘어졌다. 그러나 그 병사는 끄응 하고는 곧 장 자신의 소총을 줍고 다시 일어난다. 신영규는 그 모습을 보면 사기가 달아났다.

그 때 방어하라고 소리치는 지휘관이 신영규를 보고는 군홧발로 등을 차면서 말한다.

“이 버러지 같은 놈아! 잘 조준하고 쏴라. 네 녀석의 목숨보다 비싼 총알이다.”

‘젠장!’

신영규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하지만 속으로 지휘관을 욕한 채 신영규는 자리를 지킬 뿐이다.

‘도망가고 싶어. 엄마!’

신영규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뒤에는 자신들이 도망칠까봐 조준하는 독전대들이 있었다. 정식적인 퇴각 명령이 없다면 그들의 총에 죽을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쿠르릉! 쿠르릉!-

“뭔... 소리지...”

신영규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뭔가 불길한 소리가 귀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것은 그만이 아니라 그 주위에 있던 병사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 도 들은 듯했다. 지휘관의 얼굴이 새파랗진 것이 증거였다.

그리고 그 불길한 소리의 정체를 드디어 확인되었다. 바로 41식 중전차가 방책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허...”

신영규는 소총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다.

“칙쇼! 후퇴다 후퇴하라!”

결국 지휘관의 임의판단에 의해 후퇴명령이 벌어졌다. 그러나 때는 늦은 듯 싶었다. 전차포가 올라가더니 이내 포성이 울려 퍼진다.

-퍼엉~! 콰앙!-

포탄 한 발에 방책이 순식간에 부숴 졌다. 그리고 방책에서 엄폐하던 병사들 역시 몸이 터져 죽어나갔다. 신영규는 그 모습에 몸을 떨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젠장!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 때, 포성과 동시에 공격하는 중국군 병사들이 눈에 보였다. 전차의 돌격에 발을 맞추어 중국군 병사들은 방책 안에 저항할 수 없는 일본군 병사들을 기절시키거나 포로로 잡았고, 그래도 권총을 들고 저항하는 일본군 병사가 있다면 사살했다.

신영규의 경우도 똑같았다. 신영규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중국군 병사들이 보였다. 아니 그들과는 옷차림이 틀렸다. 신영규는 옷차림에 작게나마 태극기가 그려진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하... 항복... 항복...”

신영규는 오줌을 질질 싼 채 연신 조선어로 항복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리고 태극기가 그려진 병사는 개머리판으로 명치를 쳤다. 그 후 신영규의 기억은 검은 색으로 물들었다.

다시 신영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의 풍경은 자신이 느끼기에 낯선 새로운 장소였다. 신영규는 아마 추측하기로 포로수용소 같았다. 신영규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신영규는 포로들의 얼굴을 보고 사실 하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녀석들은... 가만...’

신영규는 자신과 포로들의 공통점을 알아차렸다.

‘설마 저 녀석들은 모두 조선인이잖아. 그런데 왜?’

아마 적은 조선인과 일본인 포로들을 구별해서 수용한 것 같았다. 그 때, 신영규를 시작으로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린 포로들이 있었다.

“끄응? 여기는...”

“여기는... 대체...”

“마지막에 적의 공격에 기절을 당한 것이...”

“아마... 포로로...”

깨어난 조선인 포로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어떤 상황에 있는지 살피고는 침묵한다. 아마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을 하는 것이엤지 신영규는 그들을 보면서 그렇게 추측한다. 그리고 그들도 신영규와 같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는... 조선인들만 수용된 것인가?”

“으음... 조선어로 말하니까 조선인들만 수용된 것이 맞겠지. 그런데 어떻게 우리 조선인들만 알고 구별시켰는지 모르겠군.”

“그러게... 그런데 우리만 따로 구별한다는 사실은...”

한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여기에 왜 수용되었는지 이유를 알아낸다. 신영규 역시 그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때, 포로 중 한 사람이 신영규를 알아본다.

“넌 신영규 아냐?”

“어... 넌 피현유?”

“살아있었네. 자식...”

“하아. 아까 전투 중에 죽는 줄 알았어.”

“그러게.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병사들이라니. 그렇게 장비가 차이나니까 도망가고 싶었더라고.”

“그건 나도 그래.”

신영규와 피현유는 아까 전투 중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포로들이 그 둘을 부른다.

“어이 무슨 일 있어? 서로 알고 지낸 사이야?”

“뭐 고향친구.”

그 말에 그 둘을 부른 포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영규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제시한다.

“그런데 우리만 따로 수용한다는 것은 뭔가 우리들을 이용할 것이 있어서 구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신영규의 말에 포로들의 정신이 번쩍 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곧 신영규에게 집중한다. 뭔가 할 이야기를 더 하라는 시선의 압박에 신영규는 쩔쩔 맨다.

“그러니까 말이지... 우리들을 따로 포섭한다거나? 그런 거 아닐까?”

============================ 작품 후기 ============================

광복군이 병력을 대폭 확대할 기회가?

작가에게 댓글은 사랑과 힘입니다. 모두들 작가에게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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